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NC 11호] 주호민 작가 인터뷰 sync_view


[sync_view 주호민]





[sync_view] 인터뷰는 inter-view, 곧 사이에서 보는 것이다질문과 답 사이에서 드러나는 것그것이 인터뷰가 보여주는 사이의 시계(視界)이다. sync는 바로 그 사이에 존재하는 동사다사이에서 연결 짓기작가와 작품과 만화계와 독자그리고 사회를 서로 연동해 함께 보는 것이 [sync_view]가 지향하는 인터뷰의 형식이다.


 

 

 

예전 한 인터뷰에서 주호민 작가 스스로를 모델로 한 캐릭터가 <신화편>에 등장한다는 얘길 접하고서, 녹두생이를 태우고 하늘로 향하는 두루미일 거라 생각했다. 수십만 이상의 독자들을 한국 신화의 세계로 데려간 주호민 작가가 아닌가. 게다가 두루미가 녹두생이가 먹여주는 잉어 없이 날지 못하듯 그 역시 독자들의 서포트가 없었다면 신화의 세계로 데려갈 수 없었을 테니, 딱 들어맞는 은유가 아닌가. 이런 생각이 맞을 거라 자신하며 주호민 작가를 만났다.


  





*[sync_view] 첫 만남이라 인터뷰를 담당한 문er(toon_er)뿐만 아니라 싱크 이기진 편집장과 두 분의 독자가 특별히 자리에 함께 했다. 질문은 대부분 문er가 준비했으며 간간이 독자분과 편집장의 질문이 곁들여졌다. 개개인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문er와 편집장은 ‘sync’, 두 분의 독자는 독자로 표기한다.

 

 

1. <신과 함께> 막전막후

 

sync: <신과 함께> 완결을 축하한다. 독자 분들의 완결 감상으로 인터뷰를 시작해 보자.


독자: 12시 넘어서 잘 이유가 하나 줄었다. (다들 웃음) 마감을 잘 지켜서 그렇게 늦게 자진 않았지만 그래도 아쉽다.

 

sync: 정말 마감을 잘 지켰던 것 같다. 마감 어긴 걸 한 번도 못 본 것 같은데?

 

주호민(이하 주): 몇 시간씩 늦을때도 있었다. 그래도 날짜를 어긴 적은 없다. 늦으면 고료가 깎인다. (다들 웃음)

 

sync: 꾸준히 어기지 않고 올렸으니 깎일 일은 없었겠다. 야후 연재 시절의 전작들 <>이나 <무한동력> 때부터 주목 받았지만, <신과 함께>로 그야말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그 전과 비교하면 고료는 어떤가? <신과 함께> 전과 후 달라진 점이 많을 텐데.

 

: <신과 함께>부터는 작품을 한 타이틀만 연재해도 먹고 살 수 있게 됐다는 게 가장 피부에 와 닿는 변화인 것 같다. <무한동력> 때는 세 작품을 주 4회 연재했다. <> 시즌 2<무한동력>, <스포쓰 뉘우스>(스포츠 토토)까지 했는데, 지금은 <신과 함께>만 해도 그때보다 고료가 더 많아서 먹고살기 좋아졌다.

 

sync: 또 어떤 점이 달라졌나? 그동안 성장한 부분이나 그 와중에 잃어버린 초심이 있다면?

 

: <> 같은 경우는 자전적이다 보니 전체적인 이야기는 딱히 짤 게 없었다. 경험을 소재로 50편 정도로 압축하고 선별하는 작업을 거친 후에, 거의 그대로 그린 거였기 때문에 비교적 쉬운 작업이었다. <무한동력>도 사실 주변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나눈 이야기, 여기저기서 보던 이야기를 관찰을 중심으로 해서 그렸다. 친구들의 모습을 그렸다는 면에서 매우 어려운 작업은 아니었다. 하지만 판타지라고도 할 수 있는 <신과 함께> 같은 경우는 창작적 요소가 훨씬 많이 들어갔다. 그래서 <신과 함께>를 하면서 이야기를 짜내고 (신화를) 재해석하고 하는 작업에서 재미를 많이 느꼈고 또 창작의 어려움에 부닥칠 때면 더 잘하고 싶단 생각도 많이 했다. 그런 면에서 스토리텔링과 스토리 구성, 이야기와 이야기를 긴밀하게 연결하는 요령 같은 점에서 발전을 많이 했다. 그 와중에 잃어버린 초심이 있다면 이제는 돈이 안 들어오면 1픽셀도 못 그리겠다는 거다. (모두 웃음) 가끔 잡지사에서 인터뷰를 하면 4컷 만화를 하나 그려달라, 이런 요청이 들어오는데, 못 그리겠더라. (웃음)




sync: <신과 함께>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보자. 작가로서 저승편-이승편-신화편 어느 편이고 애착이 안 가는 게 있겠냐마는 그 중 가장 공을 많이 들였고, 스스로도 가장 의미있다고 여기는 편은 어느 건가?

 

: 아무래도 저승편이 첫 시즌이기도 했고 가장 완성도도 높았기 때문에 애착이 간다. 사실 저승편 같은 경우는 다시 그만한 재미로 그리기 힘들 것 같단 생각도 들 정도였다. 저승편이 제일 잘 나왔던 것 같다.

 

sync: 동감이다. 그렇게 훌륭한 저승편으로 시작해 이승편-신화편으로 이어지는 구도가 탁월했다고 생각한다. 저승편이 가장 거부감 없이 흥미로웠다면 이승편에서는 그 흥미를 발판으로 하고 새로운 캐릭터들-가택신-을 추가하며 그 매력을 잘 살려 사회적으로 약간 무거운 주제를 잘 소화해 낼 수 있었다. 신화편 또한 독자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한국 신화의 재해석임에도 앞선 두 편의 친근감과 연결성으로 인해 독자들의 공감을 끌어냈다고 생각한다. 이런 반응을 기획 단계부터 예상하고 있었나?

 

: 일부러 순서를 그렇게 짰다. 만약에 신화편부터 시작했더라면 독자들 입장에서는 이게 뭔가 싶었을 테고, 이승편부터 했다면 너무 무겁고 재미가 없어서 후속편에 대한 기대도 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부터 그 순서로 했다.

 

: 완결 후에 신화편 엔딩에 대한 의혹이 있었다. 김자홍 씨의 얼굴이 강림 아내와 같다는. 세리 작가의 축전도 하나 있었는데. 물론 강림 아내 얼굴은 맥거핀 같은 거였다고 이해된다. 하지만 <신과 함께> 속에서 숨겨졌던 관계가 드러나는 부분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착각이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저승편의 내복할머니가 이승편 동현이 할머니라거나, 용역 알바 뛴 학생의 작은 할아버지가 동현이 할아버지라거나. 동현이가 또 문왕신 녹두생이고 조왕신의 아들인 등등. 이런 관계의 숨김과 드러냄을 통해 일어날 수 있는 효과들이 있다. 재미도 있지만, 이를테면 우리는 모두 이어져있다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효과 같은.

 

: 연결되게 만든 경우가 많다. 사실 신화편의 원전이 되는 여섯 개의 신화가 원래는 전혀 상관없는 각각의 이야기다. 거기에 조금씩 연결고리를 넣어서 하나로 관통이 되는 이야기를 만들었다. 과양생이 경우도 차사 본풀이에만 나오는 인물인데 할락궁이가 나오는 이본 본풀이 마지막 생존자로 과양생이를 넣어서 연결을 했다. 과양생이가 그렇게 사람을 많이 죽이는 이유가 필요했다. 어떤 트라우마가 있지 않을까. 그래서 가족이 몰살당하는 그런 식으로 연결을 시켜봤다. 이렇게 연결을 많이 시키니까 독자들이 이것도 떡밥이 아닐까 저것도 떡밥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을 하더라.(웃음)

 

sync: 게다가 창조한 캐릭터들이 아주 매력적이어서 독자들이 더 연결 지어 보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마치 팬픽(fan fiction)이 매력적인 캐릭터에서부터 출발해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처럼. 스스로 창조한 캐릭터 중에 가장 애착 가는 캐릭터가 혹시 있나?

 

: 이야기 전체에서 적절하게 배치하는 데 신경을 썼기 때문에 하나를 꼽을 수는 없다. 다만 싸인할 때 그리는 캐릭터는 따로 있다. 주로 진기한 변호사나, 특히 여성 팬 분들은 해원맥을 그려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차사전 이후로 해원맥의 인기가 늘었다.

 

sync: (독자에게) 혹시 좋아하는 캐릭터가 있나?

 

독자: 캐릭터보다는 전체적인 사회적 메시지에 관심이 많다. 영화가 <신과 함께>의 메시지를 얼마나 잘 담아낼까 기대가 된다. 혹시 애니로도 준비 중인지 궁금하다.

 

: 애니는 제의가 몇 번 왔지만 잘 안됐다. 어린이 용 아니면 투자가 많지 않아서다. 일본판 리메이크와 영화, 그리고 드라마가 진행되고 있고 뮤지컬 쪽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sync: 일본으로 진출할 때 리메이크 된 건 왜 그런가? 직접 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 나도 처음엔 의아했는데 잡지를 보니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영 간간 ヤングガンガン YOUNG GANGAN>이라고 20대 남성이 타겟인 청년지인데 타겟이 명확한 잡지는 선호하는 그림체가 있더라. 모닝 같은 잡지는 그림체가 다양한 편인데 청년지의 경우는 나쁘게 말하면 스무 작품이 한 사람이 그린 것 같을 만큼 그림체 비슷하다. (모두 웃음) 대부분 샤프한 펜선으로 그린 세련된 그림들이라 그 사이에 내 그림이 들어가면 위화감이 느껴질 정도다.



 

 



초심을 잃어버린주호민 작가가 돈이 안 들어오면 1픽셀도 못 그리겠다고 말할 때 그 솔직함에 웃음이 터지지만, 동시에 막막과 황우양(성주신)의 상황이 떠오른다. 재능이 있는 사람은 때로 재능기부를 강요당한다. 진보적이라 할 수 있는 매체나 단체들마저도 흔히 저지르는 실수가 바로 이것이다. 그들의 절박한 마음을 모르지는 않으나, 정당한 보수가 없다면 청하는 쪽이나 당하는 쪽이나 민망한 일이다. 그렇지만 정말 필요한 일, 내 재능이 쓰일만한 가치가 있는 일에는 결국 진짜 열정이 황우양에게서처럼 일어나기도 한다. “정말로 좋아하는 일은 왜 하는지 모르게 하고야 말게 되는 거니, 그 일의 정당성과 내재적 가치(참여했을 때 재능기부자가 얻게 될 명예 따위의 반사이익이 아닌)가 충분하다면 뛰어들고야 만다. 주호민도 그렇다. 아니, 그의 만화 전체가 청유에 의한 것이 아닌, 자발적인 재능기부인 것만 같다. 공적 사안에 대한 진보적 입장 혹은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 주는, “가슴이 시키는 일이다. 그는 MB악법 반대 만화로, FTA 반대 만화로, 또 노컷툰 1인 시위로, 강정 구럼비 발파 때는 자연유산 폭파는 탈레반이나 하는 건줄 알았는데라는 트윗으로 공적 사안에 발언해왔다. 공교롭게도 주호민 뿐만 아니라 많은 만화가들이 그렇게 자발적으로 약자에게 힘이 되어주고 있다. [sync_view]의 다음 대화는 만화()와 사회적 참여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만화의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2. 만화가 할 수 있는 것

 

sync: 만화가들의 직간접적인 사회 참여가 이어지고 있다. 지금까지의 현황을 자평하고,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서도 한 마디 부탁한다.

 

: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만화로 표현된 창작물들이 많이 나온 편이다. 만화가들이 현안에 민감한 편이고 만화가 현안을 재빨리 잡아서 표현해 낼 수 있는 순발력 있는 매체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반면, 너무 빠르다 보니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오류가 있는 정보를 포함한다거나 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순발력은 유지하되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좀 더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

 

sync: 이삼십년 전에는 문학 작가들이 이런 비판적 발언을 했다면, 요즘은 젊은 만화가들이 하고 있는 것 같다. 왜 많은 만화가들이 현안에 민감하다고 생각하나?

 

: 만화가들은 세상일에 굉장히 민감한 것 같다. 골방에 박혀서 만화만 그릴 것 같은데 그렇지가 않다. 오히려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것들이 소재가 되기 때문에 잡식성으로 이것저것 관심을 가지는 편이다. 특히 시사적 문제에 민감하고 현실에 천착하는 문제를 그리는 작가인 경우 더 그런 것 같다.


sync: 주호민 작가 본인에게도 해당하는 얘기일 것 같다. 한 인터뷰에서 '관찰'을 통해 뭘 그릴지에 관한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밝힌 적이 있는데, 그렇다면 '주제의식'은 어떻게 얻고 또 '관찰'과는 어떻게 연관시키나? '관찰''주제의식'보다 더 선행한다고 봐야 하는 건가?

 

: 관찰을 통해서 소재를 얻고 그것이 모이다 보면 기획이 되는 것 같다. <무한동력>을 예로 들면 주변 친구들을 관찰하면서 점점 문제의식도 쌓이고 소재를 얻다가 <세상에 이런 일이>에서 무한동력 아저씨를 본 게 결정적으로 기획으로 이어졌다. 나는 이걸 방아쇠라고 하는데, <신과 함께> 이승편 같은 경우도 가택신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가 용산참사가 방아쇠가 된 경우다. 소재와 문제의식을 축적하고 있다가, 현실에서 방아쇠가 당겨지면 만화 기획이 되고 작품으로 나오는 거다.

 

sync: 만화가들의 이런 소수자, 외부자에 대한 편애는 만화가들 자체가 마이너리티의 삶을 경험해왔기 때문이라 보아도 되는지? 데뷔 전까지는 앞날이 막막하고 경제적으로도 힘들지 않나. 이런 경험적 현실에서 그런 시선이 나오는 것 같다.

 

: 만화가가 강자였던 적은 거의 없지 않나. 아마 그러다 보니 약자 쪽에 감정이입이 더 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sync: 작가님이 자연스럽게 사회적 문제를 인식하게 되는 감수성에는 가족이나 환경의 영향도 있을 것 같다. 백기완 선생 같은 분을 어릴 적부터 봐왔다는 얘기도 들었다.

 

: 아버지께서 민중미술 하셔서 그런 분들과 왕래가 좀 있었다. 아버지 지인들로 인한 영향이라기보다는, 아버지 작품들에 사회비판적-풍자적 요소가 많은 편이다. 집에 관련서적도 많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근현대사에 대한 인식이 생겨났던 것 같다.


독자: 정치적 메시지가 웹툰 속에 반영될 때 가끔 불편하다는 댓글이 달리는 경우를 보게 된다. 만화로 선동한다거나 하는 댓글이 달린 걸 본 적이 있다. 아무래도 조심스러울 텐데.

 

: 신경 쓰지 않는다.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가치에 대해서는 만화 속에 넣는 것에 거부감이 없다. 어떤 식으로 표현하느냐의 문제인데, 연출 상으로 그런 정치적 메시지를 말풍선 안에 넣어버리는 건 정말 별로고, 상황을 보여주면서 독자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게 더 이상적인 것 같다. 정치를 넓게 보나, 좁게 보나 하는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사실 모든 행동과 판단에 정치적인 것이 개입하게 된다고 보기 때문에, 메시지를 넣는 것에 대해 걱정하기보다는 촌스럽냐 안 촌스럽냐에 더 신경을 기울이는 편이다.

 

독자: <26>처럼 좀 센 작품을 할 생각은 없나?

 

: 돌직구보다는 은유적으로 푸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sync: 은유적으로 던지는 메시지는 독자의 이해 능력을 필요로 한다. 잘 이해받고 있는 것 같은가?

 

: 엉뚱한 소리를 하거나 이해도 자체가 매우 낮은 분들도 있긴 하다. 작품이 전달하려는 메시지나 풍자적 요소를 캐치하지 못하거나 거부하면서 만화는 만화일 뿐이다. 재미로 봐야 한다라고 말하는 단순한 독자들이 그런 경우라 할 수 있다. 어떤 작품이든 심지어 다큐멘터리라 하더라도 작가의 의도가 들어가지 않은 경우는 없다. 의도와 의중을 의식하면서 봐주는 독자가 아무래도 더 고맙다.

 

독자: 말씀하신 단순한 독자들까지도 볼 수 있는 매체가 바로 만화인 것 같다. 굳이 비교하자면 문학의 독자들보다 만화의 독자들이 더 스펙트럼이 넓고, 또 좀 더 단순한 독자들이 편안하게 볼 수 있는 게 문학보다는 만화이지 않나. 이건 분명 만화의 강점인데, 만화가 단순한 독자와도 성공적인 소통을 이루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안목이 낮은 독자도 그 나름대로 재미를 느낄 요소들을 넣고, 또 그보다 더 많은 걸 볼 수 있는 독자들은 더 큰 재미를 느끼게 만들고 있다. 무한동력 때는 부모님과 같이 살았는데, 당시 한 회 한 회 올리기 전에 어머님께 먼저 보여드렸다. 어머니는 만화문법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는 분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런 어머니가 이해 못하는 부분이 있으면 이해가 되시도록 수정해서 올리곤 했다. 그렇게 좀 더 폭넓은 독자층이 읽고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그리려고 신경을 썼다.

 

: 만화의 매력과 가능성이 바로 그렇게 넓은 독자를 만날 수 있는 부분인 것 같다. 바로 그렇다 보니 또 사회적 영향력이 좋고 나쁜 방향으로 생겨나기도 한다. 최근 방심위가 몇몇 웹툰을 나쁜 만화로 낙인찍기도 했었다. <신과 함께> 같은 이로운 만화가 있는가 하면, 나쁜 만화로 낙인찍히는 만화도 있는 상황에서, 만화의 사회적 영향과 가능성에 대해 좀 더 얘기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 윤태호 작가님이 하신 말씀인데, ‘만화의 사사로움이 바로 그런 부분과 닿아있는 것 같다. 드라마나 영화 등이 많은 자본이 투입되고 혼자서 하는 작업이 아니다 보니 작가의 사사로운 생각이 개입될 여지가 적은 반면에 만화는 만화가가 마음대로 끌어갈 수가 있다. 대신에 망하면 혼자 망하는 거다. (모두 웃음) 이런 면에서 만화가가 할 수 있는 이야기의 스펙트럼이 넓은 것 같다. 한국 만화도 거의 100년이 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 등의 만화에 대한 인식은 좀 낮은 편이긴 하다. 만화 하면 이런 말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만화하면 아이들이나 보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운운. 영화에는 그런 말이 안 붙지 않나. 이런 인식은 앞으로 좋은 만화가 발표되면서 바뀔 거라 생각한다. 지금도 10편이 넘는 작품들이 영화로 이어질 만큼 만화의 가치가 (문화산업 내부에서) 인정받고 있는 상황이고, 일반 독자들의 인식도 많이 열린 것 같다. 예전에는 어른들이 만화 본단 얘기도 잘 안했는데, 요즘은 좋은 웹툰 추천하기도 하고 공유하기도 하는 모습을 많이 본다. 그렇게 독자층도 많이 넓어지고 했으니 가능성도 더 커지지 않겠나 생각한다.





sync: 만화의 앞길에는 평론의 역할도 필요할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나.

 

: 맞다. 웹툰 시장이 커진 것에 비하면 평론가로 활동하시는 분도 손에 꼽는다. 김낙호 씨, 박인하 교수, 서찬휘 씨... 그래서 윤태호 작가님이 그것도 만들어보려 하고 있다. 경기콘텐츠진흥원에서 웹진 같은 전문평론지면을 만든다고 하더라. 겉핥기 식이 아니고 한 번에 만화 하나씩을 들이파는 식으로 뭔가 준비한다고.

 

sync: 윤태호 작가는 정말 바쁘겠다. (웃음) 평론에 관해 주작가의 생각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다.

 

: 독자들이 읽어내지 못하는 부분을 좀 설명해 주는 그런 역할, 그러니까 좋은 만화를 소개하는 역할을 넘어서 안목이 있는 독자만이 찾아낼 수 있는 작가들이 숨겨둔 장치나 코드 등을 평론가들이 해석을 해주는 것도 좋고, 그런 점에서 평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영화잡지들이 감독의 의도나 뭐 심지어 영화제작의 뒷이야기 같은 걸 짚어주는 것처럼 평론이 활발해진다면 독자 입장에서는 보는 눈 - 안목도 높아지게 될 것 같다.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꿈이 없었다면, 해몽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또다시 하지만, 꿈은 해몽 없이는 그저 한 밤에 꾸었던 꿈일 뿐이다. 언젠가는 잊혀지고 말 기억의 파편이다. 꿈은 해몽을 통해 비로소 의미를 찾고, 더 오래 기억된다. 주호민 작가가 신화편을 마치며 후기에서 대별소별전의 한 장면을 해몽해 주자, 독자들은 대별소별전을 되새겼고 대별소별전은 소비되고 말 한낱 이야기가 아닌 꿈같은 이야기가 되었다. 투표로 세상을 바꿀 수 있으리라는 꿈을 담은 이야기. 하지만 작가가 늘 해몽을 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한 작가의 해몽만이 늘 최상은 아닐 수 있다. 오히려 독자가 스스로 찾은 고유한 해몽이 그 독자에게는 더 의미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또 독자들이 스스로 해몽을 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이 평론가에게 요청된다. <신과 함께>와 같은 좋은 꿈이 그냥 소비되어 잊혀지는 만화가 아닌 독자들이 새로이 꾸는 꿈이 될 수 있도록.


 

이와 함께 강조해야 할 것은 만화가들이 계속 꿈을 생산해 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만화가들이 소비되기 좋은, 소위 팔리는만화를 그리는 데 급급하지 않기 위해서는 만화가의 권리가 보호되어야 하며, 만화로 먹고살기가 불가능한 일이 아니어야 한다. [sync_view]의 마지막 대화는 웹툰과 함께 새로운 유통망과 시스템이 생겨나고 있는 만화계에 대한 검토와 전망이다.

 

 


3. 만화가의 권리 지키기 - ‘만화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기 위해

 

sync: 강풀, 윤태호 작가 등과 함께 누룩미디어 소속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호민 작가가 노예계약 1라던데, 누룩미디어가 어떤 곳이고 어떤 지향을 지니고 있는지 등을 설명해 달라.

 

주호민: 20095월에 설립했다. 그 전에도 에이전시가 있었지만 만화가들 등골 빼먹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만화가가 만들면 만화가들 입장을 가장 잘 이해하고 그러니까 가장 좋지 않겠나 해서 강풀, 양영순, 윤태호, 박철권 작가님 등 만화가 4명과 비만화가 2명이 공동투자 해서 만들었다. 주로 하는 일은 저작권 관리, 해외진출 이런 쪽이고 지금은 웅진과 제휴를 맺어서 소속 작가 책은 재미주의에서 내고 있다. 내 경우도 <신과 함께> 영화 판권 등은 누룩이 관리한다. 중국 진출, 이모티콘 같은 캐릭터 상품도 관리해 주고 있다. 앞으로는 기획까지 아우르는 편집부의 역할까지 하는 게 지향점이라면 지향점이다. 하지만 아직은 규모도 있고 전문 인력도 필요해서 지금은 저작권 관리만 하고 있다.

 

sync: 강풀, 윤태호 작가를 비롯해 사회적 의식이 깨어있는 작가들이 눈에 띄는데, 그런 의식도 공유되고 있나?

 

주호민: 정치적 지향을 공유하진 않는다. 다만 만화가의 권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식은 있다. 윤태호 작가님 등 다들 당한 기억이 너무 많아서 후배작가들에게는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만화가뿐만 아니라 출판노동자 전반에 있어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경우가 많아서 다들 모이면 조금이라도 잘 대응할 수 있지 않나 한다.

 

sync: 노동조합은 아니지만 그와 유사한 역할을 하려는 것 같다.

 

: 실제로 윤태호 작가님이 관심이 많아서 그런 조합 혹은 웹툰 협회 같은 걸 만들어 볼 계획이신 걸로 알고 있다.

 

sync: 유사한 예로 카툰부머도 있다. 젊은 웹툰 작가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활동이 다양할 뿐만 아니라 내부 소통의 공간으로 유용해 보인다. 몇 달마다 포럼도 하고. 주작가도 발표를 했는데 어떤 발표였나.

 

: 활동도 많고 참 좋은 그룹이다. 내가 했던 발표는 만화에서 정서를 다루는 방법에 대한 거였다. 만화의 주제나 작가의 생각을 말풍선 속에 그대로 쓰는 건 촌스러운 일이다 정도의 애기를 했다.

 

sync: 앞서도 이야기 했지만 누룩미디어나 카툰부머의 활동도 있고, 웹툰이 이제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정착된 것 같다. 방심위 발 압박에도 힘을 합쳐 잘 대응하는 등 앞으로 웹툰의 행보가 기대된다. 그럼에도 웹툰 산업 내부 종사자로서 느끼는 문제점이나 위기감이 있다면?

 

: 작가들이 포털에서 나오는 고료에 의존하고 있는 현 상황은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포털이 쉽게 없어지지는 않을 것 같지만, 실제로 야후와 파란이 사업을 접거나 축소하면서 웹툰을 더 이상 서비스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네이버나 다음은 그렇게 되지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만화 자체로 수익이 나는 상황이 되어야 하리라 생각한다.

 

*sync 고료와 수익을 구분해서 이해해야 한다웹툰에 대한 포털의 고료는 웹툰으로 인한 독자 유입 및 광고 효과 등에 대한 대가이며만화 자체의 수익은 마치 단행본 인세처럼 작가의 작품 활동 그 자체에 대한 정당한 대가이다.


: 그래서 현재 강풀 작가님을 필두로 해서 완결 웹툰부터 유료화를 조금씩 하고 있다. <무한동력> 같은 경우도 네이버에서 재연재를 하는데, 매주 올라오는 연재분은 무료로 볼 수 있지만 완결된 내용을 한꺼번에 다 보기 위해서는 결제를 하고 전자책처럼 볼 수 있도록 했다. 이런 식으로 단행본으로 출간이 되었거나, 연재가 마무리된 작품에 대해서는 점차 유료화 하는 방향으로 가려 한다.

 

sync: 바람직한 방향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전체 만화가의 10%가 파이 가운데 90%를 가져가는 구조적 문제점이 있다. 예전 인터뷰에서 이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기도 했었는데, 어떤 식으로 해결해 갈 수 있을까?

 

: 최근 네이버 베스트도전 만화를 네이버 앱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이건 좀 문제가 있는 부분인 것 같다. 베스트도전 정도의 작품이라면 다른 창구로 서비스 되는 데 대한 고료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물론 베스트도전에 올라가는 작품에 대한 기준을 좀 더 확실히 하는 등의 조치가 따라가야겠지만, 도전 작가들의 최저생계비라도 보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러니까, 만화를 하려는 사람은 만화 학과까지 해서 점점 늘어나는데 연재처는 제한되어 있고 등용문이 너무 좁다. 상황은 이런데,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윤태호 작가님을 비롯해 고민은 계속 하고 있는데 답을 찾기가 쉽지 않다.

 

sync: 만화가 한 사람 한 사람의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었으면 좋겠다. 두루미도 잉어가 없으면 못 날아가는데 말이다. 두루미 얘기가 나온 김에 신화편에 등장한다던 주호민 작가를 본 딴 캐릭터가 두루미가 아닌지 묻고 싶다. 독자들을 신화의 세계로 데려가는 존재이자, 독자들이 먹여주는 잉어가 필요한 존재 두루미, 아닌가?

 

: 사실 다른 캐릭터인데 그걸로 하자. (웃음) 사실은 할락궁이전의 천년장자 집에서 나오는 광대다. 재미없다고 손 잘리는. 천년장자가 저 재미없는 광대의 손을 잘라라라고 말하고 나를 닮은 광대가 끌려 나가는 장면이 있는데, 은유다. 저 재미없는 만화가의 손을 자르라는.(웃음)

 


 

 

아직 손이 잘리지 않은 광대주호민은, 그만큼 재미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고 있는 작가였다. 저 애처로운 광대를 그린 것은 천년장자와 과양생이 같은 악인에게까지도 재미를 안겨주고 싶다는 작가적 자의식의 소산이 아니었을까. <>, <무한동력>, 그리고 <신과 함께>까지 그가 보여준 이야기들은 그만큼 폭넓은 독자들에게 재미있게 다가갔을 거라 믿고 싶다. 다소 감상적일지는 모르나 그의 웹툰은 문학을 공부하던 문er가 만화와 그 세계를, 그리고 만화를 읽는 독자의 변화를 진지하게 연구해 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들만큼 가치 있는 것이었으므로, 그리 믿고 싶다.





주호민 작가와의 [sync_view]는 다음 작품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마무리되었다. 우리네 사람들의 생애를 아우르는 관///제를 만화로 다루고 싶다는 그는, <무한동력>으로 88만원 세대 청년들의 관례冠禮, <신과 함께>로 죽은 이들을 둘러싼 제례祭禮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다음 작품은 결혼 이야기(혼례婚禮), 친지의 죽음 이후에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상례喪禮)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라 한다. 조금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나, 추후 작품의 재미를 위해 소소한 비밀로 남겨둔다. 잘못 짚었지만 썩 틀리지는 않은 두루미의 다음 날갯짓을, 그리고 재미없음을 두려워하는 광대의 다음 재주넘기를 기대하며, 첫 번째 [sync_view]를 가름한다.








- 만화카페 한잔의 룰루랄라에서.

 

* 인터뷰 사진은 김형욱 님이 수고해 주셨습니다.

인쇄본에 제 실수로 사진 찍은 분을 밝히지 않은 점 이 자리를 빌어 사과드립니다.





주호민 작가의 만화들


  

 

 


신화편, 신과함께 박스 세트는 11월 중순 출간 예정이랍니다. :)

출간되었어요!! 11월 15일까지 예판 중.





전체 박스세트도 일단 등록은 된 것 같은데...  ▼

 

이미지가 붙지 않은 박스세트(판매 예정)

 

펼친 부분 접기 ▲


만약 신과함께에 추천사를 남길 수 있다면 이렇게 남기고픕니다.


주호민의 만화들은 '연대'를 그려낸 만화의 무척 좋은 예다. 특히 <신과 함께> 저승편과 이승편은 '외면하기만 하면 되는 상황'을 외면하지 못하고 뛰어들고 만 신들을 그렸다. 그리고 신화편은 그 신들은 왜 '외면할 수 없고' '연대할 수밖에 없는가'를 그들의 과거를 통해 확인한 셈이다.



[싱크 11호]에 게재된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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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크 SYNC 11호가 드디어 발간되었습니다.


이에, 편집장의 책 소개와 목차를 살짝 옮기며, 이번 호에서 제가 소개한 신간만화와 만화정보(SYNC 만화경] 코너)를 함께 공개합니다.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인문만화교양지 

 

SYNC

제11호

2012년 10월

판형 4×6배판 | 320쪽 | 가격 10,000원

출판사 (주)이미지프레임/길찾기

ISSN 2233-4343 11

주소 경기도 과천시 과천동 513-82

전화 02-3667-2654 / 팩스 02-3667-2655

싱크블로그 http://blog.naver.com/synctoon

이메일 synctoon@naver.com

편집인 이기진

발행인 원종우

 

 

책소개

2012년, 대한민국의 하반기는 대통령 선거라는 거대한 이벤트로 마무리 될 것이다. SYNC는 격월간지의 특성상 적절한 이슈파이팅이 어렵지만, 몇 가지 대선과 맞물려 생각해 볼 수 있는 콘텐츠를 담고 있다. 5.16 군사쿠데타를 다룬 「해빙기」는 그런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 「‘위안부' 리포트2」도 지난 회에 이어서 박정희 정권에 이루어진 한일회담에 대해 고찰하고 있어 관심이 간다.

SYNC 11호에서는 인터뷰 코너가 새로 마련되었다. CRTIC 코너의 필진인 문er가 인터뷰어로 나서 한국의 내로라하는 만화 작가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기획이다. 첫 회인 이번 호에는 얼마 전 ‘신과 함께’를 성공리에 완결한 주 호민 작가와 만났다. 웹툰 연재의 뒷이야기, 작가의 지향과 신념 등에 대해 흥미롭고 솔직 담백한 이야기를 기대해도 좋다.

그리고 또 하나의 신설 코너인 ‘독립만화극장’을 소개한다. 이 기획은 매호 국내외 작가들의 수준 높은 단편 만화들을 한 편식 소개하는 것이다. 잡지만화 시장이 대폭 줄어든 요즘은 제대로 된 단편만화를 만나는 일이 몹시 드문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단편만화야말로 만화의 연출과 감성을 한껏 즐길 수 있는 만화의 백미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코너는 장편이나 옴니버스와는 다른 단편만의 마니악한 재미를 독자들께 선사하게 될 것이다.

 

목차

연재만화A

● 해빙기_탁영호

●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_안토니오 알타리바, 킴

● 굿모닝 예루살렘_기 들릴

● ‘위안부’ 리포트_정경아

● 나이테기행_안승희

● 키워드 역사B화 :당신의 소유물, 노예_오지훈

연재만화B

● 빗장열기-보통시민 오씨의 북한체류기_오영진

● 곰선생의 현대문학 명랑 해제-현진건의 '할머니의 죽음' _글 · 이정호/ 그림 · 김경호

● 보리 서점_박민선, 선명화 :分

칼럼

● 김낙호의 코미데올로기-차별에 대해

● SYNC CRITIC-상상된 살인마가 생산하는 것#2_문er

● 이 만화를 보라 -병맛만화

● SYNC만화경

인터뷰 SYNC View

● 주호민, 광대를 자처하는 시대의 이야기꾼_문er

독립만화극장

● BLUE_손규호







● SYNC만화경



김인성 글, 김빛내리 그림, <두 얼굴의 네이버>(에코포인트)

IT 시대의 고발만화라 할 만한 만화가 등장했다. 블로그와 여러 매체에서 IT 칼럼을 기고하던 작가 인성이 글의 한계를 절감하고 그림을 그리는 내리와 힘을 합해 연재했던 <내리와 인성의 IT 이야기><두 얼굴의 네이버>로 제목을 바꾸어 출간되었다. 네이버 검색 시스템의 부당성을 알리는 내용이다 보니 정보가 중심일 수밖에 없지만, 만화적 재미를 적절히 가미해 흥미롭게 읽힌다. 합리적 의심에 바탕한 문답을 주고받는 내리와 인성의 대화를 통해 독자를 설득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특히 반복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통해 팃포탯 전략을 IT업계의 대안으로 제시한 대목과 마지막 장면은 백미라 할만하다. 만화가 세상을 바꾸는 좋은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는 기대를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그 방식까지도 제안하고 있는 좋은 시도이다.



 


윤태호, <미생>(위즈덤하우스)

웹툰으로 연재되며 만화의 지평을 넓히고 있는 <미생>이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다음 만화속세상에서 현재 60여 회 연재되었는데, 그 댓글들을 살펴보면 기존의 만화독자로 여겨진 10~30대가 아닌 40대 이상의 독자가 남긴 댓글도 적잖게 눈에 띌 정도다. 바둑과 직장 생활을 만화로 벼려낸 솜씨를 감탄하며 보다 보면 윤태호 작가가 가히 거장의 경지에 올랐다는 걸 느끼게 된다. 이번에 출간된 단행본은 2권까지로 33회까지를 담았다. 참고로 회마다 한 수 씩 복기하고 있는 제 1회 응씨배 결승은 총 145수로 결판났다. 하지만 윤태호 작가의 부인이 <미생>을 너무 좋아해서 더 길게 갈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들리니, 응씨배 결승 후에는 또 하나의 대국이 펼쳐질지도 모를 일이다.




박순찬, <나는 99%> (비아북)

박순찬 화백의 풍자만화 <장도리> 모음이다. 경향신문에서 2010년부터 20126월까지 연재한 분량을 정리해 묶으며 관련된 뉴스와 사건을 같이 실어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는 것도 단행본을 구입해야 할 이유다. 박순찬 화백의 짧은 한마디도 곁들여져 있다. 무엇보다 표지만으로도 소장가치가 충분한데, 죽음의 신 오시리스 뒤에 있는 인물과 상징기호가 대한민국 생태를 좌지우지하는 1%를 소름끼치도록 정확히 표현해내고 있다. 책 제목이기도 한 ‘99%’에 대한 설명은 생략해도 좋으리라 생각한다. 일독이 아니라, 필독을 권한다.


(그림 클릭하면 해당 코너로 가는 새 창이 뜹니다.)


한국만화의 보고라 할 만화규장각(http://www.kcomics.net)에는 보물 같은 글과 정보가 즐비하다. 그 중에서도 매우 귀중하고 특별한 코너가 1년 넘게 연재되고 있어, 약간 뒤늦은 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sync 만화경]을 통해 소개한다. <세계 속의 한국만화야사>는 만화규장각 사이트에서 연재되었고 책으로도 출간된 <박기준의 한국만화야사>(부천만화정보센터, 2009)의 후속 칼럼이다. 전작이 역사적 흐름을 따르되 작가와 작품을 중심으로 해 소략한 이야기들을 묶는 구성이었던 데 반해, <세계 속의 한국문화야사>는 시대 별로 중요한 테마를 잡아 조금 더 굵직한 이야기를 엮었다. 특히 한 시대를 세계 만화사와의 영향관계 및 국내외 정세와 연결 지어 살피기 때문에 한국만화의 계보와 부침을 확인하기에 손색이 없다. 한국 만화 1세대인 저자의 경험에 바탕한 만화사 이해에서 후배 만화인들이 얻을 것이 풍성하다. 2주마다 1회씩 연재되고 있으며 최근 이슈에서는 한국전쟁기를 다루었다.




<싱크 11호>로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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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심위 청소년 유해매체 지정 웹툰(23개) 목록과 바로가기(2012.2.29)



네이버 블로그 하던 시절, 2012년 2월 29일 포스팅을 보완-재탕해 [toon-sync]로 살려 봅니다. 


당시 유해매체로 지정 예고받은 일은 작가-독자 등의 멋진 저항 가운데 없던 일로 되었지만, 작품들과 목록은 남았습니다. 원래는 블로그를 옮긴 만큼 백업 용도로 올려 놓기만 하려 했는데, [toon-sync] 발행으로 생각을 바꿨습니다. 이걸 알라딘에서 재탕하는 데는, 이 지정예고 때문에 단행본 출간이 지연된 작품(전설의 주먹)을 포함해 단행본으로 출간된 작품들을 홍보하는 의의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단행본으로 나온 작품들은 대부분 좋은 작품들이기도 하고요. 이 목록 안에 있는 웹툰들 중엔 제가 봐도 좀 아닌(폭력 수위 문제가 아니라 만화의 퀄리티가 수준 이하인) 경우도 없지는 않습니다만, 대부분 대중만화예술로서 의미있는 작품들이라서요. 장르적 재미, 새로운 형식 실험 등의 '의미'들을 직접 보시며 눈으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힌트는 태그)


이하 원래 포스팅 그대로 옮겼고요, 말미에 단행본으로 나온 작품들을 모아두겠습니다. (이 글은 만화교양지 [SYNC]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원글 링크를 남겨둡니다.

(혹 다음 내용 가운데 그림이 제대로 안 뜨면 이 링크를 한번 눌러주면 보일 겁니다.)

http://blog.naver.com/808thirty/110132829173


[toon-sync] 연재물 중 이 목록에 포함된 작품을 다룬 회차 링크.


[SYNC 8호] 만화, 폭력, 사랑. - '나이트런'을 NO CUT해야 하는 이유


[SYNC 10호] ‘상상된 살인마’가 생산하는 것 #1 


그리고 곧 발행할 [SYNC 11호] '상상된 살인마'가 생산하는 것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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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심위 청소년 유해매체 지정 웹툰(23개) 목록과 바로가기(2012.2.29)



최근 방심위(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의해 청소년 유해매체로 지정 예고받은 웹툰 목록입니다.




이 표에서 주목할 점은, 포탈사이트와 작가의 협의에 의해 19세 관람가로 설정되어 19세 이상 유저만 열람할 수 있는 웹툰들이 다수 "청소년 유해매체"로 지정되었다는 겁니다.

표 출처는 이 기사 - “학교 폭력의 책임, 왜 만화ㆍ게임에 돌리냐”(헤럴드경제) http://biz.heraldm.com/common/Detail.jsp?newsMLId=20120228001294

 

 

이런 사태에 삐딱한 문er가 할 수 있는 저항은, 먼저 지정된 웹툰들을 더 열심히 읽어주는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야 '왜' 이 웹툰들을 지정했는지 생각해 볼 수 있을 테고, (방심위는 왜 지정했는지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 지정에 만화예술 내외적 근거를 함께 대며 반박할 수 있을테니까요.

 

그리고 일단 방심위가 지정한 걸 더 많은 독자가 읽게 된다는 것만으로도 방심위를 바보로 만들 수 있을 테니 다같이 한번 읽어보자고요. 으하하.

 

 

고~래~서 이 포스팅에는 위 23개 작품으로 바로 가는 링크를 제공하려 합니다.

 

함께 해요 여러분.

 

 

 

* 네이버 웹툰

 

 전체관람가

 나이트런

(김성민 작가)

 

 

 

 

 

 

 

 

 쎈놈

(박용제 작가)

 

 

 

 

 

 

 

 

미스테리 단편

(여러 작가)

 

 

- 아래에 추가한 링크는 이 중 가장 큰 화제가 되었던 호랑 작가의 '옥수역 귀신'입니다.

 19세 관람가

지금 우리 학교는

(주동근 작가)

 

프로젝트 X

(태발)

 

초록인간

(태발) 

 

살인자 o난감

(꼬마비/노마비)

 

증거

(이승찬 작가) 

의령수

(김우준 작가)

 

몽타주

(단우)

 

악연

(황준호 작가)

 

우월한 하루

(팀겟네임)

 

고향의 꽃

(한)

 

 

 * 자리가 남아서 드리는 말씀 - 개인적으로 전체관람가의 '나이트런'은 옛날 SF만화 오덕들을 하앍대게 했던 '파이브스타 스토리즈'나 '건담 시리즈', '에반게리온' 등에 버금가는 대작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방심위 사태가 본격화되면 서비스 중단 될지 모르니 지금 가서 보시길.

 

 

 

 

* 다음 웹툰

 

 전체관람가

(하주형 작가)

작품보기 종합정보

 

좌우

(김수영 작가) 

작품보기 종합정보

 

전설의 주먹

(이종규 작가)

작품보기 종합정보

 

 

가론피

(박정욱 작가)

작품보기 종합정보

 

 

 더 파이브

(정연식 작가)

 

* 그림 말고 작품보기를 

눌러서 보실 수 있습니다. 

 

 

 

 

* 야후 웹툰

 19세 관람가

 

HELL

(없는 사람)

첫회보기

 

엄마

(현기증)

첫회보기

 

데드 오브 데드

(스토EG)

첫회보기

 

* 그림 말고 첫회보기

눌러서 보실 수 있습니다.

 

* 야후 작품들은
조금 겁나 보이네요.^^;

 

 

 

 

 

파란 웹툰 (파란 서비스 종료로 링크도 사라졌어요. ^^;;)

 

 19세 관람가

하이스쿨 1학년

(배드이리)

하이스쿨 2학년

(배드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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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단행본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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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on_er 2012-10-17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그림이 안 보일 경우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수정하겠습니다.

風流男兒 2012-10-18 09:17   좋아요 0 | URL
네이버웹툰 표는 그림이 안보이고 엑박이 생겨요! ㅎㅎ

toon_er 2012-10-18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감사.ㅋ 네이버가 외부 사이트에서 자기네 그림을 안 보이게 해서 생기는 일입니다. http://blog.naver.com/808thirty/110132829173 이 링크로 갔다 돌아와서 새로고침하면 보일 겁니다. :) 댓글에 둔 링크는 클릭이 안 되어서 본문 안에 링크 추가했어요.

2012-10-23 2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toon_er 2012-10-29 20:27   좋아요 0 | URL
아이고 그 링크 다녀와도 안보이면 이 창을 껏다 켜야 해요. ㅜ.ㅜ 새로고침이 안먹히다니... 엉엉. 그쪽 링크로 보시거나, 아니면 그쪽 링크에 댓글로 여기로 바로 오는 링크를 만들어 둘게요. 불편 끼쳐드려 죄송죄송.
 

만화폭력사랑.

 

1.


이 글을 쓰는 시점에 대해 먼저 밝히는 것이 필요하리라. 2012년 3월 15일 오늘은 한미 FTA가 발효된 날이며제주 해군기지 건설 과정에서 구럼비 바위가 발파된 지 9일째 되는 날이다또 일부 웹툰에 대한 청소년유해매체물 결정 관련 사전 통지 및 의견제출 안내라는 긴 이름의 공문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의해 공지된 지 38일째다재능교육 해고 노동자들이 투쟁을 시작한 지는 1547일째, 4대강 사업이 첫 삽을 뜬지는 857일째이명박 대통령 가카의 임기 종료까지 345일이 남은 현재 굵직굵직한 갈등 중 극히 일부만 모아도 이 정도다. FTA 발효를 맞아 강정을 염려하며 방심위의 웹툰 유해물 지정에 대해 고찰하는 글을 쓰고 있는 나는 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게 사는 건가 싶다문제 뒤에 또 문제해결되지 않은 문제에 득달같이 추가되는 새로운 문제아아하아아...”

 

이처럼 너무 많은 사안 가운데 살며 쓰다 보니 갈피를 잡기 어렵지만 확실한 것 한 가지이 모든 사안의 핵심은 폭력이다이 핵심 단어에 수식어를 붙여보면 다음과 같다공적 폭력국가적 폭력자본의 폭력제도적 폭력제국주의적 폭력조금 더 자세히 대상관계를 밝히면 이렇게도 쓸 수 있다비정규직에 대한 폭력문화예술에 대한 폭력인권에 대한 폭력자연에 대한 폭력지역에 대한 폭력전 국민에 대한 폭력.

 

그런데 이 글의 가장 주요한 사안인 방심위의 유해 웹툰 지정은 무려 폭력 예방을 위한 조치였다그들이 말하는 예방되어야 할 폭력은 학교폭력이다이 합성어를 마주하며 선생님의 학생에 대한 체벌과 구타가 떠오르는 이도 있을 것이나방심위의 이목은 그것을 향해 있지 않다그들에게 문제가 된 것은 학생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폭력이다그리고 23편의 웹툰이그 폭력의 유발자로 지적되었다졸지에 잠재적 폭력 유발자가 되어버린 웹툰 작가들은 이를 웹툰에 대한 폭력으로 보고 집단적으로 반발했다.


<작가 노컷툰 릴레이 중 억수씨>

 

웹툰 작가들만이 아니라 다양한 논자들과 독자들이 그 반발에 함께하고 있다노컷툰 블로그를 중심으로 작가들의 설득력 있는 메시지가 담긴 만화가 연이어 게시되었으며또한 만화를 사랑하는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방심위의 조치에 반박하는 글을 기고하여 만화계에 힘을 보태고 있다이러한 그림과 글을 살펴보면 만화계가 상당히 논리정연하고 체계적으로 이 사태에 대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그도 그럴 것이 이미 만화계는 1997년에 청소년 보호법에 크게 당했던 뼈아픈 과거에서 배운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다행스럽게도 젊은 웹툰 작가들을 포함한 만화계는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을 역량과 힘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그 이후로 방심위는 이렇다 할 액션을 취하지 않고 있다오히려 억눌린 자들의 목소리가 훨씬 큰 판이다.

 

<독자 노컷툰>


방심위를 난감하게 하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학생들의 심성을 보호하여 부모님 마음을 안심시켜보려던 방심위의 행동에 부모님이 안심했는지는 모르겠으나학생들이 제대로 뿔이 난 것만은 확실하다오호 통재라방심위가 학교폭력으로부터 보호하려 한 청소년고교 학생들이 노컷툰 블로그에 방심위의 결정에 반대하는 배너를 달고 있는 것이다.(<독자 노컷툰>) 이처럼 방심위가 집중포화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나까지 말을 보태려니 어르신들이 약간은 불쌍하기까지 하다이 분들은 사실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폭력에서 보호하려는 마음으로 이런 조치를 취한 것일지도 모르지 않는가하여이미 많은 작가와 논자들이 지적한 바 있는 조치 자체의 문제점은 생략하도록 하자. (노컷툰 블로그에 가보면 잘 정리되어 있다.) 나는 되려 그 그러한 조치를 취했던 그 분들의 사랑스러운 마음을 곡해하지 않고 직시하려 한다나는 방심위의 결정이 많은 이들이 지적한 것과 같이 정권 말기나 선거철에 으레 등장하는 어떠한 정치적 술수나 사회적 문제에 대한 희생양 만들기라고 보지 않으려 한다조선일보가 웹툰을 학교 폭력 유발매체로 지목한 데다 동급생들에게 폭력을 당하다 못해 자살한 청소년의 사연이 언론에 회자되어 여론이 들끓는 마당에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 언 발에 오줌을 누셨던’ 게 아니라고 보려 한다. (만약 그런 거였다 해도 이거 웬걸 발이 녹기는커녕 오줌줄기가 그대로 고드름이 되어 언 발 위에 떨어져버린 모양새니 측은하지 않은가.)

 

방심위는정말로 학생들을 보호하려 했을지도 모른다엄청난 후폭풍을 일으킨 그들의 조치는 사랑에서 출발한 행위였을지 모른다그런데만약 그렇다면 사랑의 표현인 이 조치가 그들의 사랑을 완성시키는가를 물어야 할 것이다그리고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조치가 가져올 결과를 상상해 볼 수 있다혹은조치가 없을 때 얻어질 결과를 상상하여 조치로 인해 막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볼 수도 있다사실상 이 두 가지 방법은 초점만 명확히 한다면 동일한 것으로하나를 생각하면 다른 하나가 따라오게 되어 있다모두가 알다시피 초점은 만화 속의 폭력이다더 명확하게는, ‘만화 속의 폭력이 독자에게 미치는 효과이다바로 이것이 청소년들을 심히 사랑하는 방심위가 만화계에 폭력을 휘두르면서까지 막으려 했던 것이므로.

 

 


2.


폭력을 유발하는 웹툰을 금하려는 방심위의 사랑은 웹툰을 포함한 대중매체에 그려진 가상적인 폭력을 접한 청소년 독자가 현실 속에서 폭력을 저지를 공산이 높다는 가설을 전제로 하고 있다사실 이 가설은 꽤나 많은 연구를 통해 검토되었으나 정설로 확정되지는 않은그야말로 가설에 불과하다이와 함께 논의되는 다른 가설이 두 가지 더 있다하나는 대중매체 속의 폭력과 향유자의 폭력성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관계가 없다는 것이며다른 하나는 오히려 가상적 폭력이 향유자의 잠재된 폭력성을 대리 충족하여 현실 속에서는 덜 폭력적으로 만드는 효과를 지닌다는 것이다그러나 필자가 살펴본 바국내에서 좀 더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대중매체의 폭력이 청소년의 폭력에 유의미한 영향을 준다는 가설이다아마도 방심위 분들도 그 연구들을 근거로 하고 있을 듯싶다.

 

그런데 설문을 통한 통계학적 연구가 주종을 이루는 폭력적 매체와 폭력적 행동의 연관성에 관한 논문들을 살펴보면 의문이 가는 점이 한둘이 아니다특히 설문 문항이 유도심문처럼 구성되어 폭력적 영향을 시인하는 답변을 이끌어낸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필자가 확인한 논문들은 주로 TV나 게임의 영향에 관한 것이었는데질문 문항은 대개 다음과 같다. ‘게임을 하면서 게임에서처럼 누군가를 때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던 적이 있다.’ 답변자는 이에 전혀 아니다에서부터 매우 그렇다까지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다.(심지어 아니다는 하나만 주고 그렇다’ 앞에 조금’, ‘매우’ 등을 붙여 구성된 선택지도 있었다.) 답변을 하는 입장에서는 질문에 매일 수밖에 없는 법이다그렇게 통계를 내 보면 당연하게도 게임을 많이 한 집단의 답이 그렇다’ 쪽에 더 많이 분포될 수밖에 없다게임 경험이 많은 만큼 더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며그러다보면 여러 생각 중 하나로 폭력적인 생각도 하지 않겠는가그런데 만약 다음과 같은 질문이었다면 어땠을까이 역시도 게임 경험이 많은 향유자에게서 더 많이 발견되지 않을까? ‘게임을 하면서 게임에서 미션을 수행하듯이 실제로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혹은 게임에서처럼 내 삶의 레벨을 높이고 싶었다.’ 솔직히 말해 나는 둘 다 매우 그렇다인데 말이다.

 

위와 같은 연구가 설문조사였던 데 반해실제 범죄 행위 통계를 통해 폭력적 TV 애니메이션 간의 영향관계를 조사한 예가 있어 소개할까 한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고 난 후이 군사정권은 아이러니하게도 폭력적인 연출이 포함된 TV 애니메이션의 방영을 금지했다. 80년 9월을 기준점으로 그 이전까지 방영되었던 TV 애니메이션 중 요술공주 새리와 같은 작품만 남고 마징가’, ‘그랜다이저’, ‘독수리 오형제’ 등은 볼 수 없게 된 것이다이 정책은 1985년 어간까지 시행되었으며한국에서 TV 애니메이션이 방영된 것은 1970년부터이니 이 시기들에 일어난 청소년 범죄를 대조해보면 그 정책의 유효성을 파악할 수 있다당시에는 DVD는 존재하지도 않았고 비디오(VCR)로 시청할 수 있는 여건도 아니었으니, TV 애니메이션이란 단일 변인의 효과를 검토하기에 상당히 변별력 있는 분석 환경이 조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그런데 이 논문의 결론은 방심위 어른들께는 상당히 의외가 아닐 수 없다경찰청 통계자료를 통해 확인한 바청소년 범죄는 폭력적 애니메이션 금지기에 오히려 증가했다금지 이전 시기의 청소년 범죄 증가추세가 금지 이후의 증가추세와 거의 동일하므로폭력적 애니메이션의 금지가 더 많은 범죄를 불러왔다고 볼 수는 없으나 정책의 효과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결론은 충분히 타당하다세부적으로 볼 때단순 폭행보다 죄질이 높은 상해죄의 비율이 높아진 것도 특기할 만하다.(최성락 외폭력성 애니메이션 금지 정책의 효과에 관한 연구만화애니메이션연구』한국만화애니메이션학회, 2008.)

 

물론 학술적 연구 결과는 제한된 데이터에 의존해 도출된 것이므로전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다하지만 폭력적 TV 애니메이션 금지 정책의 효과에 대한 이러한 분석 결과를 통해 이번 방심위의 조치가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지에 대해 회의적인 마음을 품을 수 있음도 물론이다사랑의 마음으로 폭력유발자’ 웹툰을 금지하려 하셨던 방심위에게는 안타깝지만웹툰의 가상적 폭력과 청소년의 실제 폭력 사이에는 뚜렷한 연결고리를 발견하기 어렵다그럼에도 불구하고주제와 관련한 우리의 탐구는 끝나지 않는다웹툰 속의 폭력은 폭력적 영향만을 주거나 주지 않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오히려 폭력을 그린 웹툰을 통해 폭력성만을 고찰하는 것이야말로 방심위에서 한 발짝도 더 나가지 못한 생각의 소산일 것이다방심위가 폭력을 그리는 웹툰으로부터 청소년들을 보호하게 될 때 벌어질 수 있는 결과는그려진 폭력에 청소년들이 얻게 될 모든 것들로부터의 보호일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물어야 할 질문은, “만화의 폭력은 어떻게 어떤 의미를 만들어내는가이다폭력적 웹툰이 검열당하고 1997년과 같은 자체검열의 역사가 반복되게 되면 바로 그 의미가 사라질 것이므로우리는 그 의미를 확인해야 한다물론 이 질문은 쉽게 대답될 수 있는 성격의 질문이 아니다허나구체적인 작품을 경유할 때에 그 작품에 해당하는 답은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또 그 답은 만화 전체에 던진 동일한 질문에 대한 부분적인 답은 될 수 있을 테니, 한 작품을 통해 물어보자이를 위해 이 글은 (산 말고우주로 간다그리고 방심위의 사랑으로 인해 청소년들이 잃어야 할 어떤 가치가웹툰의 폭력에 있는지 확인해 볼 것이다.

 

 


3.


방심위가 지정 예고한 유해 웹툰 중 하나인 김성민 작가의 나이트런은 확실히 폭력적이다적어도 방심위의 폭력이 피가 낭자하는 잔인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나이트런이야말로 딱 들어맞는 작품이다게다가 포털사이트와 작가의 협의에 의해 18세 이상 구독 가능하게 설정된 다른 작품들과 달리 나이트런은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되어있으니청소년의 폭력성을 고심하는 방심위에게는 안성맞춤의 타겟이었을 것이다. (18세 이상 구독 가능한 웹툰까지도 청소년 유해매체로 지정 예고한 코미디에 대해서는 많은 분들이 성토하고 있으므로 넘어가겠다.)

 

그렇다면지금으로부터 수만 년 후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인간과 괴수의 전쟁을 그린 SF 대서사극 나이트런은 폭력적이므로 유해한가우리는 나이트런에서 폭력적이라는 것과 유해하다는 것 사이에 인과관계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역시나 이런 질문도 답이 안 나오긴 매한가지이므로우리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나이트런의 폭력은 어떻게 어떤 의미를 만들어내는가?” 그리고 이를 조금 더 연장해서, “‘나이트런이 폭력을 통해 만들어내는 의미는 독자들에게 읽힐 가치가 있는가?”까지도 물어보자.

 

지금까지 연재된 나이트런의 분량은 상당한 편이다아마도 이 만화는 일본의 애니메이션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나 1986년부터 시작해 아직도 완결되지 않은 만화 파이브 스타 스토리즈’(나가노 마모루정도로 길어질 듯하다내용과 설정도 이런 걸작들에 뒤지지 않을 만큼 뛰어나다헌데이런 작품들보다 나이트런은 확실히 잔인하다유명한 미드(미국 드라마) ‘스파르타쿠스’ 정도의 피가 튀는데다 죽어나가고 잘려나가는 신체의 수는 그보다 훨씬 많다괴수의 공격에 의해 수억 명의 인간이 몰살당하고 행성 하나가 통째로 죽음의 별이 되고 말았다는 우주 속 인류의 역사가 만화 속에서 그려진다.

 

<그림 1> ⓒ김성민

 

<그림 2-1> ⓒ김성민

 

그러나 한 도시가 파괴당하는 익명의 죽음들을 담은 컷(<그림 1>)보다 독자에게 더 잔인하게 느껴질 것은 구체적인 전투와 죽음의 순간이 묘사된 컷들이다누나를 구하러 달려오던 동생의 팔이 괴수에 의해 잘리는 장면(<그림2-1>)은 생생하게 잔인하다누군가에게는 필요 이상으로 잔인할 수도 있다또 방심위처럼 우려하시는 어른의 눈에는 유해하게까지 보일지 모른다칼로 신체를 베는 모방범죄를 걱정하실런지도 모르겠다내 눈에는 전혀 그럴 리 없어 보이지만이보다 더 잔인한 장면도 널렸다. <그림 3>의 잘려나간 수족들을 보라이는 괴수와 인간의 싸움이 아니라인간과 인간 사이의 싸움을 그린 장면이다이 도륙을 몸소 행한 은 되도록 생명을 앗아가지 않으려 관대하게도 수족만을 벤 것이지만잘려 날아다니는 신체를 보는 것은 여전히 처절하게 잔인하며 불쾌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 잔인함에 압도되어 앞서 우리가 물으려 했던 것을 잊지 말자아니그 압도가 주는 감각에서부터 출발해 물어보자이러한 장면들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이런 폭력을 통해서만 얻게 되는 어떤 의미가 과연 여기에 있는가? <그림 1>과 <그림 2, 3>들의 대비를 통해 이에 답할 수 있다도심의 폭파를 그린 <그림 1>은 분명 다른 그림들보다 더 많은 인명의 살상을 담고 있다우리는 이를 수이 상상할 수 있으나그림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의 죽음의 순간이 조명되지 않은 까닭에 그것을 살갗에 소름이 돋을 만큼 지각할 수는 없다폭파되는 것은 건물이지 죽어나가는 사람이 아닌 것처럼 여겨질 지도 모른다미국과는 물리적 거리가 먼 우리에게, 9.11의 이미지가 테러 당한 무역센터와 솟아오르는 연기로 기억될 뿐사람의 눈물과 절규와 참혹한 주검의 장면으로 기억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반면좀 더 가까운 거리에서 묘사된 폭력 앞에서 우리는 그만큼 가깝게 폭력을 느낀다폭력의 힘을폭력의 인과를 더 실감나게 깨닫는다동생의 팔이 잘리는 비극을 눈앞에서 본 누나의 감정 상태에 공명하게 된다.(<그림 2-2>) 이는 폭력에 대한 분노와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스펙터클이며 생생한 폭력의 이미지다.


<그림 2-2> ⓒ김성민


그림 <2-3> ⓒ김성민


이런 점에서 <그림 2, 3>에 동일하게 채택된 검이라는 무기가 불러일으키는 효과는 더 상세히 설명되어야 한다버튼 하나만 누르면 대량 살상이 가능한 시대에방아쇠만 당기면 한 목숨을 빼앗는 것이 가능한 시대에우리는 이 웹툰을 통해 손가락이 아닌 온 몸으로 행하는 폭력을 눈으로 볼 수 있다원거리의 여러 사람들을 버튼으로 살상하는 것보다주먹으로 칼로 상하게 하는 것이 더 선택하기 어려운 일이다폭력을 가하는 그 순간의 표정이튀는 피가단말마의 비명이빠져나가는 생명이 지각된다온 몸으로 행할 때 폭력은 힘겹다가까운 대상과 주고받는 폭력은 어렵다. ‘이 인간에게 칼을 휘두르며 속으로 하는 생각들은 이를 명백히 드러낸다지키고픈 대상을 구하기 위한 길에서 다른 대상을 해할 수밖에 없는 고통이 을 짓누른다보통 아버지들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베트남전에서, 5.18에 방아쇠를 당겼던 기억과 닿아있는 고통을 표현하기 위한 선택이 이 폭력적 묘사이다. (물론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이 기억을 과는 다른 방식으로 기억하고 있을 테지만.) 더 큰 폭력은 더 큰 사랑이라는 듯이 그려지는 비극이 이 장면에 새겨져 있다덜 잔인하게 묘사되었더라면덜 생생하게 느꼈을 고통의 감각이 여기 칼로 그려진 것이다.



<그림 3> ⓒ김성민

 

따라서, ‘나이트런의 폭력적 장면들은 오히려 사랑을 불러일으킨다폭력으로 잃게 될 것과 폭력이 낳는 잔혹한 경과를 눈으로 확인하며 그 폭력적 상황 자체에 대한 반감을 느끼게 한다그것은 온 인류에 대한핵을 맞아 죽어간 히로시마 사람들에 대한고문당한 민주 열사에 대한내가 지키지 않으면 폭력 상황 속에 놓일지도 모를 내 친구에 대한 사랑의 작용이다. ‘잔인하다는 즉물적 감상을 느끼는 것에서 그치는 독자도 있을 것이나이는 오히려 잔인한 것을 잔인하다는 이유 하나로 배격하는 어르신들의 빗나간 사랑의 교육 때문이다서사와 그림 속에서 잘 표현된 폭력이라면 독자는 그 가상의 폭력에서 의미를 충분히 포착해 낼 수 있다특히 나이트런은 폭력을 통해 비폭력을 꿈꾸는 것으로 충분히 이해될 수 있을 만한 작품이다이렇게 볼 때 모방하기에 너무 잔혹한도저히 모방할 수도 없으며 모방하고 싶지도 않은 폭력은 방심위의 우려와 달리 폭력적으로 무해하며폭력적으로 유의미하다.

 

방심위의 조치가 사랑에서 출발한 것이라 해도이처럼 중요한 의미를 앗아가는 사랑이라면 그것은 청소년들에게 폭력이다이 의미를 그릴 수 없게 될지 모르는 웹툰 작가들에게도 그것은 폭력이다그런 사랑을 거부함으로써만 만날 수 있는 의미가 있으므로그들은 지금싸우고 있는 것이다.

 


 

4.


처음 나열했던 여러 폭력들과 나이트런의 생생한 폭력은 명확한 차이를 지닌다. ‘나이트런이 폭력 상황 속에 있는 자들과 폭력을 가하는 자의 고뇌와 갈등을 표현하고 있는데 반해한미 FTA와 해군기지의 폭력에서는 폭력을 당한 자들의 아픔만이 표현된다여기에 가해자는 은폐되어 있다방심위 역시도 폭력을 가한 것이 아니라 사랑을 행했고 웹툰 작가들은 그 가해자 없는 폭력에 아프다그러나 나이트런의 인물들특히 은 폭력 상황에서 해방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폭력을 저지르면서 자신의 폭력이 가져오는 결과들을 깊이 자각하고 스스로를 정의와는 거리가 먼 나쁜 놈으로 인식한다그것이 사랑과 닿아있는 것일지라도스스로의 폭력을 정당화하지 못하고 괴로워한다하지만 지금 사회의 많은 폭력들특히 국가적 폭력은 국익을 위한다는 사랑의 이름으로자녀들을 보호한다는 사랑의 이름으로 행해진다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있다때리는 자는 스스로 때린다고 생각하지 않고 맞는 자들만 울부짖고 있다이런 문제적 상황 속에서 나는웹툰을 통해 청소년들이 접하게 될 폭력은 전혀 걱정되지 않는다걱정되는 것은 사랑을 내세운 어른들의 폭력이다우리 청소년들이 배울까봐 두려운 그들의 허울 좋은 사랑에나는 지금도 괴롭다.

 

- 제주도 강정에서

 











싱크 8호에 기고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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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미 2012-12-24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골든타임 글 검색하다가 여기까지 왔는데... 만화평론이 이런거군요!

toon_er 2012-12-28 16:28   좋아요 0 | URL
반가워요! :)
이런 게 만화평론의 일종이긴 합니다. 허허허...
 

<신의 물방울>로 보내는 편지


선배!

 

지난번 와인 잘 마셨어요. 맛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나눴던 대화만큼은 또렷하네요. 선배도 기억나시죠? 평사원 때와 대리 때가 다르고, 팀장급이 되니 또 다르더라며 승진 후 새로이 탐닉하고 있는 취미에 대해 흥겹게 얘기했었잖아요. 바로 그 취미 덕에 우린 평소 자주 가던 단골 호프가 아닌 와인 바에 갔고요. 제가 와인을 잘 몰라서 맞장구를 쳐드리진 못했고 그래서 대화가 길게 이어지진 않았지만 선배의 와인 이야기는 상당히 흥미로웠어요. 하지만 진국은 역시 와인 만화 이야기였죠. 둘 다 만화라면 사족을 못 쓰고, 마침 저도 <신의 물방울>을 <목욕의 신>과 대비한 글을 쓰려던 참이었으니까요.

 

사실 지금 쓰고 있는 이 편지도 그 대화의 연장입니다. 그때 <신의 물방울>을 10권 정도밖에 읽지 않은 채로 아이디어만 거칠게 늘어놓았다가 형에게 몇 가지 비판과 질문을 받고서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던 게 영 찝찝했거든요. 이제는 지금껏 나온 30권을 다 읽었고, 그만큼 생각도 많이 진행되었으니 그 찝찝함을 좀 덜어내고 싶네요. 아, 이것저것 해명하고 설명하기 전에 미리 고맙단 말씀 드릴게요. 선배의 비판과 질문 덕에 ‘신의 물방울’을 더 촘촘하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선배가 아니었다면 처음 그렸던 성긴 구도로 읽었을 거예요.

 

선배 말대로 <신의 물방울>은 만만치 않은 만화가 분명해요.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목욕의 신>의 손을 들어주기도 어렵겠어요. 지금 와서야 말이지만 비교는 해볼 수 있어도 굳이 승부를 낼 것까진 없으니 누가 이겼다 졌다는 말하지 않으려 해요. 둘 다 완결도 나지 않았는데 지금까지 나온 분량만 가지고 심판을 하기도 어렵겠고요. 지금도 여전히 저는 <목욕의 신>에 더 큰 애착을 느끼지만, 그렇다곤 해도 <신의 물방울>을 폄하하고 <목욕의 신>을 드높이는 방식으로 제 애착을 표현할 필요는 없겠지요. 양자의 비교를 통해, 또 <신의 물방울>에 대한 비판을 통해 해볼 수 있는 몇 가지 얘기는 그 주제를 고찰하기 위함이지 <목욕의 신>을 상찬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이 편지는 따라서 선배의 비판과 질문에 대한 대답이자, 제가 두 만화를 통해 얘기하고픈 두어 가지 주제에 대한 고찰이 될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전자의 이유로 <신의 물방울>에 집중하게 될 것 같지만요.

 

처음 제가 <신의 물방울>은 상품에 만화적 이미지를 덧입히는 만화적 PPL이지만 <목욕의 신>은 무시당하던 노동 형태에 만화적 이미지를 부여해 노동 자체의 의의를 제고한다고 했을 때 선배는 지적했지요. 상품과 노동이라는 구분부터가 이상하다고. 맞아요. 정말 전적으로 선배 덕에 거칠었던 생각을 수정하고 정돈할 수 있었습니다. 상품과 노동은 바른 구분이 아닙니다. 와인이라는 상품도 노동생산물이고, 목욕관리(때밀이)라는 노동 형태도 달리 말하면 서비스라는 상품이지요. 헌데, 그렇다 해도 <신의 물방울>과 <목욕의 신>이 만화적 이미지를 부여하는 대상과 방식, 그리고 그 효과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는 건 달라지지 않아요. 이건 양자를 대비하며 좀 더 구체적으로 논해야 할 문제라, 오늘은 “만만치 않은” 신의 물방울에 집중해야 할 것 같네요. 그러면 상품/노동이라는 추상적 구분에서 와인과 와인 생산 및 소비로 더 구체적인 구분 하에서 이야기 해 볼 수 있을 테니까요.

 

<신의 물방울>은 30권이 넘어가는 장편인 만큼 그 양상이 단일하거나 균질하지 않습니다. 권별로, 에피소드 별로 차이가 있고 어찌 보면 뒤로 갈수록 진화하는 것도 같습니다. 그래도 <신의 물방울>의 와인에 대한 철학과 그 철학을 관철하는 논리를 단순명료하게 규정한다면 다음처럼 설명할 수 있어요. (이것 역시도 <신의 물방울>이 천박하지만은 않다는 선배의 힌트에 빚을 지고 있습니다.) 전자는 교환가치보다 사용가치의 우위이고 후자는 사용가치=맛의 심미화입니다. 이를테면 이런 식입니다. 1) 샤토 A(15만원)보다 샤토 B(2만원)가 더 높은 ‘가치’를 지닌다. 2) 샤토 A를 맛보았을 때 느껴지는 감동보다 샤토 B의 맛에서 느껴지는 감동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이런 철학과 논리는 일반적인 자본주의 사회가 상품에 의미를 입히는 일반적 방식에 비해 진일보한 형태입니다. 가격이라는 교환가치를 최상이자 유일한 가치기준으로 보며 높은 가격의 제품이 낮은 가격의 제품보다 더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보는, 화폐를 매개로 한 상품의 물신화가 천박하단 건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문제는, 말할 필요가 없을 만큼 쉽게 논박할 수 있는 이 신화를 넘어선 신화를 <신의 물방울>이 제공하고 있다고 해서 그 의의를 인정해 줄 수 있냐는 거예요. 달리 말해, 몇 가지 에피소드에서 벌이고 있는 <신의 물방울>의 싸움은 너무 이기기 쉬운 대상과의 싸움이란 말입니다. 그 싸움이 담고 있는 것은 반자본주의도 아닐뿐더러, 자본주의의 여러 문제 중에서 가장 천박한 것 한 가지에 일정한 수정을 가하는 것일 뿐이에요. 선배가 말한 바 <신의 물방울>의 “만만치 않음”은 사실 이런 것이라 저는 생각해요.

 

와인의 명품인 5대 샤토만을 선호하는 다키스키ⓒ아기 타다시, 오키모토 슈



그러나 저렴하지만 정성들여 만든 와인을 맛본 다키스키는 페가수스를 타고 어린시절의 행복감을 경험하게 된다. 만화 '신의 물방울'은 이처럼 와인의 미적 경험을 만화적 심상풍경으로 표현해 내며, 와인을 예술로 고양시킨다. ⓒ아기 타다시, 오키모토 슈

 

또 비싼 샤토 A의 맛을 넘어서는 싼 샤토 B가 존재한다는 것을 강변하는 <신의 물방울>은 거기서 멈출 뿐 더 나아가지 않아요. 위의 예는 사실 와인의 가격을 결정하는 구조에 대한 질문으로 나아갈 수 있는 좋은 예입니다. 거기서 한 걸음 더 옮기면, 애초에 교환가치로 사물의 가치를 규정하는 현 상황에 대한 문제제기도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신의 물방울>은 비싼 와인과 싼 와인이 존재하는 상황, 즉 교환가치와 가치가 등가가 되는 상황에 대해서는 침묵합니다. “교환가치가 높은 상품이 더 높은 가치를 지닌다”는 사회적 통념을 “일반적으로 교환가치가 높은 상품이 더 높은 가치를 지니지만, 때로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고 수정하는 거죠. 통념에 대한 반례는 제공하지만, 통념에 기댄 채로 수정할 뿐입니다. 따라서 반례가 되는 샤토 B는 사실 샤토 A보다 더 높은 가격을 지니기에 마땅한 것이 됩니다. 곧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하죠.

 

그래도 이런 면에서 <신의 물방울>은 싸지만 좋은(맛있는) 와인을 찾아내는 것으로 합리적인 와인 소비자들에게 일종의 돌파구를 제안합니다. 현실에 존재하는 와인을 만화 속에 등장시키는 <신의 물방울>의 장점으로 인해, 독자는 싸고 맛있는 와인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얻고 활용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1권에 등장했던 샤토 몽-페라(Chareau Mont-Perat) 2001년산은 코스트 퍼포먼스가 뛰어난 와인으로 현실에서 큰 인기를 끌었지요. 그리고 그 결과는, 수요가 늘어난 데 따른 가격 상승이었어요. 싸고 맛있는 와인을 <신의 물방울>이 찾아내지만, 그로 인해 싸고 맛있는 와인은 곧 비싸고 맛있는 와인이 되더란 말이죠. 돌파구는 사실 돌파구가 아니라 또 하나의 막다른 골목이란 말이에요. 결국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최선의 돌파구는 싸고 맛있는 와인을 계속해서 찾아내는 <신의 물방울>의 방식이 아니라, 싸든 비싸든 맛있는 와인을 사서 마실 수 있는 금력을 확보하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가격(교환가치)과 관련해 생산과 유통의 문제가 아니라 소비의 문제에 더 치중하는 면에서, 즉 가격이 결정되는 과정보다 이미 결정된 가격 체계 안에서 현명하게 소비하는 것에 치중하는 면에서 <신의 물방울>은 분명히 아쉽습니다. 하지만, 맛이라는 사용가치와 관련해서는 생산과정을 상당히 부각시키고 있어요. 어떻게 해서 맛있는 와인이 탄생하는가를 “천•지•인”이라는 논리 속에서 구현하고 있으니까요. 선배가 말한 바, <신의 물방울>의 와인 철학입니다. 이로 인해 인간의 노동이 가치를 부여받아요. 天(빈티지: 시간(수확연도), 농작을 위한 기후환경)과 地(테루아르: 토양과 토질, + 포도나무)을 결정하는 자연의 힘 아래서 결국 와인을 만들어내는 마지막 힘인 人(도멘: 와인 생산자, 장인)이 포도와 최종 생산물인 와인의 가치를 매개하고 결정하게 되니까요. 세 요소 중 하나라도 부족하면 좋은 와인이 탄생하지 않지만, 풍년이 아닌 빈티지와 척박한 테루아르에도 불구하고 좋은 와인이 탄생하게 만드는 것은 사람의 노력이란 걸 제1사도와 제2사도에 얽힌 이야기는 보여줍니다. 결국 <신의 물방울>이 담고 있는 것은 자연을 배경으로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생산을 중심으로 할 때 그것은 성실한 노력과 번득이는 감각과 아이디어이고 문화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의 행위는 그렇게 탄생한 와인 고유의 맛으로 열매 맺습니다. 이 모든 것이 노동으로 수렴하지는 않지만, 최종 생산물인 한 병의 와인을 통해 그 생산자를 떠올리게 만든다는 면에서 노동과 노동하는 사람이 소외당하게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만화라는 매개를 통해 생산자와 소비자(독자) 사이를 이어주고 있다는 면은 분명 장점입니다.

 

그런데 이것 역시도 일정한 한계 속에서만 의미가 있습니다. 그 한계는 와인 소비자의 자리에 있어요. 제목 속에 ‘신’이라는 이상화된 타자를 담고 있는 것처럼, <신의 물방울>은 이데아를 전제한 가운데 펼쳐지는 인간의 '신적 고양'의 이야기입니다. 생산자의 이야기에서 그것은 자연과의 변증법적 합일로 완성되지만, 소비자의 이야기에서는 다른 방식이 됩니다. 소비자는 와인을 향유하는 자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단일한 정체성과 향유 능력을 지니고 있지 않아요. 두 주인공만 해도 그렇습니다. 와인 평론가 토미네 잇세가 와인에 대한 접근성이 높을뿐만 아니라 최고 수준의 지식과 교양을 지니고 있는 반면 와인의 세계에 막 발을 들인 평사원 칸자키 시즈쿠는 잇세가 지닌 것들과는 거리가 멉니다. 와인을 소비하는 데 드는 ‘돈’과 오랜 세월 동안 와인을 접한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시즈쿠는 희대의 평론가 칸자키 유타카의 적자로서 어린 시절부터 술의 형태가 아닌 방식으로 와인을 경험하는 훈련을 받아 후각과 미각이 잇세보다도 뛰어납니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문학과 미술에 대한 조예도 남다르죠. 그래서 두 주인공의 와인 향유는 주변 사람들이 감탄하게 만듭니다. 시즈쿠와 잇세의 조력자들도 만만치 않은 향유 능력을 지니고 있지만 말이죠. 이들 모두의 동경과 승부의 대상은 칸자키 유타카입니다. 일본인으로서 세계 와인 시장에까지 영향을 미친, 완성된 평론가로 만화 속에서 와인 향유자의 이데아로 재현됩니다. 만화 속의 소비자들은 유타카(이데아)의 위치에 이를 때에야 신적 생산물인 와인의 참맛을 향유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생산자도 소비자도 소외되지 않는 거죠.

 

따라서, “일반적으로 교환가치가 높은 상품이 더 높은 가치를 지니지만, 때로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는 <신의 물방울>의 수정된 정식을 완성하고 그것을 보편 세계의 변화로 이끄는 것은 ‘유타카에 근접한 소비자’와 ‘유타카의 와인 미학’입니다. 그런 소비자일 때에야 가격과 상관없이 와인의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향유할 수 있으니까요. 이런 구도에서 저는 프리드리히 쉴러의 인간의 미적 교육에 관한 편지를 떠올렸습니다. 쉴러는 이 편지들에서 혁명(프랑스 혁명)으로도 완수하지 못했던 인간 총체성의 완성은 예술을 통한 감성의 고양을 수반할 때에만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그의 이상적 세계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인간이 이루어내는 것이고, 그런 인간은 예술의 교육을 통해 탄생한다는 것이지요. 플라톤에게서 이데아의 2차 모방물이라는 평가를 받던 예술은 쉴러에게서 진리와 본질을 담은 이데아로의 통로로 제고됩니다.

 


와인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가는 '신의 물방울'의 여정이 잘 표현된 장면.

하지만 이러한 화해적 가상은 개인의 의식 안에서만 이루어질 뿐, 세계의 자체의 문제는 외면한다. ⓒ아기 타다시, 오키모토 슈

 

 

만화 <신의 물방울> 속에서 신의 물방울, 즉 와인도 바로 그런 예술 중 하나가 됩니다. 그 예술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는 사람이 될 때, 세계는 더 살만한 곳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신의 물방울>의 세계는 부족하지만 바로 그런 곳처럼 그려집니다. 시즈쿠를 중심으로 한 인물들의 여정은 세계에 존재하는 문제를 와인이라는 예술을 통해 해결하는 과정이니까요. 직장인의 무료한 일상에서부터 부녀갈등, 이혼, 정리해고, 적대적 기업합병, 시한부인생,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까지 여러 고통의 문제들이 시즈쿠 일행이 찾아낸 와인을 통해 해결됩니다. 일상적 문제 상황 가운데 화해를 맛보게 해주는 것이 와인인 셈이지요. 또한 그 과정의 세부는 모두 인간적 유대감을 주축으로 보답 없는 증여(재능기부)의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도를 찾아야 하는 와중에도 짬을 내어 이 아름다운 미션을 완수하고 나면, 사도에 대한 힌트가 서사적 보답의 형태로 주어집니다. <신의 물방울>의 서사의 주축은 이처럼 예술적 인간이 와인이라는 예술을 통해 타자에게 선사하는 화해, 그리고 그 예술적 인간 그 자신의 문제 해결과 발전 과정이라 할 수 있어요.

 

사뭇 아름다운 이 소비자의 서사는, 하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예술적 가상입니다. 와인 소비로 인해 맛보는 행복감과 문제의 해결은, 만화 속에서 가능했던 것처럼 손쉽지 않다는 걸 선배도 아실 겁니다. 이런 해결은 아도르노의 표현에 따르면 “거짓된 축복”입니다. 고통스런 현실에 대한 화해적 태도와 거짓된 위안을 매개하는 예술은 세계를 그대로 내버려둔 채로 작품 안에서만 문제를 해결할 뿐입니다. 이 말은 <신의 물방울> 속에서 인간적 문제를 해결해내는 와인의 힘에 낭만적 기대를 품지 말자는 것도, 와인 따위 마시지 말자는 말도 아닙니다. 오히려 화해적 가상을 재현하는 만화와 그것으로 재현되는 와인이라는 두 개의 신의 물방울을 통해 새로운 사유로 나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단적으로 말해 선배를 만족케 한 <신의 물방울>이 제게는 불만족스런 것이었다면, 뒤집어 보면 선배에게도 그것이 만족스럽지 않게 될 여지가, 제게도 이것이 만족스러워질 여지가 있다는 것일 테니까요.

 

와인이라는 ‘신의 물방울’과 와인을 그려낸 만화 <신의 물방울> 모두가 제게는 부르주아를 위한 예술 형태로 이해됩니다. 그것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부르주아 미학을 만족시키고 있어요. 와인은 풍성한 맛과 향을 지니고 있으며 교양을 담고 있습니다. 만화도 와인의 매력을 풍성한 스토리와 섬세한 표현과 구성으로 잘 담아내고 있어요. 개인 능력의 자원이 되는 지성과 교양과 풍요가 현대 부르주아의 전유물이라면, 바로 그것이 <신의 물방울>의 주된 질료라 할 만 합니다. 특히 시즈쿠와 잇세라는 중심인물들의 계급적 위치는 부르주아를 주인공으로 한 세계를 구성해내고 있습니다. 잇세는 몰라도 어떻게 시즈쿠가 부르주아냐고 되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28권부터 등장하는 크리스토퍼 왓킨스라는 인물을 비교항으로 놓고 볼 때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시즈쿠와 잇세가 그토록 힘겹게 찾아왔던 8병의 사도들을 단 몇시간만에 모두 찾아내는 왓킨스는, 부르주아 혁명 이전의 귀족에 해당하는 인물입니다. 현재 부르주아의 전유물인 지성과 교양과 풍요는, 사실 귀족들의 것이었어요. 부르주아들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노력을 통해 귀족들의 전유물을 잠식해 그것들을 획득해 낸 것이지요. 결국 귀족과 왕족의 시대를 무너뜨린 것이 부르주아들의 시민 혁명이었음을 떠올려 볼 때, 귀족 왓킨스에 비해 평범한 시즈쿠와 잇세는 부르주아의 위치에 있습니다. 그들은, 칸자키라는 신흥 부르주아의 재능을 이어받은 부르주아로, 각각의 결점을 지니고 있지만 완성을 향해가는 자들인 것이지요. 칸자키의 12사도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완벽하지 않지만, 부족한 면으로 인해 가치가 있는 와인들입니다. 그 부족함은, 부르주아들의 세계를 만들어낸 노력 그것으로 채워질 수 있으며 더 높은 차원의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전제가 되는 무엇이니까요.

 

이런 저의 독해가 선배에게는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으리라 생각해요. 각자의 이데올로기적 시점에서 바라볼 때 나오는 다른 독해일 테니까요. 선배의 눈에는 아름다운 세계를 그려내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 제게는 이미 함락된 귀족의 성채와 천박한 자본주의를 부수는 포즈를 담아 부르주아에게만 아름다운 세계를 만들어나가는 손쉬운 이야기라는 게 이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설명이 충분치 않을 수도 있어요. <신의 물방울>이 배제하고 있는 사람들과 삶을 더 잘 설명했어야 했는데, 충분히 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것 같아요. 이 부분은 추후에 다른 작품을 통해서 더 잘 해보도록 할게요. 아마도 <목욕의 신>이 완결되고 나면 그 작품에 대한 면밀한 독해를 통해 다른 방식으로 해 낼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원래 쓰려고 했던 두 작품의 대비도, 두 작품 모두가 완결한 후로 미룰게요. 와인이라는 서구 부르주아의 예술상품이 아닌 한국 서민의 대중적 목욕을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제 눈길을 끈 <목욕의 신>이지만, 선배 말대로 아직은 소재의 매력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그려지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래도 일단은 그것이 화해적 가상이 아닌, 비화해적 가상으로서의 현대예술에 이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걸고 지켜보려 합니다. 다음을 기약해요.

 

 

<목욕의 신> 전반부에 제시된 문제 상황.

아직 이야기가 충분히 진행되지 않아서일 수 있으나, <목욕의 신>은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계속해서 드러내고 있다. ⓒ하일권

 

 

 

마지막으로 <신의 물방울>이 제게 던져준 화두를 선배에게 말씀드리고 편지를 맺으려 합니다. 이건 지금껏 논했던 것과도 일맥상통하는 점일 텐데요, 바로 예술에 대해 말하는 형식, 즉 평론입니다. 와인을 향유하면서 느끼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잇세와 시즈쿠의 사도 찾기의 여정은, 만화의 세계에 대해 ‘표현’하는 만화 평론가의 길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아요. 더 많은 만화를 경험하고, 정말로 좋은 만화를 소개하고 표현하는 길을 계속 걸어 나가려는 저에게 이들의 와인 여정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더군요. 언젠가는 선배를 만족시킨 잇세와 시즈쿠보다 더 만족스러운 글을 써 볼게요. 아마도 그들과는 다른 방식일 테고, 또 그들의 아름다움과는 다른 아름다움이 표현될 테지만, 비화해적 가상을 예술의 본령으로 믿는 제게 만화는 그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깊이 있는 예술입니다. 개별 작품 가운데 그 가능성을 성취하고 있는 작품은 아직 많지 않다 해도 말이죠. 한 번 제대로 걸어보겠습니다. 지켜봐 주시고, 또 끊임없이 비판하고 질문해 주시길 바랍니다. 제가 사는 세계가 자본주의 사회이고 부르주아의 이데올로기가 지배적 이데올로기인 한, 선배의 말씀은 제게 지배적인 세계와 그 세계를 사는 사람의 텍스트 향유를 더 명확히 파악하게 도와줄 테니까요. 이번에도 그랬던 것처럼요. 감사해요 선배.

 

 

P.S. 조만간 같이 목욕하러 갑시다. <목욕의 신> 얘기를 조금이나마 준비해 둘게요. 바나나우유는 제가 쏩니다!^^

 

 




- 싱크 7호에 기고한 만화칼럼. 

이 때는 아직 <목욕의 신>이 완결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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