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오는 아프리카>를 리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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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는 아프리카
권리 지음 / 씨네21북스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난 평범하지도 그렇다고 소설에 나올 법한 특별한 성장기를 거쳤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황당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난 그냥 자랐다. 어떻게 살아야하나라는 어지러운 고민보다는 중학교를 가고 고등학교를 가고, 대학을 가고 그렇게 자랐다. 성장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하지 않은가..라고 솔직히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보면 딱히 성장이라는 단어나 어감 보다는 그냥 자라고보니 이렇게 되어 있더라라는 어감이 적절한지도 모르겠지 싶다.
조금은 평범하고 조금은 특별한 성장기
아버지가 아주아주 유명한 괴짜화가였던 아들이 있다. 아들은 아버지의 캔버스를 보고 자랐으나, 아버지의 그림에 큰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본래 아버지와 아들은 그런 관계 아닌가. 더군다나 아들이 아버지와 같이 그림에 일단은 적을 두고 있으니 말이다. 소설은 이 아들이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남긴 '눈 오는 아프리카'를 하나만 들고 아버지의 자화상이라는 '야마 자화상'을 찾아 나서는 걸로 시작한다. 자신의 형을 찾기 위해 유럽으로 가야 하는 또 다른 한 청년과 함께. 그들은 그렇게 유럽으로 떠난다. 이 와중에 재미있는건, 형을 찾아 여행을 다니는 청년에게는 절박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거고, 야마의 아들에게서는 아버지의 자화상을 찾아야 한다는 절박감이 느껴지지 않는거다. 그거다, 그래서 이들의 여행은 여행같지 않은거다. 전혀 시작과는 다르게 절박감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이 유유자적 세상을 돌아다니는 기분으로 따라갈 수 있는거다.
한국에서 미대 입시에 실패한 뒤로 어찌해야하나 고민하던 그는 잠시 그림을 접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사건을 겪는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아버지의 유작인 '눈 오는 아프리카'는 젯소로 끊임없이 덮이고, 그 위에는 그의 여행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는다. 유럽에서 남미에서 아프리카에서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여행을 그림으로 남겨가면서, 그의 고민은 무엇으로 캔버스를 채우냐에서 무엇으로 삶을 채워야 하느냐로 넘어간다.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라는 심각한 고민이 아니라, 무엇으로 삶을 채워야 하느냐라는 살면서 한번쯤은 문득문득 하게 되는 그런 고민들 말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어른이 되어 가고 있다'라는 표현에 맞는 어른이 되어 가는걸까?
난 여행을 많이 좋아하지 않아서 1년 동안 세계를 돌아다닌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솔직히 멀미가 난다. 일단 갑부가 아니기 때문에 여행 내내 절대 쾌적하게 즐길 수는 없을 거다. 아주 가끔은 돈이 딸랑 몇 달러 밖에 남지 않을 때도 분명 있을거고, 노숙은 기본이 될지도 모르고, 하루 종일 '왜 이 여행을 해야하나'싶은 마음으로 여행을 하는 날도 있을거다. 하지만, 그런 여행을 견딜만하게 하는건, 그게 '지금' 하고 있는 '여행'이기 때문이다.
사실 읽는 내내 피식거리면서 <눈 오는 아프리카>를 읽었다. 일단 작가의 글이 무심한듯 쓰여진듯 하기도 하고, 이야기가 코믹에 가깝게 쓰여진 어쿠투가 재미나게 느껴진다. 읽으면서 그림에 대해서도 관심이 생겼고, 무엇보다 소설 중간에 등장하는 '예술관'에 대한 토론과 대화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및줄을 그어둘만한 부분이었다. 어른이 된다는 것, 성장한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고, 내 성장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 소설 <눈 오는 아프리카>였다. 사족이지만, 아프리카에 눈이 온다면 이라니 멋지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