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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마무리한 작업이 책으로 나왔습니다. 막심 고리끼의 <어머니>를 만화로 옮기는 일이었는데요, 저는 글 작가로 참여했습니다. <어머니>의 장면들을 만화로 번역하는 일은 녹록치 않은 작업이었고, 그런만큼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책을 펼쳐보니 그런대로 읽어줄만 한 것 같지만 제가 의도한 대로 되지 않은 대목도 많네요. ^^; 작가의 말 부분은 특히나 많이 수정되어 실리는 바람에 제 마음이 충분히 전달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여기 수정되기 전 원래 작가의 말을 옮겨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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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고전을 만화로 펴낸다는 건, 만화를 좋아하는 독자에게뿐만 아니라 어렵사리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고전 작품에게도 분명 매력적인 일일 겁니다. 서로 더 편하게 만날 수 있으니까요. <어머니>도 소설 그대로였다면 만나지 못했을 누군가를 만화가 되어서 만나게 될 테지요. 어떤 모양이든 만남은 행복한 일입니다. 그런데 막심 고리끼가 엄청난 고뇌 끝에 낳은 작품을 만화로 옮긴 제가 충분히 좋은 만남을 주선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만화 <어머니>를 보고 조금이라도 부족함을 느낀다면, 또 어머니와 빠벨과 동료들에 대해 더 궁금한 것이 생긴다면 꼭 소설을 찾아 읽어보기 바랍니다.


어쨌든 1900년대 초반 러시아로 시간여행을 떠나게 된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당시 러시아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힘들게 살고 있었어요. 그런데 힘든 사람들이 있다면, 심지어 대부분이 힘든 사람이라면 뭐라도 원인이 있겠지요? 가뭄도 아니고 홍수도 아닌, 부패한 권력자들과 돈을 사람보다 중히 여기는 자본가와 지주가 바로 원인이었습니다. 당시 노동자들과 농부들은 하루종일 일해도 먹고 살기 어려웠는데, 권력자(왕과 귀족)와 자본가(사장)와 지주(땅 주인)들은 일하는 시간은 훨씬 적은데도 훨씬 풍족한 삶을 누렸어요. 뭔가 이상하죠? 그럼 노동자와 농부들이 더이상 힘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어머니>의 주인공 빠벨과 그 동료들도 이런 질문을 했고 답을 찾았습니다. 빠벨의 어머니는 힘든 줄만 알았지 그 원인을 캐볼 생각은 못했는데, 빠벨을 통해 원인을 깨달아 알게 됩니다. 이렇게 막심 고리끼는 고통받지만 이유는 모르고 사는 보통 사람들을 대표하는 인물로 어머니를 세우고 그녀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갑니다. <어머니>가 발표되고 나서, 러시아 사람들은 이 이야기에 열광했습니다. 엄청난 사랑을 받았지요. 바로 자신들의 이야기였으니까요.


하지만 오늘날 한국에서 사는 여러분에게는 이 이야기가 자신의 이야기로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도 할 수 있는 만큼 등장인물들의 상황과 마음을 헤아려보도록 해요.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시각으로 자신의 주변을 둘러보아요. 힘들고 고통받고 고민하는 사람이 있나요? 그렇다면 분명 그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다른 누군가, 다른 어떤 이유가 있을 거예요. 그걸 고민해 보고 해결하려 애써 보면 좋겠어요. 그게 막심 고리끼의 고통스런 이야기가 오랜 시간을 기다려 여러분을 만난 이유일 거예요.


이 자리를 빌어 마음을 전하고픈 분들이 있습니다. <어머니>뿐만 아니라 엄청나게 멋진 만남을 여럿 만들어 준 박용희 언님과 내 친구 홍경한, 두 분에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조금 멀리 살고 있는 동생 아랑에게 오래간만에 사랑한다는 말을 전합니다. 우리 집 두 고양이와 아내 바라에게 함께 살아주어 고맙다는 말을 속삭입니다. 바라와 함께 늘 찾아가고픈 곳이 있습니다. 제주도 강정, 구럼비 그 바다를 그립니다. 그 사람들과 함께 아픕니다. 마지막으로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예수님. 이미 돌아가신 당신들께 받고 배운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받고 배운대로 살겠습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래는 이 작업을 위해 참고한 <어머니>의 판본들입니다.

찾아보니 <어머니> 만화는 제가 작업한 책이 처음인 것 같더군요.

만화로 나온 작품이 청소년 대상인만큼,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판본들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물론 뼈대는 열린책들 판본(신/구 모두)이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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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에서 썼다 말았다 하며 블로그를 운영하다 네이버가 못마땅해 알라딘으로 넘어온지도 그럭저럭 1년이 넘었겠다.


이곳, 알라딘 서재는 책 읽는 사람에게 정말 좋은 공간이 확실하다. 검색 유입 수가 좀 떨어지는 게 함정이지만, 그 함정에도 불구하고 떠날 마음은 전혀 들지 않을만큼, 정말 좋다!

허나, 여긴 예전에 더 좋았던 것 같다.

친구가 오래 전부터 쓰던 서재를 들락날락 했던지라 대충은 분위기를 알았지만, 2011~12년 이전의 알라딘 서재를 직접 경험하지 못한 건 너무나 아쉬운 일이란 게 지금 와서야 느끼는 소회.

당시 분위기를 오래 전부터 활동해 온 분들의 서재에서 간간이 엿보고 있는데... 이건 뭐 지금 페이스북에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그보다 천배는 더한 관심과 열정으로 나눠온 게 아닌가.

요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그때보다 약간 식은 듯하지만, 그래도 오래된 서재인은 과거 분위기의 반절은 지금도 누리시는 듯하여 부러울 따름.

하여, 너무 늦게 온 낙원에서, 늦은 발걸음을 아쉬워하며, 앞으로는 쓸 일 없을 '소회'를 한번쯤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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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역사 앞에서>를 이대 도서관으로? "그래, 잘했다."]라는 제목의 포스팅 앞에 도달했다. 포스팅 속 사진에는 '1950년'이 세로쓰기 한자로 씌어있는 책 표지와, 세로쓰기 원고지 쏙에 수기로 쓴 글씨들이 빼곡했다. 어떤 우연인지 모르지만, 내가 모르고 살아온 무언가에 도달한 느낌이었다. 


아버지 일기 원본을 어머니께 가져갔다. 실질적으로 결정은 내가 이미 내려놓았지만, 어머니가 자식들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36년간 지키셨던 아버지 육필을 어머니가 손수 떠나보내시게 하고 싶었다.
- 위 링크.
위 문장으로 시작하는 포스팅을 찬찬히 읽어보니, 해방기 역사학자 김성칠(당시 서울대 교수)의 수기 <역사 앞에서>(1945년 12월부터 1951년 3~4월까지)의 원본이었다. 그리고 블로그는 그의 아들인 김기협 전 계명대 교수가 운영하는 곳 '페리스코프'(잠망경). 첫만남 포스팅은 김기협 교수가 그의 어머니와 나눈 대화를 담은 '어머니' 카테고리의 한 글이었다. (이 카테고리가 <아흔 개의 봄>으로 묶여 출간된 듯하다.) 

일제시대 <윤치호 일기>를 보며 일기의 사료적, 텍스트적 가치를 깨달았기에 <역사 앞에서>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그의 아들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재야 역사학자로서 꾸준하고도 돋보이는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는 걸 확인하니 두 사람의 책을 구해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일단 서재에 그들의 책을 모아둔다. <역사 앞에서>의 존재를 확인하고 보니, 아직까지 모르고 있었다는 게 부끄러워진다. 얼른 만나러 가야지. :)



 


 

김기협은 번역서가 상당히 많다.

번역서들도 상당히 좋은 책들이 많지만 제외하고 저서만을 모아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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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심위 리스트에 있었던 만화 <전설의 주먹>. 리스트에 오르는 바람에 단행본 출간도 연기되고 어려움이 많았다. 나도 당시에는 뻔한 학원물이라 생각해 방심위의 조치에는 반대했으나 굳이 읽지는 않았다. 사건이 좀 잠잠해진 후에 몇몇 호평을 접할 수 있었고 영화화 소식도 들리니 읽고 싶어지더라. 그리고 얼마 전 곧 유료화된다는 공지에 정주행.


*11월 25일까지 무료로 읽을 수 있음 -> 링크


정주행은 순식간에 끝났고, 이런저런 인상과 감상과 그에 대한 내 입장을 글로 정리해 보았지만 짧게 말하기는 어려운 이야기만 나오더라. 쓰다가 부연설명하고 이론적 입장 소개하느라 막히는 부분이 너무 많아서 그냥 지우고 말았다. 함부로 말하느니 지우는 게 낫겠다 싶어서. 그리고 건조하게 인상만 다시 쓴다.


지운 내용을 인상으로 거칠게 요약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거칠고 거칠고 거칠다.' (지운 내용에는 나름의 근거를 담았었지만, 앞서 말했듯 지웠다.ㅎ) '거칠고 거칠고 거칠다'가 담고 있는 모종의 가치 평가는 '좋고 나쁘고 볼만하다.' 정도라 해두자. 그래도 이렇게만 말하기는 아쉬우니, 조금 더 구체적이고도 긍정적으로 말해보자. 몇몇 흠결만 없었어도 서구의 명작 그래픽노블 못지 않은 걸작이 나올 뻔 했는데 안타깝다. 그래서 더욱 편집자와 평론의 역할이 필요함을 알려주니, 건진 건 확실히 있는 셈이다.



- 글은 짧으나 두 권짜리라 그냥 페이퍼로 등록함.


- 쓰다 지운 내용은 추후에 하드보일드 만화 모아서 얘기할 기회가 있으면 살려 봐야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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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고 있는 대학원신문에 기고한 에세이와 강정 책들 모음입니다. 강정을 알고자 하시는 분들께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 대학원생

- 두서없이 토로하는 멘붕記


연구실 컴퓨터 앞에 앉아 공부를 시작하기에 앞서 인터넷에서 사람들 사는 모습을 살펴본다. 이런! 오늘도 공부에만 집중하기 어려운 일이 일어났구나! 기사는 나의 의식을 연구실 바깥으로 데려다 놓고야 만다.

 

 


아, 사람들이 또다시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는 소식이다. 이번엔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 2명이다. 이미 2010년 7월에 대법원이 “하청으로 고용된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인정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음에도 사측이 정규직 전환을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노동자들은 45미터 높이의 송전탑 위로 올라갔다. 그야말로 ‘절박한’ 심정이 아니고선 시도하기조차 어려운 일이다. 아마 김진숙이 85호 크레인에 오를 때에도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생명을 걸어서라도 소리를 질러보겠다는, 어떻게든 상황을 바꾸어 보고 싶다는 절박한 마음. 그 절박한 마음으로 그 높은 곳에서 309일을 버틴 끝에 김진숙은 내려올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던들 지난 8월에 있었던 강정 평화대행진에서 나는 그녀를 직접 보지 못했을 테고 그녀가 준 아이스크림도 받아먹지 못했을 것이다.

 

 


현차 비정규직 노동자 -> 노동자 김진숙 -> 김진숙이 강정 평화대행진에서 준 아이스크림으로 이어지는 자유연상 속에서 강정을 떠올린다. 그러고 보면 강정 사람들도 ‘절박한 마음’으로 ‘높은 곳’에 올라 ‘오래 버티기’는 매한가지다. 지난 3월 7일 구럼비 발파 이후로 강정에 뻔질나게 드나들며 만났던 그 사람들이 하나하나 생각난다. 먼저, 매일 해군기지 공사장으로 들어오는 레미콘을 막아서고 그 위에 올라가서 단 몇십 분이라도 공사를 막아보려는 신부님이 있다. 별명도 레미콘 신부님이 되어버린 이 분은, 지금 기소된 것만 다섯 건이 넘고 지금은 구속 기소되어 수감 중이다. 다음으로 10미터 높이 테트라포드(일명 삼발이) 위에서 떨어졌던 문정현 신부님. 당신께서는 그날 의식을 회복하시고서 자신이 죽지 않은 것을 한탄하셨다. “내가 강정을 위해 죽었어야 했는데.” 그리곤 일흔이 넘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단 2주 만에 병상에서 일어나 깁스를 한 채로 또다시 공사현장 앞에 나와 미사를 집전하고 공사 차량 바닥에 몸을 누이셨다. 그리고 동원. 그는 오탁방지막이 훼손된 채로 불법공사를 강행한 데 항의하며 공사 중이던 바지선 크레인 위로 올라갔었다. 다른 활동가들이 그를 연행하지 않을 것과 공사를 중단할 것을 조건으로 해경과 건설업체 그리고 동원을 설득한 끝에 7시간 만에 내려오게 했지만, 그는 연행되었고 공사는 바로 다음날 다시 이어졌다. 동원은 그날 이후 119일 동안 구속되었다가 바로 며칠 전에야 보석으로 나왔다.

 


 

옥중단식을 했던 영화평론가 양윤모 선생도, 구속된지 181일 만에 추석에야 가족과 재회한 송박(송강호 박사)도 생각나지만, 가장 최근인 9월 6일에 케이슨 점거 시위를 시도했던 5인을 빼놓을 수 없다. 지상 40미터 높이의 대형 구조물 위에, 그 가운데서도 가장 높은 작업장 첨탑 위에 올라가 “제주해군기지 공사는 강정 주민의 최소한의 합의도 얻지 못한 채 온갖 불법과 탈법 그리고 공권력의 힘을 빌려서 강행되고 있다.”고 목소리 높인 그들. 이 말을 하려고, 그 목소리가 들리게 하려고, 목숨을 걸고 그 높은 곳에 올라갔던 그들은 결국 경찰도 아닌 시공사 직원들의 손에 붙잡혀 타워에서 크레인으로 허공을 가르며 날라져야 했다. 용산참사 때보다 더 무리한 진압이었다는 평도 있지만 다행히 살아 내려온 그들 중 한 사람,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해민 형은 바로 그날 구속당해 지금도 수감 중이다. (아, 이 무슨 범죄의 소굴인가!)

 

 


이 사람들처럼 ‘높이 오르지도’, ‘오래 버티지도’, 않았지만 나 역시 ‘절박한 마음’으로 일을 벌여 연행된 적이 있었다. 단 10분밖에 버티지 못해 업무 방해는 해보지도 못했건만 업무방해죄로 연행되어 48시간을 꼬빡 채운 끝에 나왔다. 나온 후에도 검사는 기소를 베풀어 주었고, 그 덕분에 나는 이제 한동안 매달 한 번씩 제주에 재판을 받으러 내려가야 하는 행복한 처지가 되었다. 얼마 전에는 첫 재판이 있었는데, 기본적인 신원을 확인하는 자리라 내려가는 데 들인 교통비며 시간이 무색할 만큼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그 자리에 앉아 있기만 했다. 정말 밟혀 꿈틀거리는 사람을 짓이기는 방법도 가지가지더라.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고통받는 얼굴이 바로 내 얼굴이다

 

 


그날, 직업을 묻는 판사에게 대학원생이라고 대답했던 나는, 지금 연구실에 앉아 컴퓨터 앞에서 이런 하소연을 하는 나는, 내가 강정과 신촌에 동시에 존재할 수 없는 존재라는 걸 한탄한다. 공부도 해군기지 반대운동도 제대로 못 하는 이 아포리아를 묘파해 낼 방안을 생각해 보지만 답을 찾을 수 없어 고뇌한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참여관찰을 방법론으로 써먹을 수 있는 과로 갔어야 했는데’ 하고 한스러워하기도 한다. 나의 한 서린 고뇌는 대학원생의 자리에서 보편의 자리로 다시금 무한루프를 이어간다. 왜 우리는 ‘절박한 마음’으로 ‘높은 곳’에 올라 ‘오래 버티’지 않으면 목소리를 울리지도 못하는가. 그렇게 묻곤 그것이 우리가 서발턴(subaltern)이라는 증거라고 손쉬운 대답을 내놓는다. 다시 공부에 집중해 보려 하지만 이내 답답함과 무기력증에 빠지고 만다. 이제는 내가 무엇을 해보려고 대학원에 왔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지식인에 대한 푸코의 문장을 읽고서였던 것 같기도 하고, 소수자의 권리를 대변하는 학술적 성과를 발표하던 학부 시절 은사님의 영향인 것 같기도 한데, 아이고 모르겠다.

 

 


결국엔 학위를 따보겠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SKY 중 하나인 ‘높은 곳’에 올라 ‘오래 버티고’ 있는 나는, 그러나 쌍차와 강정과 용산의 머리글자를 딴 스카이 공동행동(SKY ACT)의 행진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그들은 지금 “사람이 하늘이다”를 외치며 기업자본과 공권력에 맞서 힘겹게 싸우고 있는 지역들을 순례하고 있다. 그들을 떠올리며, 그들과 함께 걷지 못하는 걸 부끄러워하며, 번잡한 마음을 다스리려 노력해 본다. 내가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이유를, 그리고 내 공부가 그들에게 가닿게 할 방법을, 나는 지금도 힘겹게 모색하고 있다. 브레히트의 시 ‘나, 생존자’가 ‘나, 대학원생’으로 둔갑하여 내 마음을 스치우는 매 순간을 견디며.


덧붙이는 글: 글을 마무리하고 며칠 후, 해군기지공사가 24시간 강행하게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 후로 공사장 문 앞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버티다 고착당하고 다치는 강정 지킴이들의 소식이 매일 이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원우들에게 연대를 호소하는 글을 덧붙이지 않을 수 없다. 대학원생이 무슨 돈이 있겠냐만, 또 강정 말고도 여기저기에 연대가 필요한 곳 투성이이지만, 그럼에도 빼꼼히 열어둔다. 강정과 쌍차와 용산에 입금으로 연대할 문을.

* 생명평화대행진 후원계좌: 국민은행 661301-04-093549 문정현(평화대행진)
* 스카이 공동행동 생명평화대행진 카페:http://cafe.daum.net/walk4peace

 



연세대학원신문 197호 [원우 에세이] 난에 기고한 글.


*신문 인쇄본에는 다른 사진이 들어갔는데, 온전히 내 실수로 사진 찍은 분을 밝히지 않은 채로, 또 그 분의 허락을 받지 못한 채로 사진이 게재되었다. 인쇄판에 들어간 사진의 저작자에게는 개인적으로 사과를 했지만 그 분이 어렵게 찍은 사진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밝히지 못한 내 큰 잘못을 밝혀둔다. 


강정 책들


 


左: 오마이뉴스 이주빈 기자의 강정마을 주민들과 활동가 인터뷰 모음집. 사진은 노순택 작가.

右: 고통 속 강정마을 주민들의 생생한 증언과 호소, 평화를 향한 생각을 담은 책. 


 

 

 

左: 강정을 사랑한 세 작가 김선우, 전석순, 이은선이 함께 짓고 나미나가 그림을 입힌 동화.

右: 강정 할아방 문정현 신부에 대한 평전. 김중미 작가가 쓰고 노순택 작가가 찍은 사진을 곁들였다. 좋은 리뷰 링크를 걸어둔다.


 

 


 

左: 군사 및 안보 문제 전문가 정욱식이 쓴 제주해군기지 비판서. 해군기지 건설의 여러 맥락과 문제점들을 확인하고 싶다면 읽어봐야 할 책.

右: 서재에서 소개한 바 있는(링크) 송강호 박사 이야기. 기독교인들에게 강추.


그 외 강정과 닿아있는 책들.


  

 



그리고 매우매우 중요한 <강정마을 인권침해 조사보고서>(2012.10.4. 발간)

정보 및 다운로드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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