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신문에서 오려둔 것인데, 읽지는 않고 오려둔 쪽지만 계속 굴러다녀서...여기 기록해본다.

섀클턴의 서바이벌 리더십 - 데니스 NT 퍼킨서

CEO 칭기스칸 - 김종래

코끼리를 춤추게 하라 - 루이스 거스너/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 - 제임스 콜린스 외

드골의 리더십과 지도자론 - 이주흠/ 살아있는 신화:스티브 발머 - 프레데릭 맥스웰

실행에 집중하라 - 래리 보시디 외/ 부자가 되려면 부자에게 점심을 사라 - 혼다 켄/ 도요타 무한성장의 비밀 - 히노 사토시

중국 3천년의 인간력 - 모리야 히로시/ 바보의 벽 - 요로 다케시

숨겨진 힘:사람 - 찰스 오레일리

Deep Change or Slow Death - 로버트 E 퀸

언제 다 읽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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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참 불가사의한 나라다. 세계 유일의 최강대국이고, 남북분단 이후 미국의 지속적인 원조로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데 큰 도움을 받은 우리나라에게는 남북한 대치 상황의 냉전시대를 거치면서 크나큰 은혜를 준 나라라는 인식과 함께 신제국주의적 침략자, 독재권력의 비호자, 자국의 이익을 위해 신자유주의를 강요하는 나라라는 이미지가 혼재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경우 현대사를 논하면서 미국의 영향을 부정할 수 없기에, 냉전시대와 군부독재시대를 겪으면서 미국의 이미지는 위와 같이 극단적으로 나뉘어지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 시대에 크게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그 시대의 이데올로기에 잘 적응, 내지는 교화된 사람 중에는 미국을 '지고의 선' 또는 '민주주의가 살아 숨쉬는 기회의 땅'으로 굳게 믿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그 시대의 어두운 면을 경험한 사람 중에는 미국을 민족 통일을 반대하는 제국주의적 국가로 인식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도 어렸을 때는 미국이란 나라에 대해 꽤 호감을 가졌던 것 같다. 내가 자라나던 환경이 그랬고, 미국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에서 막연히 동질감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았나 싶다. 당연히 나는 한국인이지만 나에게 가장 중요한 두 나라를 꼽으라면 한국에 이어 미국을 꼽았을, 그런 정도의 동질감과 호감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머리가 좀 굵어지고 노암 촘스키의 글을 읽고, 마이클 무어의 영화와 책을 접하면서 조금씩 미국이란 나라가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그렇게 선하고 우리가 지향해야할 사회인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싹트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걸프전도 크게 다를 바가 없었겠지만, 그런 생각을 결정적으로 강화시킨 것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해 석유자원 확보를 노린 전쟁이라는 등 여러가지 비판이 있었고 그에 대해 미국은 이라크에서 후세인의 폭정에 고통받는 이라크인들을 구해내고 민주주의를 정착시킨다는 듣기에도 그럴듯하지도 못한 이유를 내세워 이라크 침공을 감행했고, 결국은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내에 이라크를 점령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해 미국이 내세우는 이유를 그대로 믿는 단세포는 그리 많지 않으리라 믿는다. 후세인의 폭정은 비난받아 마땅하고, 이라크에서 민주주의가 뿌리내리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어떤 나라에 독재자가 있다고 해서 다른 나라가 침공을 해서 무수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어떤 이유로 정당화될 수 있을까? 누가 미국에게 그러한 권력을 주었는가? 물론 국제사회에서는 힘의 논리가 모든 것을 정당화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순수하게 이라크 국민들을 위해서 였다고 할지라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물며 이라크 침공에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경우에야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이라크인들의 삶이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후 어떻게 변했는지 생각해보면 정말로 끔찍하다. 후세인 치하에서의 삶도 결코 행복하진 않았겠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하루가 멀다하고 무차별적인 폭탄테러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모든 사람들이 불안과 공포에 떨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차별적 자살 폭탄 테러를 하는 자들은 미치광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의 동포에 대한 공격을 이해할 수 없지만, 이라크인들의 삶에 근본적인 변화(나쁜 쪽으로의)를 가져온 것은 미국임을 부인할 수 없다.

미국의 이라크침공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명분이 없는 것 같다. 후세인이 가지고 있다던 대량살상무기도 결국은 찾아내지 못했다. 지금까지의 기사를 종합해보면 그것은 이라크 침공을 정당화하기 위한 하나의 작은 구실이었고 그나마도 조작된 것이었다. 결국 조작된 정보라는 것이 밝혀졌지만, 전쟁은 이미 시작되어 이라크는 점령되었고, 정보의 보고와 판단에서 실무자의 실수가 있다고 덮어버리면 그만일 것이다.

 2005년 6월 20일자 Time에서는 사실상 법치주의의 사각지대인 관타나모 기지의 수용자에 대한 심문을 다루고 있다. 테러와의 전쟁 이후,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 등지에서 테러리스트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전쟁포로에 준하여 - 그러나 전쟁포로에 대한 제네바 협약은 준수되지 않고 있다 - 감금하고 미국의 안위를 지킨다는 명분아래 온갖 학대와 가혹행위, 비인간적인 심문이 자행되고 있는 곳이다. Time에서는 그 곳의 수용자 063으로 불려지는 Mohammed al-Qahtani를 어떻게 조사관들이 심문하는지, 그리고 그가 어떻게 변화를 일으키는지에 대해 자세히 보도하고 있다. al-Qahtani는 심문받을 것에 대한 교육을 받은 사람이고 조사관들에게도 무척 반항적이었다. 그러나 고도로 연구된 심리적 방법들이 동원되면서 결국은 조사관들에게 굴복하고 만다. 그리고 조사관들이 사용한 방법은 소설 '1984'에나 나올 법한,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하고 정체성을 상실하게 하여 피조사자를 미치광이로 만드는 그런 것이었다. 잠을 안재우고 물을 강제로 수건에 적셔서 먹이는 것은 기본이고 피조사자가 공포심을 느끼는 것을 연구하여, 예컨대 무서운 개를 이용하여 공포심을 조장하는 방법, 911테러 희생자들의 사진을 몸에 붙이게 하고 미국 애국가를 강제로 들려주며, 용변을 통제하여 바지에 그대로 싸게 만든다든지, 이슬람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존엄성을 상실케하는 방법 등 상상하기에도 끔찍한 고문방법들이 소개되었다. 전세계에 민주주의를 퍼뜨리겠다는 미국이 이런 말도 안되는 인권 침해를 자행하고 있는 것도 놀라웠지만 더 놀라웠던 것은 Time지가 수용자 063에게 어떠한 심리적 방법이 사용되어 그가 어떤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는지에만 초점을 맞추었을 뿐 정작 미국에서 그러한 일이 자행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물론 관타나모 기지에서의 인권침해에 대해 비판이 있다는 내용도 있었으나 그것은 두세 단락에 불과했다.

미국은 최강대국이고 사회, 문화적으로도 선진국으로서 우리가 배울 점이 많은 나라다. 그러나 요즘 미국의 행보를 보면, '저건 좀 아니다' 싶을 정도로 반역사적인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미국의 절대적 영향력 하에 있고 - 북한과의 대치 상황에서 주한 미군의 존재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 거기에 우리나라가 처신하는 데 있어 딜레마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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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기부기 2005-06-29 0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정말 길다. 읽을 수 없어. ㅜㅜ

외로운 발바닥 2005-12-29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읽어주~~
 
 전출처 : 쿠자누스 > '사고 착오' 또는 '사고의 게으름'
메가테러리즘과 미국의 세계질서전쟁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100
구춘권 지음 / 책세상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저자에 따르면 <9.11>과 같은 <메가테러>란 <충격과 공포>를 극대화하여

미국 사회 내부에서 미국 정부의 패권 전략 수정을 요구하는

압력이 일어나는 것을 노린다고 한다.

정말 그런 걸까 ?

 

부시 정부는 플로리다 주의 부정선거를 통해

더우기 미국 정치사상 보기 드문 대법원 판결에서 한표 차이로 대통령이 되었기에

치명적인 정통성 위기를 안고 있었다.

 

게다가  냉전이 끝난 후 세계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는 미국경제의 호황이

한갓 분식회계로 치장한 거품경제로 드러나는 파국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바로 그때  <9.11>은  부시를 한순간에 미국의 안보를 책임지는 지도자로 돌변시겼다. 

그는 유례없는 지지율을 만끽하며 두 차례에 걸친, 아무 근거도 없는 침략 전쟁을

자행하고는 지난 해 또 다시 의혹에 쌓인 선거를 통해 재선에 성공하기에 이르렀고 

 ( http://www.peacemaking.co.kr/news/news/view.php?papercode=PEACE&newsno=1085&pubno= )

 

절박했던 미국 경제의 구조 개혁은 <국가 비상사태 >에 휩쓸려  실종되었다.   

 

<9.11>은 미국의 패권 전략 수정을 강요하는 압력이 되기는 커녕

부시 정부를 정통성 위기에서 구출하고 미국의 고질적인 정경 유착과 권력 남용에

면죄부까지 던져 주었다.  

 

<9.11> 이후에 미국 밖에서 벌어진, <알카에다>가 꾸몄다고 알려진 테러도 마찬가지다.

아랍권에 대한 반감을 조장하고 이라크 파병에 대한 동맹국(영국, 호주, 한국, 일본 등등)의

지지 여론이 일어나는 데 한 몫을 했다.


저자의 분석이 현실에 어긋나는 이유는 무얼까 ?

 

저자는 <9.11>같은 사건을 벌일 능력이 있는 반미 테러조직이 실재 존재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렇게 믿다 보니 ' 이 사건은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가'라고 묻고 범인을 추적하는

극히 상식적인 '수사 절차'를 밟는 대신에

 

'오사마는 왜 그에게 돌아갈 비난을 무릅쓰고 <9.11>을 감행했을까'라고 묻게 되고

여기서 실제 현실과는 무관한 저자의 '희망사항'이 '정답'으로 제시된 것이다. 

     

"<9.11>이 반미 테러조직의 작품'이라는 믿음은 저자로 하여금 

 

 <9.11공식 버전>의 진위를 가리는 정밀한 고증작업에 눈을 감게 만든 대신 

<오사마 빈 라덴 >이 이끄는 '알라바마의 도적들'이 신출귀몰하는 것은   

미국의 수사망에 걸리지 않는 유연한 조직 구조를 갖추었기 때문이라는, 

마치 미국 중앙정보국의 발언을 연상케 하는 해설을 하게 만들었고 급기야    

'국제 정세의 현 시기는 <메가테러>와 미국의 패권 전략이 충돌하는 시기'며

미국이 패권 전략을 포기하지 않으면 반미 테러 역시 지속될 거라는

지극히 피상적인 결론에 이르게 만들었다.   

저자와는 전혀 다른 시각에서 <9.11>을  분석하는 작업은

전세계의 비판적 지식인과  언론인

( http://www.blessedhopebaptists.or.kr/trumpet/terror.mht )

 

그리고 <9.11> 희생자 유가족들 ( http://www.911citizenswatch.org/ )에 의해

사건 직후부터 맹렬히 진행되었다.  

 

그들의 분석에 따르면 (저자가 말하는) <메가테러>가 사실은

 

‘위기에 처한 권력이 그들의 숨겨진 정치 경제적 목적 (Secret Agenda)을

관철하는데 필요한 조건을 만들기 위해 조작하는 심리전의 기술’이다.

 

( 자세한 내용은 http://www.911truth.org :

   http://globalresearch.ca/articles/CHO409D.html ) 

 

여기서 <정치 경제적 목적>이라 함은

 

권력이 처한 매 시기의 조건에 따라 다르겠지만

 

허약한 정통성의 보강, 경제위기의 폭력적 해결, 권력의 재창출,

대외 침략 전쟁 따위를 말한다. 

 

이러한 목적 실현에는 대중의 사고력을 마비시켜 

자발적 지지와 동의, 참여를 유도하거나

대중의 저항력을 무력하게 만드는 사회 심리적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충격과 공포의 극대화>가 달리 필요 하겠는가 ?

 

어떤 권력이든 그것이 한 사회의 소수 과두 세력의 이해를 대변하는 한,

다수의 동의와 지지를 얻기 위한 정치 공학적 기술이 필요한데

 

그 권력이 절대 절명의 위기에 빠지게 되면

그 정치 공학적 기술 또한 대단히 비열하고 잔인해지기 마련이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최근에야 ‘이제는 말할 수 있다’(MBC)나‘

 

그것이 알고 싶다’(SBS)같은 영상매체를 통해서 드러난

 

<육영수 피살 사건>이나 <김현희/KAL 858기 실종 사건>을 예로 들어 보자.

 

사건의 배후에 <국가 속의 국가 권력>이 개입해 있고

 

모든 언론이 권력이 건네주는 공식버전을 받아썼다는 거

 

이젠 상식이 되었다.

 

그런데 이같은 정치공학이 유독 한국에서만 일어난 걸로

착각하는 지식인들이 의외로 많은 듯하다.


시야를 넓혀보면 유럽이나 미국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널려 있다.  

 

예를 들면 지난 60년 대 부터

유력한 정계, 경제계 요인들에 대한 암살 사건. 폭파 사건이 줄을 이었다. 

 

미국의 J.F. 케네디 대통령,

 

이탈리아 기민당 당수 모로,

 

독일 드레스덴 방크 총재 폰토, 

 

도이체 방크 총재 헤어하우젠

( http://peacemaking.co.kr/news_view.php?no=277 )

 

독일 신탁관리청 대표 로베더

 

<정치 테러>의 전형적인 희생자들이다.

 

케네디 암살은  일개 정신불안자의 단독 범죄로

또 유럽에서의 사건은 극렬 좌익 테러단의 범죄로 알려져 있으나 

 

희생자들은 예외 없이 투기 금융자본의  이해를 거스르고 있었고

  

그들이 제거된 후 국제 정세에는 전쟁과 경제 불황이 엄습했다.

 

<9.11>은  사건 현장이 CNN을 통해 전세계에 실황 중계되었다는 점에서 유별나지만

각본의 기본 골격은 앞에 열거한 사건과 큰 차이가 없다.

 

2천 명이 넘는 불특정 다수를 무차별 살상하는 테러를

특정 개인을 제거하는 테러와  같은 유형으로 보는 데에 의문을 갖는 사람들에겐

 

육영수 개인의 피살과 민간 여객기 (KAL 858기) 승객의 무차별 희생이라는 두 사건의

공통점을 보라고 권하고 싶다,

 

네로 황제가 로마를, 히틀러가 국회의사당을 불지르고

정적을 제거한 후 '천년 왕국'의 야욕을 불태우다가 거꾸러진 역사도 떠올려 보면 좋겟다. 

 

많은 지식인들이 <9.11 공식 버전>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제국의 가신'이 아니라면 

 

국제 정치테러의 역사와 그 실체에 대한 인식이 빈약하거나

 

권력과 언론이 유포하는 화두와 가상 현실 (virtual reality)의 이면을

투시하는 감각이 부족해서

 

또는 미국의 정치/금융 권력의 위기구조와 그들의 생존전략에 대한  이해가

철저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다시 <육영수 피살>과 <김현희 사건>을 예로 들면 매 단계 권력이 직면했던

위기와 관련해서만 이 사건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독일에서 공부한 저자가  <9.11공식 버전>을 뒤집는 독일에서의  연구 성과

http://peacemaking.co.kr/news_view.php?no=1348 )나

 

유럽에서 보도된 대단히 중요한 기본 정보를 외면하고 있는 것도 아쉽다.

 

예를 들면 <9.11>을 두 달 앞두고 <오사마 빈라덴>이 두바이 미군 병원에 입원해 있었고

현지 미 중앙정보국 요원 <래리 미첼>의 방문을 받은 후 파키스탄 행 비행기에 올랐다는

보도다.

 

프랑스 신문 <르 피가로>와 프랑스 국영 국제 방송이 현지 외교 정보 소식통으로부터

입수한 이 사실은 러시아 <프라우다>,  독일 <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  

이탈리아 <라 레푸블리카> 등 16개 국의 주요 언론에서 인용 보도했다.  

http://peacemaking.co.kr/news_view.php?no=102 )

 

정치 테러의 본질을 정확히 보는 것은 한 사회의 위기와

국제 정치 동학을 분석하는 사회과학자에겐 외면할 수 없는 과제이지만 

자칫 <사고의 착오>나 <사고의 게으름> 에 빠지면

알게 모르게 권력의 심리전을 대리 수행하는 병사가 될 수도 있다.

                    허 광 (전 시사저널 독일 주재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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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freechal.com/booklover

우연히 이사준비를 하다가 2004년 9월호 주간한국을 읽게 되었고 그 중에 헌책방 동호회를 소개한 글이 있어 간략히 옮겨 본다. 이제껏 나중에 다시 보려고 스크랩 해두거나 한 가지 기사를 보관하기 위해 잡지 전체를 버리지 않고 두기도 했는데 기사 내용을 간단히 옮겨 적고 잡지를 버리기 위해 새로운 방식의 스크랩을 시도해 본다.

기사의 제목은 '발품 팔면 마음이 부자되죠' - 책갈피에 담긴 타인의 열정 엿보며 공유의 즐거움 누려-다.

헌책방...무언가 구수한 추억이 서려있을 것 같고, 책을 읽던 사람들의 손때나 삶의 흔적들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공간일 것 같긴 한데 기사에서 나온 것처럼 요즘에는 워낙 출판 문화가 발달해 있고 알라딘과 같은 인터넷 서점을 통해 책을 싸게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선뜻 찾게되지 않는 공간이 아닐까 싶다.

기사에서 소개하고 있는 헌책방 동호회는  헌책방 다니기를 즐겨하던 김민성씨가 다음에 카페 '숨어있는 책'을 개설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애칭으로 '숨책'이라고도 불려지는 이 공간은 헌책방과 책을 아끼는 사람들에게 점차 알려지면서부터 헌책방 동호회로 성장했다.

아직 숨책에 방문하기 전에 이글을 쓰는 나로서는 그곳에 가면 어떤 정보들이 있을까 자못 궁금하다.

기사에서는 초보들에게 요긴한 '헌책방 땅그림 - 김민성씨가 직접 발품을 팔아가며 그린 헌책방 지도', 헌책방마다의 성격, 가격대 등의 정보를 구할 수 있는 '헌책방 날적이', 헌책 표지 손질법에서부터 책꽂이 만드는 법 등을 알 수 있는 '나의 책 사랑법' 등을 소개하고 있다.

외국어 전용 헌책방으로 "한남동 이슬람 모스크 근처의 '애비스 북누크'와 녹사평역 근처 '포린 북 스토어'"를 추천하는 글이 눈에 띈다.

동호회 회원들에게 헌책을 찾는 것은 단지 저렴하게 많은 책을 사기 위해서 라기보다는 절판돼 버린 책을 혼자만의 보물을 찾는 기분으로 찾아낸다든지 책 한귀퉁이에 쓰여 있는 끄적거림을 통해 타인의 기억을 공유할 수 있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만화매니아 박지수씨는 절판된 로봇물 패러디 만화 '출동!! 먹통 - X'를 복간을 위한 모임을 만들고 작가와의 인터뷰를 추진하는가 하면 400명의 예비독자를 모으며 출판사와 협상을 한 끝에 마침내 복간을 성사시키기도 한 에피소드도 가지고 있다. (참 대단한 열정이다.)

책에 대한 욕심은 있지만 아직까지 새 책의 깨끗함을 좋아하고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썼고 병균이 있을지도 모른다(-0-)는 헌책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선뜻 헌책방에 가게 되지 않는다. 하지만 진정으로 책에 대한 사랑을 키우려면, 그리고 삶에 대한 여유를 느껴보려면 헌책방에 들러 헌책을 뒤적거려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헌책동호회의 회원들처럼 책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책을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게 되어 나만의 풍성한 서재를 가질 날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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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원희룡-시대의 아픔과 역사적 현실을 똑바로 직시해야 한다!

시대의 아픔과 역사적 현실을 똑바로 직시해야 한다! | 체험! 삶의 현장!  2004/12/14 06:42 
 
http://blog.naver.com/wonheeryong/100008517133 
 
원희룡(국회의원) 

먼저, 이미 재판이 끝나고, 이제는 사면복권까지 이루어진 이철우 의원을 놓고
근거도 없이 간첩으로 암약하고 있다고 공격하고 있는
지금의 우리 한나라당의 행동은 도가 지나친 행동입니다.

이철우 의원과 관련한 이번 일들은 과거 재판을 받아, 그에 따른 대가를 치룬 사안입니다.
동시에, 이철우 의원 스스로 현재는 이념이나 생각을 바꿨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불행한 시대상황 속에서 이뤄진 행위에 대해
이념과 사상이 의심스럽다고 말하는 지금의 진실공방은
종교재판에 다름 아니며,
이는 마치 공안검사가 피의자를 취조하는 격입니다.

민의의 전당인 국회를 과거 공안검사의 취조실로 변조시키는
지금의 이런 공방에 국민은 결코 동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
.
이철우 의원 사건은 우리가 껴안고 나아가야 할 시대적 아픔의 한 부분입니다.
굴곡이 심했던 한국 현대사는
건국 당시의 좌우 대립과 산업화 시기의 소외를 거쳐
민주화 시기의 격렬한 반독재 투쟁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대적 아픔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울러, 이런 우리의 질곡의 역사 속에는 소외되고 고통받은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건국시기에 좌우 이념 대립 과정, 산업화 과정, 민주화 과정에서 생긴
시대의 아픔들이 존재하는 것은 우리 역사의 엄연한 현실입니다.
이번 이철우 의원을 둘러싼 공방은
우리 한나라당에게 이같은 시대와 역사의 아픔,
그리고 역사적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라고 말합니다.
.
.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는 시대와 역사의 아픔을 치유해야만 하는 소명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한나라당은 단순한 진실공방에서 벗어나
시대적 아픔을 치유하겠다는 역사적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한나라당은 이런 시대의 아픔과 고통을 이해하고,
온 몸으로 껴안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 한나라당은 대승적 견지에서 시대의 아픔과 고통을 치유하는 과정을
국민 통합의 과정으로 승화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한나라당은 이 과거의 아픔을 치유하는 과정을
우리 역사의 미래의 동력으로 삼는 새로운 리더쉽을 국민 앞에 보여줘야 합니다.
.
.
저는 국내에 주체사상을 소개한 것으로 알려진
“강철 서신” 김영환과 함께 학생운동을 했었습니다.
학생운동 시절 그와 많은 시간을 함께 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당시 그가 주장했던 "수령론" 등의 주체사상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히려 김영환에게
주체사상에 근거한 운동은 옳지 않다고 만류했었습니다.
그때 그랬듯이, 저는 지금도 주체사상에 동의하지 않고 있습니다.

저 역시 반독재민주화 투쟁의 과정에서
주체사상에 경도된 사람들이 일부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이 역사와 삶의 경험 속에서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는 그들의 말을 믿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한때 주체사상에 경도되었지만,
이제는 우리 사회에 기여하기 위한 새로운 선택과 노력을 하고 있는
이들에 대해 우리는 마땅히 포용하는 자세를 취해야 할 것입니다.
.
.
한나라당은 자유민주주의를 제 1의 가치로 삼고 있는 정당입니다.
한나라당은 다양성과 다원성을 인정하고,
서로 다르지만 서로 공존하는 법을 익히는 것이
바로 자유 민주주의적 리더십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이것이야 말로 우리 한나라당이 말하는
"자유 민주주의"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리더쉽임을
우리는 인식해야만 합니다.
 

PS : 이 글은 이철우 의원과 관련한 지금의 공방이 시작된 지난 8일 이후,
9일 있었던 한나라당 최고의원 비공개 회의를 시작으로 수요모임,
어제 있었던 한나라당 비공개 의총에 이르기까지
한나라당내 모든 공식적인 회의 자리에서
제가 그동안 계속적으로 일관되게 발언했던 내용입니다.

그동안 블로그에 아무런 덧글도, 포스트도 올라가지 않았던 점에 대해
많은 이웃분들이 왜 침묵하고 있느냐?
장고의 시간에 빠진 것이냐? 등의 질문들을 해 오셨습니다.

아울러, 이같은 저의 일관된 문제제기 역시
그동안의 당내 회의가 모두 비공개로 열린 관계로
언론에게 제가 이번 사건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것처럼 비춰져
그동안 언론으로부터 침묵하고 있다는 오해를 사기도 했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지금 저의 블로그는
원희룡의 진실한 속마음을 가감없이 적어 놓을 수 있는
저만의 조용한 공간을 가지고 싶었던
저의 애초의 소망과는 달리,
포스트는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덧글 하나 하나까지 언론에 기사화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번 일은 그 사안의 중대성을 비추어 볼 때,
언론에 먼저 이야기하기 보다
당내에서 뭇매를 맞는 한이 있어도,
당내 모든 공식 회의 기구에서 먼저 이야기하고,
우리 스스로의 반성과 변화를 호소하고, 또 촉구하고 싶었습니다..

이같은 이유로 인해 그동안 포스트를 작성하지 못했고,
여러분들의 글에 답변 글을 달아 드리지 못했습니다..
이 점에 대해 이웃들의 양해와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오늘 이렇게 이번 이철우 의원과 관련한 저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은
어제 의총으로 인해 당내 공식적인 회의 기구에서
저의 입장 표명과 문제제기를 충분히 하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당내 공식적인 회의 기구에서
이번 사안에 대한 저의 입장을 충분히 밝혀왔고,
또 충분한 설명과 문제제기를 진행한 이상,
이제는 더이상 언론의 질문을 회피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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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은 원희룡 최고위원을 출당조치한다고 밝혔다.
한나라당의 한 고위 관계자는 "아무리 소장파의 대표격이라 해도 자당에 이런 막말을 한 것은 지나친 해당행위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지도부의 숙의 끝에 원의원을 출당조치키로 결정했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불쌍하다! 한나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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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자누스 2005-04-26 0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 희룡 씨는 지금 무소속 의원인가요 ?

외로운 발바닥 2005-04-26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한나라당 의원으로 알고 있는데, 아닌가요?
하긴 요즘은 뉴스에 잘 안나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