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리고 쏠리고 들끓다 - 새로운 사회와 대중의 탄생
클레이 셔키 지음, 송연석 옮김 / 갤리온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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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고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촛불시위도 끝이 났다. 언제까지고 계속 될 것 같았던 그 시위도, 그들의 시위를 보도하던 열띤 취재경쟁도, 그들의 이야기로 항상 북적거렸던 인터넷 사이트들이 조용해졌다. 미국산 쇠고기의 처리를 보자면 과연 그 촛불 시위가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아고라가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에 회의적인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결론적으로 촛불이 원하는 것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 어쩌면 일부 학자들일지도 - 말한다. 이번 촛불시위는 한국 사회의 변화에 점을 찍는 큰 사건이었고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라고.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는 한마디로 '지금' '대중'이 어떻게 세상을 바꿔가고 있는지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이런 류의 책이 이제는 너무나 많기 때문에 또 이런 책이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고 그런 책이 쏟아져 나오면서도 이 책은 단연 돋보인다. 사실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는 읽기에 즐겁고 유쾌하고 녹록한 책은 아니다. 사례가 많다는 점이 읽는데 조금 편안함을 주기는 하지만 그 부분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점에서 읽기에 아주 쉽지는 않다. 


첫째 파트에서는 실제 어떤 변화들이 벌어지고 있고, 어떤 기술적 환경에서 진행되고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두번째 파트에서는 위키피디아라는 이름으로 대변되는 새로운 시대에 기존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대중에 대해서 그들의 행동과 사고를 분석한다. 그래서 마지막 파트에서는 결론적으로 사회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지, 앞으로 대중으로 어떤 방식으로 행동하게 될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개방과 공유, 다양성을 핵심키워드로 하는 현대 대중에 의해 어떤 사회가 만들어질지, 그리고 그 사회가 건강하게 유지되기 위해서 어떤 장치와 요소가 필요한지를 이야기한다. 기술이 만들어내는 사회 변화와, 그 사회변화에 적응해 살아가는 하루가 다른 대중과 그 대중이 만들어 내는 변화에 대해서 이 책은 꼼꼼하게 서술하고 있다. 


빈말이라고 읽기 쉽고 재미있고 편한 책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읽고 나면 흘러가는 세상이 아니라 움직이는 세상을 좀 더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점과 변화와 혁명에 대해서 생각하게 될 것이다. 촛불시위가 단순히 시위가 아니라 그 시위를 넘어 지금 현대 대중을 반영한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고, 지금 현대 대중을 고민하게 될 것이라는 점만 얘기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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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처럼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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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어린 시절부터 영화를 꽤 사실은 아주 많이 좋아했다. 늦은 시간까지 영화를 보는 것에 상당히 관대했던 부모님 덕분에 주말에 명화는 꼬박꼬박 챙겨볼 수 있었고, 중등학교에 다니면서도 18세 영화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보면 그때는 12시가 넘은 시간까지 <여인의 향기>를 보느라 눈을 벌겋게 뜨고 '주말의 명화'를 보던 시절을 생각하면 내 부모님은 내가 보거나 읽는 영화나 책에 관한한 상당히 관대하셨지 싶다. 그런데 꽤 재미있는건 영화를 꽤 열심히 본다고 생각하는데 목록을 곰곰히 보고 있노라면 그야말로 '흑백영화'라는 표현이 딱 맞는 영화들을 열심히도 섭렵했다는 점이다. 좀처럼 찾기도 힘들고 찾지도 않는 영화들을 보면서 난 '이래서 영화를 보는거야'라고 생각하곤 한다. 


가네시로 카츠키의 신작 <영화처럼>은 영화를 테마로 해서 한 곳으로 모아지는 중편 모음집이다. 가츠키의 전매특허라고 할 수 있는 특유의 유쾌함이 이번에도 제대로 드러나 있다. 그리고보면 그의 작품들은 항상 영화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플라이 대디 플라이>에서도 순신과 아버지는 이소룡을 각자 보았고 <GO>에서도 스기하라와 그녀는 영화를 보곤 했다. 그릭고보면 카츠키의 작품은 그가 직접 참여해서 영화하 하기도 한걸 보면 가네시로 카츠키라는 작가 자체가 영화와는 상다히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며 글을 쓰고 생활을 하는 듯 하다. 


<영화처럼>에서는 다양한 인물이 다양한 영화를 테마로 해서 등장한다. 각 인물마다 자신의 '테마'라고 할 수 있는 영화를 끼고 등장한다는 말이다. 사람들에게 각자의 인생이 있고 사람 수 만큼이나 다양한 인생 이야기가 있듯이 이 소설에서도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오랜 시간 서로를 볼 수 없었던 두 친구가 <태양은 가득히>를 통해 기억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원작 소설을 다시 찾아서 읽고 싶고 영화를 다시 보고 싶어진다. 남편의 자살 이후 삶에서 도피하려던 한 여자가 한편씩 영화를 보면서 삶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영화를 하루에 하나씩 차근차근 보고 싶다. <로마의 휴일>을 함께 보는 가족 이야기를 읽으면서 가족에 대해서 그리고 소주한 사람에 대해서 생각하는  행복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특히 이 소설 모든 이야기가 마지막 이야기에서 주요 테마인 <로마의 휴일>을 보기 위해 모이는 장면으로 수렴하는건 인상적이다. <로마의 휴일>을 이 소설에 등장한 사람들이 함께 보았을 거라고 생각하면 왠지 웃음이 나오니 말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영화가 삶을 모방하는지, 삶이 영화를 모방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해보면 모든 예술에 적용되는 말이겠지만 특히 영화에서는 이 말을 곱씹게 된다. 영화가 혹은 소설이 우리들의 삶을 반영하고 보여주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영화처럼 살고 싶어서 영화를 모방하며 사는 것인지 말이다. 가네시로 카츠키는 삶과 영화를 수평선에 놓고 바라보고 있다. 삶은 영화를 통해 위로받고, 영화는 삶을 투영한다. 결국 우리는 영화와 함께 소설과 함께 수평선을 맞춰가며 그렇게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그렇게 위로받고 위로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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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번 교향곡
조셉 젤리네크 지음, 김현철 옮김 / 세계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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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작곡가는 9번까지 쓰고 죽었다더라. 10번 교향곡을 쓸 수 없다는 이야기는 '9번 교향곡의 저주'라는 이름으로 항간에 많이 알려져 있다. 사실 19세기 후반을 지나면서 10번 이상으로 교향곡을 내놓은 작곡가도 있지만 유독 많이 알고 있는 이들이 '9번'까지 작곡해서 인지 소위 9번 교향곡의 저주는 일반인에게는 여전히 재미난 흥미거리이다. 


'베토벤이 10번 교향곡을 썼다면' 아니 정확하게는 '완성했다면'으로 시작하는 조셉 엘리네크의 <10번 교향곡>은 이런 류의 가정으로 시작하는 책이 지니는 필수적인 요소를 잘 갖추고 있다. 역사에 '그랬더라면'이라는 가정을 집어넣는 이런 소설은 여러가지가 필요하지만 '그랬을 수도 있다'라는 개연성이 첫째이고, 그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그리고 지적인 재미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그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이 둘째이고, 이 두가지를 잘 버무려서 순식간에 읽어내릴 수 있게 글을 쓰는 능력까지 필요하다. 생각보다 꽤 까다롭지만 제대로만 만들어내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할 수도 있다. <다빈치코드>나 <장미의 이름>을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10번 교향곡>은 기본적으로 베토벤의 10번 교향곡의 테마를 발견해서 자신이 재구성했다는 한 음악가의 죽음과 그의 죽음을 추적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재구성했다는 10번 교향곡이 음악가의 재구성이 아닌 온전하게 베토벤이 직접 쓴 10번 교향곡이라는 확신을 사람들이 가지면서 다양한 인물이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10번 교향곡 악보를 찾기 위해 전쟁아닌 전쟁을 치르게 된다. 특히 이제는 이런 류의 이야기에 필수적으로 등장하는 프리메이슨이나 일루미나티의 이야기까지 등장하면서 10번 교향곡 악보를 차지 하기 위한 추적은 흥미진진 그 자체이다. 특히 중간중간 등장하는 음악과 교향곡에 대한 설명은 자주 듣지 못하는 만큼 각별한 재미를 선사한다. 결국에 음악가를 살해한 범인이 누구인지를 알아내는 과정과 10번 교향곡의 악보가 누구 손에 떨어지는지를 밝혀내는 과정이 재미나다. 


이런 류의 책은 읽을 때는 정신없이 읽게 되는데 이 책은 뒷끝이 별로 개운치가 않다. 역사에서 '그랬더라면'이라는 가정을 넣는 다는 것이 애초에 가장 입맛을 텁넙하게 하는 일이어서 그런가 싶지만 <장미의 이름>을 읽을 때는 그다지 느끼지 못했던 기분이다. 아마도 <10번 교향곡>에서는 베토벤의 10번 교향곡에 자체에 포커스를 맞추고 그 외에 다른 이야기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지적 유희만을 주고 읽는 재미만을 줄 뿐 그 외에는 다른 요소가 없다는 점이 가장 입안을 텁텁하게 하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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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크레이그 / 그리고 죽음
읽고 있는 책. 계속 손만 대고 있었는데 제대로 못 읽었다가 이번 휴가때 읽기 시작했다.
진작 읽어볼껄 그랬다. 열린책들이 내놓은 Mr.Know세계문학이 좋은 책들로 좀 더 자주
나와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기류마사오 / 사랑과 잔혹의 세계사
들어온 책. 알라딘 서평단에 뽑혀서 받은 책이다.
기대가 무척 많이 된다. 요즘 주변에 읽는 이들이 좀 있어서

조셉 젤리네크 / 10번 교향곡
작년이었나 <노타메 칸타빌레>이후로 클래식에 대한 대중의 접근도가 많이 높아져서인지
이런 책도 등장할 수 있게 된 듯 하다. 뭐 이런 류의 스토리는 사실 흔하다. 예를 들면
<13번째 사도의 편지> 이런 제목이 말하는 것처럼 (실제 예수의 사도는 12명이었다)
이 책도 9번 교향곡의 저주(저주까지는 아니겠지만)를 넘어서 베토벤의 10번 교향곡을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거겠지만 흠 어쨌든.

사실 9번 교향곡이라고 하지만 그 이상을 쓴 작곡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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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가 없으면 나라가 망할까? 라면 교양 2
하승우 지음 / 뜨인돌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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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대학 2학년 때 토론 수업 하나를 들은 적이 있다. 그 과목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전공 수업시간과 겹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청강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아니 정확하게는 청강을 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어 버린 과목이었다. 그 과목에서는 매주 주제를 바꿔가면서 꽤 다양한 토론을 했었는데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주제는 '군 가산점'과 관련된 주제였지 싶다. 어느 평범한 토론처럼 (솔직히 어딜 봐서 그게 토론이겠는가 만은) 서로간에 인신공격이 난무해버렸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그 강의 마지막 선생님의 마무리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군대와 관련된 이야기는  남녀의 문제로 옮아가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문제의 핵심을 뚫어보지 못하는거다. 군대의 문제는 남녀의 문제가 아니라 군대에 갈 수 있는 사람과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사람들 간에 문제이며, 군대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결국 이 사회에서 약자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의무와 선택의 차이는 아주 큰 차이이다.

항상 군대와 관련된 문제는 군 가산점이다. 우리는 왜 군대에 다녀온 남자는 특정 시험에서 가산점을 받아야 하는지를 질문한다. (그리고보니 여자도 가산점을 받나?)  생각해보면 그 누구도 군대를 왜 모든 남자가 가야만 하는지, 2008년 대한민국은 왜 모든 20대 한창 젊은 그들은 군대라는 조직으로 불러 들이지를 고민하지 않는다.  <군대가 없으면 나라가 망할까>는 우리에게 그 질문을 던진다. 정말 군대에 모든 남자가 가야하는걸까, 아니 정말 군대라는 조직은 필요한걸까.

<군대가 없으면 나라가 망할까>는 한국에서 많은 이들이 직면한 문제인 양심적 병역거부를 이야기하고 이에 대한 이야기를 군대라는 조직이 반드시 필요한지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나서 궁극적으로 평화를 만들이 위해 전쟁없는 지역과 국가가 되기 위한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거창한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병역기피와 더불어 군대와 관련되어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이미 많이 언급이 되고 있는 문제이다.

우리는 이미 병력으로 전쟁을 하던 시기를 지나 기술로 전쟁을 하는 시기에 왔다. 그런 이 2000년대에 한창 생각하고 일할 청년들이 사람을 공격하는 것을 배우고 익히는 일에 몰아넣고 있는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당장 한국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앉을 수 있는 방법을 간구해야 한다. 해마다 적지 않게 나오는 병역거부자에게 (그들은 병역기피자가 아니다) 실형을 선고하고 빨간 줄을 그을 수는 없다. 이런 직면한 문제에서 시작해 이 책은 궁극적으로 군대라는 조직과 전쟁에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지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하게 한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생각'을 다시 해야 함을 강조한다. 평화는 '너'가 먼저 총을 내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총을 먼저 내려야 하는 것임을 말한다. '너'만을 바라보고 상대방의 총구를 바라보며 평화를 외치는 것은 힘이 없다. 진정으로 평화라는 이름이 힘을 얻기 위해서는 전쟁이라는 이름과 죽음이라는 단어가 지금보다 없어지게 하기 위해서는 실천이 필요하다. 군대에 가는 젊은이를 줄이고, 군방비로 흘러가는 돈을 줄여서 사회에 투자하고 함꼐 살아가고 있는 이들과 연대가 필요한 것이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 평화이다. 어느 것이 먼저이냐는 논쟁보다는 누가 먼저 해야하는냐라는 논쟁보다는 내가 먼저 할 수 있는 용기가 모두에게 필요함을 강조하는 책 <군대가 없으면 나라가 망할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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