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이웃, 함께 사는 마을, 살고 싶은 서울

'마을 오지라퍼', 마을을 헤집다!

지난 9일, 동작구 성대골에 발을 디뎠어요. '마을탐방 : 마을을 가다'를 통해 처음 발 디딘 성대골. 토요일인데도 시장통을 끼고 있어서인지 시끌시끌합니다. '와, 마을다운 걸~' 생각하면서 두리번 두리번. 희망나눔동작네트워크 유호근 사무국장의 인도(?)하에 공동육아터 '해와달 어린이집'을 시작으로, 성대골어린이도서관, 성대골별난공작소, 마을카페 사이시옷 등과 인사했어요.

마을을 온몸과 오감으로 받아들였던 여름날의 토요일. 성대골은 그렇게 이웃들이 서로 힘을 모아 마을공동체를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는데요. 성대골의 꿈 하나도 듣게 되었죠. 협동조합 거리! 마을카페 사이시옷, 성대골별난공작소 등이 자리한 그 길에서 성대골이 할 수 있는 이야기와 재능을 엮어 10개의 협동조합을 2014년까지 만드는 것. 그것을 말하는 유호근 사무국장의 눈이 반짝반짝 빛납니다. 협동과 나눔, 관계와 연계가 일상적으로 흩뿌려진 거리라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뿌듯해지지 않나요?

그 담대한(!) 계획에 자리한 유호근 사무국장. 그는 카페 사이시옷에서 커피를 직접 내리는 바리스타이면서 별난공작소에선 아버지를 목수로 일하게 만들었습니다. 협동조합 거리 조성을 위한 청사진을 짜면서 마을에서 무슨 일이 있으면 달려갑니다. 그를 보고 생각했어요. '아, 마을엔 '마을 오지라퍼'가 필요하구나.' 오지라퍼, 오지랖이 넓은 사람을 뜻하는 말입니다. 마을 활동가 혹은 마을 코디네이터로 부를 수도 있겠지만, 저는 마을 오지라퍼라고 부르고 싶어요.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짜잔~, 짱가 같은 오지라퍼. 당신의 마을에는 어떤 마을 오지라퍼가 있나요? 오지라퍼가 마을을 헤집어 놓을 때, 마을은 풍성해지지 않을까요?

참 그날,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비빔밥을 먹었습니다. 오랜 세월 300여 가구 달동네 사람들의 보금자리였으나 철거라는 철퇴를 맞고 40여 가구만 남은 상도4동 철거마을. 그분들이 정성스레 기른 채소로 범벅한 비빔밥이었죠.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그 비빔밥을 '철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철거될 수 없는 그 무엇이, 바로 삶일 수는 없을까요?

시원한 여름비가 왔으면 좋겠어요. 때를 알고 내리는 좋은 비, 호우시절. 그 여름비가 당신의 무더위와 슬픔도 씻어주길.그렇게, 너에게 닿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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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라이프를 위한 슬로플랜
쓰지 신이치 지음, 장석진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지금, 도서 목록만 살짝 뒤져봐도 안다. 세상은 온통, ‘해야 할 것’ 천국이다. 하나 같이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을 한다. 실은 윽박지르는 모양새다. 10대부터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 20대에 해야 할 것, 30대에 꼭 해야 할 것, 40대에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죽기 전까지 꼭 해야 할 것. 당장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 투성이. 윽박지르는 형태도 가관이다. OO대에 하지 않으면 안 될 OO가지, OO대에 경험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OO가지, OO대에는 사람을 쫓고 OO대에는 일에 미쳐라. 도무지 틈이 없다. 10대부터 죽을 때까지 우리는 뭔가 ‘해야 하’는 강박에 둘러싸인 존재 같다.


이것, 나는 불만이다. 온통 하기만 하란다. 안(못) 하면 낙오자요, 루저, 손쉽게 대수롭지 않게, 낙인을 찍는다. 이것은 일상에서도 마찬가지. 일정한 나이대가 되면 이 사회, 개인이 ‘해야 할’ 일을 친절하게도 정해주신다. 학교를 가고, 졸업을 한다. 회사에 들어가며, 결혼을 한다. 아이를 낳고, 죽어라 뒷바라지를 한다. 그 모든 것,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일까? 글쎄, 그런 것 같진 않다. 세상에 그 나이가 되면 꼭 해야 할 일 따윈 없다. 


사람들, 혼자 바쁘다. 아니, 세상이 바쁘라고 재촉한다. ‘바쁘지 않은 사람은 사람도 아닌’ 세상이다. 그러니 “바쁘다 바빠”를 외쳐야, 사람답게 사는 것처럼 착각한다. 바쁜 게 좋은 거라고? 의중은 알지만, 나는 그런 말, 싫어한다. 


쓰지 신이치, ‘슬로라이프’의 대명사. 그를 통해 나는 ‘부탄’이라는 나라를 알게 됐다. 그가 전해준 부탄은 독특했다. 특히 세계관과 가치관, 격하게 공감했다. 그곳은 느리고 행복하다. 다른 사람, 다른 나라와 비교하지 않는다. 이른바 문명보다는 행복. 빠름보다는 느림. 슬로라이프 전도사의 구미에 딱 들어맞는 나라였다. 쓰지 신이치는 여전히 슬로라이프 전도에 힘을 쏟고 있다. 이 책, 《슬로라이프를 위한 슬로플랜》이 증거다. 슬로라이프, 사람한테 참 좋은데, 설명할 수는 없고... 이런 것이 아니다. 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 뭐, 그것이 이토록 빠른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구시렁거릴 수도 있겠다.


슬로라이프. 단순히 느리게 행하자는 것이 아니다. 우선, 빨라야 했던 이유를 알아야 한다. 남과 비교했기 때문이다. 남의 눈치를 봐야했기 때문이다. 남보다 앞서야한다는 강박 때문이다. 경쟁을 삶에 내면화된 가치로 삼았기 때문이다. 인생을 송두리째 남에게 의존했기 때문이다. 내가 아닌 남의 인생을 살았기 때문이다.


그는 그래서, 이번 책을 통해 ‘할 일’을 내려놓자고 말한다. 덧셈으로만 점철된 삶을 내려놓자고 말한다. 오사다 시로시의 「시인의 죽음」의 일부를 인용한다. “사람은 ‘무엇을 하였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았는가’로 평가받는다.” 그가 보는 세상의 풍경은 과잉이다. 물건의 과잉, 생산의 과잉, 상품의 과잉, 욕망의 과잉, 경쟁의 과잉, 정보의 과잉. 이 모든 과잉을 지탱하는 것이 ‘할 일’의 과잉.


그럼에도, 우리는 내치지 못한다. 과잉에 중독됐기 때문이다. 워커홀릭(일 중독자)임을 자랑스러워하는 사람까지도 부지기수다. 나도 한때는 그런 줄 알았다. 워커홀릭이라는 타이틀, 이 현대문명 사회의 자랑스러운 표식인줄 알았다. 그렇게 ‘할 일’이 많아야 인정받고 출세하는 줄 알았었다. 개뿔이었다. 뒤늦게 깨달았다. 그것, 자본이 조작한 ‘경쟁주의 사회시스템’을 생각 없이, 저항 없이 받아들인 형벌이었음을. ‘바쁘게 산다’는 것,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다. 바쁘다고 힘들어하면서 돈 많이 받아들면 행복한가? 백이면 백, 아니다. 스스로를 행복하다고 억지 자위한다면 모를까.


우리 인간은 태생적으로 바빠선 안 될 DNA를 타고 태어났다. 인류의 수천 년 역사를 살펴봐도 그렇다. 대부분의 시간, 인류는 ‘할 일’에 속박돼 살지 않았다. 때(시간) 되면 움직이고 뭔가를 한 것이 아니었다. 배가 고프면 먹고, 싸고 싶으면 쌌으며, 잠이 오면 잤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삶을 지켰다. ‘할 일’의 과잉에 부대낀 것은 불과 몇 백 년 되지 않는다. 그 ‘할 일’도 ‘하고 싶은 일’이 아니고,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었다.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을 만든 것도 바로 산업혁명이 스타트를 끊고 신자유주의가 정점에 이르게 한 경쟁원리였다.


오해 마시라. 경쟁이 모든 악의 근원이라도 말하는 것, 아니다. 쓰지 신이치의 말을 인용하자. “물론 내가 돈벌이를 목표로 한 삶의 방식을 전적으로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또한 전적으로 경쟁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경쟁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식의 사회는 결국 누구나 살기 힘들며, 오래 유지하기 힘들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p.41)


슬로라이프. 단순히 삶의 형태나 방법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정치적인 태도이자 삶을 능동적으로 가꾸고자 하는 자세다. 곧 정치적인 슬로건이기도 하며, 세계를 바꿀 정치적인 구호이기도 하다. 가령, 슬로푸드. 그것이 패스트푸드의 반대의미로 느리게 만든 음식만을 의미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슬로푸드는 음식을 하찮게 여기지 않는 마음에서 시작된, 지구상 모든 생명과의 연결 혹은 인연에 대한 미안함과 감사의 태도다. 그것도 모르고, 한국 음식이 슬로푸드라고 세계의 음식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개소릴 시부렁대는 멘붕(MB)정권(과 식품대기업)의 움직임은 무식의 극치이자, 이권에 치우친 행태다.  


저자가 강조한 슬로라이프는 ‘지금 이 순간을 살자는 것’이다. 어떤 일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그 자체에도 집중하자는 것. 그리하여, 미래의 불안이라는 명목으로 현재를 담보로 하지 말 것. 지금의 자신을 부정하도록 만드는 불안증폭사회에 휘둘리지 말 것. 


“현대 사회는 수많은 부정 위에 성립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지금의 자신에 대한 부정’으로, 이는 ‘자신의 존재 자체에 대한 부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교육도, 매스미디어도 하나같이 ‘지금의 나는 (적어도 충분하다고 할 만큼) 갖춰져 있지 않다’고 생각하게끔 우리를 유도한다.”(p.114)


그렇다면 이 불안증폭사회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는 ‘뺄셈의 사고’를 권한다. 깊이 공감한다. 철철 흘러넘치는 과잉에서 얼마나 줄여나가느냐가 관건이라는 것. 뺄셈을 통해 우리는 좀 더 여유롭게 세상과 만나고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슬로는 그래서 곧 ‘관계망’의 확장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는 명목, 생산성 향상을 위한 기계로 전락한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것. 무연사회에서 탈피하기 위한 태도이자 자세, 슬로. 천천히 가야, 우리는 옆사람을 보고 옆사람의 처지에 공감하면서 서로의 체온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법이니까.


쓰지 신이치의 슬로플랜은 곧, 인류의 관계망 회복을 위한 방법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머무르는 일과 함께 사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투여한다면,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음을 우리는 획득할 수 있다. “Life is slow. 즉 산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느릿한 과정이다.”(p.184)


나는 빨리빨리도 싫고, 열심히도 싫은 사람이다. 그것이 지금의 멘붕사회를 만든 주요인의 하나라고 본다. 열심히 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빨리빨리 하는 것이 체질에 맞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에게 주홍글씨를 새기는 것이 바람직한가? 좋은 것인가? 세상에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은 딱 하나다. 타인의 아픔과 슬픔을 외면하지 않는 일.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잃고 있다. 용산 참사는 그런 면에서 우리의 영원한 트라우마다. 그러면서도 다큐영화 <두개의 문>이 4만 명을 넘어섰다는 것은 우리가 그저 외면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님을 보여주는 증명일 것이다.


“올바른 사회란, 강한 사람도 약한 사람도, 건강할 때도 병들었을 때도, 거침이 있든 거침이 없든 간에 누구나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서로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존중할 줄 아는 사회다.”(p.227)


다시 말하지만, 내가 읽은 ‘슬로라이프’는 단순하게 ‘느리게 살자’는 방식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슬로라이프는 정치의 문제요, 세계의 변혁을 이야기하는 주제다. 이 책을 ‘느린 것에 대한 예찬’으로만 봤다면, 심각한 인지장애를 가졌다는 얘기다. 멘붕 독서론. 어떻게 살 것인가. 슬로라이프는 그것을 자극한다. 우리 각자의 슬로플랜이 필요한 시대다. 멘붕(MB)의 시대를 탈피하기 위해서라도.


이 책에 대한 서평은 ‘해야 할 일’이 아닌 ‘하고 싶은 일’이었다. 그래서 기꺼이 이렇게 쓴다. 맹꽁이 소리가 그런 나를 행복하게 한다. 맹꽁이에겐 ‘해야 하는 일’ 따윈 없을 것 같다. 물론 나라는 인간, 회사인간에서 “오늘 할 일도 내일로 미루”는 인간형이 됐다. 그래서 “오늘 할 일은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격언 따위 개무시한다.


그런 내가 부끄럽지 않느냐고? 천만에. 대신 나는 맛있는 커피를 내릴 줄 아는 인간이 됐다. 커피 중에서도 느리게 내리는 드립 커피를 더욱 좋아하는 인간이 됐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조금은 헤아릴 수 있는 인간이 됐다. 마을공동체도 그렇게 슬로하게. “내일 할 수 있는 일은 오늘 하지 마라. 오늘 할 수 있는 일은 내일도 할 수 있다.” 쓰지 신이치의 이 바람직한 말에 좀 더 덧붙이고 싶다. “내일 안 되면 그만두는 걸로.”

 

이 책에서 내가 격하게 공감했던 말 중의 하나는 이것이다. “어쩌면 아무도 울지 않는 사회는 행복한 사회라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남자가 울보로 지낼 수 있는 사회’를 마음속으로 그려본다.”(p.80) 나는 제대로 울 줄 아는 남자가 되고 싶다. 당신을 위해서. 나를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아울러, 정희진의 이 말, 격하게 동의한다. “이젠 무엇을 함으로써가 아니라 안 함으로써 세상이 바뀌길 바란다. 무엇을 안 할 것인가? 무엇이 가장 올바른가보다 최소한 어떤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한다가 화두가 돼야 한다.(…) 무엇인가 꼭 해야 하는 이들을 제외하고, 이 계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살길이다. 여름 세끼, 하는 것도 먹는 것도 고역이다. 30도 날씨에 생계 노동은 말할 것도 없고 잠드는 것조차 힘에 부친다. 개인의 기력만이 문제가 아니다. 지구가 망가지고 있다. 무엇을 할 것인가? 아무 것도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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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공동체의 구심점이 된 고양이

1988년 1월, 미국 아이오와주 스펜서시 도서관. 사서 비키 마이런은 도서반납함에서 생후 8주로 추정되는 새끼고양이를 발견했어요. 추위와 굶주림에 바들바들 떨고 있는 이 고양이, 마이런은 시와 직원들을 설득했고 도서관에서 키우기로 결정했습니다. 도서관에 사용되는 십진분류법 창안자의 이름을 따 '듀이'라는 이름을 붙였죠. 듀이 리드모어 북스(Dewy Readmore Books).

그런데, 이 작은 고양이가 마을을 움직였어요. 당시 스펜서시는 경제적 어려움에 빠져 있었고, 많은 주민들이 일터를 잃은 상태. 도서관을 아지트로 삼은 그들에게 듀이는 스스럼없이 안기고 애정을 표했습니다. 도서관엔 특수교육반 아이들의 독서수업이 있었는데, 듀이는 이때도 장애아들에게 몸을 비비고 무릎 위에 오르는 등 귀염을 부렸어요. 냐아옹~ 우울에 빠져있던 마을은 듀이의 애교(?)에 위로를 받고, 사람들은 듀이를 보기 위해 도서관을 자주 찾았다죠.  

듀이와 도서관은 시너지를 내면서 마을(공동체)을 새롭게 일굽니다. 도서관 예산 증액을 놓고 시의회 의원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일자리지 책이 아니"라고 반응했지만, 마이런이 답합니다. "도서관은 창고가 아니에요. 도서관은 마을의 중요한 구심점이에요. 새로 포장한 도로도 물론 좋지만, 그걸로 우리 마을의 정신이 고양되는 건 아니거든요." 듀이 덕분에 주민들이 도서관에 관심을 갖자, 의원들의 마음도 차츰 바뀝니다. 주민들도 우울에서 차츰 탈피했고요.

마을이 한 마리의 고양이로 인해 바뀔 수 있다는 것. 어때요, 믿어지나요? 듀이는 그걸 몸소 보여줬어요. 듀이, 2006년 11월 위종양에 걸려 안락사했는데요. 당시, USA투데이 등 250여 매체가 듀이의 부고를 실었습니다.《세계를 감동시킨 도서관 고양이 듀이》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더 자세히 담겨 있어요.

그러니까 마을에서 길고양이를 만나거든, 쓰레기통 뒤진다고 탓하거나 너무 무심하게 지나치진 마세요. 무책임하게 접근해서 기분 내키는 대로 먹이를 주는 건 절대 금하되, 꾸준히 조금씩 그들에게 인사를 건네보는 건 어떨까요? 언제고 그들이 마을을 바꿀 지도 몰라요. 그렇듯 이전에 그냥 지나치거나 외면했던 사소한 것들에 마음을 열어보세요. 마을은 그렇게 작고 사소한 것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순간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것. '서울 마을공동체 풀뿌리모임(www.maeulnet.net)'에 각 마을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건네주세요. 아주 작고 사소해도 노프라블럼. 다른 마을 사람들과 공유해주세요. :)

참, 듀이라는 이름에서 반짝하지 않으셨어요? 학교를 중시하고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공동체주의자이자 철학자 존 듀이. 그는 이리 말했죠. "다른 사람과 협력하여 배운다." 바로, 마을공동체의 작동원리죠? 7~9일 열리는 마을만들기 전국대회(창원)에서 우리, 만나요. 냐아옹~ 전, (사)마을의 고양이 '똥이'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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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마을이야기, 세상을 바꾸다

지금 전국은 마을이 대세라는 것, 아시죠?  
서울에선 마을공동체가 꿈틀꿈틀, 수원에선 마을르네상스가 짜잔, 부산에선 최근 시민주주형 지역공동체 지원조직인'우리마을'이 시민설명회를 가졌죠. 그밖에도 곳곳에서 마을이 웅비하거나 기지개를 펴고 있는데요. 사실, 지금에서야 마을이 느닷없이 나타난 건 아니에요.  

한국에서의 마을만들기.
어느덧 10년에 달하고 있어요. 마을만들기전국네트워크가 결성된 것도 그런 흐름과 맥을 같이 하고요. 마을만들기 전국대회도 빠질 수 없는 대한민국 마을만들기의 산 역사랍니다. 전국 곳곳에 포진한 마을이 한 자리에 모여 마을을 이야기하고 세상을 아주 조금씩 바꿔가고 있습니다. 올해 그 마을의 살아있는 현장은 창원에서 회포를 풉니다. 제5회 마을만들기 전국대회. 6월7일부터 9일까지 창원시 일대에서 마을과 마을이 만나 인사를 해요.

'천 개의 마을이야기, 세상을 바꾸다.'  
대회 슬로건도 참 좋죠? 그래서 마을만들기 토크쇼, 문화한마당, 마을 자랑대회, 현장탐방, 마을만들기 컨퍼런스, 마을활동가 교류회, 활동전시회 등이 어우러지고요. 뭣보다 마을과 청년을 잇는 '마을만들기 청년대회'가 찐하게 펼쳐집니다. 마을을 넘어 마을을 향해 전국의 마을과 부대끼는 건 어떨까요? 닫아걸지도 말며 내세우지도 않으며 탐닉하지도 않는 우리의 다채로운 천 개의 마을. 마을, 세상을 사유하는 또 하나의 창을 통해 우리 만나요. 문의는 제5회 마을만들기 전국대회 조직위원회의 공근희 간사(055-225-3479). 아울러, 당신과 함께 이 詩를 나누는 봄날이고 싶어요.

꽃이여 (박노해)

자기를 닫아걸면 닫아걸수록
더 숨이 막히고

자신을 내세우면 내세울수록
더 뿌리 뽑히고

자아를 탐닉하면 탐닉할수록
더 시들고 메말라가는

사람의 꽃이여
불행의 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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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이란,

아침에 커피 한 잔을 추출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6월25일은 어쩔 수 없다. 마이클 잭슨이다.

아침 오픈할 때부터 마이클 잭슨이 흘러나오게 해야 한다. 

그냥 자동이다. 내 마음보다 손이 먼저 마이클을 찾고 귀가 원한다.

3년 전 그날, 그랬었고, 작년에도 그랬더니,

올해도 마이클 잭슨을 만나기 위한 손님이 찾아오니까. 

 

아침, 그 여자 손님이 찾아왔다. 

6월25일, 특별히 휴가를 냈단다. 하긴 그녀, 작년에도 그랬다.

이 여자, 우리 가게의 특성을 안다.ㅎㅎ

오늘, 마이클이 흘러나올 것을 짐작한 거다. 센스쟁이!

나이를 묻지 않았지만, 나보다 약간 나이가 많은 것도 같다. 

검은 옷을 입었다. 한마디로, 멋지다. 아우라나 포스, 장난 아니다.

 

"마이클, 잘 지내고 있을까요?" 

물론, 그렇게 말하면서 특별한 대답을 기대한 것은 아니다. 그저 인삿말이다.

 

"좋아하고 있을 것 같아요. 몇 달 전에 휘트니가 합류했잖아요."

 

싱긋 웃는다. 아, 그렇지. 휘트니 휴스턴. 2월11일이었지. 역시 한 시대를 접은 동시대의 슈퍼스타. 영국의 한 매체는 두 사람이 한때 결혼까지 꿈꿨던 연인이었다는, 믿거나 말거나를 보도하기도 했었다. 사실이든 아니든, 중요하지 않다. 세기의 두 팝스타가 천상을 아름다운 선율로 가꾸고 있을 거라는 그녀의 말. 센스 돋는다.

 

"하하, 그러게요. 하늘이 특별히 두 목소리의 앙상블을 원했나 봐요. 듣고 싶은 마이클 있어요?"  

 

"그냥, 마이클이면 돼요. 충분해요."

 

커피를 내렸다. 오늘 같은 날, 그녀는 주문이 필요없음을 안다.

내가 알아서 스페셜 커피를 내려줄 것을 안다. 단골과 주인장 사이의 신호다.

 

마침 나온 노래가 'Heal The World'.

나의 선택은, 어제 특별히 공정무역 커피들로 블렌딩한 힐링 커피. 졸졸졸. 

검은 눈물이다. 세계를 걱정하고 지구를 사랑했던 마이클의 눈물 모아. 

향이 유난히 진하다. 액은 더더욱 검다. 그녀 앞에 살포시 내려놓는다. 

 

향을 음미하는 그녀, 입을 연다.     

"아저씨~ 엑설런트." 엄지를 들어준다.  

 

아무렴, 커피 맛도 모르는 입이 입인가. 나도 그녀의 탁월한 미각에 엄지로 화답해준다.

 

 

 

 

누군가는 마이클 잭슨 코스프레를 입고선 커피를 마시러 왔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잠시 짬을 내 공연을 하겠다며, 마이클의 춤을 선보이고 갔다.

한 무리는 마이클 잭슨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그렇게 오늘은 마이클 잭슨으로 가득했던 이 공간.

 

밤 9시가 넘었다.

본인의 뜻과 무관하게, 유작 앨범이 된 [This Is It]을 튼다.   

2CD 디럭스 에디션의 두 번째 디스크에 있는, 마이클이 직접 짓고 낭송한 詩 . 처음과 끝부분, 이런 말이 흐른다. 

  

"Planet Earth, my home, my place 작은 행성 지구, 나의 고향, 나의 공간 (...) Planet Earth, gentle and blue 작은 행성 지구, 온화하고 푸르다. 

With all my heart, I Love You 나의 온 마음을 담아, 사랑해."

 

마이클이 살아 있었다면,

이 무슨 손발 오글와글 거리는 낭송이자 고백이냐고 지청구를 늘어놓겠지만,

3년 전 그날 이후, 도저히, 차마, 그럴 수가 없다.

그건 마이클의 명백한 진심이라고 찰떡처럼 믿고야 만다.

With all my heart!

 

 

스캔들 혹은 독설적 가십이 난무하고,
오해와 조롱 섞인 언사들이 증식한 것도 사실이고, 

팝의 황제라는 그의 커리어가 계속 내리막을 걸은 것도 사실이지만,
느닷없는 죽음으로 인해 마이클은 여전히 슈퍼스타임을 입증했다. 

물론 그는 대중의 오해와 편견에 고통 받은 슈퍼스타였었다.

슈퍼스타의 필요충분조건이 있다. 즉, 개인의 죽음이 한 시대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도 슈퍼스타만이 향유할 수 있는 특권. 한 시대가 고스란히 막을 내렸던 마이클의 죽음이었다.

 

6월25일.

민족의 비극, 6·25인데,

나는 반공세대로 길들여졌음에도, 

3년 전부터, 6월25일을 슈퍼스타 마이클 잭슨이 승천한 날로 기억한다. (내 어린 날의 핀업걸, <미녀삼총사> 파라 포셋이 함께 눈을 감은. ㅠ.ㅠ)

못돼 먹은 놈이라고 욕 들어도 할 말 없다.

  

9시 됐을 때, 문 앞에 써 붙였다. "혼자 온 손님만 받습니다."

당연히 주인장의 제멋대로 신공. 싱글 천국, 커플 지옥.

  

혼자 온 사람들이 하나둘 들어온다.

쉿, 아무말도 필요없다. 자리에만 앉으라고 권했다. 웃는 낯으로. 

따로 주문이 필요없다고 했다. 드리겠다고. 

꾸준히 들어온다.

이 도시엔, 이 마을엔 혼자인 사람도 꽤 있다. 물론 이 시간, 혼자이고 싶은 사람도 있다. 

 

그들을 위해 준비한 스페셜 커피 레시피, 'You are not alone'.

말 없이 외로운 밤 9시, 오롯이 외로운 당신만을 위해 준비했다. 

당신만의 외로움을 품은 커피 한 잔, You are not alone.

다 함께 외로운 밤 9시의 커피, 그래서 당신과 나, 외롭지 않다. 

커피 한 잔이 당신과 나를 연결해 주니까. :)

 

계속 나는 커피를 내렸다. 외로워도 외롭지 않음을 알려주기 위해서.

6월25일 밤 9시의 커피는 그렇게 외로움을 똑똑 떨어트리고 있었다. 

 

마이클, 당신이 외롭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당신이 그립거든요. ㅠ,ㅠ

마이클, 정말 최고였어요!

잘 지내나요, 당신?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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