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론스타 고집했나" 초점
[중앙일보 2006-11-08 06:04]    

[중앙일보 문병주] 검찰이 이강원(56) 전 외환은행장을 구속한 데 이어 외환은행 매각 당시의 금융 감독 및 승인기관 관계자 2~3명에 대한 형사처벌 방침을 밝힘에 따라 그 대상이 관심거리다. 채동욱 대검찰청 수사기획관은 "비록 영장 단계이긴 하지만 법원도 (이씨의 행위가)기본적으로 정책적 판단 오류인지, 불법인지에 대한 기본적인 성격 규정을 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 "정부는 왜 론스타를 고집했나"=2003년 론스타와 외환은행 간 매각 협상이 진행될 당시 금융감독.승인기관은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위원회.금융감독원 등이다.

검찰은 론스타에 외환은행 매입 자격을 주기 위해 외환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의도적으로 낮춘 데 개입한 혐의를 이들에게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금융회사가 아닌 펀드가 은행을 인수하기 위해선 해당 은행의 2003년 말 BIS 비율 전망치가 8% 미만으로 책정돼야 했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이들이 의도적으로 BIS 비율을 낮췄는지에 대해 조사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변양호(52) 당시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을 의심하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변씨는 2003년 7월 15일 조선호텔에서 열린 '10인 회의'에서 론스타에 외환은행 인수자격을 주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앞서 변씨는 재경부 담당 사무관에게 "어떤 식으로든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자격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다.

◆ "왜 BIS 비율 적정성 검토하지 않았나"=이후 재경부는 금감위에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매각할 수 있도록 승인해 달라"는 요청을 하고 금감위 감독정책1국은 BIS 비율 6.16%에 대한 적정성 검토 없이 이를 승인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김석동(53) 당시 금감위 감독정책1국장을 상대로 "2003년 말 BIS 비율이 8%를 넘는다"는 내부 자료가 있었는데도 이를 무시한 경위 등을 조사하고 있다. 김중회(57) 금감원 부원장도 외환은행에 대해 현장 점검을 통해 BIS 비율 전망치를 9% 이상으로 산정하도록 지시하고도 9월 말 금감위의 매각 승인회의에는 6.16%로 산정한 자료를 제출한 경위에 대해 검찰 조사를 받았다. 특히 백재흠 금감원 은행검사1국장은 이 과정에서 실무자들에게 "내부 검토한 BIS 비율 전망치가 너무 높다"며 이를 낮출 것을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당시 김진표(59) 경제부총리와 이정재(60) 금감위원장이 이 과정에 얼마나 개입했는지를 수사 중이다. 법률회사 고문으로 있었던 이헌재(62) 전 경제부총리의 당시 역할에 대한 의혹도 검찰의 수사 대상이다.

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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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th Korea Faces Risk of Japan-Like Lost Decade: William Pesek

http://www.bloomberg.com/apps/news?pid=newsarchive&sid=akt1JVgca.sU

By William Pesek

Nov. 14 (Bloomberg) -- When it comes to Asian economies, so much can change in a year, never mind five. Look no further than comparisons between Japan and South Korea back in 2001.

Then, the talk was all about what Japan, Asia's biggest economy, could learn from Korea, the region's third-largest. Korea had risen quickly from the ashes of the Asian financial crisis, while Japan was stuck in deflation.

Today, it's hard not to wonder if the two have reversed positions: Japan is on the mend, while Korea is walking in place.

It may seem an odd suggestion, given that Korea is expected to grow 5 percent this year and Japan is seen advancing at half that rate. Korea's Kospi index is up 9.4 percent in dollar terms this year, while Japan's Nikkei 225 Stock Average has barely gained. The won is up 8 percent, while the yen is unchanged.

For an economy used to growing 8 percent or 10 percent, a slowdown to 4 percent can seem like a recession. And for all its attractive features -- an educated, hard-working labor force, a stable of globally competitive companies, a history of adapting to change -- Korea is awkwardly wedged between high-tech Japan and low-cost China. It means Korea needs to work extra hard to remain relevant in Asia.

The upshot is that Korea's $793 billion economy is being squeezed and challenged as never before. North Korea's unpredictable regime and nuclear ambitions certainly don't help.

Impressive Revival

There's plenty of interest in Korea, and rightfully so, given its track record of overcoming adversity. Traveling around Asia -- or in the U.S. and Europe -- Korea is often among the first markets to come up in conversation with investors, business people and economic policy makers.

Korea bounced back impressively from the 1997-1998 Asian crisis, prompting many economists to conclude that Japan could learn from officials in Seoul. Korea had cleaned up the bad loans in its banking sector, reduced public debt and engineered an influx of capital that helped reinvigorate the economy -- all things that Japan still needed to do in 2001.

By the end of 1999, the won had rebounded 37 percent from its Asian-crisis low. Gross domestic product, which shrank 6.9 percent in 1998, expanded 9.5 percent in 1999 and 8.5 percent in 2000.

Even though growth slowed to 3.8 percent in 2001, Korea avoided the recessions that hit neighbors such as Japan and Taiwan when the U.S. economy faltered. Growth accelerated anew to 7 percent in 2002 and the Kospi gained 145 percent from 1999 through 2005.

Japan-Like Woes?

Things look very different now. China is booming, Japan is growing again and Korea is about to slow just as it craves a bigger role in Asia's rise. Worse, the combination of a strong won, high oil prices and excessive property speculation may put Korea at risk for the kind of funk Japan suffered in the 1990s.

The danger has been mentioned sporadically over the last couple of years. ``We can't rule out the Japan experience unless we contain these problems,'' Kim Yong Duk, Korea's deputy finance minister from 1999 to 2001, told Bloomberg in June.

Finance Minister Kwon Okyu yesterday said Korea's housing market isn't facing an asset-price ``bubble.'' Yet Bank of Korea Governor Lee Seong Tae said last week the recent surge in home prices is ``worrisome.'' In October alone, nationwide apartment prices climbed 1.5 percent from the previous month, the largest gain since October 2003.

A sudden collapse in property values could take the economy down with them. It would come at a time when China is trying to slow growth and U.S. demand is expected to cool.

Daunting Challenges

Even economists who doubt that Korea will go down the Japanese path agree its challenges are daunting.

``Structurally, Korea has moved away from slipping into Japan syndrome over the past five years, but it's still on thin ice,'' says Andy Xie, an independent economist based in Hong Kong. ``China is upgrading also. Korea will never have a cost advantage over China. It has to stay ahead of China's electronics and autos constantly.''

Perhaps the biggest risk is policy paralysis. In office since February 2003, President Roh Moo Hyun gets poor marks on the economy. Low approval ratings and infighting before a December 2007 election mean Roh's government won't be as attuned to boosting business and consumer confidence as it needs to be.

Even if Korea's growth slows to 4 percent in the months ahead, that's a healthy rate compared with the seven largest industrialized economies. Four percent-plus growth provides a window of opportunity to push through upgrades that could raise living standards and attract foreign investors.

Big `If'

Japan hasn't suddenly become a role model for Korea. Japan is still more about job protection than job creation, and its population is shrinking. Huge public debt and ultra-low interest rates also leave it with few tools if global growth slows.

South Korea's challenge may be even bigger. While Korea boasts household-name corporate powers such as Samsung Electronics Co. and Hyundai Motor Co., it must work harder to thrive in increasingly competitive Asia.

Korea now has a chance to remind the world not to sell its economy short. And it can avoid repeating Japan's experience in the 1990s if the government takes advantage of the economic growth it now enjoys. The trouble is, that's a big ``if.''

(William Pesek is a Bloomberg News columnist. The opinions expressed are his own.)

To contact the writer of this column: William Pesek in Tokyo at wpesek@bloomberg.net .

Last Updated: November 13, 2006 14:01 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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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6-11-15 1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사 잘일고 갑니다.

외로운 발바닥 2006-11-20 1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고무적인 내용도 많이 있지만, 아무튼 일본과 중국 사이에 낀 우리나라에게는 쉽지 않은 도전이 될 것 같네요.
 

[오마이뉴스 박철현 기자]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있었던 일본의 '버블경제(Bubble Economy)'는 채 10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일본인들에게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선사했다.

세상이 멸망할 때까지 가격이 올라갈 것이라는, 속칭 '부동산·토지 신화'가 천국이었다면, 그 난공불락처럼 보였던 신화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 후 찾아온 '헤이세이 10년 불황'은 지옥이었다.

국내언론에서도 '버블'이라는 용어를 숱하게 쓴다. 특히 요즘처럼 이상하리만큼 과열되고 있는 부동산 경기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일본 버블경제 때의 상황과 비슷하다"는 해설이다.

경제적 현상으로서의 버블은, 쉽게 설명하면 지금까지 200원이 적정하다고 생각했던 사과가 갑자기 1천원, 1만원에 거래된다는 것이다. 왜 거래가 될까? 1만원에 사더라도 1만 2천원에, 또 1만 2천원에 산 사람들은 다시 1만 4천원에 팔 수 있기 때문이다. 수요가 있으니까 너도나도 사는 것이다.

▲ 일본 버블경제를 상징하는 신주쿠의 고층빌딩 지역.
ⓒ2006 구글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구매자가 나타나지 않는다. 2만원에 산 사람이 더이상 2만 2000원에 팔 수 없다. 이 때 팽창할대로 팽창했던 비누방울이 비로소 터진다. 2만원에서 200원을 뺀 1만9800원이 아무런 가치를 생산하지 않는, 언젠가는 터지고 마는 거품(버블)이었던 것이다.

지금 한국의 부동산 투기도 현상적으로는 당시의 일본과 비슷하다. 가격과는 상관없는 '구매자의 시장'이 형성되어 있어, 너도나도 프리미엄을 노리고 부동산을 사들인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피라미드의 최정점, 아무도 구매자가 나타나지 않을 때까지 열심히 기어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마지막 구매자가 되지 않기만을 바라면서 말이다.

▲ 일본은행이 2006년 5월 9일 발표한 <일본의 버블시기 전후의 경제 물가동향 보고서> 에서 발췌한 그래프. 위로부터 주가, 지가, 외환율.
일본의 버블경제, 그리고 비참한 몰락

1985년 9월 22일 선진 5개국(미국·영국·서독·일본·프랑스)의 중앙은행 총재들이 뉴욕 프라자 호텔에서 회담을 열고 '외환레이트에 관한 합의문'을 발표한다.

프라자합의(Plaza Accord)라 불리는 이 합의는, 미국이 자신들의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외환율에 인위적인 조정을 가한다는 내용으로, 일본의 경우 1달러에 250엔을 기록했던 것이 합의문이 도출된 그 다음날부터 떨어지기 시작해 1년 후에는 달러당 120엔까지 떨어지는 사상 최대의 엔고(円高)현상을 맞이하게 된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수출에 거의 모든 것을 의존해 왔던 일본으로서는 엄청난 타격을 입을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 반대였다.

전후 줄곧 중앙집권적 금융정책을 행해왔던 일본정부가 프라자 합의로 인한 엔고(円高)현상에 타격을 받은 수출업계를 구제하기 위해 금융완화 정책을 시행했고, 이 바람에 시중 은행의 막대한 자금이 시장으로 흘러나와 돈이 넘쳐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시장으로 빠져나온 자금은 일본경제의 미덕이라 할 수 있는 수출중심의 제조업이 아니라 주식과 부동산 시장으로 몰렸다. 엔고(円高)현상으로 수출제조업이 저수익을 내고 있는 상황에서 폭등하는 주식시장과 프리미엄이 붙는 부동산 시장은 매력적이었다.

89년 주식버블 피라미드가 최정점에 달했을 때, 닛케이지수(일본증권시장의 대표적인 주가지수)는 3만 9천엔을 기록했다. 버블이 시작될 무렵 닛케이지수가 1만이었고, 현재 약 1만 6천엔대에서 오고가는 것을 본다면 이 지수가 얼마나 대단했던 것인지 알 수 있다.

정부의 금융정책 완화로 일반은행의 돈세례를 받게 된 부동산 역시 마찬가지였다. 은행은 기업뿐만 아니라 일반 개인에게도 마구잡이로 돈을 풀었다. 50년짜리 '초장기 론', 2세대에 걸쳐 대출금을 갚아도 되는 '2세대론'들이 이 때 나왔고, 은행의 돈으로 이들은 토지와 부동산을 마구 사들였다.

이 시기 일본 전체의 토지가격 상승은 50% 정도를 기록하고 있다. 별로 상승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이 수치에 지금도 그 때도 부동산 가격에 변함이 없는, 일본 국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시골촌락 등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실제 부동산의 혜택(?)을 입은 도쿄·오사카·삿포로·나고야 등의 대도시와 그 인근지역의 지가 상승률은 200%~900%에 이르렀다.

부동산버블 피라미드의 정점(91년)에 올랐을 때 도쿄 23개구의 땅값이 미국 본토 전체를 사고도 남았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다. 실제로 1989년 미쓰비시 부동산은 록펠러 센터를 2천억엔에 매수하기도 했다. 엔고현상을 이용해 아예 다른 나라의 부동산 매입에 나섰던 것이다.

그런데 한가지 신기한 점은 당시에는 이같은 버블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비판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버블시기에 대장성 관료로 일한 후, 지금은 무사시노시에서 부동산 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이와오(54)씨는 통화에서 다음과 같이 그 이유를 설명했다.

"무엇보다 체감경기가 좋았다. 또 기업들도 주식과 부동산의 시세차익 등으로 총자산액이 증가하면서 기존의 제조업을 계속 운영할 수 있었고, 오히려 다른 분야, 특히 리조트 개발 등 서비스업의 확장에 나섰다. 당연히 고용이 늘어난다. 시간당 1500엔의 임금이 보통이었으니까. 또 디스인플레 때문에 물가도 오르지 않으니까, 아무도 버블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옥은 순식간에 찾아왔다

▲ 도쿄 중심지인 신주쿠, 시부야까지 약 20~30분이면 갈 수 있는 고쿠분지, 무사시코가네이 일대의 단독주택 가격이 2천만엔(1억 6천만원)에서 4천만엔(3억 2천만원)정도에 거래되고 있다.
ⓒ2006 박철현
일본정부의 순간적인 판단착오, 그리고 '잃어버린 10년'

일본의 경제전문가들은 "버블은 그렇게 순식간에 터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고 말한다. 어차피 경제의 총규모라는 게 정해져 있기 때문에, 피라미드 꼭대기의 근처까지 올라가면 서서히 눈치를 챈다는 것이다.

그러면 사업확장이나 부동산 매입을 그만 둔다던가 하는 내부적 정리를 할 시간적 여유를 주어야 하는데, 어느날 갑자기 나온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버블을 그야말로 '펑' 터트렸다는 것이다.

그 정책이 바로 1990년 3월, 대장성 은행국이 발표한 '토지 관련 융자의 억제에 대해'라는 보고서였다. 은행을 대상으로 내려진 이 지침은 쉽게 말해서 부동산 관련 융자 '금지'였다.

초저금리로 융자를 해오던 은행이 철퇴를 맞으면서 더이상 돈이 돌지 않게 되고, 은행들은 발빠르게 '현금' 회수에 나섰다. 그러나 현금이 있을리 만무하다. 너나 할 것없이 은행 융자금을 갚기 위해 매물을 내놓지만 살 사람이 없다.

자연스럽게 부동산의 가격하락이 뒤따르고, 융자금을 갚지 못한 기업과 사람들의 파산이 이어졌다. 융자금 회수가 불가능한 은행들은 파산의 길을 걸었다. 은행들의 연쇄도난은 다시 시장에 영향을 미쳤다. 지옥의 악순환이 시작된 것이다.

이때 파산하거나 합병을 발표한 은행 및 신용금고는 줄잡아 50여개에 달한다. 지역은행 중 가장 자산규모가 컸다고 했던 홋카이도 탁쇼쿠 은행, 일본 최고의 신용기금라고 불리웠던 일본장기신용은행 등이 이 때 도산한 은행들이다.

게이오 대학의 카네코 마사루 교수는 자신의 저서 <일본재생론>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미국이 대일무역적자를 만회하고자 힘으로 밀어붙인 '프라자 합의'가 버블경제가 발생된 가장 큰 원인일 수 있다. 그러나 설령 원인이 그렇다 하더라도 실제 가장 큰 주범은 '금융완화'를 계속해서 실시해 온 정부라고 할 수 있다. 정부가 시장에 모든 것을 맡겨버리는, 근대초창기에서 볼 법한 자유방임주의 경제정책이 버블경제을 초래한 것이다"

버블이 붕괴된 91년 이후 일본정부는 은행의 불량채권 문제를 해결과 금융기관 재생, 기업을 위한 공적자금 투자등의 시책을 시행하게 되고, 이러다 보니 93~94년에는 실질 GDP가 전년도에 비해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치욕을 겪기도 한다.

갑자기 터져버린 버블의 후유증을 치유하는 데 10년 정도가 걸렸고, 이를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하는 것이다.

▲ 고쿠분지에 있는 한 부동산 회사의 전경. 요즘의 경기회복을 반영이라도 하듯 저녁 8시가 지나도 불이 켜져 있다.
ⓒ2006 박철현
문제는 사람의 욕구다

2005년 9월, 도쿄와 나고야의 공시지가가 예년에 비해 15%~30% 정도 상승했다는 통계가 나왔다. 그러나 학습효과가 효력을 발휘했는지 이 통계가 나오자마자 각 언론들은 '버블을 경계하자'는 경고문으로 지면을 채웠다.

일본의 경기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 물론 신자유주의 노선에 따른 격차사회, 빈익빈부익부 논란은 있지만, 적어도 닛케이지수와 부동산 가격은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정부나 검찰도 금융에 관해서는 철저하다. 주가조작이나 투기성 펀드, 이를테면 라이브도어와 무라카미 펀드의 내부자 거래(인사이딩)는 여지업이 수사망에 걸려든다.

결국 버블의 기억, 물론 달콤했던 천국이 아닌 끔찍했던 지옥의 기억이 현대 일본사회의 교훈이 되고 있는 셈이다.

스루가다이 대학의 후루카와 테쓰오 교수는 버블경제가 파산한 직후인 1993년도에 <버블의 연구>라는 책을 내면서 부제로 '욕망의 경제학'이라는 말을 달았다. 그때 왜 그런 부제를 달았는지 물어 보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버블이든 뭐든 문제가 생겨난 곳에 가보면 그 원인이 전부 인간의 욕망, 욕구 때문에 생겨나더군요. 서로가 적당히 참으면서 살아가면 다들 행복해 질 수 있는데 그걸 그때는 몰랐었던 겁니다. 그래서 그런 부제를 붙였었는데, 요즘도 여전히 욕구를 제어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 보여서 걱정입니다."

결국 문제는 인간의 욕구인 셈이다. 한국의 부동산 열풍도 말이다.

/박철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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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발바닥 2006-11-15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식을 벗어나는 살인적인 집값...일본의 버블붕괴에서 타산지석을 삼지 못하는 것인가...

2006-11-16 19: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자수첩]론스타의 모순

[머니투데이 임동욱기자]

"여러 차례 출국을 보장해주면 한국에 입국해 검찰 수사에 협조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론스타의 존 그레이켄 회장이 최근 미국 현지에서 한 국내 경제지와의 인터뷰에서 론스타 측이 검찰소환에 불응하고 있다는 한국 검찰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하며 한 말이다. 더구나 그는 검찰이 포퓰리즘을 부추키고 있고 '검찰의 미국정부에 대한 범인 인도요청'이 외교적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경고까지 했다.

이쯤되면 사모펀드 론스타는 한국검찰을 일개 '사설탐정' 정도로 여기고 있는게 아닐까. '신문내용을 미리 알려주고 미국으로의 출국을 보장하라'는 요구는 '시험문제를 먼저 알려주고 시험의 합격도 보장해달라'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사실상 '시험을 볼 필요가 없다'는 소리다. 이런 요구를 하는 사람도 없겠지만, 그런 요구를 들어주는 비정상적인 사회시스템은 더더욱 없다.

그레이켄 회장은 '(론스타를 건들면) 외교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친절한 조언도 해 줬다. 그렇다면 국내 대기업의 미국법인 임원들이 미 법무부로부터 담합 혐의로 현지에서 징역형을 받은 것 역시 한ㆍ미 양국간 외교 차원의 문제라는 것일까. '한국의 법 위에 미국의 힘이 있다'는 식의 그들의 오만함은 한국의 시스템을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

검찰은 론스타의 경영진이 합병에 앞서 외환카드의 유동성 위기를 일부러 심화시키고 허위 감자계획을 유포해 주가 폭락을 유도한 혐의를 잡고 있다. 그러나 론스타는 정치적 목적으로 외국인의 성공적 투자를 굴복시키려 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아직 론스타의 범죄여부는 가려지지 않았다. 론스타 측의 주장대로 억울할 수도 있고, 더 나아가 무죄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론스타는 당당히 수사에 협조하고 자신의 결백함을 밝히는데 나서야 할 것이다. 정면으로 나서지 못하고 뒤에 숨어 한 마디씩 던지는 그들의 언행은 어느 누구에게도 신뢰감을 주지 못한다.

한국의 법적 시스템을 믿지 못하는 그들이 어떻게 한국에 대규모 투자를 감행할 수 있었는지 그저 놀라울 뿐이다.

임동욱기자 dwl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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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발바닥 2006-11-15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하고 싶던 말을 속시원히 써준 기사같다. 론스타 회장의 외교문제 운운하는 거만한 협박성 발언을 친절하게 전하면서 이를 두둔하는 듯한 논조를 보이는 ㅈ신문도 정신좀 차렸으면...
 

아내의 입장에서 남편에게 바라는 마음으로 쓴 글이랍니다.

새겨둘 것이 많네요...

 

1. 1년에 한 번 쯤은 아내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카드와 꽃 선물을 해 보라. 간혹 돈 아깝다는 아내가 있겠지만, 그것은 결코 진심이 아니다. (돈이 없다면 고맙다는 편지라도 써서 화장대에 올려놓아 봐라.)


2. 아내가 속상해 하면 가르치려 들지 말고 위로를 해라. 아내는 아이나 바보가 아니다.


3. 아내로부터 칭찬받기만을 바라지 말고, 아내가 잘 한 일에 칭찬할 줄 알라. 하루에 칭찬 한 가지는 만사를 형통시킨다.


4. 남의 아내와 자신의 아내를 비교하여 말하지 말라. 제 아내를 욕하는 자는 됨됨이가 그 정도밖에 되지 않으니 그런 아내와 만난 것이라 생각하라.


5. 특히 시집살이 하는 아내 앞에서 자신의 어머니와 비교하지 말라. 당신의 아내도 당신의 자식에게는 더 하면 더 했지 그 어머니와 결코 다를 바 없다. 또한 당신의 어머니처럼 살라 강요하지 마라. 당신의 딸과 당신의 누이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라.


6. 장인, 장모 이전에 자신의 아내를 존중하고 사랑하라. 장인, 장모는 그것만으로도 당신을 훌륭한 사윗감이라고 생각하며 당신에게 감사할 것이다. 물론 장인, 장모를 존중할 줄 안다면 당신은 최고의 남자다.


7. 아내가 회사에서 늦게 돌아오면 그만두라 호통 치지 말고 안쓰럽게 생각하라. 가정도 함께 꾸리느라 얼마나 힘들겠는가. (혹여 전업주부가 가끔 친구와 만나고 와도 호통 치지 말라. 평생을 아이와 남편과 시집 식구를 위해 일 하는 그녀를 안쓰럽게 생각하라.)


8. 아내의 의복이 허름한 것은 남편의 책임이다. 여자는 제 옷보다는 남편과 자식의 옷이 먼저이기 때문에 제 입는 옷을 사야 할 때면 수십 번을 참는다. 가끔 기념일이 되면 아내를 위해 옷 한 벌 사주는 센스를 발휘하라.


9. 아내를 즐겁게 할 일을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생각해 봐라. 여자는 그 한 번을 마음에 고이 간직하며 평생을 살아간다. 아니, 아내를 속상하지 않게만 해라. 위로는 바라지도 않는다.


10. 아내가 부스스 하면 작은 립스틱 하나를 사 주면서 이것만 바르면 아내가 더 예뻐질 것이라고 하며 용기를 북돋워 주라. 예쁘지 않은 아내이더라도 자꾸 예쁘다고 칭찬해 주면 활짝 웃는 얼굴이 정말 더 예뻐질 것이다.


11. 아내가 깨우기 전에 제발 스스로 일어나라. 그리고 가끔은 아내보다 먼저 일어나 아내의 생일 미역국을 좀 끓여봐라. 남편의 아내 사랑은 곧 아내의 시부모 사랑으로 직결됨을 잊지 말라. (매번 시부모께 잘 하라는 소리만 하지 말고 먼저 스스로 솔선수범하라.)


12. 시부모의 시중은 그 분들의 자식인 남편이 직접 하라. 아내는 남편의 시중을 바라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남편과 자식들의 시중을 드느라 뼈 빠진다.


13. 아내가 남은 음식이 아깝다고 상한 것까지 먹는 것은 아닌지 가끔 신경을 써라. 아내가 건강해야 남편도 자식도 힘들지 않다. 가끔은 음식을 만들어 주지 못할지언정 외식이라도 시켜줘라. 돈이 모자라면 양념통닭이라도 하나 사서 들어가라.


14. 아내가 친구들과의 만남에서 자랑스럽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속된 말로) 꿀리지만 않게 해 주어라. 그래도 평균은 되어야 할 것 아닌가.


15. 가정이 어렵고 회사가 어려우면 아내한테 화풀이 하지 말고 스스로 자신감을 가지고 아내와 의논하며 어떻게든 헤쳐 나가려는 씩씩하고 훌륭한 남편이 되라. 여자는 돈이 부족해도 남편이 어떻게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면 충분히 참는다. 그러나 자괴감에 술주정을 하며 여자에게 폭력으로 화풀이하는 남자는 결코 참을 수 없다.


16. 손님을 데리고 집에 들어왔을 때는 손님 들으라는 듯이 아내에게 큰소리치지 말고 그 손님에게 아내의 칭찬을 하라. 그리고 술상이나 밥상을 준비하는 아내에게 슬며시 고맙다는 인사를 해라. 그러면 아내도 당신의 위신을 세워 줄 것이다.


17. 권위를 내세우기 보다는 가정에 항상 사랑과 대화가 넘치도록 만들어라. 남자는 인자함이 최대 매력이다.


18. 아내로부터 안마를 받기만을 바라지 말고, 명절이나 제삿날 힘들게 노동한 아내를 위해 잠시 어깨를 주물러 주라. 아내는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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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6-11-15 0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은 늘 좋은 남편으로 잘 지내실 거예요..^^-

외로운 발바닥 2006-11-18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감사합니다. 이론은 잘 알아도 항상 실천이 어려운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