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바이 베스파
박형동 지음 / 애니북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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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청춘을 다룬 소설이나 영화에는 유독 관대하다.  굳이 얘기하면 청춘을 다룬 이야기이니까? 청춘을 다룬 영화이까 소설이니까, 너무 완성도가 높다거나 막힌 영화라면 더 답답하고 어울리지 않을 거라는 어설픈 변명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리 마음이 넉넉하지는 않아서 '청춘이라면 다 좋다'라고는 하지는 않으니, '청춘'에 대해 느끼는 내 감정은 딱 잘라 말하기가 참 고민스럽다. 그래, 고민스럽다는게 가장 정확한 표현일 듯 하다. 


<바이바이 베스파>는 결국 스쿠터 하나를 매개로 하는 이야기 일 뿐이다. 그리고보면 스쿠터는 자전거와도 오토바이와도 차와도 다르다. 그 차이가 주로 타는 사람들의 나이 때문인지 아니면 경제적인 요소 떄문인지 확실히 집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 이들 중 하나가 이유일 것이다. 어쩌면 10대 아이들이 스쿠터를 그리 타고 다녀서 때문인지도. 


스쿠터와 청춘을 주제로 하는 여러 편의 짧막한 이야기가 들어있는 <바이바이 베스파>는 사실 어떤 사실을 전달하려고 하지도 않고, 어떤 진지한 고찰을 전달하려 하지도 않는다. 이 이야기들에서는 한껏 그 때 어쩌면 나도 느꼈을지 모르는 그 기분을 전달한다. 고양이와 쥐의 사랑, 아무때나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사진을 결국에는 전해주지 못한 그런 사랑을 말하는 '톰과 제리의 사랑'이나 자란다는 혹은 나이를 먹는 것에 대한 '밍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소녀'를 읽고 있으면 내 생각들 반추하는 그런 '기분'이다. 한번쯤은 해본 적이 있는 생각, 혹은 고민, 혹은 느껴본 적이 있는 기분을 반추하게 한다. 그런 이야기이다. <바이바이 베스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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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을 만드는 여인들
카트린느 벨르 지음, 허지은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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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음식은 좋아하지 않지만 난 단 음식이 주는 효과를 믿는다. 분명 초콜릿과 사탕에는 화학적 성분만으로는 설명 불가능한 그 이상의 무엇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이들도 비슷하게 생각하는지 초콜렛과 사탕 등 단 먹거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남다르다. 초콜릿이 등장하는 영화도 상당한걸 보면 가히 먹거리와 관련해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힘은 먹거리 중에 최고가 아닐까싶다. 그만큼 초콜릿은 사람들의 삶과 많은 이야기를 함께 한다는 반증이다. 


황당하지만 재미난 스토리, 심심할 틈이 없다
소설 <초콜릿을 만드는 여인들>은 전설의 초콜릿을 만들 수 있는 카카오 열매를 보장받기 위한 두 수녀의 고된 여행기이다. 사실 고된 여행기이면서 평생에 잊을 수 없는 여행이다. 프랑스에 한 수녀원은 전설의 초콜릿이 그들의 주요 생계원이다. 이 초콜릿을 만들 수 있는 원료인 카카오를 구해야 하는데, 이 카카오는 콜롬비아에서 그녀들과 오랜 약속을 통해 공급해주는 이들만이 줄 수 있다. 문제는 이 카카오 공급 약속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10년에 한번씩 직접 카카오 경매장으로 수녀가 가야 한다는 사실인데, 올해 가지 못하면 앞으로 카카오는 얻을 수 없다. 카카오 경매장까지 가야하는 단순하면서도 어려운 이 과제가 안느와 자스민 두 수녀에게 내려진 과제이다. 물론 당연하지만 이들의 여행은 방해자가 한 둘이 아니다. 이들의 카카오를 강탈하기 위해 거대 기업은 물론이고, 콜롬비아의 무장단체까지 등장하고, 이들을 노리는 어둠이 손길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덕분에 <초콜릿을 만드는 여인들>은 절대 읽는 내내 심심할 틈이 없다.


이 책에서 수녀들은 지금까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수녀들과는 조금 많이 다르다. 사실 그 때문에 이 책이 재미있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수녀는 영화 <시스터 액트>에 등자하는 그녀들과 매우 흡사하다. 전혀 뜻하지 않게 바깥 세상과 조우하게 된 그녀들이 만들어내는 좌충우돌 사건들과 한없는 낙관론이 이 책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다. 가령, 정글 속을 해맨다던지, 게릴라에게 잡혀서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긴다던지, 길 잃은 산 속에서 폭발 직전의 남자들 앞에서 공연을 해야한다던지 - 놀랍게도 이들은 멋지게 해낸다는 설정이다 - 우연히 만나는 신부님과 얽히는 이야이 등등 하나같이 재미나고 조금은 기막힌 사건들이다. 바로 이 엉뚱함과 황당함이 소설에서 가장 큰 매력이다.


초콜릿을 향한 많은 이들의 욕망이 녹아 있는 소설 <초콜릿을 만드는 여인들>. 이 책은 전설의 카카오를 찾으려고 하는 수녀들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여행을 그리고 있다. 갖가지 사건을 겪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수녀들이 얻은 것은 과연 무엇일까. 각자가 신의 뜻을 각자 다양한 방법으로 발견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속도감있는 중반부에 비해서 종반이 약간 허망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허탈하게 끝나는 것이 단점이지만 이야기 자체는 정신없이 재미나게 읽었다. 하지만 다소 허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그 안에 고민이 별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좌충우돌 수녀들의 세상 나들이가 끝나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래서 뭐?"라는 의문형이니 말이다. 여러모로 아쉬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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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이 너무 뜨겁거나 실패가 너무 많거나 - 나는 생각 한다 그러므로 일이 일어난다
마티아스 브뢰커스 지음, 이수영 옮김 / 알마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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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이 너무 뜨겁거나 실패가 너무 많거나>는 나에게는 지나치게 정신없고 난해한 책이었다. 읽는 내내 좀처럼 이야기의 핵심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책이었다. 읽는 내내 길고 길었던 이 책을 거칠게 정리해보면 실패의 필요성과 가치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책에서는 다양한 실례와 사례를 통해 성공을 위해 때로는 실패가 필요하며, 실제 많은 성공의 이면에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실패가 필요함을 보여주고자 한다. 즉, 이 책은 실패론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엮었다.


이 책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부분은 단연코 압도적으로 많은 사례이다. 사례나 이론들은 모두 하나같이 실패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실패 예찬론자인 것만은 아니다. 저자는 왜 사람들이 실패를 이야기하지 않는지에 대해 시작한다. 실제로 성공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실패에 대한 이야기와 사례가 더 많지만 우리 주변에서는 실패에 관한 이야기를 좀처럼 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마치 베이브루스의 홈런 기록보다 그의 삼진아웃 기록이 3배나 많지만 사람들은 그를 삼진 아웃의 제왕이 아닌 홈런왕으로 부르는 것처럼. 이런 실패에 대한 분석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이 책은 단순히 실패를 극복하는 방법이 아니라 실패에 대해 광범위하게 다루는 실패론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실패에 대한 다양한 사례와 이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아니라 실패 자체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의 시도는 단연 돋보인다.


하지만 <성공이 너무 뜨겁거나 실패가 너무 많거나>는 결정적으로 이러한 '실패론'을 이야기하기에는 책의 맥이 없다는 단점이 있다. 책의 맥이 없기 때문에 각자 개별적인 이야기들은 재미가 있고 이해가 되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 이 에피소드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파악할 수가 없다. 간단하다고 생각했던 이야기들이 모이면서 뼈대가 보이지 않게 되고, 이야기는 파악할 수 있지만 정착 책 자체를 파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이러한 아쉬운 점이 있었으나, 적어도 실패에 대해서 만큼은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는 책이었다. 마냥 피하지도 말고 마냥 반기지만도 말아야 할 것이 실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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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송필환 옮김 / 해냄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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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불러주기 전까지 다만 한송이 꽃에 지나지 않았다'는 말을 난 그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대관절 존재 자체가 중요한 것이니 이름이 혹은 이름을 불러주는 행위가 그토록 중요하단 말인가. 라고 난 생각했던 것 같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사람에게 '나'를 각인시킬 수 있는 가장 손 쉬운 방법은 이름이다. 사실 이름은 나에게 중요하기 보다는 그 이름을 부르는 이에게 중요하다. 이름을 불러준다는 행위는 그가 내 이름을 불러주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어찌보면 유일한 방법이다. 그래서 그토록 이름이 중요한지도 모른다. 누군가 나를 불러주는 행위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에. 


한 인간 그리고 또 한 인간, 그녀의 일생을 추적하다

<눈먼 자들의 도시>와 <눈뜬 자들의 도시>와 같이 주제 사라마구는 도시에 살아가는 사람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작가이다. 전작들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도시에서 벌어지는 조금은 거대한 일련의 사건을 관찰하고 기록하기를 즐긴다. 이번 작품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는 그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조금은 차별화 되는 작품이다. 주제 사라마구는 이번 작품에서 한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 대해 관찰한다. 

주인공 주제씨는 중앙등기소에서 보조사무원으로 일하는 적당한 나이를 먹고, 호기심이라고는 그다지 없는 인물이다. 그가 일하는 장소가 등기소라는 점이 독특한데, 사람이 일생에 적어도 두번은 거치게 되는 장소라는 점이다. 적어도 출생신고를 위해 한번은 그리고 죽음을 신고하기 위해 또 한번이다. 산자와 죽은 자가 동거하는 장소가 바로 주제씨가 일하는 중앙등기소이다. 주제씨는 유명인물의 기사를 스크랩하고 그들에 대한 기록을 등기소에서 찾아보는 아주 소소한 취미를 가지고 있다. 물론 타인의 기록을 마음대로 열람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이 정도는 그의 직업적 특성을 감안해서 눈감아 주기로 한다. 그는 우연히 조사를 하던 중 한 여인의 자료를 발견하게 되고, 순수하게 궁금하다는 이유로 그녀의 삶을 추적하기로 하고, 그 과정에서 꽤 모험이 충만한 일을 겪기도 하고, 그녀와 관련된 인물을 만나기도 한다.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는 자칫 모호한 소설로 결말을 받아 들일 수 있다. 주제씨의 추적은 그녀의 삶의 과정에서 시작했으나 죽음으로 끝이 났이 나게 된다. 하지만 주제씨와 등기소의 소장은 그녀의 죽음을 죽음이 아닌 또 다른 삶으로 만들게 된다. 

공식적으로 이 도시에서 한 인간의 죽음을 가장 정확하고 공식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등기소에서 그에 대한 사항을 알아보는 것이다. 그이 일생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그의 생과 사(死)는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불러주기 전까지는 자신이 그저 한 송이 꽃에 지나지 않았다는 고백처럼, 기록되기 전까지는 그 누구의 죽음도 죽음이 아닐지도 모른다. 기록되기 전까지는 그의 생은 죽음으로 남아있지 않게 되는 것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삶과 죽음은 호적등본에 적혀있는 단 한 줄의 차이인지도 모른다. 내가 죽음을 받아들이는 모습과 삶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곰곰하게 생각하게 하는 소설, 그 소설이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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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 이슬람은 전쟁과 불관용의 종교인가 고정관념 Q 9
폴 발타 지음, 정혜용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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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만하면 예루살렘에서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간에 폭력사태와 관련된 뉴스가 전해진다. 각자 자살 폭탄테러와 무차별 보복으로 이어지는 악의 고리를 보면서 난 왜 그들이 싸우는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고작 그 땅 때문에, 국가 때문에 저렇게 오랜 시간 동안 서로에 대한 극도의 증오감을 불태우고 있단 말인가. 하지만 난 사실 지금까지 그들간에 문제는 땅의 문제가 아닌 종교의 문제라 생각했다. 하지만 난 이 책을 통해 종교의 문제를, 정확하게는 종교의 가면을 쓴 땅의 문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고정관념 Q시리즈 중에서도 <유대인>,<이슬람>,<팔레스타인>은 항상 국제뉴스 머리말을 장식하지만 그 누구도 그들에 대해 속시원한 설명을 해주지 않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특히 이 책들은 각 부제가 책을 대변한다. 유대인은 시오니즘으로 대변되는 선민사상을 가지고 있다고 사람들은 생각하고 그들의 그런 특권의식을 불만스럽게 여기지만, 이 책에서는 일반인의 바로 그 고정관념에 의문을 던진다.

 

정말 그들이 그런 특권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느냐고. 이슬람도 마찬가지이다. 한 손에는 코란을 한 손에는 칼로 대변되고, 여성을 억압하는 종교로 대변되는 이슬람이 진정 제대로 된 이슬람이 맞는지를 질문한다. 또한 이스라엘과 끊임없는 영토 분쟁의 당사자인 팔레스타인의 현 위치는 어떠한가에 대해 묻는다.

 

결국 이 세 권을 모두 읽고 나면 , 책은 모두 같은 질문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말 내가 알고 있는 그들이 진정 그들일까. 팔레스타인은 정말 자신들의 종교를 위해 그토록 싸우고 있는 것이며, 이슬람은 여성을 억압하는 칼로 대변되는 종교인지를, 유대인은 진정 선민의식에 사로잡힌 사람들인지를 곰곰히 되묻게 될 것이다. 특히 세 권을 함께 읽으면서 이슬람교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바로 잡을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 이슬람과 코란이 가지고 있는 폭력성은 그 종교 자체보다도 기독교가 만들어낸 허상이 더 많다. 이슬람은 실제로 관용을 배풀 줄 알고, 약자에 대한 배려를 그 어느 종교보다 중요시 한다. 나는 지금까지 한 면을 보고 있었던 셈이다.

 

판단한는 일을 진정 어렵다. 하지만 더 무서운 것은 그래서 주의해야 하는 것은 판단한 것을 사실로 혹은 진실로 믿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고정관념이 사실이라고 믿게 되는 순간 이미 내 편견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이슬람><팔레스타인> 세 권을 통해 중동 지역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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