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참 불가사의한 나라다. 세계 유일의 최강대국이고, 남북분단 이후 미국의 지속적인 원조로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데 큰 도움을 받은 우리나라에게는 남북한 대치 상황의 냉전시대를 거치면서 크나큰 은혜를 준 나라라는 인식과 함께 신제국주의적 침략자, 독재권력의 비호자, 자국의 이익을 위해 신자유주의를 강요하는 나라라는 이미지가 혼재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경우 현대사를 논하면서 미국의 영향을 부정할 수 없기에, 냉전시대와 군부독재시대를 겪으면서 미국의 이미지는 위와 같이 극단적으로 나뉘어지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 시대에 크게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그 시대의 이데올로기에 잘 적응, 내지는 교화된 사람 중에는 미국을 '지고의 선' 또는 '민주주의가 살아 숨쉬는 기회의 땅'으로 굳게 믿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그 시대의 어두운 면을 경험한 사람 중에는 미국을 민족 통일을 반대하는 제국주의적 국가로 인식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도 어렸을 때는 미국이란 나라에 대해 꽤 호감을 가졌던 것 같다. 내가 자라나던 환경이 그랬고, 미국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에서 막연히 동질감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았나 싶다. 당연히 나는 한국인이지만 나에게 가장 중요한 두 나라를 꼽으라면 한국에 이어 미국을 꼽았을, 그런 정도의 동질감과 호감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머리가 좀 굵어지고 노암 촘스키의 글을 읽고, 마이클 무어의 영화와 책을 접하면서 조금씩 미국이란 나라가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그렇게 선하고 우리가 지향해야할 사회인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싹트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걸프전도 크게 다를 바가 없었겠지만, 그런 생각을 결정적으로 강화시킨 것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해 석유자원 확보를 노린 전쟁이라는 등 여러가지 비판이 있었고 그에 대해 미국은 이라크에서 후세인의 폭정에 고통받는 이라크인들을 구해내고 민주주의를 정착시킨다는 듣기에도 그럴듯하지도 못한 이유를 내세워 이라크 침공을 감행했고, 결국은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내에 이라크를 점령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해 미국이 내세우는 이유를 그대로 믿는 단세포는 그리 많지 않으리라 믿는다. 후세인의 폭정은 비난받아 마땅하고, 이라크에서 민주주의가 뿌리내리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어떤 나라에 독재자가 있다고 해서 다른 나라가 침공을 해서 무수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어떤 이유로 정당화될 수 있을까? 누가 미국에게 그러한 권력을 주었는가? 물론 국제사회에서는 힘의 논리가 모든 것을 정당화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순수하게 이라크 국민들을 위해서 였다고 할지라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물며 이라크 침공에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경우에야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이라크인들의 삶이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후 어떻게 변했는지 생각해보면 정말로 끔찍하다. 후세인 치하에서의 삶도 결코 행복하진 않았겠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하루가 멀다하고 무차별적인 폭탄테러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모든 사람들이 불안과 공포에 떨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차별적 자살 폭탄 테러를 하는 자들은 미치광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의 동포에 대한 공격을 이해할 수 없지만, 이라크인들의 삶에 근본적인 변화(나쁜 쪽으로의)를 가져온 것은 미국임을 부인할 수 없다.
미국의 이라크침공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명분이 없는 것 같다. 후세인이 가지고 있다던 대량살상무기도 결국은 찾아내지 못했다. 지금까지의 기사를 종합해보면 그것은 이라크 침공을 정당화하기 위한 하나의 작은 구실이었고 그나마도 조작된 것이었다. 결국 조작된 정보라는 것이 밝혀졌지만, 전쟁은 이미 시작되어 이라크는 점령되었고, 정보의 보고와 판단에서 실무자의 실수가 있다고 덮어버리면 그만일 것이다.
2005년 6월 20일자 Time에서는 사실상 법치주의의 사각지대인 관타나모 기지의 수용자에 대한 심문을 다루고 있다. 테러와의 전쟁 이후,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 등지에서 테러리스트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전쟁포로에 준하여 - 그러나 전쟁포로에 대한 제네바 협약은 준수되지 않고 있다 - 감금하고 미국의 안위를 지킨다는 명분아래 온갖 학대와 가혹행위, 비인간적인 심문이 자행되고 있는 곳이다. Time에서는 그 곳의 수용자 063으로 불려지는 Mohammed al-Qahtani를 어떻게 조사관들이 심문하는지, 그리고 그가 어떻게 변화를 일으키는지에 대해 자세히 보도하고 있다. al-Qahtani는 심문받을 것에 대한 교육을 받은 사람이고 조사관들에게도 무척 반항적이었다. 그러나 고도로 연구된 심리적 방법들이 동원되면서 결국은 조사관들에게 굴복하고 만다. 그리고 조사관들이 사용한 방법은 소설 '1984'에나 나올 법한,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하고 정체성을 상실하게 하여 피조사자를 미치광이로 만드는 그런 것이었다. 잠을 안재우고 물을 강제로 수건에 적셔서 먹이는 것은 기본이고 피조사자가 공포심을 느끼는 것을 연구하여, 예컨대 무서운 개를 이용하여 공포심을 조장하는 방법, 911테러 희생자들의 사진을 몸에 붙이게 하고 미국 애국가를 강제로 들려주며, 용변을 통제하여 바지에 그대로 싸게 만든다든지, 이슬람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존엄성을 상실케하는 방법 등 상상하기에도 끔찍한 고문방법들이 소개되었다. 전세계에 민주주의를 퍼뜨리겠다는 미국이 이런 말도 안되는 인권 침해를 자행하고 있는 것도 놀라웠지만 더 놀라웠던 것은 Time지가 수용자 063에게 어떠한 심리적 방법이 사용되어 그가 어떤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는지에만 초점을 맞추었을 뿐 정작 미국에서 그러한 일이 자행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물론 관타나모 기지에서의 인권침해에 대해 비판이 있다는 내용도 있었으나 그것은 두세 단락에 불과했다.
미국은 최강대국이고 사회, 문화적으로도 선진국으로서 우리가 배울 점이 많은 나라다. 그러나 요즘 미국의 행보를 보면, '저건 좀 아니다' 싶을 정도로 반역사적인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미국의 절대적 영향력 하에 있고 - 북한과의 대치 상황에서 주한 미군의 존재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 거기에 우리나라가 처신하는 데 있어 딜레마가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