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바지 세상을 점령하다]의 서평을 써주세요
청바지 세상을 점령하다 - TBWA KOREA가 청바지를 분석하다
TBWA KOREA 지음 / 알마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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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이 지나가고 2009년이 시작할 무렵, 아니 굳이 이 때가 아니어도 시간에 큰 쉼표가 찍히는 순간, 사람들은 시간을 돌아보는 일을 하곤 한다. 무엇으로 시간을 돌아보고 또한 조직해서 세상을 바라볼지를 고민해야 하는 시간이다. 2008년에도 많은 단어가 세상을 수놓았고, 많은 이들이 다양한 단어를 내놓았다. 그런 이야기 속에 조금 재미있는 소재로 세상을 본 책이 등장했다. 청바지라는 소재로 미국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과거와 현재의 한국까지 이야기하는 책 <청바지 세상을 점령하다>

<청바지 세상을 점령하다>는 청바지의 탄생부터 현재까지, 청바지의 역사와 그 청바지와 함께 한 미국과 세계의 흐름에 대해서 말한다. 종교의 박해에서 벋어나 자유를 찾아 떠난 이들이 만든 미국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그들은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기존에 유럽에서와는 다른 삶의 방식을 받아들여야 했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이들은 그해 겨울을 넘기지 못했기에 그들에게 변화에 대한 적응은 곧 생존이다. 1840년대 한창 서부개척이 이루어지고 골드러시라는 이름으로 모든 이들이 미국 서부로 달려갈 무렵 그들에게는 동양에도 서양이라는 이름으로 대변되는 청바지가 등장했다. 굳은 일을 해야하는 이들에게 싸고 해지지 않는 질긴 옷으로, 미국 서부의 변화를 대변하는 옷이 바로 청바지였다. 그렇게 탄생한 청바지는 미국을 벗어나 전 세계로 팍스 아메리카나의 이름으로 퍼져나갔고, 세계 사람들은 미국의 문화를 향유하며 청바지로 대변되는 자유로운 문화를 즐겼다. 때로 청바지는 자유로운 문화의 상징으로, 사회에 대한 반항의 메세지, 이제는 청바지 사이즈와 가격으로 자신을 대변하는 문화에 맞게 변화를 하며 사람들의 필수품이 되었다.

   
  청바지가 프래그머티즘을 만나지 않았다면? 한떄 유행으로 끝났을 것이다.
사람에 옷을 맞추기 보다 옷에 사람을 맞추었다.
생산 속도를 폭발적으로 가속시키는 컨베이너벨터 장치에 올라타 대량 생산을 시작했다.
그 결과 청바지는 가장 많은 개체들의 피부가 되었다.
프래그머티즘에 기반을 둔 제품들은 미국을 경제적으로 성공한 강국으로 만들었다.
실용성, 효용성을 찬양한 결과다. 가격도, 혁신도 감수했다.
살아남아야 하는 절박감 갑자기 팽창해버린 사회를 유지해야 하는 긴장감.
그들은 현재에 도움이 되는 대답에 관대할 수 밖에 없었다.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 미국의 사회 상황은 실용성에 기반을 둔 크리테이더 들로 넘쳐났다.
포드,에디슨, 라이트형제가 있었고 아인슈타인은 미국으로 망명했다. 채플린, 앤디 워홀 같은 아티스트들도 등장했다.
 
   
<창바지 세상을 점령하다>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책도 두텁지 않고 내용도 어렵지 않고 책도 일반적인 보고서라고 하기에는 자유롭다 싶을 정도로 제작되었다. 오히려 이 책은 표지만 때어놓고 보면 패션잡지의 특별판 같은 느낌으로 매우 가볍다. 이 책에 들어간 활자를 읽는데 걸리는 시간은 물리적으로 1시간 남짓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에 내 청바지를 보면서, 사람들이 입은 청바지를 보면서 생각하는 시간은 물리적인 1시간에 비할바가 아니다. 청바지를 미국 프로그머티즘과 결합하여 시대를 읽을 수 있는 코드로 만들고, 그 코드가 현대까지도 유효함을 정리한 것이다. 왜 미국은 그토록 실용적인 것을 강조하는가, 그들에게 왜 변화는 생존인가, 21세기 보보스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이들은 사회를 어떻게 살아가는가, 미국으로 대변되는 문화에 너무나 익숙해져 이제는 일상을 놓고 보면 미국인지 한국인지 구분할 수 없는 이 삶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한다.
 
이 책은 한 광고 기획사 신입직원들의 보고서이다. 그들이 청바지를 가지고 세상을 읽어보라는 과제에 대한 산물이다. 이 얼마나 멋진 결과물인가. 우리는 청바지 한장을 보면서 그 가격과 디자인을 생각하고 지나갈 뿐이지만, 그들은 청바지라는 매일 접하는 단순한 한장의 옷에서도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생각을 할 수 있다. 사실 한가지 장점이자 단점은 이 책의 표면적 구성이라고 생각한다. '청바지 탄생 150주년 기념'으로 나온 패션 잡지의 특별판처럼 지금까지 읽던 책이라 보기에는 화려하고 독특한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아마도 광고 기획사라는 특성상 책 디자인도 지금 20,30대들에게 접근하기 좋도록 디자인 되어 있는 듯 하다. 나에게는 다소 부담스럽게 나가온 면이 많았지만 지루하지 않은 책 읽기에는 분명 나쁘지 않을 듯 하다. 즐겁지 않고 재미있지 않으면 접하려고 하지 않는 21세기 한국 사회를 반영하는 디자인이라고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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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라면 별 일이 다 생기나부다.   




별일이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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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1-24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님 축하해요^^
저 이 책 주문해뒀는데요...

하루 2009-01-24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은 정말 읽는 재미가 솔솔하답니다. 하하하 :)
+감사합니다. 명절 선물인가봐요 :)
 


난 지금까지 1년 몇 개월 정도 회사를 다녔지만 회사에서 나온 명함을 사실 한 통도 다 써보지 못했다.

회사의 특성상 외부 사람과 자주 만날 일이 있지 않은지라, 사실 명함을 쓸 일이 거의 없다.
(그리고보니 내 명함은 거의 가족, 친척, 친구들과 가끔 일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전달되었군)

사실 명함과 관련해서 재미있는건 명함을 가지고 있으면 꼭 쓸 일이 없다는 사실. 지갑에 들고 다니기는 하지만 
명함을 가지고 있으면 막상 쓸 일이 생기지 않는다. 그런데 재미있는건 꼭 그러다가 지갑정리를 한다거나 해서 
명함이 마침 딱 빈 날 아는 사람을 갑작스럽게 만나거나 혹은 기타 등등으로 인해 사용할 일이 생긴다는거다. 이거 참 난감하다.


사실 몇 일 전에도 점심 시간에 점심을 먹고 커피를 사서 들어오는 길에 누가 툭 치길래 돌아보니 대학 때 같이 스터디를 했던 사람이다.
반가운 마음에 잠깐 인사를 하고 어느 회사에 다니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이야기를 소소하게 나누었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점심 시간이니 시간은 없고 해서 명함 이야기가 나왔는데, 하필 이날도 명함이 없었던거다.
덕분에 난 그분의 명함을 받아서 오고 내가 연락을 하기로 했다. 

 
사실 명함을 지갑에 넣어다니는걸 꽤 싫어한다. 명함은 명함지갑에 들어 있어야 한다는 고전을 신봉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역시 명함을 카드 전표와 함께 지갑에 넣어서 다니는건 좀 아니지 않나 싶은게 솔직한 마음이다.
어쩌면 그래서 지갑 속에 명함이 꼭 필요할 때면 없는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집에 들어온 이 시간에 텐바이텐에 잠시 들어가, 명합지갑과 카드지갑에는 어떤게 있나 유심히 보고 있다. 


그러다가 생각했다. 사실 명함지갑같은거 없어도 전혀 문제 없는데.
명함지갑이 없어도 카드지갑이 없어도 사실 살아가는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걸.
어쩌면 우리는 어떤 물건을 '필요'에 의해 구입하고 소비하는게 아니라 '욕구'에 의해 구입하고 소비하는게 아닐까.
필요와 욕구의 가장 큰 차이점은 외부에서 강제되는냐이다. 요컨데, 필요는 외부에서 강제되지 않지만 욕구는 그렇다는 것.
요컨데, 조금 과격하게 말하면 때로 욕구는 강요된다고 난 생각한다.
개인에 따라 필요와 욕구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현대는 욕구를 강요당하는 시대이다. 좋은 싫든.


결론은  명합지갑과 카드지갑은 굳이 없어도 문제없을 것 같다는 것.
하지만 돌아서면 난 또 욕구에 굴복할지도 모른다는 것.
왜냐하면 난 지금도 인터넷 한 창은 텐바이텐에 할애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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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결국 <쌍화점>은 세 명의 사랑이야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한가지 궁금한 점, 홍림의 진심은 무엇일까. 그는 정말 단 한번도 그를 연모한 적이 없을까.
그에게 남은 마지막 감정은 그에게 칼을 겨눈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까.

단 인간이 한 사람만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가끔 하곤 한다. 어찌 생각해보면  이 사람도 사랑할 수 있고,
저 사람도 사랑할 수 있는게 아닌가..한 사람의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지만
이 사람의 이런 면을, 저 사람의 저런 면을
사랑할 수도 있는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영화를 보는 내내 곰곰히 생각났다. 동시에 다른 두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면 어찌해야할까.
결국 난 홍림이 그와 그녀 모두를 사랑했다고 생각한다. (바이섹슈얼이었구나... OTL)

# 2. 왕의 노래와 왕비의 노래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아주 오랫동안 흥얼거리게 될 듯 하다.
근데, 주진모는 직접 본인이 노래를 부른 것인지 그것이 정말 참으로 아주 궁금하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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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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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에세이는 항상 읽는 즐거움을 톡톡 던져준다. 하루키의 글은 소설보다는 에세이에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편안하게 읽으면서도 간간히 '아 그런건가'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적당한 무게감을 지니고 있다. 굳이 표현하자면 그가 글에서 언급하는 목을 타고 내려가는 차가운 맥주처럼, 그의 글은 청량감이 드는 여름에 마시는 시원만 맥주 같다. 그의 글은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에세이를 써내려 가기 때문에 - 때로는 이게 소재인가 싶을 정도로-  읽고 있으면 즐겁지만 한번쯤은 정리된 글도 읽어보고 싶기는 하다. 
 
 이런 소망에 부합하듯이 이번에는 하루키가 내놓은 자신의 인생에 하나의 축이라고 할 수 있는 달리기와 연결된 글이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레이먼트 카버의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말하는 것들>을 차용한 제목이라고 본인이 스스로 밝혔다. 그야말로 어쩐지라고 말하고 싶어지는 부분이랄까)

 하루키의 소설을 20대가 공감할 수 있는 글이라고 하는 사람이 내 주변에는 많다. 그의 글이 가볍기 때문인지 혹은 하루키 특유의 다소 허무주의적인 감성이 20대와 맞기 때문인지 나는 모르겠다. 하지만 한가지 생각하는건 그의 소설은 다른 세대들이 공감할 수 없을지라도 에세이만큼의 나이와 상관없이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점이다. 이런 글은 그 특유의 어투가 상당히 큰 몫을 차지한다. 사실 그가 이야기하는 내용이나 소재가 반이라면 나머지 반은 하루키 특유의 문체이다. 어떤 에세이를 읽어도 일관성있게 느껴지는 읽고 있으면 '흠, 하루키로군'이라고 생각되는 그의 문체말이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이 점이 십분 발휘된 에세이 모음집이다. 그의 특유의 가겹지만 날아갈 정도는 아닌, 그 특유의 어투로 글이 가볍게 진행되어 읽는데 부담이 없다. 하지만 그의 글을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글이라만 생각하는건 곤란하다. 오히려 난 하루키의 글에서 곰곰히 곱씹을 수 있는 구절은 에세이에 더 많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이런 구절처럼

   
  그 중에 한 사람은 형 (그 사람도 마라토너) 으로부터 배운 문구를 마라톤을 시작하면서부터 줄곧 머리속에서 되뇐다고 했다. Pain is inevitable, Suffereing is optional 이라는게 그의 만트라였다. 정확한 뉘앙스는 번역하기 어렵지만 극히 간단하게 번역하면 "아픔은 피할 수 없지만, 고통은 선택하기에 달렸다'라는 의미가 된다. 가령 달리면서 '아아, 힘들다! 이젠 안되겠다'라고 생각했다고 치면, '힘들다'라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이젠 안되겠다'인지 어떤지는 어디까지나 본인이 결정하기 나름인 것이다. 이 말은 마라톤이라는 경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간결하게 요약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pp.8-9) 

 강한 인내심으로 거리를 쌓아가고 있는 시기인 까닭에, 지금 당장은 시간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시간을 들여 거리를 뛰어간다. 빨리 달리고 싶다고 느껴지면 나름대로 스피드도 올리지만, 설령속도를 올린다 해도 그 달리는 시간을 짧게 해서 몸이 기분 좋은 상태 그대로 내일까지 유지되도록 힘쓴다. 장편소설을 쓰고 있을 때와 똑같은 요령이다. 더 쓸 만하다고 생각 될 때 과감하게 펜을 놓는다. 그렇게 하면 다음 날 집필을 시작할 때 편해진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아마 비슷한 이야기를 썼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계속하는 것 - 리듬을 단절하지 않는 것, 장기적인 작업을 하는 데에는 그것이 중요하다 일단 리듬이 설정되어지기만 하면, 그 뒤는 어떻게든 풀려나간다. 그러나 탄력을 받은 바퀴가 일정한 속도로 확실하게 돌아가기 시작할 때까지는 계속 가속하는 힘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주의를 기울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pp.18-19)
 
   


1982년 처음 아테네에서 마라톤까지 마라톤 42.195Km(사실 진짜 42.195km는 아니었다고 말하지만)을 완주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최근에는 마라톤에서 철인3종경기로 약간의 외도(?)를 했다는 이야기까지 그의 달리기와 관련된 이야기는 읽고 있노라면 한없이 즐거워진다. 그의 인생에 -적어도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렇다 - 한 축이라고 할 수 있는 달리기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일목요연하게 들을 수 있으니 좋고, 사실 무엇보다 너무나 오랜만에 출간된 하루키의 에세이라는 점이 또 좋다.
 

 하지만 정말 좋은 점은 달리기와 관련된 그의 이야기들을 일고 있으면 '결국에는 살아가는 이야기로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쉽게 하지 않는 마라톤을 - 정확하게는 달리기를- 그가 하는 이유에 대해서 듣고 있으면 그렇군 이라며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되니 말이다.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고 싶어서 달리기를 한다기 보다는 지금 이 순간을 충실하게 살고 싶어서 지금을 위해서 달리고 있을 뿐이라는, 그리고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는 그의 이야기가 살아가는 하나의 원칙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즐거운 이유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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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1-28 0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님, 리뷰 당선 축하드려요^^ 다시..

하루 2009-01-28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부끄럽습니다. :)

김현진 2009-01-29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책의 고갱이만을 쏙쏙 뽑아내서 리뷰를 쓰셨네요
이미 읽었지만 다시 읽고픈 책이네요.

하루 2009-01-30 0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갱이만 :)
언제고 하루키 에세이는 한번씩 다시 읽고싶어지는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