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자 : 주진우의 정통시사활극
주진우 지음 / 푸른숲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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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꼼수의 팬이다. 흔히 얘기하는 광팬까지는 아닐지라도 비교적 나꼼수의 작은 흠은 굳이 문제삼지 않고 애정으로 덮어버릴 정도의 애정은 가지고 있다. 그들이 새롭게 벌인 신명나는 판이 좋았고, 그들이 쫄지마!”라는 메시지를 통해 축 처진 대다수 젊은이들에게 불어넣어 준 용기와 자신감이 고마웠다.

 

이 책도 그러한 연장선에서 읽었고, 다른 독자들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읽으면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에는 주기자가 취재해 온 굵직굵직한 사건들에 대한 뒷얘기, 취재할 때의 에피소드, 그리고 그와 관련한 주기자의 단상이 들어 있다. 이 책에 들어 있는 여러가지 이야기들도 흥미있고, 그 나름의 시사점이 있으나, 이 책은 그러한 디테일보다는 주기자가 소위 말하는 거악에 맞서 얼마나 치열하고 고단한 삶을 살아왔는지에 대한 기록으로서의 가치가 더 클 것 같다.

 

너무 짧은 듯한 문장길이나 종종 등장하는 깔때기는, 그가 우리 사회를 위해 짊어진 그의 삶의 무게와 고독함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그의 매력으로 보아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주기자, 그냥 그의 존재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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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무너지고 있다 - 4대강, 토건국가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2
최병성 지음 / 오월의봄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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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까지는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내용도 비교적 단순하고, 사진도 많아서 금방금방 넘어간다. 다만 ,책을 읽으면서, 책을 읽고 나서도 편치 않은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면 책은 마치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남영동 1985” 같이 독자를 아프게 하려는 목적에서 쓰여진 책이 아닌가 싶다. 인간의 탐욕, 무지, 맹신과 무관심이 자연에 가한 테러를 책을 통해 고스란히 마주보게 되니까 말이다.

 

과거 어두운 시기에 행해진 고문과 마찬가지로, 4대강과 주변 자연에 행해진 말도 되는 고문과 파괴의 책임은, 고문과 파괴를 진두지휘한 지도자를 뽑고, 지도자의 잘못된 폭주를 방조하고 묵인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 어떻게 이렇게 말도 되는 일을, 이렇게 대규모로, 이렇게 단기간에, 이렇게 수많은 뻔뻔한 거짓말로 저지르고도, 우리 사회는 이렇게 아무런 일도 없는 것처럼 조용할 있는지 대한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이자 최소한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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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굴욕
[시평]박상주 논설위원
 

2009년 04월 21일 (화) 17:31:07 박상주 논설위원 ( parksangjoo@yahoo.co.kr)
 

그가 높은 사람 앞에서 깊숙이 허리를 굽힌 채 정신없이 손바닥을 비빈다. 온 세상이 그의 모습을 보고는 쯧쯧 혀를 차고, 낄낄 조롱한다. 하지만 권력자의 눈치를 살피기에만 급급한 그의 눈과 귀엔 아무 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산 권력’ 앞에다 사냥해온 ‘죽은 권력’을 물어다 바치며 살살 꼬리를 흔드는 그 역겨운 사냥개 본능. 세상은 참 놀랍게도 바뀌는데 군둥내 물씬 풍기는 그 구태는 바뀔 기미가 없다. 오늘날 대한민국 검찰의 자화상이 아닐 런지. 검찰은 세상의 질타와 비웃음을 듣고 있는가. 눈이 있으면 보고, 귀가 있으면 들어라.

# “희한한 뉴스다(Oddly Enough)!”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글을 올린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의 구속은 시작부터 세계적인 조롱거리였다. 로이터 통신은 즉각 ‘희한한 뉴스’라고 소개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한국에 표현의 자유가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고 썼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박씨 구속은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에 한국 정부가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결국 ‘미네르바’ 박아무개씨가 1심의 무죄 선고와 함께 풀려났다. 사이버 공간은 온통 검찰을 성토하는 글로 도배되다 시피하고 있다. 한 누리꾼(희망모으기)은 “인터넷 논객 구속으로 우리나라 후진성을 세계에 떨쳐 국가브랜드를 크게 떨어뜨린 손해가 수십 조 원에 달할 것”이라며 “검찰은 다양성을 훼손하여 국가 발전을 가로막은 점을 고려해 징역 2000년, 추징금 100조 원쯤 내야 할 듯 하다”고 비꼬았다.

# “이런 수사 방식은 처음 본다!”

야당의 정치공세도, 시민단체의 항의성명도 아니다. 인터넷 누리꾼이 올린 익명의 댓글도 아니다. 여당인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가 이른바 ‘노무현 게이트’에 대한 검찰 수사를 놓고 한 쓴 소리다. 박 대표는 20일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검찰이 매일매일 진행 상황을 브리핑하다시피 지금 하고 있다. 나는 이런 수사 방식은 처음 본다”고 혀를 찼다. 그는 이어 “검찰이 일정 기간 수사를 해서 이제 자, 이건 중간 발표다, 또 그 다음에는 최종 발표다 이렇게 하고 정치권에서는 여기 일체 관여를 안 하고, 이게 전통적인 수사 방법이었다”라고 꼬집었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검찰이 피의사실을 유포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되어있음에 계속 중계방송하고 있어 국민 모두는 지금 수사는 4·29 재보선용이라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또 이명박 대통령 최측근으로 알려진 천신일 세중나모회장의 10억 수수설, 30억 당비 대납설, 한상률 전 국세청장 기획 출국설 등 3대 의혹을 거론한 뒤 이에 대해선 전혀 진실규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검찰의 편파수사를 비난했다.

# “정녕 양심의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가!”

전국언론노동조합이 대한민국 검찰에게 던진 질문이다. 범죄혐의 성립조차 어렵다며 문화방송(MBC) ‘PD수첩’의 제작진 소환을 거부하던 담당 검사를 갈아치우고, 약혼자의 집까지 압수수색하고, 결혼을 나흘 앞두고 있던 예비신부 김보슬PD를 체포했던 검찰…. 언론노조의 이어지는 항변 그대로 검찰 스스로가 비굴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지난 50년 검찰 역사를 되돌아보면 그 오욕의 얼룩이 자못 흉하다. 국민들은 검찰의 이름 앞에 ‘권력의 시녀’. ‘떡검’, ‘견찰’ 등 불명예스러운 수식어를 붙여 불러왔다. 미네르바와 MBC PD 긴급체포사건, 노무현 게이트 수사 등을 둘러싼 최근 검찰의 처신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도 여전히 사납기만 하다. 미네르바와 PD수첩에 대한 무고죄, 노 전 대통령 관련 수사에 대한 피의사실 유포죄로 검찰을 고소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일고 있다. 예전처럼 그저 찍어누를 수 있는 국민들이 아니다. 인터넷 논객의 구속, 정부정책을 비판한 언론인의 체포, 지난 권력에 대한 편파 수사와 마구잡이 피의 사실 유포…. 이런 코미디를 한꺼번에 벌이는 검찰은 이젠 웬만한 후진국에서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검찰은 그 오욕의 역사에 얼마나 더 흉한 얼룩을 덧칠하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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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끈한데 2009-07-13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도 많이 바쁜게로군..ㅋㅋ
 

‘보수’에 대한 상념(想念)

이상돈 (2009년 4월 1일)


우리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헌정사는 자유당 이승만 정권의 장기집권, 유신헌법과 긴급조치, 그리고 5공화국의 압제 등 많은 곡절을 겪어 왔다. 비록 우리가 빈곤탈출과 경제발전에 있어서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고 하지만 입헌주의와 민주주의 발전에 있어서는 후진적이었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1987년 개헌과 더불어 본격적인 민주주의 시대가 열렸지만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자유민주주의’의 한 축인 ‘자유’가 훼손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진보’ 또는 ‘좌파적’ 견지에서 평등, 사회적 균등 같은 가치를 앞세웠기 때문에 이로 인해 자유주의가 손상된다는 비판이 일었다. 그런 점을 강조한 집단은 ‘뉴라이트’나 ‘아스팔트 우파’가 아니라 공병호 같은 시장자유주의자였다. 그런데 시장자유주의자도 아닌 사람들도 ‘보수’가 아니라 ‘자유’를 내걸었다. 자신을 ‘보수주의자’라고 말하기 보다는 ‘자유주의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과거에 좌파 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모여서 단체를 만들고 ‘뉴라이트’라는 영어 간판을 내건 것도 ‘보수’라는 명칭을 쓰고 싶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이른바 보수 단체 중에도 정작 ‘보수’라는 명칭을 내건 곳은 별로 없고, ‘자유’를 내건 경우가 많은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 일 것이다. 이재오, 김문수, 김진홍 등 과거에 운동권이었던 사람들도 좌파를 비난하는 발언을 한 경우는 있었지만 그들이 스스로 ‘보수’임을 자임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생각된다. 과거에 좌파 운동권에 몸담았던 사람들이 별안간 ‘보수’를 자처하기에 떨떠름했던 것은, ‘보수’라는 단어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고, 또 그들이 젊었을 때 죽어라고 읽은 책이 모두 ‘좌파’ 책이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보수’ 행세를 하자니 ‘보수’에 대해 무언가 알아야 할 것이지만 ‘보수’를 공부할 기회도 없었을 뿐더러, 우리나라엔 ‘보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변변한 책이 있지도 않은 것이 현실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선 보수주의에 관한 담론 자체가 없다. 보수 세력이 권력과 금력 같은 제도에 안주해 와서 지적 기반(intellectual base)이 취약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보수’라는 단어가 ‘이미지 문제’를 안고 있다. ‘보수’가 부패하고 기회주의적인 집단으로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원조보수’를 자처하는 JP가 DJ와 야합했던 것을 상기하면 더 이상 다른 말이 필요 없다. ‘더러운 단어’였던 ‘보수’가 노무현 정권의 실정(失政)에 힘입어 일어나나 했더니 이명박 정권과 같은 길을 가는 바람에 그나마 회복했던 ‘정당성’을 다시 상실했다. 우리 국민의 과반수가 무당파(無黨派) 부동층이 된 것은 그런 사정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고요한 보수’(The Silent Conservatives)는 새로운 변신을 하면서 다음을 기약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MB는 경선이나 대선 과정에서 단 한 번도 자신을 ‘보수’라고 부른 적이 없었다. 대북정책에서도 기존의 햇볕정책을 폐기하거나 수정하겠다고 약속한 적이 없었다. 그러한 유화적 대북정책 때문에 이회창 총재가 대선에 출마하게 되었던 것은 우리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이제는 미국에 오바마 정권이 들어선 덕분에 이명박 정권은 결국 햇볕정책을 답습하지 않을 수 없게 됐으니, 오히려 홀가분해 진 것이 아닌가 한다. 햇볕정책을 오바마 때문에 지속할 수밖에 없다는 좋은 ‘핑계’가 생긴 셈이다. “오바마를 좌파로 불러서는 안 된다”는 궤변이 “오바마의 햇볕은 괜찮다”는 또 다른 궤변을 만들어 낸 것이다.

보수정당을 표방했던 자유선진당은 대북 정책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제3의 길’을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야당의 ‘대북 정책’은 본질적으로 구두선(口頭禪)에 불과한 것이니, 자유선진당의 정체성은 오히려 중도를 지향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민주당 일각에서도 전교조 민노총과 선(線)을 긋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으니 ‘제3의 길’ 전성기가 오는 듯하다. ‘제3의 길’을 표방한 ‘국민통합’ 세력 앞에 대립적 이데오르기로서의 보수주의는 오뉴월에 눈 녹듯이 무력해 지지 않을까 한다. ‘고요한 보수’도 ‘제3의 길’을 향해 보이지 않는 변신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명박 정권이 내 걸었던 대운하 사업, 그리고 ‘꿩 대신 닭’이라는 식으로 추진하는 경인운하, 4대강 사업 같은 것은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보수’가 앞장서서 반대해야 할 사안이다. 토목공사로 경제위기를 극복하겠다는 발상을 흔히 ‘뉴딜’이라고 하나, ‘보수’의 입장에서 보면 ‘뉴딜’은 ‘실패한 진보정책’의 대명사다. 미국 공화당이 ‘뉴딜’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강을 파헤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잠실 초고층 건물 건축허가에서 보듯이 이명박 정권은 국가안보를 오히려 경시하고 있다. 국가안보의 보루라는 국정원의 책임자에 병역도 하지 않은 안보 문외한을 임명하는 정권을 보수 정권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런 일은 아마추어 진보정권인 카터 행정부에서 있었다. 진정한 보수언론, 보수단체라면 이런 일련의 사태를 신랄하게 비판했어야 했지만 모두 침묵했다.

최근에 일어난 신영철 대법관 사건이나 MBC 기자 구속 사건은 ‘진보’와 ‘보수’의 대립으로 볼 사안이 아니다. 사법권 독립,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는 정치이념이나 정책 문제가 아니고 자유민주주의의 기초이다. 그것을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는 말이다. 재판개입을 한 것으로 판명된 신영철 대법관의 사임에 반대하고, 명예훼손 혐의로 언론인을 구속하는 사태에 대해서 침묵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없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 지식인으로 뽑히는 고(故) 러셀 커크와 고(故) 윌리엄 버클리 2세가 196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보수주의를 내걸고 출마를 선언한 공화당의 배리 골드워터 상원의원을 만나서 한 이야기 중에는 이런 부분이 있다. 러셀 커크는 골드워터에게 “보수주의를 표방하더라도 남부의 인종차별주의자 등 더러운 집단을 멀리하라”고 했다. 윌리엄 버클리는 그런 집단을 ‘쓰레기’라고 지칭했고, 자기가 발행하는 ‘내셔널 리뷰’지(誌)에 존 버치 협회 같은 남부의 수구집단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글을 연거푸 발표했다. 이렇게 해서 미국의 보수주의 운동은 부패와 무지(無知)와 결별하고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에 반대한 데 있어서 윌리엄 버클리와 존 버치 협회는 다를 바가 없었지만, 이런 과정을 거쳐 존 버치 협회는 몰락하고 버클리는 1980년대 미국 보수주의 전성기의 지적 기초를 닦았다.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에 반대하는데도 격(格)이 있는 법이다.

(c) 이상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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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도 상급법관 뜻대로'? 적은 내부에 있다

출처 :
'재판도 상급법관 뜻대로'? 적은 내부에 있다 - 오마이뉴스
법관의 헌법·법률·양심 무시한 '촛불재판 몰아주기 사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 김태헌
서울중앙지법



대통령에 충성심 강한 사람이 판사?

 

군사정권시절에 서울지방법원은 형사지법과 민사지법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리고 정권이나 대법원장은 형사지법원장이나 형사지법 부장판사 등에 소위 코드가 잘 맞아 믿을 만한 인사들을 대거 포진시켰다. 형사지법에서는 소위 시국사건들의 재판이 많이 열린 탓에 이 법원 고위판사들의 인사에 법원 내외부의 입김이 많이 작용했던 것이다.

 

시간이 흘러 군사정권이 물러난 1993년에 서울민사지법 단독판사들에 이어 대한변협이 사법부의 근본적인 개혁을 촉구하고 나서는 제3차 사법파동이 일어났다. 이 때에 사법 개혁방안의 하나로 주장되던 것 중에 과거 군사정권에서 정치권력에 영합해 법과 양심을 저버린 판결을 한 '정치판사'들의 퇴진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정치판사'에는 대법원장 등 사법부 수뇌부뿐만 아니라  군사정권에서 사건배당권 행사 등을 통해 시국사건 재판을 조정하고 통제하려 했던 서울형사지법 수석부장출신의 일부 고위판사들도 우회적으로 지목되어 있었다.

 

원래 근무평정권과 사건배당권은 법원장의 권한이다. 그런데 많은 경우 단독판사들에 대한 근무평정권이나 사건배당권은 사실상 수석부장판사에게 곧잘 위임된다. 군사정권은 과거에 서울형사지법원장과 수석부장판사를 코드가 맞는 믿을 만한 인사로 앉혀놓은 후 이들을 통해 시국사건의 판결을 마음대로 조정하고 주물렀다. 소명이 부족한 시국사범의 영장도 수석부장판사에 의해 비밀리에 발부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유신시절에 판사를 지냈고 나중에 제1기 헌법재판소 재판관까지 지낸 변정수 전 재판관은 회고록에서 "서울형사지법 수석부장은 중앙정보부나 검찰에서 보기에 유신관이 투철하거나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사람, 적어도 검찰이나 중정에 협조를 잘해줄 것으로 인정받은 사람들이었다"고 꼬집기까지 했다. 

 

적용 법조항이 다른 사건을 비슷한 사건이라니...

 

요즘 법원이 이래저래 시끄럽다. 작년에 서울중앙지법에서 촛불집회 참가자에 대한 여러 건의 사건들이 다소 보수적이라 알려진 특정재판부에 몰아주기식으로 배당되자, 이에 대해 다른 13명의 단독판사들이 반발하였고 법원장이 나서서 이를 무마한 뒤 다시 사건들을 관행대로 무작위 시스템에 의해 배당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 일이 최근 언론에 의해 파헤쳐지고 보도되면서 법원 안팎에서 몰아주기 사건배당의 배경과 이유에 많은 의혹의 시선들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당시 사건배당권을 행사했던 형사수석부장판사나 대법원은 그 사건들이 쟁점이 비슷한 중요사건들이라 결론이나 양형에 큰 차이가 날 것을 우려해 배당예규에 따라 사건을 그렇게 한 판사에게 몰아준 것이라 해명하고 있다.

 

궁색한 변명이다. 몰아주기식으로 배당된 사건들은 촛불집회 참가자가 기소된 사건들이라는 점에서만 공통적일 뿐, 사건의 구체적 내용이나 쟁점, 적용 법조항들이 다르다. 어떤 사건은 경찰 기물 파손 사건이고, 어떤 사건은 전의경 폭행사건이며, 또 어떤 사건은 촛불집회행사 사회자가 허가되지 않은 행진을 유도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다. 따라서 비슷한 사건들이어서 결론이나 형량의 차이를 줄이기 위해 한 명의 판사에게 사건을 몰아주려 했다는 설명은 납득하기 어렵다.

 

또한 결론이나 형량 차이는 이후 상소를 통해 해결될 수 있는 것들이다. 오히려 이 사건들이 왜 하필이면 언론에 의해 보수적 성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는 판사에게 몰아주기가 되었느냐에 많은 의혹의 시선들이 쏠린다.

 

그리고 이 판사가 있던 13단독은 원래 피고인이 외국인인 사건을 다루는 재판부였다. 외국인 사건  전담 재판부에 무작위 시스템이 아니라 인위적인 몰아주기식 배당으로 촛불집회 관련 시국사건 재판을 맡긴 이유는 정녕 무엇인가?

 

원래 사건배당은 컴퓨터 추첨 등에 의한 무작위 배당이 원칙이다. 사건 배당에 어떤 의도가 개입되었다는 의혹을 사지 않기 위해서다. 그런데 우리 법원의 배당예규는 특별한 경우에는 임의배당을 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집회 및 시위사건들은 보통 무작위 배당을 하는 일반사건들로 다루어지는데, 이를 임의배당했다는 자체가 이 사건을 다른 집회 및 시위사건들과 달리 차별적으로 취급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사건배당에서 촛불시위사건들만 이렇게 달리 취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사건 피고인들의 범죄사실이 다른 집회 및 시위사건의 피고인들과 비교해 특별히 중대하지도 않다. 백번 양보해서 이 사건들이 임의배당을 통해 한 명의 판사에게 몰아줘야 할 사건들이라 하더라도, 하필 그  한 명의 판사가 언론에 의해 보수적 성향을 지녔다고 평가될 판사여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다른 판사들보다 그 판사가 재판능력이 뛰어남을 입증할 만한 자료는 없는 것 같다. 그 이유가 혹시 법원장이나 형사수석부장이 보기에 '믿을 만하다'는 것이라면 어떤 의미에서 '믿을 만하다'는 것인가? 누가 보더라도 몰아주기식 사건배당의 숨은 의도가 무엇인지 뻔히 들여다 보이는 경우다. 

 

선고와 영장 심리까지 간섭, 법관 독립 뒤흔드는 일

 

그런데 여기까지도 어떻게 보면 덜 심각하다. 몰아주기식 사건배당을 했던 그 형사수석부장판사가 단독판사들에게 촛불집회에 참가한 혐의로 즉심에 회부된 피고인들에게는 통상적인 벌금형이 아니라 더 무거운 구류형을 선고하라고 요구했다는 언론보도는 가히 충격적이다.

 

또한 촛불집회 참가자에 대한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을 기각할 때에는 '증거인멸과 도주우려 없음'의 사유보다 '혐의 소명 부족'의 사유를 제시하라는 요구도 했다고 보도되고 있다. '소명 부족'으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 검찰의 보강수사를 통해 영장 재청구와 영장 발부가 가능하지만,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 없음'을 이유로 한 영장기각은 검찰의 영장 재청구가 있어도 그 후 영장이 발부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즉, 재청구를 통해서라도 영장이 잘 발부될 수 있는 결정을 하라는 것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법관의 독립'을 뿌리채 뒤흔드는 일로,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어떤 형으로 처벌할지, 영장사건에서 무엇을 기각사유로 할지는 재판의 중요한 핵심사항이다. 이 판단에 근무평정권이라는 인사권을 갖고 있는 상급법관이 개입하여 노골적인 요구를 했다면, 법관은 헌법, 법률, 양심이 아니라 상급법관의 '주문'에 따라, '독립하여'가 아니라 상급법관에게 '예속되어' 재판을 한 것이 된다. 아주 심각한 위헌적 상황이다.

 

이러한 언론보도가 사실인지, 사실이라면 왜 그랬는지, 당시 법원장이나 형사수석부장 등 당사자들이 국민들에게 정확하게 설명을 해야 한다. 나아가 대법원장은 즉각 진상조사에 착수해야 한다. 그리고 바로 잡을 일이 있으면 바로 잡고, 책임져야 할 사람이 있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

 







  
임지봉 서강대 헌법학 교수
 
임지봉



문민정부에 들어와서부터는 특히 전국 모든 법관들의 인사권을 틀어쥐고 있는 대법원장이나, 인사권을 사실상 나눠가지는 법원장, 부장판사들로부터 개별법관의 독립이 침해되고 있다는 지적들이 많았다. 고위법관들이 인사권을 무기로 하급법관들을 줄세우고 길들이려 한다는 불만들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사법부의 제일차적 당위목표이자 존재이유인 '사법권 독립'이 사법부 밖으로부터가 아니라 이제 사법부 안으로부터 위협당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또 다른 모습의 '사법권 독립의 위기'라고 볼 수밖에 없다. 법관이 재판에서 헌법, 법률, 양심이 아닌 다른 그 무엇을 더 중요하게 고려하기 시작한다면 국민들은 이런 법원을 불신할 수밖에 없다.

 

법원이 신뢰를 얻는 데에는 부단한 노력과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군사정권하의 법원에서 목도했듯이 국민의 신뢰를 잃는 것은 잠깐임을 명심해야 한다. 국민들이 더 이상 법관과 법원의 '정치적 독립성'을 걱정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 그동안 많은 신뢰와 지지를 보내준 국민들에게 법원이 해야 할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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