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어렵다는 것은 이제 조금도 새롭지 않다. 1년이 다 되가는 정부의 무능을 질타하는 소리도 새롭지 않다. 한미FTA 비준동의안 상정을 둘러싼 국회파행은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한다. 물론 원인은 한나라당이 제공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민주당 역시 미국행정부가 한미FTA 이행법안을 의회에 제출하면 우리 국회에서 30일내에 비준동의안을 관련법안과 함께 처리해 주겠다고 밝혔다. 그런 민주당을 지켜보노라면 과연 한미FTA 비준동의안은 민주당이 저지하고자 하는 'MB악법'인지, 아니면 여야가 타협할 수도 있는 '민생법안'인지 판단이 쉽지 않다.

한나라당이 28일 국회의장에게 직권상정을 요청한 반드시 처리할 85개 법안가운데 한미FTA비준동의안이 '경제살리기'법안에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한미FTA 연내처리의 빈약한 명분을 '경제살리기'와 연계하리하는 것은 비준동의안 단독상정 전후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정부 측이 실은 한미FTA 배너광고에서 예측된 일이었다.

동시에 정부 측은 경제살리기를 위해서는 한미FTA가 있어야 한다는 내용의 메일을 전국에 뿌렸다. 그 자체 새로운 내용은 없다. 논리도 허술하다. 그저 한미FTA 되고 나면 GDP 6%가 성장하고, 일자리 34만개가 늘어나고, 대미수출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2007년 4월 말 한미FTA가 타결되고 난 직후 관변 연구소가 한데 모여 만든 경제효과 분석에 나오는 내용이다. 정권도 바뀌었고, 포털사이트 배너광고비를 조금이라도 아꼈더라면 얼마든지 가능했을 법한데도 분석 내용은 참여정부가 만든 낡은 효과분석 그대로이다. 그 당시에도 이는 논란이 되었다. 일설에는 당시 참여정부 청와대 정책실인가에서 국책 연구기관이 제시한 효과분석이 기대치에 미달하자 진노했다고도 한다. 진위는 아직 알 길 없다. 경제효과를 분석한 방법이 이른바 CGE (연산가능일반균형모형)다. 그렇지만 다시 짚어 두건대 한미FTA 경제효과 분석은 좋게 말해 권력자의 입맛에 맞게 과장되었고, 좀 심하게 말하자면 '조작'된 것이다. 그 주요내용을 되짚어 보자.

첫째, 당시 관변에서 제시한 경제효과 GDP 6%증가와 비교해, 경기대 신범철 교수가 이후 동일한 프로그램을 가지고 독자적으로 조사해 제시한 경제효과 분석결과는 GDP 약 0.2%증가였다. 30배가 차이가 난다. 물론 이 모든 것이 대략 10년치를 합한 것이기 때문에 한미FTA 경제효과를 연도별로 보자면 각각을 10으로 나누어야 한다. 하지만 관변 특히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라는 곳에서 사용한 연구방법이 전세계적으로 인정받은 표준모형이 아니라 '그들 만의' 것이란 점에서 신뢰를 보내기는 어렵다. 신범철 교수의 연구결과를 기준으로 볼 때, 한미FTA 연간 경제효과는 GDP 0.02%, 금액으로 1.8억 불(환율을 달러당 1400원으로 할 때 2500억 원)정도 이다. 한국경제의 규모로 볼 때, GDP 0.02%는 실로 너무 미미하거나 FTA를 하지 않더라도 다른 방법을 통해 얼마든지 도달가능한 수준이다.

둘째, 정부 측이 말하는 일자리 34만개 추산은 GDP 6%를 가정하고 여기에 고용유발계수 (대략 GDP 1%당 7-8만개)를 곱해서 얻은 값이다. 그래서 GDP 0.2%를 기준으로 해서 이 값을 구해보면 10년에 걸쳐 약 1만5000개 일자리가 나온다. 정부계산처럼 34만개가 되려면 한미FTA를 200년 넘게 해야 한다. 한미FTA를 하게 되면 일자리가 많아질 것처럼 말해서는 안된다.

셋째, 특히 대미무역 수지는 한미FTA 협상 초기부터 조작논란이 불거졌던 사안이다. 2007년 4월 관변 연구소 합동 연구결과의 대미무역 수지 흑자 46억 달러 증가 역시 이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왜냐하면 이 수치는 그들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CGE 분석결과가 아니라, 각 부처별 추정치를 단순 합산한 것이다. 당시 내가 들었던 설명으로는 CGE분석 결과가 정확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각 부처별 추정치를 합산했다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이미CGE분석의 신뢰성은 의문이 제기된다. 그러나 이 보다도 수치 잘못 보고 했다간 목이 달아날 판이었는데 누가 감히 있는 그대로 보고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전 부처가 '살기 위해' 추정치를 과장했을 것이다.

시중에 나와 있는 열 개가 넘는 한미FTA CGE 경제효과 분석 모두가, 단 하나 2007년 4월말의 연구결과를 제외하고 하나의 방향을 가리킨다. 즉 한미FTA 체결시 대미무역흑자가 약 40억-73억 달러가 감소한다는 것이다. 실행관세율이 한국측이 미국보다 3배 높은 조건에서 동시에 관세를 축소 내지 철폐할 때 미국측이 더 많은 이익을 가져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결국 수출로 먹고산다는 우리가 한미FTA를 하게 될 경우 오히려 무역수지가 악화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말이다.

넷째, 이런 경우을 상상해 보자. 한미FTA가 발효된 뒤에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졌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래서 기관투자자는 물론이고 '개미'투자자들조차 온갖 파생상품을 구매하고 난 뒤에 터졌다면 말이다. 아마 우리 금융시장은 지금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혼란을 겪고 있을 것이다. 한미FTA를 한다고 미국으로부터 양질의 직접투자가 물밀듯 들어올 것이라고 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지금도 미국으로부터 유입되는 자금은 대부분 주식투자 자금이거나 잘해야 M&A자금이다. 가뜩이나 극히 취약한 한국 금융시장의 조건에서 한미FTA는 미국 월가의 돈지갑으로 가는 지름길일 따름이다.

다섯째, 통상협정의 평가 잣대는 일정 정도 계량화가 가능한 부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측면도 있다. 그래서 당시 정부 측은 이를 일컬어 '제도개선', '제도선진화'라고 불렀다. 하지만 한미FTA 협상과정에서 다루어진 쟁점 대부분의 처음 목표와 최종 결과를 비교 분석해 보면, 접근가능한 쟁점 약120여개 가운데 한국 측이 협상 목표를 관철한 것은 10개도 되지 않는다. 나머지 양측이 타협한 10개 남짓을 제하면 거의 모든 쟁점에서 미국 측의 입장이 관철되었고, 이후 정부 측은 이를 '제도선진화'라고 불렀다. 두 가지 중요한 사례만을 들어 보자.

첫째, 현재의 경제위기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미국발 금융위기로부터 비롯된 것임은 자명하다. 한미FTA 금융서비스장을 보면 이번 금융위기의 가장 큰 원인이 되었던 통화부도스왑(CDS)과 같은 파생상품, 그리고 우리 우량 중소기업에 치명적 타격이 되고 있는 키코(KIKO)등 환율 및 이자율상품에 대해 협정문에서는 '신금융서비스'라는 이름으로 투자자-정부 소송제(ISD)를 비롯한 각종 특혜를 부여하고 있다.

둘째, 한미FTA는 미국 자동차 3사 즉 '빅3'을 전제로 만들어진 것이다. 빅3를 전제로 한미FTA 협정문은 한국이 배기량기준 세제 철폐, 미국산 자동차에 대한 배기량 기준 완화 등 각종 특혜를 부여하고, 스냅백 (한국 측이 협정위반시 2.5% 관세를 원래대로 환원하는 미국만의 일방조치) 조항과 같은 전대미문의 독소조항을 삽입하였다.

예로 든 이 두 가지 부문만 하더라도 우리 측이 '사정변경의 원칙'을 들어 얼마든지 재협상을 요구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나마 당시 참여정부가 협상을 잘 했다고 동네방네 떠들던 분야가 이 정도라면 나머지 농업을 비롯한 투자, 지적 재산권, 의약품 등 사실상 일방적으로 퍼주기한 분야는 이루 말할 필요가 없다. 이 자리에서 일일이 열거하기에도 숨가쁜 온갖 독소, 불평등 조항은 또 어쩔 텐가.

그나마 대미 수출은 자동차와 반도체가 사실상 축이고, 이는 재벌경제가 담당하고 있다. 곧 재벌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과연 한미FTA가 보탬이 될지도 의문스럽다. 현재 미국의 실물 경제위기로 인해 미국내 시장 상황이 매우 불투명하고, 미국내 현대차는 감산에 돌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상당한 변화가 예고되어 있지만, 오바마 통상정책이 모습을 드러내자면 아직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미 공적 자금을 투입한 자동차3사를 살려 내기 위해 각종 정책 팩키지가 나올 것임은 충분히 예상가능하다. 머지않아 미국 현지 생산비율이 70%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한국 자동차로서는 굳이 FTA를 통한 수출증가가 아니라 이미 현지화 전략을 통해 대응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고 또 그렇게 해 왔다. 또 다른 주력품목인 반도체는 오래전부터 관세가 0%이기 때문에 FTA와 무관하고, 자동차 수출증가야 말로 한미FTA의 목표인데 그것마저도 미국 현지 경제위기와 또 현지생산을 감안하면 도대체 한미FTA는 왜 하는 것인지 의문은 더해간다.

요컨대 한미FTA는 '경제살리기'가 아닌 '경제죽이기'로 가는 길이다. 조작된 아니 백보를 양보해 '재검토'가 필요한 경제효과분석과 이에 기생하는 경제관료들의 욕망, 오바마로 정권이 바뀌었음에도 경제논리라기 보다 '한미FTA=한미공조'식의 이념화된 신화를 붙들고 있는 현정부의 이상한 오기, 민주당의 우유부단, 이 틈새에서 한미FTA라는 독버섯이 그 질긴(?) 생명력을 이어가는가 보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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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발바닥 2008-12-29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0을 놓고 상대와 협상하여 상대방에게 95를 주고 5를 얻어 놓고, 협상 잘했고, 우리에게 이익이라고 큰 소리쳤는데, 상황이 바뀌어 상대방이 5중에 4를 달라고 할 가능성이 큰데도 불구하고 일단 Go를 외치는 듯한 형국이다.

이렇게 국민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사회제도 전반을 바꿔버리고 경제적으로도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사항에 대하여 말도 안되는 논리로 국회에서 통과시키려 하고, 주류언론은 이에 대하여 아무런 비판도 하지 않고, 대다수 국민들은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참 원망스럽다...
 
즐거운 나의 집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소설을 읽기 전에 소설가 공지영(이하 존칭생략)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그녀가 이혼을 세번이나 한 잘나가는 여류 소설가라는 점이었다. 특히 소설가 공지영에 대한 내가 가지고 있던 지극히 작은 지식 중에 그나마 방점이 찍혀 있던 것은 ‘이혼을 세번이나 한’이라는 점이었던 것 같다. 이혼은 어찌되었건 완전히 어느 한 당사자의 책임만은 아니고 양쪽 모두에게 어느 정도의 책임은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기에, ‘이혼을 세번이나 한’ 공지영에 대하여 내가 가지고 있던 추상적인 이미지는 아마 ‘성격이 강하고 페미니스트적인 어딘지 모난 것 같은 자기주장 강한 여자’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 소설을 읽을 때쯤에는 그녀가 성이 각각 다른 세명의 아이를 키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나도 아이가 생겨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조금이나마 알게 된 상태였기에 그녀에 대한 나의 이미지는 그래도 조금 긍정적인 쪽으로 바뀌었던 것 같다.

즐거운 나의 집을 다 읽고 난 후 내가 느끼는 한 가지는 이혼을 세번이나 했다는 사실이 소설가 공지영의 삶 전부, 또는 그녀가 어떠한 사람인지 자체를 나타내는 것은 결코 아닌데도 불구하고 나도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처럼 그녀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단지 그녀가 이혼을 세번이나 했다는 사실만으로 이혼녀에 대한 비뚤어진 이미지로 그녀를 낙인찍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이혼을 세번이나 했다는 사실은 작가의 일상적인 삶을 언제나 짓눌렀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실제로 접하고 느끼기에 앞서 그녀를 이혼을 세번이나 한 이혼녀로 바라볼 것이고, 그녀 자신도 그러한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녀는 그러한 사실이 다 까발려질 정도로 유명한 소설가다. 마치 부모가 빨갱이라거나 범죄자라는 사실 때문에 자식도 빨갱이 또는 범죄자와 똑같을 것이다라는 세상의 색안경에 끊임없이 상처받는 상황과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유명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사생활이 다 노출된 여자연애인의 상황과 비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즐거운 나의 집이 어느정도 공지영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녀는 그녀 나름의 긍정적, 낙천적 사고방식으로 세상의 색안경에 적응하면서 사는 법을 터득한 듯하다.

한편으로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가족사를 근거로 자전적 소설을 썼다는 사실이, 비록 즐거운 나의 집은 어디까지나 소설이고 결코 작가나 가족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전 남편이나 자식들과의 관계에서 좀 부끄럽거나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소설속의 작가의 큰 딸의 생각이 반드시 실제 작가의 딸의 생각과 같으리란 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작가가 전남편이나 자식들, 더 나아가 스스로에게 당당하기에 그런 자전적 소설을 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비록 소설이지만, 소설속 위녕의 엄마와 소설가 공지영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믿는다. 암튼, 즐거운 나의 집을 읽고 우리는 일상속에서 너무나도 쉽게 다른 사람에 대하여 알고 있는 아주 작은 지식으로 그 사람의 삶 또는 그 사람 자체를 재단하고 있고, 결코 그래서는 안되겠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되었다.

즐거운 나의 집을 읽고 생각하게 된 또 한가지 주제는 작가의 말에서 작가가 밝히듯이 이 소설의 계기라고도 할 수 있는 ‘새로운 의미의 가족’이라는 화두였다. 이혼과 재혼이 흔해진 지금, 전통적인 가족의 이미지와 개념 만으로는 자신의 가족을 설명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즐거운 나의 집에 등장하는 가족도 전통적인 가족의 범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극단적인 한 예에 불과할 뿐이다. 그렇다면 과연 가족의 의미는 무엇일까? 어려울 때 힘이 되어주는 것이 가족이라고 하지만, 정작 가족 때문에 큰 고통을 겪는 경우도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자식의 교육을 위하여 가족이 함께 사는 것도 포기하고 가장은 단지 돈을 부쳐주는 것만으로 가장의 역할을 수행하는 기형적인 가족구조인 기러기생활이 사회적인 현상이 될만큼 우리사회는 가족에 집착하면서도 정작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 중에 상당부분이 가족과 관련된 일이라는 것이 참으로 역설적이지 않은지…가족을 어느 한 단어나 문장으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기쁠때나 슬프고 힘들때나 그 순간순간을 함께 하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힘이 되어주는 삶의 안식처 같은 존재이지만, 가족관계가 엇갈리고 뒤틀리는 경우 서로에게 주는 상처가 그만큼 더 큰 존재가 가족이 아닌가 싶다.

끝으로 소설 속에서 인상깊었던 귀절 몇 군데를 적어본다.  

p85
“어떤 순간에도 너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을 그만두어서는 안 돼. 너도 모자라고 엄마도 모자라고 아빠도 모자라….. 하지만 그렇다고 그 모자람 때문에 누구를 멸시하거나 미워할 권리는 없어. 괜찮은 거야. 그 담에 또 잘하면 되는 거야. 잘못하면 또 고치면 되는 거야. 그담에 잘못하면 또 고치고, 고치려고 노력하고….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남을 사랑할 수가 있는 거야. 엄마는…엄마 자신을 사랑하게 되기까지 참 많은 시간을 헛되이 보냈어.”

p89
우리가 보는 것들 이면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얼마나 많이 감추어져 있는가를 생각했다. 그리고 때로 그것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에 얼마나 치명적인가.

“가족이라는 것은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견고한 울타리 같은 거야.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전적으로 사적인 영역이니까. 당연히 보호받아야 하고 침범당해서는 안 돼. 그런데 그런 폐쇄된 영역에서 힘이 센 한 사람이 힘이 약한 사람에게 폭력을 쓰고자 들면 힘이 약한 사람은 당하게 마련인 거야. 타인들이 볼 수 없는 장막 저쪽의 세계니까. 그게 부인이든 남편이든 혹은 아이든 노인이든….그 사람이 페미니스트든 사회정의의 화신이든 힘이 센 사람이 폭력을 쓰면 약한 사람은 당하는 거…그게 가족의 딜레마일 거야. 낯선 사람이 가하는 폭력은 피하면 되지. 친구가 그러면 안 만나면 되지. 그러나 사랑해야만 한다고 믿는 가족이 그런 일을 저지를 때 거기서 모든 비극이 시작되는 거야.”

p225
“…스님,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습니까? 하고. 그랬더니 그 스님이 대답하더구나. 앉아 있을 때 앉아 있고, 일어설 때 일어서며 걸어갈 때 걸어가면 됩니다, 하는 거야. 아저씨가 다시 물었지. 그건 누구나 다 하는 일 아닙니까? 그러자….그 스님이…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은 앉아 있을 때 일어날 것을 생각하고 일어설 때 이미 걸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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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정창수를 가둔 이유는?


[기고] "그는 누구보다도 한미FTA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다"


기사입력 2008-12-22 오후 5:36:00

한미 FTA 관련 문건을 유출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전(前) 국회의원 보좌관 정창수 씨가 법원으로부터 징역 9월의 실형 선고와 함께 법정구속 됐다는 소식을 이곳 미국에서 접했다. (☞관련 기사: FTA 문건 유출 보좌관 구속…"국민 '알 권리' 훼손" 반발)

2006부터 이듬해까지, 나는 한미FTA저지범국민대책위 대외협력 및 정책사업팀장으로서 국회 특위위원인 최재천 의원의 정 보좌관과 함께 협력하여 일했고, 지금은 참여연대에서 안식년을 얻어 뉴욕 콜롬비아대 부설 웨더헤드 동아시아 연구소(Weatherhead East Asia Institute) 방문연구원으로 뉴욕에 와 있다.

문제의 문건유출 건은 2년 전 국회 조사과정에서 이미 사법처리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했던 건인데, 새삼 징역형이 선고된 경위와 근거도 황당하기도 하거니와, 그 전후맥락이 상을 줘야 할 일에 벌을 준 격이어서, 이 본말이 전도된 판결에 대해서는 도저히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이에 그를 변호하고 우리가 했던 일을 옹호하기 위해 작은 일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이 글을 기고하게 됐다.

정창수, 한미FTA 협상에서 국회 체면을 세워준 유일한 보좌관


▲ 정창수 전 보좌관. 시민단체 활동가 시절, 그는 예산낭비를 감시하는 활동 등으로 상을 받기도 했다. 투명한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했다는 이유다.
정창수 전 보좌관은 한미 FTA에 관한 한, 국회 내에서 가장 성실하고 일관되게 의정활동을 수행한 인물이다.

한미FTA특위 자료 열람실 방문기록에서 정창수 이외의 이름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정창수 보좌관은 당시 특위 의원인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의 보좌관으로서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협상 관련 기록을 매번 빠짐없이 열람한 유일한 보좌관이다.

누구든 협상기록을 일일이 열람하지 않고 협상결과를 제대로 점검하기는 어렵다. 이 점에서 그는 한미FTA국회특위의 어떤 의원과 보좌관보다도 더 성실하고 일관되게 직무를 수행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의 활동은 의심할 나위 없이 한미FTA에 대한 국회 감독기능의 강화에 기여했고 나아가 국익의 증진에 기여했다.

특히 당시 국회상황에서 정창수 전(前) 보좌관의 노력이 갖는 의미와 역할은 각별한 것이었다. 당시 국회의 한미 FTA 특위는 협상개시가 국회에 통보된 뒤 4개월이나 뒤늦게 2006년 6월에 구성돼, 같은해 9월에야 활동을 시작했고, 20명 이내의 의원들로 구성되어 방대한 한미FTA 현안들에 대한 협상을 제대로 감독하기 매우 어렵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더욱이 정부의 대국회 정보공개 역시 매우 부실하여 1차 협상문 원본이 9월에나, 그것도 영문으로, 더구나 복사도 금지된 채 열람만 허용되는가 하면, 주요 협상방침이 실무협상 하루 전에나 특위에 보고되어 찬성 의원이 과반수를 점하는 특위 내에서도 늘 지탄의 대상이 되곤 하였다.

당시 국회는 수세대의 경제적 삶을 좌우하고 수십 여 건에 이를 국내 제도의 개폐와 연결될 중대한 이슈에 대해 이를 다룰 내적 준비도 역량도 부족했고, 정부는 정책결정의 중요성에 걸맞은 충실한 보고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정창수 전 보좌관은 정부 보고자료 열람조차도 사실상 포기하고 있던 무기력한 국회에서 입법기관의 헌법적 의무를 그나마 온전히 실천하려 했던 독보적인 존재였다.

시민사회와 국회를 넘나드는 독보적인 예산감시 전문가

그는 시민단체 '함께하는 시민행동' 간사로 활동하던 시절부터 시민참여 정부 예산낭비 감시와 관련된 전인미답의 길을 개척해왔고, 이에 대한 전문성을 인정받아 지방자치의원모임과 시민사회단체에 초청되어 수십 차례 이상의 강연을 진행한 바 있다. 또한 국회 내 각종 정부 예결산 평가 및 회계분석 관련 세미나에도 초빙되곤 하였다.

그가 시민단체 활동가 시절 기획한 '밑빠진 독' 상(賞) 캠페인은 정부 예산낭비 감시운동에 기여한 참신하고 독보적인 기획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재정적인 이유로 시민단체 활동을 잠시 중단하고 국회 보좌관으로 잠시 재직하는 동안에도, 불요불급한 정부 출연기금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는 등의 정력적인 활동을 통해 최재천 의원(당시 열린우리당)과 원희룡(한나라당) 의원 등을 지원하였다.

그를 징역으로 몰아 간 이른바 문건유출 사건 역시 그의 우발적인 공명심이나 특정한 경제적 정치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정부를 바로 세우려는 순수한 의도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예기치 않게 발생한 일이었다.

기밀유출? 국익훼손?…도대체 뭘 빼돌렸길래

한미FTA 협상을 시작할 때, 정부는 "통상마찰 완화로 수출이 증대되고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점을 크게 강조하였다. 정부는 협상과정에서도 무역구제 분야, 특히 미국의 반(反)덤핑제도의 완화를 가장 중요한 협상목표라고 발표해 왔었다. 당시 모든 언론도 이 분야 협상결과에 주목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부는 4차 무역구제 분과협상에서 관련 업계의 15개 요구사항을 미 측에 제시하였다가 미국이 반덤핑 관련법 개정 불가 입장을 밝히자 5차 협상에서 6개로 요구사항을 줄였고 이 또한 받아들여지지 않자, 7차 협상부터는 정부가 스스로 무역구제에서 양보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쟁점이라고 밝혀왔던 '비합산 조치'를 공식적으로 제외하였다.

유출된 문제의 보고서는 2007년 1월에 예정된 6차 실무협상과 관련된 것으로서, "무역구제분야 핵심요구사항(비합산조치 등의 미국법률 개정)을 포기하고 이를 다른 협상의 카드로 이용하겠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었다.

미국 입장이 너무 강경해서 우리 측이 가장 중요한 관철목표로 삼아왔던 핵심내용을 철회하고 다른 협상 분야에서의 만회를 고려하겠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유출된 문서'는 협상목표의 중대한 변경을 다루고 있었다.

"미국 무역구제법령 하나만 바꿔도 어디냐"라던 정부의 말바꾸기

실무협상은 본질적으로 정부가 FTA로 얻어질 국익으로 제시한 기대목표의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만약 실무협상 과정에서 국민에게 공표해온 목표가 불가능해졌다면?

당연히 1) 협상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거나 2) 협상목표의 변경을 국민에게 정확히 알려서 동의를 구하는 것이 이치가 아닌가? 특히 그것이 무역구제 분야처럼 한미FTA의 핵심쟁점에 관한 것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를 투명하게 공개하여 동의를 구하기는커녕 도리어 그 의미를 축소하고 공개도 최소화하려 하였다.

정부는 대미협상 하루 전 국회 특위에 협상계획을 보고하면서, 다른 수십 건의 보고내용 중 하나로 무역구제 관련 핵심 협상목표를 포기한다는 보고를 슬쩍 끼워 넣었다. 이 보고서는 2~3시간 남짓한 특위 검토 후 회수되었다.

이 비공개 보고 문건의 단 몇 줄에 해당하는 내용-무역구제 협상 목표 변경-이 언론에 유출된 것이다.

같은 사안에서 미국 정부의 태도는 한국 정부의 태도와는 너무나 달랐다. 미국 구티에레즈 상무장관은 무역구제 협상에서 국회의 동의를 구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한국 측 법령 개정 요구를 거절하고, 단 한 번도 여기서 후퇴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일방적으로 한미FTA 협상은 한국산에 대한 극히 미미한 수준의 물품취급 수수료를 면제하는 것 외에 어떤 미국 법률도 개폐하지 않는 범위에서 하겠다고 선언하고 의회에 최종보고서를 제출해 버렸다.

미국 통상관련법에 따르면, 무역대표부가 국회 고유권한인 법률 개폐를 필요로 하는 협상을 진행하려면 국회가 위임한 신속체결권한 종료 180일 전에 이를 국회에 알려야 한다. 미국 무역대표부가 이를 공표한 것은 2006년 12월 상황이다.

문건이 유출된 2007년 1월에는 이미 미국 법상 한국의 협상목표인 무역구제 관련 미국법률의 개정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상태였다.

한국 정부로서는 마땅히 미국 협상대표부가 더 이상 법률개정에 해당하는 협상 권한을 갖지 못한 상황이라는 점, 따라서 무역구제 협상목표가 불가능해졌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알리고 이에 대해 협상을 계속할 것인지를 포함하는 중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국면이었다.

정부는 이런 노력을 회피하고 당시 박빙이었던 한미FTA 찬반 여론이 반대쪽으로 기우는 것을 우려하여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어물쩡 넘어가려 했던 것이다. 그러던 차에 관련 문건이 언론에 유출되자, 이것이 정부를 자극하여 정창수 보좌관에 징역형을 선고한 최근의 송사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재경부 차관이 인터뷰에서 이미 밝힌 '협상기밀?'을 유출한 죄!

정부로서는 비록 무역구제 협상이 물 건너 간 것이 사실일지라도 그것을 통해 자동차나 의약품 같은 다른 협상목표를 관철시킬 수 있었는데 그런 협상전략이 문건 유출로 노출되었기에 국익에 타격을 입었다고 주장하고자 할 수도 있다.

재판부 역시 판결문에서 "당시 해당문서가 협상전략 등의 민감한 사안이라 의원들에게만 배부된 뒤 회의가 비공개로 진행됐다"며 "이 내용이 협상기간 중에 언론에 기사화돼 외부로 알려져 국가의 기능이 적지 않게 위협받았다"고 밝히고 있다. 일리가 있는 지적인 것 같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유출된 문건이 매우 중요한 사실을 재확인해주고 있지만 이 문건의 내용이 그렇다고 여론을 뒤흔들만한 대단한 비밀은 아니었다.

더구나 국가의 기능이 적지 않게 위협받았다는 것은 당치 않다. 당시 언론에 무역구제 협상은 이미 '물 건너간 것'으로 간주되고 있었다. 한미 FTA를 찬성하는 언론이나 전문가들은 정부의 기대에 부응하여 무역구제 부분 협상목표를 만회할 협상 의제들을 이러저러하게 언급하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진동수 당시 재정경제부 제2차관은 아예 미국 무역대표부가 법령개폐 불가를 선언하기 전인 2006년 12월 11일, KBS1라디오 "라디오정보센터 김원장입니다"에 출연하여 "무역구제 분야에서 우리 측 요구사항에 대한 진전이 있어야만 자동차와 의약품 등 미국 측 관심사항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 발언은 당시 맥락에서는 '비합산조치'를 관철하겠다는 주장이라기보다는 무역구제 분야 협상이 자동차 의약품 등 다른 상품 협상분야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암시하는 내용으로 간주되고 있었다.

무역구제를 대신하여 자동차 분야나 의약품 협상에서 더 얻어 내겠다는 것이 그토록 중대한 기밀이라면 재경부 차관이 나와서 그걸 시사하는 발언을 한 것은 중대한 기밀누설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게다가 문건이 유출된 2007년 1월은 이미 미국도 한국도 다른 협상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시점이었다. 한마디로 서로가 뻔히 판을 읽고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누설될래야 누설될 기밀도 없었고 그런 세밀한 것을 정부가 국회에 보고한 적도 없었다.

이 모든 것은 종합할 때, 정부가 문건이 공개됨으로써 마치 협상에 중대한 장애가 초래된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당시 상황을 명백히 오도하는 것이다.

협상을 위해서라면 국민을 속여도 되는가? 그 협상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도리어 문건 유출로 인해 유일하게 분명해 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한국 협상단이 협상목표 변경에 따른 부담을 더욱 크게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부담과 불편함은 정부가 스스로 공표한 협상목표가 관철되지 못했을 때 정부가 져야할 당연한 부담이다. 더욱이 미국과 대등한 협상을 하여야 한다는 국내의 압력이 더욱 커짐에 따라 결과적으로 문건유출이 국익창출에 기여했을지언정, 국익을 훼손했다고 보기 힘들다.

여기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 있다. 정부가 협상의 '마지노선'을 국민에게 공표하는 것이 단지 상대 측을 혼란케 하려는 협상수단에 불과한 것이라는 발상, 혹은 공표된 '마지노선'의 변경을 대외비에 부침으로써 협상의 심부름꾼에 불과한 정부를 그 주인인 국민과 여론의 문제제기로부터 보호하는 것을 '국익'이라고 우기는 발상의 위험성이다.

그러한 발상 자체가 국익을 구성하는 기본 토대인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왜곡이자 도전일뿐더러 그러한 발상이 현실적 힘을 얻을수록 특정 구성원의 이익을 국익의 이름으로 정당화할 위험도 현저하게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당연히 국민에게 알려져야 할 정보를 유출했다는 이유로, FTA 협상을 민주적 토론의 장으로 이끌어내는데 기여한 이, 나아가 한국정부의 협상력을 높이는데 가장 강력한 역할을 한 이에 대해 치졸한 방법으로 정치적 보복을 가하는 것을 용인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지난 금요일 법원(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10단독 신용호 판사)은 이 가당치 않은 송사에서 국민의 감시를 불편하게 여기는 안이한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게다가 불구속으로 수사 받아온 이에게 도주우려와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전례 없이 실형을 선고하고 말았다.

이로써 정부가 열람만 허락한 영문협상문과 모든 법률 행정 경제 분야를 망라하는 협상정보-어떤 국회의원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은 협상 문건-을 싸안고 밤을 새워 읽어가며 국민에 대한 국회의 책무를 다하려던 유일한 국회의원 보좌관은 국익을 훼손하고 기밀을 누설한 죄로 옥에 보내졌다.

법원의 이번 판결은 아무도 다시는 '묻지마 협상'에 제동을 걸지 못하게 하기 위해 정 씨를 괘씸죄로 다스리려던 행정권력의 나쁜 의도를 뒷받침해줬다.

이런 일을 그대로 용인하고 그 피해자인 정창수 같은 이를 외롭게 방치하는 것은 우리 자신과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을 용인하고 방치하는 일이 될 것이다.

거수기로 나선 의원들, 한미FTA로 몇 개의 법령이 바뀔지는 알고 있나?

마지막으로 정창수 보좌관이 최재천 의원실에 있을 때, 나와 몇몇 연구자들이 함께 진행하던 작업을 하나 소개할까 한다.

이 작업은 사실 국회의 무능과 무지, 그리고 정부의 비협조로 마무리되지 못하였는데, 그것은 한미FTA로 인해 한국의 법령이 몇 개나 바뀌는지 조사하는 것이었다.

올해 한해를 들끓게 했던 쇠고기 수입 문제는 농림부 장관 고시와 관련된 것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법률이나 대통령 혹은 국무총리령을 의미하는 법령은 장관재량인 고시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입법으로서 법률은 국회가 직접 그 입법권한을 가지고 있고, 대통령령 역시 원칙적으로 국회가 규율한 법률의 범위를 넘어서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법령이 바뀐다는 것은 국민의 실생활에 대한 변화가 행정적 나아가 사법적으로 강제된다는 뜻. 이를 파악하는 것은 각계각층에 미치는 영향을 가늠하는데도 필수적인 것이었다.

특히 미국 의회가 자신의 법률은 단 한 개도 바꾸지 않겠다고 선언한 상황에서 한국은 도대체 몇 개의 법령이 바뀌는지 확인하는 것은 한국의 국회나 정부의 당연한 의무이기도 하다고 했다.

이런 당연한 점검 작업이 정부에서 미리 이루어져 협상 전에 국회에 보고되었으면 좋으련만, 2007년 1월 현재 정부는 한미FTA 협상 테이블에 올라 있는 법률의 목록도 집계하지 않고 있었고 따라서 국회에 보고도 하지 않았다.

최재천 의원실과 한미FTA 정책사업단은 공동연구작업을 통해 각종 정부 보고자료와 각 분야 전문가들의 조사를 바탕으로 각 분야 협상테이블에 총 168개의 한국 법률과 연관된 의제가 올라있다고 발표했다.

당시 정부는 시민단체들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위해 허무맹랑한 통계치를 발표하고 있다고 강력히 반발했다.

사실 시민사회단체들의 발표는 168개 법률이 변경된다는 것이 아니라, 한국 협상팀에 아무런 입법적 가이드라인 없어 미국 측 협상의제가 모두 관철될 경우 국내법률과 상충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168개 이상이라는 취지였지만, 정부는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비난에만 열을 올릴 뿐 어떤 공개적인 가이드라인도 제시하지 않았다.

미국이 2006년 12월 자국 법률개정이 필요한 협상은 안하겠다고 선언한 것과는 너무도 다르다.

사실 정부는 시민사회와 최재천 의원실의 문제제기 후에 비로소 협상관련 법률정보를 집계하고, 법률개정사항을 최소화하려는 시도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최종협상이 마무리되기까지 정부는 단 한번도 협상으로 인해 변경될 법률안의 목록과 조항의 내역을 국회에 제출한 바 없다. 놀랍게도 입법기관인 국회는 극히 일부 의원들을 제외하고는 자기 권한 중 무엇이 협상테이블에서 거래되는지도 모른 채 아무 문제제기 없이 지켜보고만 있었다.

놀라운 헌법권한의 양도, 민생과 민주주의에 대한 융단폭격

2008년 정기국회에 제출된 정부 자료-이 역시 정부가 자발적으로 보고한 자료가 아니라 참여연대의 제안에 따라 이미경 의원실에서 요청해 받아낸 자료다-에 따르면, 9월 26일 현재 정부는 한미FTA 체결로 인해 최종적으로 24개 법률이 개폐될 예정이라고 밝히고 있다.

사실 이 통계치는 검증이 필요하다. 하지만 여기에 자본시장통합법 등 FTA 수준의 개방을 예정하고 자발적으로 개방한 금융과 산업 관련 법률은 포함되지 않았다.

게다가 대통령령처럼 국회입법 사항이 아닌 정부 위임입법이 몇 개나 바뀌는지에 대해서는 국회에 최소한의 정보조차 제공하지 않고 있다. 지침이나 고시, 조례 등이 얼마나 바뀔 지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고 있음은 물론이다.

문제는 이들 법령, 명령, 지침, 조례 등의 개폐는 대개가 한미FTA 아래서는 우리 맘대로 다시 뜯어고칠 수 없는 불가역적인 것이라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국회 내의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이 이걸 점검하거나 따져 보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나마 문제의식이 있는 몇몇은 "묻지마식 날치기 통과"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느라 검토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쯤되면 그야말로 놀라운 '주권의 양도', '헌법권한의 양도'가 아닌가?

다시 말하건대, 올 봄의 촛불집회는 법률도 대통령령도 아닌, 장관고시 하나를 둘러싼 갈등이었다.

미국은 한미FTA 협상으로 한국의 시행령 수준에 해당하는 사소한 조항 하나 외에 다른 자국 법률을 일체 변경하지 않았는데도 재검토에 재검토를 거듭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와 여당은 무엇이 바뀌는지도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무슨 배짱으로 연내에 이 거대하고 되돌릴 수 없는 경제통합 협상을 비준하려고 몸을 던지는지 납득할 수 없다.

더구나 지금과 같은 국제적인 경제위기 아래서는 비단 법률개폐가 없다하더라도 개방으로 인해 각계각층이 겪게 될 변화가 훨씬 더 격렬하고 불균등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점검 없이, 심지어 그걸 시도하던 사람들을 비난하고 옥에 가두면서 누구를 위해 이 도박을 강행하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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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부동산세법의 위헌 여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헌법재판소와 국민주권 간의 관계, 헌법재판소와 다른 헌법기관, 특히 의회로 상징되는 대의기관과의 관계에 대해 다시금 고민할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헌재의 결정에 동의하건 그렇지 않건 간에, 이 문제들은 헌법학계와 정치학계가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모색해야 하는 긴절한 화두이다.

행정, 입법, 사법, 헌재의 4권 분립?

주지하다시피 헌법재판소는 이른바 '87년 체제'의 아들이었다. 9차 헌법개정시 헌법재판소를 헌법기관으로 헌법에 명기해 다양한 권한과 역할을 부여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수차례의 군사 쿠데타를 통해 헌정이 중단된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헌법질서를 수호할 기관을 따로 마련하자는 생각이 분명 작용했을 것이다. 아울러 위헌 심판 및 국가기관간 권한 쟁의,정당 해산, 탄핵심판 등의 사안은 그 성격상 정치성이 강해 대법원으로 대표되는 사법부가 정치적 중립성을 가지고 판단하기 어렵다는 이유도 작용했을 것이다.

아무튼 출범한지 만 20년이 된 헌재는 대통령 탄핵 기각 결정과 행정수도 이전 특별법에 대한 위헌 결정으로 단숨에 대한민국 최고의 헌법기관이 되었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행정, 입법, 사법의 3권 분립이 아니라 행정, 입법, 사법, 헌법재판권력의 4권 분립이라는 주장도 한다. 이번 종부세법의 위헌여부에 대한 헌재의 결정은 헌재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노무현 정부 이래 국가의 주요의사를 결정하는 최종심급의 역할을 하고 있는 '제왕적 헌재'의 등장은 매우 징후적인 사건이다. 이는 국민주권을 실현할 대의제(代議制)기구인 의회와 대통령, 그리고 대의제 기구와 국민 간의 간극을 좁혀야 할 의무가 있는 정당이 제대로 기능하고 있지 못하며 이들의 빈자리를 헌재 등이 메우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를 '정치의 사법화' 내지는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본격화'라고 불러도 좋겠다.

'정치의 사법화' 혹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가 본격화되는 것이 심히 걱정스러운 이유는 무엇보다 이런 사태가 '대표와 책임의 원리'라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뿌리채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헌법이 지향하는 통치구조의 구성원리는 국민주권의 원리와 대의제의 원리이다. 즉 대한민국 헌법은 헌법 1조 2항에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해 대한민국의 유일한 주권자가 국민이라고 선언하고 있지만, 국민주권은 직접 관철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대표(예컨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등)를 선거를 통해 선출하고 국가의 주요한 의사결정을 그들에게 맡기는 대의제(代議制)민주주의를 통해 간접적으로 실현된다. 물론 대한민국 헌법은 국민투표 등의 방법으로 주권자인 국민이 직접민주주의를 일부 구현할 수 있도록 규정해 놓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대의제 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대한민국의 유일한 주권자인 국민은 선거를 통해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자신들의 대표로 선출해 권력을 위임하고 대부분 정당 출신인 국민의 대표들은 선거를 통해 자신이 속한 정당과 자신에 대해 심판을 받는것이다. 그런데 만약 '정치의 사법화' 혹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가 본격화하면 위와 같이 '대표와 책임의 원리'를 통해 실현되는 국민주권이 심각하게 침해되거나 왜곡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게 된다.

신행정수도이전에 관한 특별법의 위헌성을 다투는 헌법소원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내린 위헌 결정이나 종부세법의 일부 위헌을 결정한 헌재의 판단이 바로 좋은 예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의회가 압도적인 다수의 의결로 마련한 법률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이유를 들어 간단히 무력화시킨 헌재는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를 결정적으로 침해한 것이다.

국민주권의 침해와 왜곡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헌재가 보여주고 있는 일련의 모습들은 국민의 대의기관들이 마땅히 해야 할 '정치'가 사라진 자리를 국민이 뽑지도 않았고 국민에 대해 책임을 지지도 않는 '사법기구'가 대신하고 있다는 점에서 크나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는 '대표와 책임'의 원리를 기초로 구현되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는 중대한 위험요소일 뿐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이 주권 행사에서 소외되는 비극을 낳게 된다.

헌재의 권한과 역할에 대한 헌법적 필요성이 사라지지 않는 한 헌재의 기능을 대법원이나 제3의 기구를 신설해 이관한다 해서 이런 사정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과 같은 제왕적 헌재의 독주 혹은 '정치의 사법화'를 막을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인가? 모호하고 궁색하기는 하지만 정당정치의 복원과 대의기구의 정상적 작동 그리고 성숙한 국민의식이 유일한 해법이 아닌가 싶다. 정당이 국민과 대의제 기구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역할을 충실히 하고, 여야와 대통령이 타협과 설득에 기반한 정치를 하며, 국민들도 문제만 생기면 헌재로 달려가 판단을 구하는 태도를 지양하고 정당과 대의제 기구들을 신뢰할 때 헌재의 전성시대는 마감될 수 있을 것이다. 언제까지나 국가의 중대사를 헌법재판관들의 판단에 맡겨 둘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이태경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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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8-11-19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겨울을 맞을 마음의 준비를 못했는데 갑작스레 너무 춥네요..감기조심하세요..

외로운 발바닥 2008-12-22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지내시죠? 뒤늦게 배꽃님이 방문하셨던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도 방문하셨을 때는 그렇게 추운 줄 몰랐는데, 오늘은 서울이 정말 추웠습니다. 배꽃님도 감기 조심하세요~
 

법조엘리트 나경원에 비애감 느낀다"
[인터뷰] '사이버모욕죄' 반대 전문가 선언 이끈 한상희 건국대 법대 교수

출처 :
"MB 사이버악법 3종세트는 국제망신
 법조엘리트 나경원에 비애감 느낀다" - 오마이뉴스


"한나라당이 사이버모욕죄를 통과시킨다면 정말 멍청한 거다. 이 법은 정권 바뀌면 서로 위험해지는 법이다. 영구집권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게 아니라면. 경찰은 섣불리 충성경쟁할 거고 엉터리로 적용하다 욕만 얻어먹을 거다."

 

지난 11일, 228명의 법학자와 언론학자·법조인 등과 함께 사이버모욕죄 도입반대 전문가선언을 이끈 한상희 건국대 법대 교수는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를 향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한 교수는 이른바 'MB표 사이버악법 3종 세트(사이버모욕죄·인터넷실명제·인터넷감청)'를 보고 "이들이 정상적인 법의식을 가진 국가 지도자들이 맞나 의심했다"고 말했다. 

 

법을 주먹 대용으로 쓰는 시대

 







  
한상희 교수.
ⓒ 유성호
한상희



그는 "사이버모욕죄로 국가와 국민을 통제할 수 있다고 오판하는 것은 그 자체로 권력만능주의적 발상"이라며 "권력이 흘러가는 도관인 법을 과거 권위주의 시절 '주먹의 대행기구'로 활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나라당 장윤석·나경원 의원이 사이버 모욕죄를 추진하는 것에 대해 그는 "대한민국 권력층의 천박함이 딱할 정도"라며 "법을 전공한 법조엘리트들이 자신의 권력을 수호하기 위해 법의 가치를 정면 무시하는 모습을 볼 때는 비애감을 느낄 정도"라고 씁쓸해했다.

 

그는 "한나라당은 2002년 대선 때부터 온라인 공간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다"며 "지난 10년간 인터넷으로 피해 봤다는 일종의 피해의식을 바탕으로 이제 정권을 잡았으니 손 좀 보겠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한국사회의 헤게모니를 잡겠다는 정치적 목적으로 언론과 방송 장악에 이어 인터넷 장악까지 나서는 것 아니겠냐는 한 교수는 "인터넷만 잡으면 국민의 눈과 귀를 왜곡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는 생각이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같은 생각을 가진 한나라당은 타락한 형태의 신자유주의 아니고 무엇이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오마이뉴스>는 13일 오전 서울 건국대 법대 연구실에서 한 교수를 만났으며,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정부와 한나라당은 최진실 사망 이후 사이버모욕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사이버공간은 거짓말과 욕설·저질이 난무하는 세계다', 이 말을 하고 싶은 것 같다. '따라서 국민들은 절대로 사이버공간에서 나오는 얘기를 믿지 말라' 주장하는 선전전 아닌가 싶다. 결국 한나라당과 정부는 시민단체가 민주화운동 20년간 쌓아놓은 공공영역을 없애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오프라인 광장에 해당하는 서울광장은 촛불집회를 박살내면서 폐쇄했다. 온라인 광장도 사이버모욕죄로 없애버리겠다는 기도 아니겠나."

 

- 사이버모욕죄뿐만 아니라 인터넷실명제·인터넷감청 등 이른바 'MB표 사이버악법 3종 세트'가 나왔다. 이 법으로 정부가 사이버공간을 통제할 수 있다고 보나.

"권력만능주의적 발상이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법치를 강조한다. 법치는 임금도 어쩌지 못하는 근본적 가치규범을 말한다. 모든 국가구성원들은 이 법치에 복종하고 실천하라는 뜻이 담긴 거다. 이게 바로 헌법정신이기도 하다. 그런데 현 정권이나 지난 정권에서 '이상한 법률주의'가 판치면서 자기들이 만들면 모든 법은 집행돼야 한다는 사고에 사로잡혀 있다. 행정권력에 입법권력까지 쥐면 뭐든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의 표현인가? 헌법 내용까지도 바꿀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사는 것 같다."

 

- 권력이 '법 만능주의'에 빠지는 이유가 뭘까.

"법은 권력이 흘러가는 도관이다. 과거 권위주의 체제에서는 주먹을 직접 행사해도 항의하는 세력이 없었다. 그런데 산업화 이후 이게 힘들어졌다. 민주화 바람 탓이라고 보는 거다. 그래서 법을 폭력 대신 사용하려는 경향이 있다."



 

"사이버모욕죄를 반의사불벌로 다스리겠다는 정치적 의도" 

 









  
참여연대 활동가가 피켓을 들고 있다.
ⓒ 정미소
사이법통제법



- 한나라당에서는 장윤석 의원과 나경원 의원이 동시에 사이버모욕죄 법안을 냈다. 이 법안들을 어떻게 평가하나.

"대한민국 권력층의 천박함이 딱할 정도다. 장윤석 의원과 나경원 의원은 모두 법을 전공한 법조 엘리트다. 최소한 법이 뭘 추구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법의 가치를 정면으로 무시하고 있다. 솔직히 같이 '법 갖고 먹고사는 사람'으로서 비애감마저 느낀다.

 

정상적인 법의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도무지 그런 법은 만들 수 없다. 무엇보다 사이버모욕죄를 친고죄로 하지 않고 반의사불벌죄(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처벌할 수 없는 죄)로 다스리고 형량도 가중시킨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내용이다. 결국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하겠다는 거다. 법의 남용 가능성이 높다. 수사기관에 지나친 권한을 부여한다는 것도 문제다."

 

- 두 법안의 가장 위험한 독소조항은 '반의사불벌죄'라고 했다. 왜 친고죄를 폐지하고 반의사불벌로 다스리겠다고 판단한 건가.

"정작 본인은 감정이 상하지 않았는데 수사당국이 알아서 수사하겠다는 거다. 어떤 표현물 하나를 꼬투리 삼아 전체 게시판이나 카페, 심지어 포털 전체에 대해서도 수사할 수 있게 된다. 꼬투리 잡아 벌어지는 압수수색이 많아지게 될 거다.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 소지죄와 똑같은 게 된다. 결국 이런 수사는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 예컨대 어떤 상황이 벌어지게 될까.

"내가 청와대 홈페이지에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에 대해 잘못했다고 비판하는 메시지를 남겼는데, 수사기관이 보기에 '이건 대통령에 대한 모욕이다' 판단하고 내 컴퓨터 하드를 뜯어갈 수 있다. 컴퓨터 하드를 떼갔는데, 막상 경찰이 보기에 '어 이런 요상한 글을?' 싶은 글이 있다면 이것도 수사할 수 있게 된다.

 

청와대와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나를 상대로 고소하지 않더라도 경찰이 대신 다해줄 수 있는 거다. 굳이 나설 필요도 없게 되는 거다. 이게 바로 모욕죄 처벌의 현실이다. 그렇게 되면 사이버공간이 어떻게 되겠나. 공론의 장 역할은 못하게 된다. 모욕죄가 두려운 네티즌이 자유로운 의견을 남기겠나. 결국 인터넷은 철학을 공유하는 지식길드가 아니라 이윤을 팔아먹는 자본의 도구로 전락하게 될 거다."

 

인터넷콤플렉스, 복수심 그리고 한국사회 헤게모니

 







  
전국 법학자와 언론학자, 법조인 등 관련 전문가들이 11일 오전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레이첼카슨룸에서 '사이버 모욕죄 입법 시도 반대 전문가 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사이버 모욕죄 입법 시도에 반대하며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사이버 모욕죄



- 한나라당이 이 법을 도입하려는 목적이 뭐라고 보나.

"한나라당은 2002년 대선 때부터 온라인 공간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다. 일종의 복수심이 있는 거다. 계속 우리는 인터넷으로 피해 봤다는 피해의식이 있다. 이제 정권을 잡았으니 저걸 손봐야겠다는 생각이 있는 거다.

 

둘째, 한국사회에 대한 헤게모니를 장악하겠다는 의도가 서려 있다. 언론과 방송을 장악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제 인터넷만 잡으면 국민의 눈과 귀를 왜곡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는 생각이 있는 거다. 대한민국에 국가와 시장만 있으면 되지 뭘 별도의 시민사회가 필요 하냐, 이게 한나라당이 갖는 의식의 기본이다. 타락한 형태의 신자유주의랄까."

 

- 해외에도 사이버모욕죄가 있는 나라가 있나.

"도입되면 세계 최초가 될 거다. 형법 107조 제2항에 보면 '외국 국가원수 모독죄'가 있다. 이 법을 어기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한다. 외교상 문제 때문에 만들어놓은 조항이지만 이조차 정당한 의사표현으로 받아들여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결국 이 법은 박정희 대통령을 욕하면 잡아가던 '불경죄'가 살아있던 야만시대로 되돌리는 악법이다."

 

- 사이버모욕죄는 제2의 긴급조치라고 규정한 바 있다.

"나는 긴급조치 세대다. 박정희 정권과 유신헌법에 대해 비판하면 잡아갔다. 국가권력이 전 방위로 모든 국민을 감시하고 통제하면서 폭력을 가했던 시절이다. 국민은 국가폭력이 두려워 입을 닫던 시대였다. 그런 문명 이전 사회로 돌아가자는 게 한나라당이다. 무지성의 상태로 퇴보시키려는 것을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

 

- 한나라당은 '악성댓글' 때문에 죽음에 이르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는 의도라고 해명한다.

"사이버모욕죄를 도입하면 과연 인터넷이 정화될까? 천만의 말씀이다. 경찰은 비중 있는 인물에 대해서만 관심 갖고 수사할 거다. 일반 네티즌이 당하는 모욕? 관심 없을 게다. 결국 한나라당은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 법을 활용할 가능성도 높다."

 

- 전문가집단과 시민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한국의 지성인은 자폭해야 한다. 밀턴이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다 런던탑에 갇혔다. 한국의 지성은 모두 그를 칭송했다. 같은 일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침묵하면 되겠나. 사이버모욕죄 도입으로 야기되는 지성의 소멸이 너무 크다. 누가 내 뒷덜미를 치고 나올지 모르는 상황인데 지성인이 가만히 있어야 되겠나. 의연하게 들고 일어나야 한다고 본다.

 

입법되면 위헌법률심판청구가 이어져야 한다. 그 뒤엔 전 국민적 불복종운동을 벌여야 한다. 실제 권력에만 봉사하는 법이라는 게 실증되면 사이버모욕죄는 전 세계 해외토픽에 올라가게 될 거다.  국제사회 망신과 조롱거리가 될 텐데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출처 : "MB 사이버악법 3종세트는 국제망신
 법조엘리트 나경원에 비애감 느낀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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