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폭력의 기억,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들 - 어린 시절의 체벌과 학대가 이후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보고서
앨리스 밀러 지음, 신홍민 옮김 / 양철북 / 2006년 8월
평점 :
임신을 한 뒤로는 가능하면 보지 않으려 하지만 한동안 sbs에서 하는 '긴급출동 sos'라는 프로그램을 자주 보곤 했다. 갖가지 가정폭력을 보여주는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늘 내가 마지막으로 하는생각은 '저 사람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것이었다. 그 생각은 폭력을 당하는 사람이 어린 아이었을 때 더욱 크게 들었다. 폭력과 학대의 기억이 머리 속에 남아있을 텐데, 그 기억을 어찌 잊고 살 수 있을까, 주변의 사람들과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맺고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물론 학대와 폭력에 대한 기억도 무섭긴 하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보다 더욱 중요한 건 몸에 남아있는 학대와 폭력의 흔적이라고 단언한다. 알 수 없는 불안과 두통, 아토피를 포함한 피부 알레르기, 결핵과 각종 암... 이 모든 것이 몸에 남아있는 폭력과 학대의 흔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학대와 폭력에 대해 이토록 참혹한 몸의 고통을 겪는 이유는 성경의 네번째 계율, 즉 '네 부모를 공경하라.'라는 계율에 대한 두려움과 복종 의식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만성불면증에 시달렸던 도스토예프스키, 폐결핵으로 고통받은 카프카, 우울증으로 자살한 버지니아 울프, 평생 천식을 달고 살았던 마르셀 프루스트 등이 어린 시절에 경험한 학대와 폭력 때문에 몸의 고통을 안고 살다가 요절한 사람들이라고 주장한다.
객관적인 통계자료보다는 자신의 경험에 의존하는 서술이라 저자의 주장을 모두 인정하기는 어렵다. 몸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부모이기 때문에 무조건 공경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를 거부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그동안 받아온 교육과 우리 사회의 관습상 모두 동의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녀를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우리나라의 부모들이 새겨들어야 할 내용은 매우 많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바라는 것은 애정어린 관심과 친밀한 소통이지 간섭과 통제, 은밀한 폭력과 학대가 아니라는 것은 상식이지만 사실 제대로 지켜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에서 제대로 된 친밀감을 경험하지 못하고 학대와 폭력을 경험했을 경우 그 경험이 정신적 문제뿐만 아니라 신체적인 질병으로까지 연결될 수 있다는 것과, 어린 시절 결핍을 경험한 아이들은 부모의 학대를 받으면서도 스스로를 파괴하면서까지 부모의 사랑을 받기 위해 집착한다는 주장은 섬뜩하지만 기억해야 하는 교훈이다.
어른다운 어른, 부모다운 부모를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느낌이다. 책을 덮고 나니 과연 내가 어른다운 어른, 부모다운 부모가 될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 뱃속의 내 아가야, 엄마는 과연 엄마로서의 자격이 있는 사람이니? 행여 너의 몸과 정신에 상처를 아로새기는 그런 엄마가 될까봐 두렵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