새로운 맛집거리가 서울 이태원에 형성되고 있다. 작지만 개성있는 음식점들이 남산 3호 터널과 반포대교를 잇는 반포로, 그 중에서도 중앙경리단과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 사이 짧은 구간에 속속 문을 열고 있다. 이곳 음식점들은 멕시코, 터키, 태국 등 다양한 외국음식의 맛을 제대로 내면서도 가격은 무척 저렴하다. 영어학원 강사 등 그렇게 돈이 많지 않은 외국인들이 단골이어서 그렇다. 대신 멋진 분위기는 기대하지 않아야 실망이 덜하다.
멕시코에서 먹는 바로 그 타코

타코(왼쪽)와 타코 알 파스토르. 어떻게 다르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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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코는 멕시코를 대표하는 음식. ‘칠리칠리’(Chili Chili)는 제대로 된 타코를 파는 곳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손바닥만한 밀전병에 맵디 매운 할라페뇨 고추, 물에서 방금 건져낸 듯 아삭한 양상추, 검은 올리브, 생크림, 싱싱한 토마토를 다진 쇠고기 또는 닭고기와 함께 넣어 도르륵 말은 ‘타코’(3000원)가 가장 많이 나간다.

'칠리칠리' 겉모습. '타코'라고 하도 크게 써 있어서 헷갈리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이 집 종업원들은 “이 타코는 미국사람들 입맞에 맞게 변형된 것”이라며 “멕시코에서 진짜 즐겨 먹는 건 ‘타코 알 파스토르’(taco al pastor·2500원)”라고 했다. 밀가루가 아닌 옥수수가루로 만든 노릇한 전병에 고기와 할라페뇨, 코리앤더만을 넣었다. 단순하기에 더 강렬하게 부각되는 재료 각각의 풍미를 텁텁한 듯 구수한 옥수수 전병이 든든하게 받쳐준다. 멕시코식 고추장 ‘살사’을 뿌리면 강렬한 매운 맛이 입안을 불태운다.
코리앤더는 중국·태국음식에서 ‘향채’ 혹은 ‘고수’라 불리는 풀인데, 그 독특한 냄새를 못 견디는 분이라면 빼달라고 미리 말하는 편이 안전하다. 오전 11시에 열어 오후 10시 닫는다. 설, 추석처럼 큰 명절에만 쉰다. (02)797-7219
푸짐한 샌드위치와 잘 뽑은 에스프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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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 샌드위치.
‘카페 T8’은 이 거리에서 커피를 가장 제대로 뽑는 집. 남산에 있는 모 특급호텔 식음료 담당 부장이 “커피가 생각날 때 가는 집”이라며 추천했다. 주문이 들어가면 바로 커피원두를 갈아 신선한 ‘에스프레소’(3500원)와, 에스프레소에 거품 낸 우유를 넣은 ‘카푸치노’(4000원) 등을 만들어낸다.
바삭하게 구운 베이컨, 달걀 프라이, 양상추, 토마노를 구수한 호밀빵 3쪽 사이에 터질듯이 채워넣은 ‘클럽샌드위치’(6500원)는 느긋한 주말 브런치로 훌륭하다. 고기 대신 두툼하게 자른 넓적한 두부를 넣은 ‘두부 샌드위치’(5500원)가 외국인들에게 특히 인기. 샌드위치와 함께 주문하면 탄산음료 가격을 50% 할인해준다. 오전 11시~오후 11시. 매달 둘째·넷째 월요일 쉰다. (02)794-7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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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8 겉모습.
초상화 그려주는 카페
카페 T8이 있는 좁은 골목과 반포로가 만나는 모퉁이에 ‘아트 카페’(Art Cafe)가 있다. 이름에 걸맞게 가게 앞유리에는 초상화와 풍경화가 빼곡하게 붙어 있다. 모두 이 집 주인의 작품이다. “아무래도 커피가 있으면 그림 손님이 더 많이 찾아올 것 같아 카페를 시작했다”고 한다. 에스프레소, 아메리카노, 카푸치노, 아이스카페, 녹차라테 등 음료가 2000원~3000원. 커피를 마시며 30분만 앉아 있으면 초상화를 쓱싹 그려준다. 그림만은 2만원. 예쁜 액자에 넣으면 크기에 따라 4만원, 7만원이다. ‘햄치즈 샌드위치’, 치즈를 넣고 토스터에 구운 ‘그릴드치즈’ 샌드위치(각 2000원) 등 간단한 요기거리도 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요일에는 닫는다. 인터넷전화 (030)3487-34644

외국인이 반한 차돌박이
‘Thin Sliced Beef Brisket’? ‘Seasoned Beef Sirloin’? 앞 음식은 ‘차돌박이’고 뒤는 ‘주물럭’이다. 반포로 맨 끝에 있는 ‘차돌집’(Chadol House) 메뉴판에는 이렇게 친숙한 한국 음식들이 영어로 적혀있다.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까닭이다.

차돌박이(150? 1인분 1만2000원)는 고기와 희고 단단한 차돌 기름의 섞인 비율이 좋은 편이고, 주물럭(150? 1만5000원)도 슴슴한 듯 양념이 괜찮다. ‘특생등심’(150? 1만7000원)은 앞서 둘만 못했다. 차돌박이를 구울 때는 숯을 적게 넣고, 등심에는 숯을 많이 넣어 불을 강하게 키워주는 등 고기를 이해하고 이에 맞춰 불조절을 해주는 주인의 배려가 세심하다.

고기에 곁들여 마시면 좋을 와인들도 갖췄다. 프랑스와 미국, 칠레산 와인이 다양하지는 않지만 1만2000원에서 최고 3만3000원으로 저렴한 편. 프랑스 보르도산 ‘노블 메독’(Noble Medoc·2만6000원)이 많이 나간다는데, 3만2000원짜리 칠레산 ‘5사우스(South)’가 약간 단맛이 나서 마시기 편하면서도 고기의 기름기를 입안에서 싹 걷어낸다. 오전 11시30분~오후 10시30분. 큰 명절에만 쉰다. (02)790-0789
빵 사이에 끼워넣은 중동의 맛
이제는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진 터키음식 ‘케밥’을 파는 집. 기름이 쪽 빠지도록 담백하게 구운 쇠고기, 닭고기, 양고기 중 선택하면 얇고 납작한 빵에 싸서 판다. 쇠고기와 양고기는 3500원, 닭고기 3000원. 더욱 이국적인 맛을 찾는다면 ‘팔라펠’(3000원)에 도전해본다. 병아리콩을 갈아 다진 양파, 풋고추, 후추가루, 코리엔더와 버무려 동그랗게 빚은 완자를 기름에 튀겨 빵 사이에 넣었다. 구수한 콩맛이 한국인 입맛에서도 그리 벗어나지는 않는다. 코리앤더와 향신료 냄새는 버거울 수 있다. 오전 11시~오후 11시. 매달 첫째·셋째 월요일 쉰다. (02)796-0271

케밥에 넣을 고기를 잘라내는 모습.
가족모임하기 좋은 이탈리아 레스토랑
‘이탈로니아’(Italonia)는 반포로에서 가장 크고 번듯한 레스토랑이다. 빳빳하게 풀먹인 하얀 식탁보와 짙은 갈색 테이블, 깍뜻하고 잘 차려입은 종업원, 넓은 방 등 가족 모임하기에 좋아 보인다. 가격도 가장 비싸서 애피타이저와 파스타, 피자류는 1만원 이상, 메인요리는 2~4만원대다. 스파게티, 피자 등 웬만한 이탈리아 음식은 다 된다. 밋밋한 크림소스보다는 매운맛이 살짝 도는 토마토소스가 들어간 수프나 파스타가 강세. 애피타이저, 샐러드, 파스타, 메인요리, 디저트 등을 선택하는 ‘가족메뉴’가 7만5500원과 12만5000원짜리가 있다. 오전 11시30분~오후 10시30분. 오후 3시~6시 잠시 쉰다. 연중무휴. (02)795-7300

이탈로니아 내부.
30년 터줏대감 외국어 헌책방
‘이태원 외국서점’(Itaewon Foreign Bookstore)은 1973년부터 이 자리에서 외국어 헌책을 사고 팔고 거래해왔다. 외국인들은 약속장소로도 애용한다.

요즘 가장 인기있는 소설은 역시 ‘다빈치 코드’. 시내 대형서점에서 1만2000원쯤 하는 원어 소설은 이곳에서 6000원에 거래된다. 존 그리셤, 패트리샤 콘웰, 톰 클랜시 등 인기 작가 소설을 4000원~5000원에 판다. 다 읽은 책을 가져오면 다른 책을 절반 가격에 살 수 있다.
영어사전 40여권이 꽂힌 서가 바로 윗칸에 ‘야한’ 성인용 소설들이 수북히 쌓여있다. “이 무슨 분류법이냐”고 묻자, 주인 최기웅(62)씨는 “옛날엔 ‘영어공부 한다’며 성인용 소설도 많이 나갔는데, 인터넷이 나오면서부터 이것도 안 팔린다”고 한다. 오전 10시~오후 10시까지, 거의 매일 문 연다. (02)793-8249
/15일자 주말매거진 음식면에 쓴 기사 원본입니다. 하루 6끼씩 먹어가며 이틀 동안 취재하느라 정말 고생했습니다. 팔자 좋은 소리같죠? 한번 6끼 드셔보세요. 보통 힘든게 아닙니다. 지도는 아래 있습니다. 구름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