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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와 관련하여 쓴 글을 모아둔 공간입니다.


안 올려둔 글도 적지 않습니다. 틈틈이 올려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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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칼럼 <만화로 본 세상> 원고를 옮겨둡니다. 이 자리에는 제가 잡은 제목으로 올립니다. 게재본은 '늘' 제목이 바뀝니다(만 이번엔 예외적으로 데스크에서 잡은 제목으로 둡니다. 잘 붙였거든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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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에 대한 ‘규제’는 답이 아니다 - <시티헌터>



 



요즘 만화 세미나를 즐겁게 진행하고 있다. 함께 다양한 만화를 읽고 각 작품의 의미를 새기며 이야기 나누는 자리다. <말과활>을 펴내고 있는 협동조합 가장자리에서 시간과 장소를 내준 덕에 좋은 분들을 만나기도 했거니와, 이 자리에서 나눈 이야기로 글감까지 얻고 있으니 나로서는 이런 호사가 없다.



지난주에는 쉬어갈 겸해서 추억의 만화를 읽는 시간을 가졌는데, 내 나름의 의도는 만화를 통해 우리 각자가 어떤 사람으로 성장해 왔는지를 되새겨 보자는 거였다. 조금 과장하자면 대중문화를 통한 주체화(subjectivation) 과정을 검토해본 셈이다. 나는 이번 기회에 <슬램덩크>와 <시티헌터>를 다시 읽었다. 사실 <슬램덩크>가 너무 재미있어서 <시티헌터>는 첫 두 권밖에는 읽지 못했지만, 고백하자면 그 두 권을 읽는 것마저도 상당히 비위가 거슬렸다. 첫 만남의 강렬한 기억에 기대어 다시 펴들었음에도 이내 눈살을 찌푸렸던 것은 그간 나의 ‘눈’이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시티헌터>(호조 츠카사 작, 1990년 완결)를 처음 만난 건 1990년대 초반, 내가 초등학교 3~4학년이던 무렵이었다. 당시 우리집은 작은 연쇄점을 운영했는데, 실상은 ‘아무거나 상점’에 가까워서 오뎅과 호두과자도 있었고 라면도 조리해서 내놓곤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500원짜리 해적판 만화를 진열해 두고 판매했다는 거다. 손바닥 크기 장정의 해적판 일본 만화 신간이 배달되면 스포츠신문 매대 옆에 비치된 서너 칸짜리 작은 책장에 채워졌다. 단, 내 손에서 하루를 거친 후에. 나는 이 작은 만화방의 첫 독자였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먼저 집어들던 만화가 바로 <시티헌터>였다. 당시만 해도 이름이 ‘우수한’이던 주인공 사에바 료의 매력에 나는 푹 빠져 있었다. 료는 사립탐정이자 악한에 한해 청부살인도 하는 프로 헌터인데, 사실 내게는 그의 뛰어난 실력보다 다른 면이 더 흥미로웠다. 열 살을 갓 넘긴 남자아이가 이해하기엔 낯설었던 료의 ‘밝힘증’이 그것이다. 성에 대한 지식은 고사하고 아예 개념마저도 없던 어린 나에게 료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시각성/접촉성 발기 현상’과 여성을 대하는 ‘거침없는 태도’는 너무나 새로웠다. 당시 우리 또래가 쓰던 말로는 ‘변태’요 지금 말로는 ‘마초’이자 ‘성추행범’에 해당할 료는 어린 내게 만화적 과장을 통해 (왜곡된) ‘남자 어른의 세계’를 가르쳐준 교사였던 셈이다. ‘성’을 부끄럽고 감춰야 할 것으로 배우기 전에 달리 이해할 기회를 <시티헌터> 덕에 얻었다는 점만큼은 쾌거라 하겠다. 하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남성성을 과시하는 장면들을 보는 일이 썩 불쾌했다. 하물며 여성이 대부분인 세미나 자리에서 그 얘기를 추억이랍시고 내놓을 요량으로 다시 읽었으니, 생각과 말을 고르고 다듬는 노력이 필요하기도 했다. 허나 그 덕에 다시 짚어볼 만한 기억의 조각을 몇 점 건질 수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물론 매우 부족한 것이지만) 성적 차이(gender difference)에 대한 배움이다. 성추행이 분명한 료의 행동에 당황하고 화내면서 ‘10t’이라고 적힌 망치로 그를 내리치는 여성 파트너 카미무라 카오리(당시 이름은 ‘사우리’)의 반응을 다시 보자니, 어린 나였다곤 해도 성차를 이해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백지상태의 내가 여전히 성을 터부시하는 시각이 일반적이던 90년대 초 일반 사회의 인식을 접하기에 앞서, 자연스러운 것이면서도 여성에게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남성성을 이해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료의 행동이 만화 속에서는 아무리 유쾌해도 여성에게 해서는 안 될 행동이라는 것 역시 눈치챘을 테고 말이다. 보다 명확한 기억도 있다. <시티헌터>는 여성 인물을 성적 대상으로뿐만 아니라 보호해야 할 존재이자 남성의 불완전한 파트너로도 그렸는데, 이것이 어린 시절의 내가 여성을 대하는 시선과 행동에 선명한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그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참 나이 어린 여동생을 윽박지르기 일쑤에 심지어는 손찌검을 하기도 했던 내가 동생을 ‘보호하고 아끼기’ 시작했던 것이. 엄청 나쁜 놈에서 일반적인 나쁜 놈으로 조금은 성장했다고나 할까.


결이 조금 다른 하나는 료에게서 받은 윤리적 영향이다. 료와 카오리가 버스에서 강도를 퇴치하는 에피소드에서 오래된 기억을 되새길 수 있었다. 그 버스에는 유치원생 아이들도 타고 있었는데, 료와 카오리가 내려야 할 정류장에서 남자 둘이 버스에 오른다. ‘프로’답게 료는 그들이 위험하다는 걸 직감하고 내려야 할 정류장을 지나친다. 결국 강도로 돌변해 승객들을 겁박하고 금품을 갈취하려는 그들을 료와 카오리가 퇴치한다. 후에 카오리가 왜 그냥 내리지 않았냐고 묻자 료가 답한다. “그 귀여운 개구쟁이들을 두고 어떻게 내리냐?” 이 장면은 기억이 생생하다. 어린 내게 정의감이 끓어올랐던 건 전혀 아니다. 그보다는 ‘누군가를 돕기 위해 자신의 일을 잠시 접어두는’ 료의 모습이 ‘멋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멋있으니’ 따라 하고 싶었고 그 후로 그런 식의 이타적 태도를 꽤 오래 견지하며 살았다는 건 자랑은 아니지만 사실이다.


다소 개인적인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건 사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때문이다. 2012년에 일부 웹툰을 ‘폭력성’을 빌미로 청소년 유해매체로 지정하려다 철회한 해프닝을 그사이 잊었는지, 이번에는 온라인 웹툰사이트 레진코믹스의 ‘음란성 콘텐츠’를 규제하겠다고 나섰다. ‘(강압적) 자율규제’로 일단락이 난 것으로 보이지만, 이런 ‘규제적 접근’이 보지 못하는 지점이 무척이나 안타깝다. 방심위의 부적절한 처사에 대해서 여러 방향의 비판이 있어 왔고 대체로 다 적절하지만, 그간 충분히 다뤄지지 않은 논점 하나가 있다. 그걸 짚기 위해 지금껏 재미있는 <슬램덩크> 대신 굳이 ‘폭력적이고 음란한’ <시티헌터>를 놓고 이야기한 거다.



(2012년 독자와 작가가 함께 참여한 노컷툰 릴레이)




요컨대 방심위는 ‘폭력적인/음란한’ 만화의 영향을 과대평가하면서 동시에 과소평가하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폭력성’과 ‘음란성’이 설령 다소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미치는 영향은 그렇게 절대적으로 부정적이지 않다. 작품의 부분적 영향력에 대한 과대평가다. 매체보다 더 실질적인 영향력을 지닌 것은 가족이나 또래집단, 직장 등의 주변 환경이라는 것을 우리는 체험으로 알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폭력성’과 ‘음란성’의 긍정적 영향도 따질 수 있다. 폭력과 외설을 상상 속에서 경유할 때에야 더 적실하게 얻게 되는 성찰이 있다는 것을 방심위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다. 또한 폭력과 외설로 점철된 작품이라 하더라도 그 안에는 다른 영향을 줄 수 있는 장면들이 존재한다. 이렇게 작품의 전체적 영향력에 대한 과소평가를 통해 작품의 다양한 독해 가능성이 몰각된다. 이는 곧 독자에 대한 과소평가이기도 하다.


성인만화 <시티헌터>를 어려서부터 보고 자란 이가 성인이 되어 그 만화를 다시 읽으며 느낀 양가적 감상을 솔직하게 늘어놓은 것은 방심위의 과대평가와 과소평가를 제자리로 돌려놓고 싶어서다. 이런 감상을 나누는 것이 가능하려면 그 만화를 본 경험이 존재해야만 한다. 그러니 ‘타율 규제’든 ‘자율 규제’든 문화에 대한 규제는 답이 아니다. 기실 그간 규제가 침해해온 것은 만화가와 사업자의 ‘표현의 자유’만이 아니다. 독자들이 경험을 바탕으로 토론하며 넘어설 부정성을 규제로 막고, 경험을 바탕으로 토론하며 발견할 긍정성을 규제로 막은 것이 방심위와 같은 기관이 여태껏 해온 일이다. 오랫동안, 그리고 크게는 97년에 그들이 만화를 마녀사냥하면서 독자들의 ‘눈’을 뽑아버렸던 것이 토론 없고 성찰 없는 만화 읽기 문화를 지금까지 이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규제’가 전면에 나설 때 침해되는 것은 독자와 시민사회의 자유다. 독자의 ‘표현물에 대한 감상의 자유’와 시민사회의 ‘표현물에 대한 토론의 자유’, 이 두 자유를 침해하는 규제는 답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자유로운 감상과 토론을 통해 작품과 그 영향을 바라볼 만큼 성장한 ‘눈’을 가진 독자들이 방심위보다 큰 힘을 발휘할 때에 만화가와 사업자의 ‘표현의 자유’도 더 책임 있는 형태가 될 수 있다. 다른 답을 찾고 기대할 권리가 우리들 독자에게 있다.


2015.5.1 송고

2015.5.12 <주간경향> 1125호






  



P.S. 1년 전 글이지만 서재에선 발행도 안했었고 안타깝게도 YES-CUT(25일 현재는 NO-SHIELD)을 외치는 독자들이 등장한 마당이라, 다시 짚어봤습니다. 최근의 맥락과 관련해서는 새 글을 준비 중입니다. <주간경향> 출간 일정상 상황이 어느정도 조용해진 후에나 글이 나오긴 하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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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칼럼 <만화로 본 세상> 원고를 옮겨둡니다. 이 자리에는 제가 잡은 제목으로 올립니다. 게재본은 '늘' 제목이 바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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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랑을 말하는 만화들


최근 한 온라인 서점[아시겠지만, 알라딘입니다]에서 여성, 젠더, 성폭력, 성추행 관련 도서” 50종을 선정해 둔 것을 보았다. 그 중 만화는 몇 권이나 있을까 살펴보니, 딱 세 권이 있었다. 아쉬운 비율이었지만 마침 모두 읽었고 곧 소개하려고 벼르던 책들이었다.



 

첫 책은 <악어 프로젝트: 남자들만 모르는 성폭력과 새로운 페미니즘>(맹슬기 옮김, 푸른지식, 2016)이다. 프랑스 만화가 토마 마티외가 인터넷에서 연재한 만화 중 일부를 묶었다. 프로젝트 이름을 악어로 명명한 것은 이 작품의 가장 도드라진 특징과 관계있다. 만화 속에서 모든 남성이 연녹색 악어로 표현된다. 달리 말해 만화 속에서 인간으로 그려진 건 죄다 여성이다. ‘여자만 인간이고 남자는 인간이 아니라 악어라니!’ 남자들의 불쾌한 반응이 벌써부터 들리는 듯하다. 사실 나도 불쾌했다. ‘왜 남자만 악어로 그린 거야! 그럴듯한 이유가 있는지 끝까지 읽어주겠다!’ 이게 내 속마음이었다. 하지만 다 읽고 나니 작가의 의도는 남자들의 불쾌너머에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니 나처럼 오기를 부리든, 더 그럴싸한 이유를 찾든 끝까지 읽어보길 권한다.




끝까지 읽으며 다다를 수 있었던 불쾌너머에서 나는 공감하기도 했고 부끄럽기도 했다. 질문이 생기기도 했고 다시금 불쾌함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즉각적인 불쾌 너머에서 만나는 불쾌함은 처음의 불쾌와는 꽤나 다른 것이었다. <악어 프로젝트> 속에 그려진 모든 이야기가 실제로 여성이 당한 성폭력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자는 단순히 악어로 그려졌을 뿐이지만, 그림 속의 여자들은 모두 나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불쾌함을 경험했단 걸, 그림으로 그려진 그녀들의 표정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기분 좋게 길을 걷던 한 여성의 얼굴이 길거리 성추행 이후 어떻게 눈물범벅이 되는지를, 무척 절실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를 그렇게 만든 현실이 너무나도 불쾌했다. 그 현실을 주로 남성이 만들었단 것 역시도.




그러니 남자들이야말로 꼭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 이 얘기도 빼놓으면 안 되겠다. 이 책의 일부를 얇게 재편집한 소책자 <일상 성폭력 꼼꼼 대응 가이드북>을 무료 PDF 파일로 다운받을 수 있다. 여기서 소개하는 책들을 구입하면 인쇄된 가이드북을 받을 수 있다. 가이드북도 무척 잘 정리되어 있으니, 책은 누가 사든 여남소노 할 것 없이 나눠 보고 가이드북은 가까운 여성 지인에게 선물해도 좋을 듯하다. 불어로 되어 있긴 하지만, 프로젝트 홈페이지(projetcrocodiles.tumblr.com)에서 책에 실리지 않은 에피소드도 시도해볼만 하다.



   


 

<악어 프로젝트>가 프랑스 젠더 현실을 도발적으로 다루었다면, <당신, 그렇게 까칠해서 직장생활하겠어?>(박희정 지음, 길찾기, 2012)는 한국의 젠더 현실을 성희롱을 키워드로 하여 꼼꼼히 짚어낸 책이다. 4년 전부터 이곳저곳 추천하던 책이건만, 이번에 다시 읽으니 완전히 새로웠다. 작년 무렵부터 문제제기가 불붙기 시작해 올해는 더욱 첨예한 논제가 된 여성혐오와 그것을 둘러싼 갑론을박을 과거를 통해 복습한 기분이랄까. 성희롱 발언을 사과하라는 요구에 왜 내가 사과해야 되지? 나에게도 표현할 자유가 있지 않나?”라 대답하는 남성의 말이 너무나 익숙했다. 또 성희롱 예방교육에 참가한 남성들이 한다는 항의가 요즘 여기저기서 들리는 남성들의 목소리와 어찌나 똑같던지. 아래는 모두 이 책에서 발췌한 대사다.


남자들을 모두 잠재적인 성희롱 가해자로 몰고 있는 거 아닙니까?” / “남자를 너무 죄인 취급하는 것 같아요.” / “난 성희롱을 하지도 않았는데 비난 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 “남자라는 이유로 색안경 끼고 보는 시선은 피해의식 아닌가요?”



 

이런 복습을 통해 젠더 불평등을 드러내는 표현들 그 자체보다는, 뭇 남성들의 한결같은 반응이 훨씬 더 문제란 걸 깊이 자각할 수 있었던 건 당연지사다. 하지만 시간을 거꾸로 달리는 복습만큼이나 개인적으로 의미 있었던 것은, 이 책이 담은 반성희롱 운동의 성과와 최근 여성들의 반여성혐오 실천의 성과를 감히 남성인 나도 나름대로 연결해낼 수 있었다는 점이다. 과거 여성주의 운동이 ‘(직장내) 성희롱을 법정 용어로 명문화하도록 싸우는 등 다져낸 기반 덕에 사회의 현실과 인식이 조금이나마 바뀌었고, 그 바탕 위에서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젊은 여성들의 여러 실천이 더 탄력을 받을 수 있었던 것 아닌가. 데이트폭력 같이 가려져 있던 의제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고, 소라넷을 폐지하고, 강남역 살인사건에 대한 담론의 물꼬를 트는 등 지금 여성들이 살아갈 현실에 대한 문제제기라는 측면에서 이들의 실천은 과거의 실천과 더불어, 다른 방식의 성과로써 분명한 의미가 있다.


<당신, 그렇게 까칠해서 직장생활 하겠어?>의 또 다른 미덕은 직장생활에서 겪는 차별을 성차와 계급 모두의 구조적/사회적/문화적 문제로 인식한다는 데 있다. 복잡한 문제를 단순화하지 않고 얽혀 있는 것들을 잘 분간하여 함께 설명하는 것이다. 정규직 여성보다 비정규직 여성이 당하는 성희롱 피해가 더 다양하고 노골적임을 통계 자료와 함께 짚어낸 것이 한 예다. 좋은 논문 여러 편을 읽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이 진지하다. 그러면서도 실제 에피소드를 풍성하게 삽입하여 쉽게 이해되니, 거의 단점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책이다. 굳이 하나 꼽자면, 젠더 현실의 일부만을 풍자한 제목이 작품의 너른 의의를 담아내기에 역부족이란 점 정도? 어떤 면에선 출간 시점보다 지금에 더 어울리는, 앞으로도 널리 읽혀야 할 책이다.

 



마지막 책은 폴란드 출신 사회주의자 로자 룩셈부르크의 일대기를 그린 만화 <레드 로자>. (케이트 에번스 지음, 박경선 옮김, 산처럼, 2016) 앞선 두 책이 현대 프랑스와 한국의 유사한 젠더 현실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포착했다면, <레드 로자>100년도 더 넘는 과거 유럽의 젠더 현실을 군데군데 담고 있다. 로자에게 숙녀를 기대한 어머니에 대한 묘사나, 여성의 대학 교육이 거의 불가능했던 당시에 대한 서술, 그녀가 죽을 때까지 여성에겐 투표권이 전혀 없던 상황 등이 그렇다. 하지만 젠더 문제가 작품이 집중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 사실 로자는 19세기 중후반을 살아가기에 힘겨울법한 온갖 소수자성을 한 몸에 안은 인물이었다. 다리를 저는 장애인이었고, 당시에는 사라진 나라 폴란드 출신이었다. 게다가 당대 온 유럽에서 질시 당하던 유대인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로자는 독일 사회민주당의 핵심 이론가로 활약했으며 당대의 적대 세력에게는 가장 위험한 인물이었다. 사후 100년이 가까운 지금까지도 지속적으로 읽히는 최고의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로 손꼽힌다. 100년 전 여성에게는 더 어려웠을 현실을, 다른 모든 소수자성을 끌어안은 채로 저처럼 당당히 살아낸 연원이 궁금한 이유다. 짐작에 도움을 줄만한 단서는 이 책 군데군데에서도 발견되고, 34페이지에 이르는 주석을 통해 더 찾아볼 수도 있다.

 




지금까지 소개한 세 만화는 한국 만화 출판 역사를 통틀어도 희귀한 축에 속할, ‘여성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담긴 논픽션들이다. 또 지난한 공부와 생각의 흔적이 가득한 노작이다. 가장 중요한 것 하나를 덧붙이자면, 이 만화들에는 무엇보다 사랑이 담겨 있다. 세 작품은 꾸준히 인간을 신뢰하며 말을 건다. 자기갱신을, 연대를, 가장 정확히는 사랑을 할 수 있는 존재로 인간을 바라본다. 혹 사랑을 말랑말랑하고 따뜻한 것으로 착각한다면, 이 책들에선 조금밖에 발견하지 못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 책들의 사랑이야말로 진짜배기다. 때론 날이 서있고, 눈물을 머금었으며, 매섭고 두렵고 어렵다. 그리고 함께하는 것이다. 사랑이란 한 무대 위에 함께 존재하며 함께 만들어나가는 것이라는 걸 이 세 만화는 좀처럼 잊지 않는다. 그러니 무대의 독점을 포기한 용감한 당신이라면, 이제는 함께 있기 위해 공부해야 할 때다. 이 책들은 분명 좋은 출발이다.





2016.6.16 송고

2016.6.28 <주간경향> 11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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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의 남편을 어떻게 부를까?


홀로 되어 딸 카나와 함께 살고 있는 야이치에게 작고한 남동생의 남편 마이크가 캐나다에서 찾아왔다. 얼마 전 한국에 번역 출간된 <아우의 남편(弟の夫)>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 기본 설정에만도 ‘흔히들 흔치 않다고 여기는’ 많은 것이 담겨 있다. 한부모 가정에 국제결혼과 동성결혼까지, 일본과 한국의 주류 문화가 공유할 ‘정상성’의 규범을 꽤나 벗어나는 설정이다.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독특하고 풍성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이 사려 깊고 모두에게 정중한, 그러면서도 따뜻한 웃음을 자아내는 만화가 독자에게 안겨주는 것은 또 하나의 ‘소수자’ 이야기로만 그치지 않는다. 외려 ‘정상성’에 익숙한 우리에게 되묻는 고민거리가 녹록지 않다. 무엇보다 나로서는 일본어로 탄생한 만화가 한국어로 번역되면서 생겨난 문제들로 인해 ‘우리 언어문화’에 새겨져 있는 확고한 ‘정상성’을 다시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최대한 상세히 풀어보자.

카나에게 마이크는 삼촌(작은아버지, 숙부)의 남편이다. 그럼 카나는 마이크를 어떻게 불러야 할까? 한국어판에서는 마이크가 “저는 카나의 고모부입니다”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나는 이 장면에서 화들짝 놀라 원문을 찾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캐나다인 게이가 자신의 죽은 남편을 여성을 칭하는 말로 부른다니, 너무나 이상했다! 굳이 이렇게 설명할 필요가 있을지조차 의심스럽지만, 여느 이성애자 남자와 마찬가지로 게이도 스스로 남성이라고 생각하는 남자다. 무엇보다 게이가 여성스런 남성이라는 건 너무나 오래 묵은, 매우 잘못된 편견이 아닌가. 아무리 마이크나 이 만화가 일본의 주류 문화에 정중하게 접근하는 방식을 취한다고 해도, 설마 이런 편견까지 수용했을 리가 있을까?





아니나 다를까, 일본어판의 마이크는 스스로를 ‘고모부’가 아니라 ‘아저씨(オジサン·오지상)’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이 명칭은 찬찬히 짚어보아야 한다. 한국어의 ‘아저씨’에서는 그 의미가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지만, 일본어에서 ‘오지상’은 부모의 방계 존속의 남성 배우자를 이르는 말로 여전히 쓰인다. 하지만 한자로는 ‘叔父さん’(숙부=고모부·이모부) 혹은 ‘伯父さん’(백부=고모부·이모부)와 같이 쓰도록 되어 있다. 혹 한자 표기를 하지 않으면 ‘おじさん’과 같이 히라가나로 쓰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마이크의 ‘오지상’은 굳이 외래어를 표기하거나 강조할 때 쓰는 가타카나 ‘オジサン’으로 표기되었다. 의도적으로 ‘이상’하게 표기한 것이다. 한국어판은 이 ‘이상’함을 무시하고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번역어를 채택했다. 결국 더 이상해졌지만.

한국어판의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이상함’은 이뿐만이 아니다. 야이치는 남동생의 남편을 무어라고 부를까? 한국어판에서는 ‘매부’라는 명칭을 차용했다. 표준국어대사전의 풀이대로 “손위 누이나 손아래 누이의 남편을 이르거나 부르는 말”이다. 한국판은 일관되게 야이치마저 남동생을 여자로 칭하는 이로 그려버린 셈이다. 하지만 일본어판은 ‘義弟(의제)’라고 쓰고 ‘おとうと(오또-토·남동생)’라고 독음(요미가나)을 붙여 두었다. 이 역시 의도적으로 ‘이상’한 표기다. 일본어에서 손아래 동서나 처남·시동생·매제를 칭하는 ‘義弟’(의미상 영어의 brother-in-law와 거의 같다)는 ‘보통’은 ‘ぎてい’(기테이)라고 읽기 때문이다. 한편 ‘おとうと’는 남동생을 일컫는 말 ‘弟’의 발음이지만, 넓게는 발음이 다른 ‘義弟’와 이음동의어로도 쓰인다. 그러니 각기 발음과 표기가 서로 자연스럽게 잇닿지 않는 두 단어를 이어서, ‘이상’한 새로운 표현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껏 과도하게 친절한 설명을 불편하게 늘어놓았다는 것을 나도 안다. 누군가에게는 다소 지엽적인 문제에 집착하는 것으로 보일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뭐라고 번역하는 것이 나으냐고 물으며 답답해하는 이도 있을 것 같다. 내게는 답이 없다. 나는 오히려 그 ‘답답함’에 조금 더 머무르고 싶다.

일본 작가 타가메 겐고로의 만화 <아우의 남편>의 한 장면.


<아우의 남편>은 분명 훌륭한 작품이다. 설정이나 스토리 전개, 작화, 섬세한 접근법 등 여러모로 상찬할 것이 많다. 특히 지금껏 지겹도록 천착한 친인척 명칭의 문제와 관련해서 보더라도 그렇다. 일본어의 (착종된) ‘전통’과 가능성 안에서 찾아낸 ‘정답’이 무척이나 현명하다.

하지만 나는 기왕 한국어판으로 나온 <아우의 남편>의 ‘오답’이 일본어판이 주지 못했을 무언가를 주었다고도 생각한다. 만약 내가 일본어판으로 처음 읽었더라면, 가부장제의 명칭 체계 안에서 생경한 그 존재를 ‘이렇게 칭하면 되겠구나’ 하고 감탄하고 넘어갔을 것만 같다. 하지만 제목부터 이상한(왜 ‘아우’일까? 여기에 남동생이라는 의미값만이 있는가?) 한국어판으로 처음 본 덕에 이상함을 더 확실히 지각할 수 있었다. 그 이상함은 번역에 대한 것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이성애자 남성 중심적으로 짜인 말만이 자연스럽게 통용되는 한국어 문화가 내게는 훨씬 더 이상하게 느껴졌다.

번역자와 출판사 편집부가 승인한 그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이상함’은 나처럼 지나치게 민감한 독자에게 문제가 된다. 그 번역표현 속에서 정체성을 왜곡당한 게이와 여성에게는 더 실존적인 문제로서 타격을 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지금의 번역은 수정될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그 문제는 한국어와 문화의 이상함에서 근본적으로 기인한다. 따라서 문제는 왜 우리말에서는 삼촌의 남편을, 동생의 남편을 칭할 말을 찾기가 어려운가, 정도에서 끝나지 않는다. 진짜 문제는 그런 말이 없는 우리말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정상적’으로, ‘자연스럽게’ 여길 수 있었던 데 있다. ‘우리’를 둘러싼 ‘어떤 문화’의 한계를 이상하게 인식하지 않고, 되레 그 문화가 인식하지 못하는 타자를 이상하게 바라봤던 ‘나’와 ‘우리’의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시선이야말로 문제인 것이다.

<아우의 남편>의 어린 카나는 캐나다에서는 동성결혼이 가능하지만 일본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설명에 이렇게 말한다. “이상해. 여기선 되고 저기선 안 된다니, 그런 거 이상해.” 이처럼 탁월한, 미결정된 이상함으로 충만한 카나라면 이렇게도 말하지 않았을까. “이상해. 흔하다고 자연스럽고 흔치 않다고 이상하다니, 그런 거 이상해.” ‘우리’는 그런 이상한 문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살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매번 의식적으로 ‘작은따옴표’를 쳐가며 모든 ‘자연스러운’ 말과 세계를 ‘이상’하게 표시하는 연습부터 해야 할는지도 모른다. 이 모든 일들이 이상하고 답답하고 불편한가? 그것을 ‘소수자’는 늘 경험했다. ‘자연스러운 우리’와 함께 사느라.


2016.5.12 송고

2016.5.24 <주간경향> 1177호



(번역에 대해 꽤나 까칠하게 썼지만, 사실 정말 좋은 작품입니다. 

2권도 읽었는데 갈수록 더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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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치 2016-09-20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책을 읽으면서 의문을 느낀 부분에 대해 매우 명쾌하게 정리해주셨네요. 덕분에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toon_er 2016-09-21 18:22   좋아요 0 | URL
오랜만에 받아보는 살가운 댓글이네요. 감사합니다.^^
 

주간경향 칼럼 <만화로 본 세상> 원고를 옮겨둡니다. 이 자리에는 제가 잡은 제목으로 올립니다. 게재본은 '늘' 제목이 바뀝니다. 이번에는 송고본에 약간 가필을 했습니다.


  

  


오제 아키라, <우리마을 이야기> 1~7, 길찾기, 2012.




국가는 어떻게 버틸 수 있는가. <우리마을 이야기>

 

최근 의학전문대학원 데이트 폭력 사건에 대한 시민 사회의 행동은 매우 고무적이었다. 불씨는 우리들의 앎이었다. 네 시간 동안의 감금 폭행 상황을 담은 녹음과 녹취록이 일부 공개되면서 공중의 분노가 실로 폭발했던 것이다. 피해자 보호에 미온적이던 학교 측은 이어진 사회적 압력에 결국 사건 발생 후 8개월여 만에 가해자 남성의 제적을 결정했다. 우리가 문제를 알고 행동에 나서는 것은 이처럼 큰 힘이 있다.


그런데 눈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면 앎과 행동의 힘이 이렇게 약해 보일 수가 없다. 그 방향에 있는 것은, 국가의 문제다. 국정원의 대선 부정선거 문제도,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여러 문제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알려질 만큼 알려졌음에도 그렇다. 성완종 전 한나라당 의원이 목숨을 바쳐가며 폭로한 집권여당 인사들의 정치자금 수수 문제도 다르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 들어 흔하디흔한 총리 낙마가 생명과 바꾼 폭로에 값할 리 만무한데, 그것이 다였다. 그리고, 백남기 농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1차 민중총궐기에서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뇌출혈로 의식 불명 상태에 계신 그분을. 그분을 그렇게 만든 것이 국가의 공권력임을 우리는 안다. 거센 물대포가 그분과 그분을 구하려 뛰어든 분들을 겨냥해 계속 쏟아졌던 것을 우리는 보았다. 하지만 영상이 그렇게 많이 조회되었고 각계의 성토가 이어졌음에도, 국가는 사과 한마디 없다. 도리어 저항하는 시민사회를 복면 쓴 테러리스트 취급할 뿐이다.


“가장 인간답게 살려고 생각하는 인간이 왜 비인간적으로 대접받는 건가요. 정말 국가 권력이라는 것은 무섭네요. 살아보려는 농부들의 삶을 빼앗고 짓뭉개니까.”


병상의 백남기 농민을 다시금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말이지만, 사실 이 말은 거의 50년 전 일본어로 씌어졌다. 그것도 향년 22세였던 한 청년의 유서에 적힌 말이다. 산노미야 후미오라는 이름의 이 청년은 여러 절차적 문제 속에 강행되었던 신나리타 공항 건설 반대 투쟁 5년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산리즈카 공항 분쇄! 마지막까지 산리즈카에서 살아가 주세요. 모두 잘 있어.” 이런 마지막 말을 남기고 떠난 그를 오제 아키라의 만화 <우리마을 이야기>는 야노하라 준이라는 인물로 되살렸다. 산리즈카 마을의 이야기를 만화 안팎에서 되짚어보자. 이는 국가가 버티는 모양새를 확인하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1966, 산리즈카 마을 사람들은 신나리타 공항이 그 마을에 지어진다는 소식을 TV에서 처음 들었다. 마을에 무언가가 생긴다면 그 마을 사람들과 먼저 상의해야 할 것일진대, TV 뉴스가 덜컥 통보를 해온 거다. 마을은 난리가 났다. 20여년을 고생해가며 가꾸어 겨우 땅을 알게 되고 좋은 작물을 거둘 수 있게 되었는데 그 땅이 활주로가 된다니, 처음엔 모두 반대였다. 그러나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막무가내로 채찍질하고 썩은 당근을 제공하니 어느새 마을 사람 절반 이상이 조건만 좋으면 땅을 내놓는 쪽으로 돌아섰다. 이들 조건파와 공항은 절대 안 된다는 반대파가 서로 반목하니, 한 학급에서도 조건파 집 아이들과 반대파 집 아이들은 서로 말을 하지 않는다. 한 집안 형과 아우가 서로를 헐뜯는다.


벌써 이 시점에 산리즈카 마을은 무너진 것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한줌 남은 마을의 의미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무시무시한 국가와 공권력에 대항해 싸운다. 목소리를 높여 문제를 알리고, 그래도 측량과 공사를 강행하는 공단을 막기 위해 몸을 던졌다. 하지만 공권력은 경찰 기동대를 앞세워 대응했다. 곤봉을 휘두르고 방패로 찍는 등, 경찰은 마을 사람들의 이유 있는 저항에 힘으로 응답했다. 결국 공사는 이어졌다. 사람이 올라가 있는 나무 등걸을 톱으로 잘라 넘어트리면서까지 공사는 강행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생명을 걸고 버텼지만 그 생명은 국가에 의해 무시당했다. 결국 신나리타 공항은 1978년에 개항했다. 마을 사람들의 저항이 끝나서였을까? 아니다. 그들은 50년째인 2015년 지금도 싸우고 있다.


왜 이렇게 긴 싸움을 하게 되었던 걸까? <우리마을 이야기>는 이 지난한 싸움의 첫 5년간을 단행본 일곱 권 분량에 담아낸 만화 다큐멘터리다. <나츠코의 술>로 잘 알려진 작가답게 살아보려는 농부들의 삶을 현미경과 망원경과 육안으로 보고 그려낸 이야기와 표현이 매우 탄탄하다. 특히 초등학교 5학년 뎃페이와 그 가족의 시선을 중심으로 여러 사안을 바라보면서도 조건파로 돌아선 마을 주민들, 연대하는 운동권 학생들, 공항공단 직원이나 경찰도 허술하게 그리지 않는다는 점이 나는 무척 뭉클했다. “민주주의란 인간에 대한 예의라는 말로 시작한 작품인 만큼, 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모두 국가의 주인들이란 점을 잊지 않고 예의를 갖춘듯했다. 과격한 진압과 저항을 그리면서도, 경찰기동대의 상처를 치료해주는 시위대나 시위대를 구해주는 공단직원 등도 함께 그렸다. 인간이란 이런 것이어야 한다는 듯이, 작가의 시선은 지옥도 속에서도 치열하게 인간을 본다. 그리고, 바로 거기에 긴 싸움의 이유를 알려주는 답이 있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다하지 않는, 오히려 폭력으로 살아보려는 농부들의 삶을 빼앗고 짓뭉개는 국가에 예의를 요구하는 것이 그들의 싸움이다. 아직도 여전히 국가가 예의를 다하지 않기에, 그들은 싸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오제 아키라, <우리마을 이야기> 1~7, 길찾기, 2012.

자리가 남아서 오제 아키라의 다른 작품 <나츠코의 술>

(예전 번역제목은 <명가의 술>)도 올려둡니다.




이제 방향을 달리해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다. 산리즈카 사람들이 50년간 싸웠다는 것은 국가가 50년간 버텼다는 말이다. 국가는 어떻게 문제를 책임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것일까? 글을 쓰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는 산노미야의 유서를 한국어로 번역해 일본인 선생님께 검토를 부탁했다. 놀랍게도 선생님은 이 유서를 처음 보았다고 했다. 산리즈카 투쟁은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자살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까지는 몰랐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선생님은 산노미야 후미오와 동갑이었고, 그 역시도 학생운동을 했던 이였다. 게다가 당신보다 두 살 위인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를 맞고 쓰러졌던 그 자리에서, 일본인 선생님도 나와 함께 물대포를 맞았었다. 이처럼 깨어있는 시민이라는 말이 조금도 부족하지 않은 그분조차 산노미야 후미오의 죽음을 알지 못했다는 데서 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조금은 찾을 수 있었다. 알려졌다고 생각했던 것조차, 충분히 혹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게 보니 알 것 같았다. 국가는 때림으로써 버티고, 외면함으로써 버틴다. ‘때림으로써 버티기는 국가가 자신의 잘못을 감추려고 저항하는 시민을 오히려 문제 있는 이들로, 테러리스트로 만들어 오히려 그것만 부각하는 왜곡의 방식이다. 우리 가운데 일부는 그것에 속는다. ‘외면함으로써 버티기는 어떤가. 국가는 너무 많은 문제를 책임지지 않는 것을 통해 시민사회의 성원들이 여러 문제를 꼼꼼히 함께 볼 수 없게 만든다. 학생운동을 했던 일본인 선생님도 그가 집중하던 문제에 저항해 싸우느라 산노미야의 죽음을 몰랐던 것 같다고 말했다. 무책임으로 일관하여 시민사회의 힘을 분산시키는 것이다. 국가가 버틸 수 있는 이유 가운데 일부는, 이런 왜곡과 무책임에 있다.

 

민중총궐기는 버티기 위해 때리는 국가에게 민중이라는 시민사회의 이름으로 예의를 요구하는 투쟁이다. 그리고 총궐기, 국가가 버티기 위해 책임지지 않은 많은 문제들에 대해 우리 모두가 다함께 책임을 요구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2차 총궐기는 평화라는 이름의 거대한 병문안으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국가는 그 작은 평화에 만족했을 뿐 시민사회가 요구한 사과는 끝끝내 하지 않았다. 오히려 1차 민중총궐기의 책임을 물어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을 잡아 가뒀을 뿐이다. 국가는 이렇게 왜곡과 무책임 속에 때리고 외면하며 버틴다. 이런 국가의 버팀에 우리는 어떻게 예의를 요구해야 할까? 총궐기는 이 질문의 과정이다. 그러니 우리는 계속해서 궐기하며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아직 국가에게서 받아 마땅한 예의를 얻지 못했다.



2015.12.3 송고

2015.12.15 <주간경향> 1155





*추가: 산노미야 후미오의 유서 전문

 


공항을 이 땅에 가져온 이를 증오한다


(엄마에게)

오랫동안 고생을 끼쳤어요. 내가 잡힐 때마다 여러가지 걱정하고, 분명 큰일이었겠죠. 나는 미안하다고 생각하면서 입에 담지 못했어요. 지금까지 정말 고생했다고 생각해요. 공항 문제 따위가 없었더라면 나도 지금쯤 장가를 들고 착실한 농부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생각할수록 우리 마을에 공항 따위를 가져온 놈이 밉습니다. 정말 엄마에겐 미안합니다. 내가 없어도 결코 힘을 잃지 말고, 동생 히로와 함께 사세요. 항상 말다툼만 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나도 좋은 놈이라구. 엄마, 그럼 건강하고. 나 갈게. 엄마, 꼭 건강해요. 힘 잃지 말고 히로가 있으니까. 히로가 있으니까요.


(아빠)

나 너무 일하지 않고 청행(청년행동대)만 하고, 미안했어. 그래도 청행 없을 때는 착실히 일했다고 생각해요. 나 지금까지 아무것도 아빠와 엄마에게 해준 게 없구나. 걱정만 끼쳐서 미안했어. 어쩔 수 없었어. 공항 따위를 이런 곳에 가지고 왔으니 열심히 살려면 싸울 수밖에 없었어. 그러나 나는 연약해서 싸움에 견디지 못했구나. 인간이란 약하구나. 어떤 책에 씌어 있었지만, 가장 인간답게 살려고 생각하는 인간이 왜 비인간적으로 대접받는 건가요. 정말 국가 권력이라는 것은 무섭네요. 살아보려는 농부들의 삶을 빼앗고 짓뭉개니까.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아까까지 초조했으나 왠지 산뜻한 기분이다. 내가 갈 때는 그 찢어진 청행의 깃발로 감싸줘. 되면 모두가 바래다주고. 나만 벗어나서 미안하다.


산리즈카 공항 분쇄!

마지막까지 산리즈카에서 살아가 주세요.

모두 잘 있어.


   1971년 9월 30일  산노미야 후미오


산노미야 후미오 향년 22세

쇼와 24년(1949년) 2월 18일 생. 68년 4월부터 공항 분쇄 투쟁에 참여해 이후 청년행동대의 중심 활동가로 투쟁에 매달렸다. 2차 강제대집행 직후 10월 1일 오후 4시경 집 뒷산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번역 검토: T 센세. 원문 링크는 아래에 있습니다.)


http://redmole.m78.com/sanrizuka.html

空港をこの地にもってきたものをにく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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