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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송필환 옮김 / 해냄 / 2008년 2월
평점 :
'그가 불러주기 전까지 다만 한송이 꽃에 지나지 않았다'는 말을 난 그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대관절 존재 자체가 중요한 것이니 이름이 혹은 이름을 불러주는 행위가 그토록 중요하단 말인가. 라고 난 생각했던 것 같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사람에게 '나'를 각인시킬 수 있는 가장 손 쉬운 방법은 이름이다. 사실 이름은 나에게 중요하기 보다는 그 이름을 부르는 이에게 중요하다. 이름을 불러준다는 행위는 그가 내 이름을 불러주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어찌보면 유일한 방법이다. 그래서 그토록 이름이 중요한지도 모른다. 누군가 나를 불러주는 행위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에.
한 인간 그리고 또 한 인간, 그녀의 일생을 추적하다
<눈먼 자들의 도시>와 <눈뜬 자들의 도시>와 같이 주제 사라마구는 도시에 살아가는 사람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작가이다. 전작들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도시에서 벌어지는 조금은 거대한 일련의 사건을 관찰하고 기록하기를 즐긴다. 이번 작품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는 그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조금은 차별화 되는 작품이다. 주제 사라마구는 이번 작품에서 한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 대해 관찰한다.
주인공 주제씨는 중앙등기소에서 보조사무원으로 일하는 적당한 나이를 먹고, 호기심이라고는 그다지 없는 인물이다. 그가 일하는 장소가 등기소라는 점이 독특한데, 사람이 일생에 적어도 두번은 거치게 되는 장소라는 점이다. 적어도 출생신고를 위해 한번은 그리고 죽음을 신고하기 위해 또 한번이다. 산자와 죽은 자가 동거하는 장소가 바로 주제씨가 일하는 중앙등기소이다. 주제씨는 유명인물의 기사를 스크랩하고 그들에 대한 기록을 등기소에서 찾아보는 아주 소소한 취미를 가지고 있다. 물론 타인의 기록을 마음대로 열람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이 정도는 그의 직업적 특성을 감안해서 눈감아 주기로 한다. 그는 우연히 조사를 하던 중 한 여인의 자료를 발견하게 되고, 순수하게 궁금하다는 이유로 그녀의 삶을 추적하기로 하고, 그 과정에서 꽤 모험이 충만한 일을 겪기도 하고, 그녀와 관련된 인물을 만나기도 한다.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는 자칫 모호한 소설로 결말을 받아 들일 수 있다. 주제씨의 추적은 그녀의 삶의 과정에서 시작했으나 죽음으로 끝이 났이 나게 된다. 하지만 주제씨와 등기소의 소장은 그녀의 죽음을 죽음이 아닌 또 다른 삶으로 만들게 된다.
공식적으로 이 도시에서 한 인간의 죽음을 가장 정확하고 공식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등기소에서 그에 대한 사항을 알아보는 것이다. 그이 일생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그의 생과 사(死)는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불러주기 전까지는 자신이 그저 한 송이 꽃에 지나지 않았다는 고백처럼, 기록되기 전까지는 그 누구의 죽음도 죽음이 아닐지도 모른다. 기록되기 전까지는 그의 생은 죽음으로 남아있지 않게 되는 것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삶과 죽음은 호적등본에 적혀있는 단 한 줄의 차이인지도 모른다. 내가 죽음을 받아들이는 모습과 삶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곰곰하게 생각하게 하는 소설, 그 소설이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