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두 해 일은 아니다만,

대한민국 경찰 수장(출신)들, 아주 가관이다.

 

빤빤한 조현오 오늘에서야 사퇴했는데,

분명 허준영, 김석기 등의 피부(!)를 물려받아서 그럴 거야.

 

   몰염치, 무책임, 개막장의 피부!

이런 피부를 가진 경찰 수장 아래 치안은, 죽지 않으면 천만다행.

 

그런 놈들이 국회로까지 들어서려고 발버둥 치시는데,

대한민국 국회는 구석기 시대로 회귀하는 것 아닐까?

 

'범죄와의 전쟁'은 딴 데 있지 않다.

경찰 수장(출신)들의 국회 진입을 막는 것, 그게 범죄와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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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미도 한정판 - 일반판 + 싸인액자(동판+아크릴) + 스페셜북 + 엽서6종 + 양장본케이스 (3Disc)
강우석 감독, 설경구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04년 7월
평점 :
품절


하나같이 국가를 내세운다. "이모냥 이꼬라지"인 나라를 구하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밝힌다. 구국의 신념이다. 자신만이 탁류에 휘말린 나라를 구할 수 있단다. 그 표정 또한 얼마나 진중한지. 나는 그만 그들의 진정성(?)에 감동해 눈물을 뚝뚝 흘리고야 말 것 같다. 눈빛엔 불꽃이 팍팍 튀고, 얼굴 주변 표정은 파르라니 떨린다. 아, 이토록 나라를 걱정하는 지사들이 많은데, 이 나라의 미래가 어찌 어두울쏜가! 

 

백의종마(?), 김무성이 잔뜩 비장미를 품고 '감수성'을 연출하는 뉴스를 봤다. 내용인즉슨, 구국의 대오로 감수성을 흔들어대는 오랑캐를 무찌르자는 결연한 의지였다. 이런 것이다.

 

"급진진보는 연대해서 후보를 단일화하는데 우파는 왜 단일화하지 못하는가. 새누리당 후보 중에 다른 우파 정당 후보보다 지지율이 낮은 후보는 사퇴하고 다른 우파 정당 후보를 지원해서 나라를 구하자!" 요약하면 이렇다. "우파 단일화로 나라구하자."  

 

사실, 모를 소리다. 급진진보는 뉴규? 진짜 우파는 또 어데? 행여 지금의 야권연대(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를 '급진진보'라고 표현했다면, 똥오줌 못가리는 얼라의 칭얼댐이고, 새누리당과 일련의 비슷한 무리를 '우파'로 뭉뚱그렸다면, 꼴통 주제에 육갑 떠는 꼬라지다. 우파보다 '돈파' 혹은 '꼴통'에 훨씬 가까운 주제에 지랄 옆차기 하고 있다.

 

그건, <실미도>의 영악 혹은 발광과 닮은 꼴이다. 관객 1000만 넘은 국가주의 옹호 영화말이다. 기실 이 영화, 참으로 영악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국가주의에 대한 도전'이라는 도발적인 언사를 구사하면서 홍보했었다. 결과는 대성공. 연기한 배우들이나 고생한 스탭들은 고생하고 애썼다는 얘길 들을 만하겠으나 영화에 대해선 결코 동조할 수가 없다. 마케팅은 속임수를 썼다.

 

특히 이 영화, "국가주의를 끝장내라"는 식으로 언뜻 국가주의에 '메스'를 들이댄 듯하지만 그것, '할리우드 보이스 액션'이었다. 오히려 국가주의를 은폐, 아니 옹호하는 듯한 자세를 취한다. '자기기만'에 '관객 모독'.


자, 그 이유를 따져보자. 국가주의에 희생당한 이들의 비극. 그것이 <실미도>를 관통하는 시선이었다. 그럼에도 카메라는 '왜 그들이 희생당했고 희생당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다루지 않는다. 당시 남북한 관계에서의 역사적 정치적인 의미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없다. 아니, 못한다. 애당초 그럴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실화'라는 외피로 둘러싼 면피 외에는 네버!


그 지점이다. 국가주의에 대해 정면 도전한다던 영화가 그 이면과 맥락에 대한 해석을 소홀히 했다는 사실. 뭐 하자는 플레이? '스텝 바이 스텝'도 아니고 영화는 스타트라인에만 섰다가 오히려 역주행한 결과만 낳고 말았다.


그걸 얼버무리기 위해 선택한 것이 감정의 과잉이었다. 김일성 목을 따기 위해 급조된 684부대원들이 내몰리게 되는 죽음. '무장공비'로 오인된 채 자폭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 <실미도>는 중앙정보부로 대변되는 국가에 일방적으로 희생당할 수밖에 없던 시대 상황을 차용해 눈물을 짜내는 방식을 택한다. 참으로 빈곤하고 빈약하다. 눈물을 짜내야 한다는 사실에만 집착해 과도하고 비인간적인 훈련장면과 '북파'가 좌절된 상황의 기술에만 역점을 둔 것이다. 


시나리오를 꼼꼼히 따져보질 않아서 그 의도를 명확히 추론할 수는 없지만 편집된 영화만 놓고 보자면 <실미도>의 국가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은 느슨하기 짝이 없다. 개인과 국가, 그리고 역사까지 범벅된 이야기는 비장하거나 무겁기 마련이다. 강우석 감독은 이를 정면 돌파했다고 했지만 '개인은 국가나 역사 앞에서 어떤 존재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마초들의 영웅주의와 연대감을 강조하는 것이 다다. 그래서 어쨌다고? 그들을 불쌍해하라고?


국가와 맞장을 뜨면 희생은 늘 개인의 몫임은 누구나 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결과의 빤함을 신파극으로 만들어낸 솜씨는 일품이지만 시대를, 역사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 결과는 한쪽으로 너무 기운다. 외려 제대로 된 국가를 만들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는 소지를 남겨놓는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등 대통령이라는 가카 개인에 대한 충성이 강조된 시대를 넘어 진짜 국가다운 국가를 만들어보라는 메시지냐 뭐냐? 국가를 형성하는 새로운 틀을 조성하자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교육대장의 자살도 한편으로 뜬금없다. 애초 그는 국가에 의해 684부대의 책임자로 임명됐고 국가의도에 맞춰 그들을 사육했다. 그의 판단과 행동의 근간은 국가라 일컬어지는 상부의 명령이었고 철저하게 군대식으로 길들어진 인간형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갑자기 인간적으로 변신했다고? 그것도 자기 부하들이 몰살을 당하도록 하는 선택을 하면서? 무슨 연유로? 어떤 계기로? 그럴 바엔 진즉 684부대의 책임자로 임명되기 전에 자결해 버리지 그랬는가 말이다.(강우석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실화 속의 교육대장은 망치로 맞아죽었다고 했다. 영화 속 자살은 감독의 '선택'이라고 했다.)


<실미도>는 거짓 눈물을 짜내는, 투박함을 가장한 기교에 불과하다. '이슈'에는 성공했지만 역사를 불러오는 데는 실패한 영화. 차라리 국가와 개인 간의 제대로 된 역사 인식과 영화사적으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작업은 비전향 장기수 김선명 씨를 다룬 <선택>을 보는 것이 훨씬 낫다. <실미도>의 카피는 너무 위선적이다. "32년을 숨겨온 진실... 이제는 말한다!" 이는 자신만이 그 진실에 접근했다는 오만함이다(자신감이 아니다).

 

그러니까, 내 결론은 <실미도>, 국가주의에 반항을 하기는커녕 투항하고 응석을 부린 영화. 토할 뻔했다.  

 

다시 돌아가서, 나라를 구하겠다고? '내 이권을 지켜달라'는 외침을 그렇게 포장하는 것도 기술이다만. 너무 뻔뻔하지 않아? 평소엔 나라 말아먹기에 여념 없는, 아니 나라 따위는 생각하지도 않는 작자(들)가 저리 외치다니. 하긴 원래 그들은 빤빤했지. 그래, 알면서 괜히 내가 앙탈부렸다. 하도 꼬라지가 개무성하여. 김무성, 보고 있나? 나라보다 비정규직부터 구해다오. 비정규직 구하는 것이 곧 나라를 구하는 것일지니. 나는 나라 구하는 것 따윈 관심 없지만 비정규직을 구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 중의 하나임을 안다.

 

김무성이 속한 당은 물론, 당연히 민주통합당이 그 일을 해 줄 것이라고 믿으면 바보고. 그놈들은 정권 교체, 가카 심판만 알지, 세상을 바꾸는 세력도, 99%를 위한 세력이 아니니까.   

 

내가 꿈꾸는 세상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 탈핵, 탈FTA, 탈학벌, 탈비정규직... 그러한 것이 내가 바라는, 진짜 세상을 바꾸는 것이라고 믿는다. 아, 정치적 커밍아웃을 한 셈인가?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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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이웃, 함께 사는 마을, 살고 싶은 서울

화이트데이 : 사탕보다 더 맛있는 마을

일본 가가와 현의 작은 섬, 나오시마. 과거 구리제련소로 인한 환경오염으로 주민들이 하나둘 떠나 유령섬이 됐어요. 그러나 지금, 달라요. 1987년 어린이교육기업 '베네세'가 섬 일부를 샀습니다. 나오시마를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프로젝트가 시작됐고요. 지난하게 이뤄진 작업, 나오시마는 지금 세계인의 주목을 끄는 섬입니다.

대기업의 투자 덕분이었냐고요? No! 그걸 무시할 순 없지만, 숨은 주인공은 바로 주민들! 섬에 미술관 짓는다고 명소가 된다면야, 우리나라도 섬마다 미술관을 지으면 되겠죠. 중요한 건, 나오시마 주민들이 문화예술을 자신들의 삶으로 받아들였어요. 문화예술의 주체가 됨과 동시에 문화예술을 위해 자기네 일상을 양보한 거죠.

여행객들이 돈을 풀면 슈퍼마켓, 여관, 식당 모두 삐가번쩍 간판을 달고 호객행위를 하고, 정체불명의 카페들이 흥청망청대는 풍경. 우리가 이런 것에 익숙하다면 나오시마 주민들은 욕심을 조절하며 문화예술이 숨쉬는, 고즈넉한 단절을 유지했어요. 이곳엔 네온사인은 물론 별 다섯 호텔도 없고, 슈퍼마켓도 일찍 문을 닫는답니다.

이런 마을, 어때요? 삶과 유리되지 않은 예술과 찰랑거리는 바다만 존재하는 곳. 전 세계 사람들이 예술적 고립감을 느끼려고 수고로움을 감수하며 찾는 곳. 예술의 섬 나오시마입니다. 이곳, 안도 다다오가 만든 '지중 미술관'에서 별빛 따사로운 밤하늘도 볼 수 있어요. 도시의 번잡함에서 잠시 로그아웃하고 싶을 때, 1년 전 일본 동북부 대지진도 추모할 겸 가볼까요? 우리, 거기서 마주치면 가벼운 눈인사라도 나눠요.

 

그나저나 베네세 같은 사회공헌 제대로 하는 기업, 어디 없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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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이웃, 함께 사는 마을, 살고 싶은 서울

서울에서의 평화 : 마을공동체 전성시대

오스트리아 출신의 디자이너 '빅터 파파넥'. 그는 세계를 돌아다니며 각 지역 전통이나 환경을 훼손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필요한 디자인을 하는 일에 평생을 바쳤어요. 발리에 가서는 버려진 깡통으로 9센트짜리 라디오를 만들었어요. 그리고 외관 디자인은 원주민들에게 맡겼습니다. "자, 당신들이 원하는 디자인을 해주세요." 그 라디오. 9센트 이상의 가치를 지녔겠죠? ^^

유명 디자이너의 이름이 곧 명품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값비싼 브랜드가 되어 많은 사람들의 소비욕구를 부추기고 선망의 대상이 되는 세태. 빅터 파파넥은 그것을 거슬렀던 거죠. 그들이 필요로 하는 디자인을 하게 하라. 원주민들의 삶에 담긴 멋을 존중한 빅터 파파넥의 생각에서 우리는 마을공동체를 비추어 봅니다.

마을공동체는 온전하게 마을 사람들의 디자인에 의해 나오는 것입니다. '디자인 서울'은 그런 마을공동체가 모인 도시인 것이죠. 자, 당신의 디자인이 마을을 바꾸고, 서울을 다시 태어나게 합니다. 자, 당신의 삶에 담긴 멋으로 디자인 해 주세요. 그리하여, 당신의 디자인에 취한 마을공동체에서 살고 싶습니다. 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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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봄눈

 

강풍을 동반한 비에 이어 눈이 날린다. 씽씽 불어라. 펄펄 날려라. 4월이라는 달력의 타이틀이 무색하다. 그러나 '4월'이라는 것을 제한다면, 그게 그리 대순가. 실은 4월의 눈, 반갑고 좋았다.(춥다고 봄날씨가 왜 이러느냐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말은 못했지만^^;) 19년 만이라고 했다. 19년 만의 손님이잖나.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봄비도 그렇다. 어느 때부턴가 봄은 가뭄이 더 익숙한 계절이었다. 그런데, 이틀에 걸쳐 내렸던 봄비라니. 젖은 봄밤이 섹시했다. 어쩌면 쉬이 찾아오지 않을 봄비의 흐느낌. 어젠 특히 소리도 좋았고, 내음도 좋았다.

 

무릇, 봄밤은 그렇게 익어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 누군가의 마음에만 쌓인 봄눈과 함께.

 

 

미도리  

 

 

 

어제 봄비 소리 들으면서 이번 4월, 모처럼 미도리를 꼭 만나야겠다고 다짐했다. 봄날의 곰 같은 미도리. 그래, 맞다. 《상실의 계절(노르웨이의 숲)》의 미도리. 봄눈 같은 그 여자.

 

미도리도 아마, 봄밤을 가장 좋아하지 않을까? 미도리와 봄커피 한 잔, 하고 싶어졌다. 그녀는 아마 혀가 얼얼할 정도의 시큼한 산미의 커피를 좋아할 것 같다. 나는 그 커피, 미도리 커피라고 명명한다. 봄은 산미가 찐한 커피가 제격이다.

 

봄밤

 

어제 북살롱에서 만난 장석남 시인, 봄밤에는 바람나는 것이 제격이라고 했다. 바람나지 않으면 봄밤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니 여러분 모두 봄밤에 바람나는 것이 자신의 바람이라고 했다. 

 

그래, 봄밤에는 바람. 그래서 나, 봄밤이라는 계절을 가장 좋아하는 것일까.

그러니까 당신의 봄바람, 죄 아니다. 봄밤이 그렇게 부추겼으니까. 

봄바람에 흔들려야 생명인 것이다. 봄밤이니까.  

 

내게 봄은 김수영 시인의 '봄밤'과 함께 오는 것이었는데, 하나 더 추가요~

 

봄밤 2


봄밤엔 바람나네
內外 없이 바람나네
방들을 헐고 바람들 들이네
봄밤에 나는 바람난 숨결들에 반하네
늙은 살구나무의 밤샘 신음에
개나리 울타리가 노랗게 앓네
봄밤에 나는 바람난 國境이네
內外 없이, 憂國忠情 없이
바람난 國境이네
그러나 봄밤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앓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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