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일본영화) - 할인행사
쿠보츠카 요스케 출연 / 스타맥스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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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은 허구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강력한 현실이고,

이 허구와 현실을 이어주는 것은 날조와 왜곡을 통해 만들어진 집단적 기억이며, 이 기억이 만드는 집단적 정체감이 개인을 개인으로 정립시킨다.

현실적 실체가 된 상상의 공동체가 억압과 폐쇄의 위험을 벗어버리려면 ‘열린 공동체’로 진화해야 한다.

그 공동체의 핵심은 민족적․문화적 소수파(이방인)의 존재다.


- 고자카이 도시아키의 <민족은 없다> 중에서 -


뜨겁다. 계절도 그렇지만, 올림픽 때문이다. 공식적인 국가대항전. 자본이 숨은 주인공이지만, 어쨌든 나라를 걸고 싸운다. 이기거나 지거나 상관 없이 출전만으로도 영광이라는 올림픽 공식 멘트는 그저 흘려들어도 좋을 만큼의 농담이다. 이긴 자만이 모든 것을 가진다. 져도, "괜찮아"라고 위로해주지만, 기억은 거기까지. 이긴 자만 기억하는 세상은 여전하고, 꼭 이겨야만 하는 그런 나라, 있다! 


후끈하다. 한국과 일본. 식민과 피식민의 기억은 영원할 마당. 쥐새끼는 느닷없이 바다를 건너 독도에 발을 디뎠다. 그야말로 뜬금포. 평소와는 어울리지 않는 행보로, 한일 양국 시끌시끌하다. 축구는 그런 상황에서 어떤 정점이었다. 동메달을 놓고 벌어진 3·4위전. 한국이 이겼다. 그것도 2대0. 잘 했고, 이겼다. 


나는 어쩔 수 없는 한국인임을 확인했다. 누가 이기든 상관없다는 '공식적' 멘트도 막상 경기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고스란히 나는 태극전사였다. 한국팀의 몸짓 하나하나에 내 마음이 쏠렸다. 울트라 닛뽄은 그냥 들러리였다. 이겨서 약간 미안하긴 했지만, 그것도 승리의 기쁨 앞에선 그저 거품에 불과했다. 


살짝 궁금했다. 내가 일본에서 태어난 일본인이었다면 달랐겠지? 울화통이 터져서 죽었겠지? 독도에서 찍찍 거리는 쥐새끼, 당장 쥐어패고 싶었겠지? 일본에서 태어나서 조용한 외교라는 명분아래 일본에 슬쩍 마음을 두던 평소와 달리, 뭔 뻘짓을 한 거야? 흠, 그렇다면 재일교포라면 어떤 심정일까? 재일교포도 물론 살아온 환경이나 여건에 따라 그 층위가 다르겠지만. 스기하라에게 묻고 싶었다. 


스기하라? 뉴규? 의 주인공이다. 


아참, 이 글은 나(스기하라)의 나레이션으로 전개된다.


이건 나의 연애이야기다


나? 태어날 때 선택 따윈 못했다. 당연하다. ‘수십억분의 1’의 경쟁률을 힘겹게 뚫고 세상에 나온 것만으로 감지덕지할 처지잖아. 어쭈구리, 그러다보니 여기저기 족쇄가 나를 묶고 있었다. 가족의 일원, 국가의 구성원, 민족의 자손. 오호, 이건 내가 원하던 바가 아닌데, 그렇게 주어졌다. 


어쨌거나, 난 일본에서 태어났다. 이른바 코리안저패니즈. 일본에서 태어나서 일본에서만 살았어. 일본인과 하등 다를 바가 없지. 그런데 남들은 나를 “재일한국인”이라고 불러. 이런, 이건 누가 붙인 이름이야? 이봐, 사자는 자신을 사자라고 안 불러. 너희가 멋대로 붙인 이름이잖아. 난 나라구! 왜 날 너희 맘대로 만든 틀에 묶어 놓구 평가하나? 그렇게 이름을 붙여 차별하지 않으면 불안하지? 차이를 차별로 내모는 또라이들.


아차, 좀 오바했군. 이건 나의 연애 이야기였지. 잊어버려...^^;


나 좀 묶어 두지 말고 내버려 둘래? 


“민족, 조국, 국가, 단일, 애국, 통일, 동포, 친선

지배, 억압, 예속, 침략, 편견, 차별 … 제기랄

배타, 배척, 선민, 혈족, 순수, 혈통, 단결 … 지.겨.워.”


아빠는 이런 족쇄에서 나를 풀어주려고 국적을 바꿨다. 엄마와 하와이를 간다는 핑계로 대고. 하지만 나는 안다. 아빠는 내게 구시대를 물려주고 싶지 않았던 거다. 재일교포니, 일본인이니, 엿이나 먹을 짓이다. 이 넓은 세상. 국경선 따위가 나의 행로를 제어할 게 무어냐고. 


그래서 닭들이나 할 짓인 ‘슈퍼그레이트치킨레이스’는 그런 나를 해방시킨다. 나는 원 밖의 강한 적들과 싸우면 된다. 나를 둘러싼 이 허구의 세상과도 마찬가지. 다른 건 없다. 어느 쪽에도 소속되지 않는다. 소속되지 않은 자유로움, 나는 즐긴다. 


사쿠라이(나의 여자친구지)! 그런데 넌 왜 그래? 내 피에 대한 진실한 고백을 그렇게 뭉개버리다니.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몸이 안 따라온다고? 한국인이나 중국인의 피는 더럽다고? 이런, 장미꽃을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아름다운 향기는 그대론데 나는 ‘재일한국인’이 되는 순간, 왜 피가 더러워지는 거지? 웃기는군. 너처럼 자유분방해 뵈는 애가. 그것도 아빠 얘기라며 그걸 쉽게 믿어버리는 것도 우스워.


아, 이건 나의 연애이야기였지. 너와 직접 연관된 이야기인데 너를 이렇게 묘사하면 안되지...^^; 어쨌든, 넌 예뻐서 좋아. 팬티가 보여도 쪽 팔리는지 모르는 네가 좋아. 내가 어느 국적의 사람이건, 어느 민족이건, 정말 상관 않는 거지? 그냥 나라는 인간 자체를 좋아하는 거지? ‘그냥’ 친구가 ‘진짜’ 친구라잖아, 하하.


살아있다, 사랑한다


일본에 있는 재일교포 이야기, 너무 무겁게 보인다고? 걱정마. 이건 발랄하고 경쾌한 사랑이야기니까. 그냥 내 연애이야기야. 살아있어서 사랑하고, 사랑해서 즐겁고. 그래, 사랑 그놈, 부질없는 짓인줄 알지만, 그래도 어떡해. 내겐 사랑이 우선이고 최고야. 친구 정일의 죽음도 사쿠라이, 널 향한 마음을 멈추게 할 순 없어. 민족, 국가, 그런 건 거추장스러울 뿐이야.


물론 국경이 있고, 핏줄에 대한 집착이 있는 한 국가나 민족의 구분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 잘 알아. 그렇지만 나 호들갑 같은 거 떨지 않아. 한국 국적이라고, 단일민족 한핏줄이라는 두루뭉술한 말로, 내 나라 내 동포 내 민족이라고 감싸 안을 생각은 전혀 없어. 


그렇지 않아? 5·16 군사쿠데타를 불가피한 일이라고 빡빡 우기고, 공천을 현금으로 장사하는 족속들과 내가 한 동포라는 테두리에 들어갈 이유? 없잖아! 독재자의 딸이자 독재자 DNA를 그대로 물려 받은 자를 향해 거짓 충성을 맹세하는 권력 불나방들과 같은 민족으로 취급 받는 것도 기분 나빠. 완전 나빠! 


아, 또 깜빡했군. 이건 내 연애이야기일 뿐이야. 넘어가지...ㅋㅋ 정치적 발언? 그런 건 없는 걸로~ 내가 뭔 정치이야기 같은 걸 하겠어, 킁킁. 


그래, 불만있냐?


뭐, 하나가 돼야만 직성이 풀리고 단결만이 살 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배알 꼴리겠지만, 별 수 있나? 난 일본에 사는 재일한국인이야. 당신들에게 동질감이나 민족 감정을 느껴야할 이유 따윈 없어! 


‘애국’의 이름으로 하나될 것도 없고 ‘민족’을 기치로 연대해야 할 의무도 없지. 그 광란의 한-일전. 난 어느 편도 아니야. 내가 응원하고 싶은 쪽을 응원할 뿐이야. 어느 편인가 묻는 당신에게, 조까라 마이싱~! 


아, 내 연애이야기는 이걸로 끝. 난 사랑에 빠졌고 너무 아프다. 그런데 계속 아프고 싶어. 내가 지껄인 말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래. 불만있는 자, 나에게 돌을 던져라. 난 당신들에 의해 내 삶의 선택과 주체성을 휘둘리고 싶진 않다! 다 맞아주마. 다 뎀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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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시장 이야기 - 우리나라 최초의 사설 상설시장 광장시장의 100년사!
김종광 지음 / 샘터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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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그러니까, 시장통 이야기입니다. 그것도 우리나라 시장통 역사를 통틀어 가장 오래 된. 사설 상설시장의 최고 언니이자, 전국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도소매 시장인 광장시장. 이젠 '재래시장'이라고 불리는 가장 오래된 시장의 무용담. 


그래서 왁다글왁다글합니다. 여느 시장통을 떠올리면 그러하듯, 복작복작 고래고래 왁자지껄 업&다운. 소릴 질러 손님을 끌고, 한 푼이라도 더 받고자 하는 상인과 에누리하려는 손님 사이의 흥정이 꽃 핍니다. 빽빽한 시장통이 가지는 활력도 있습니다. 저잣거리는 늘 흥미로운 법이니까요. 모름지기 시장은 떠들썩해야 하는 법. 중구난방, 오도방정, 그게 또 시장의 매력이죠.  


그러다 보니, 시장에는 이야기가 꼬리처럼 따릅니다. 더구나 광장시장은 우리나라 최고의 역사를 자랑하는 곳.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피고 졌을까요. 100년 이상의 역사가 잉태한 이야기의 보물창고. 《광장시장 이야기》에 묻은 삶의 흔적, 사회의 변화는 고스란히 이야기입니다. 광장시장 자체가 하나의 사소하고 거대한 이야기의 집합체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 사람들이 살았고 여전히 살고 있으니까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 돈의 흐름을 간파할 수 있는 곳, 쌀값과 금값을 기준으로 해서 경제 동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파악할 수 있는 곳, 시장의 거상들의 동태로 호경기 불경기를 짐작할 수 있는 곳, 그리고 온갖 말발이 좌웅을 가리는 곳……"(p.221)


버스를 타고 오가는 길, 버스 안에서 늘 맞닥뜨리는 곳이 광장시장입니다. 직접 밟아보진 못하고 눈길에 담기만 하던 그곳. 《광장시장 이야기》를 통해 슬쩍 속살을 엿봤습니다. 광장이 '廣場'일 거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니더군요. 광()교와 장()교의 사이에 있다하여 너르고 긴 '廣長'으로 시작, 넓은 곳집 '廣藏'으로 바뀐 역사를 만났습니다. 동대문시장으로 불렸다는 것도 알았고요. 왜 남대문시장만 있을까, 생각했던 적이 있었는데, 광장시장이 동대문시장이었다니! 


광장시장. 최초의 사설 상설시장답게, 시장의 시장이었습니다. 광장시장의 위상, 생각보다 대단했더군요. 광장시장이 없었다면 사람들의 기본적인 삶이 불가능했을 거라는 말까지 나오는 것을 보면. 하긴, 없는 게 없다는 말, 들은 적 있습니다. 사실 그곳에서 저희 커피하우스 컵도 만들었긴 해요. 제가 직접 안 가긴 했지만요. 다음엔 꼭 함께 가야겠어요. 뭣보다, '기록되지 않은 다수의 시장'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백호는 기록되지 않는 조선 사람 다수의 시장은 동대문이라고 생각했다. 대다수 조선 사람은 5일장이 유지되지 않으면 삶 자체가 불가능했듯이, 서울의 사람은 동대문시장이라는 재래시장이 없었다면 기본적인 삶이 불가능했다. 그것이 동대문시장이 확대될 수도 없었지만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였다. 종로의 화신백화점, 명동의 일본인 백화점, 그 최첨단 백화점들이 아무리 떵떵거려도 동대문시장은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테다. 이 재래시장이 없으면 안 되는 조선 사람의 삶과 함께하기 때문이다."(p.55)


그래서일까요. '정치쇼'를 하기에도 제격이었을 겁니다. 정치인들이 이런 시장을 놓칠리야 없죠. 시장의 시장, 서민들의 온 삶이 묻은 곳, 오래된 역사와 이야기가 있는 곳. 충분한 이유가 있죠. 서울 시장이 꼭 얼굴을 들이밀고, 국회의원 나리들께서도 때가 되면 '서민용' 코스프레를 위해 사진(촬영)기자를 동반해 다녀가시죠. 


그러고 보면, 광장시장만큼 얼굴을 많이 판 시장도 없을 듯해요. 다만 재수없게, 이명박도 이곳에서 출마선언을 했었네요. 지금 아마 시장 상인들은 그걸 얼마나 수치스럽게 여길까요. 하하.  

 

"광장시장은 정치 1번지, 경제 1번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현재까지도 그 위상을 인정받고 있다.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도 광장시장에서 대통령 출마선언을 한 것이고, 서울 시장들도 광장시장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p.221)


하지만, 이제 이곳. 예전 같지는 않을 겁니다. 아니, 않습니다! '(대형)마트'라는 이름의 폭군 때문이죠. 이들, 거의 모든 시장을 울렸습니다. 거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가격경쟁력이라는 미명 하의 '가격후려치기(가치 떨어트리기)'로 시장을 장악했습니다. 그들이 내세우는 시장 현대화는 순전한 거짓말입니다. 유통을 교란하고, 낭비를 조장하며, 뭣보다 노동을 착취하는 구조. 자본의 쌩얼입니다. 


대형마트, 세상에 그 많던 시장을 '재래시장'으로 몰아넣고, 구닥다리처럼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지지고 볶는 재미를 빼았습니다. 편리하고 쾌적함을 내세웠지만, 그 이면에는 자기네들 이윤만 자리합니다. 소비자의 권리? 뻥카입니다. 어떻게 하면 소비자들을 교란시켜 주머니에서 낭비를 조장하겠다는 흉포한 생각만 똥처럼 차있습니다.   


그러니, 이젠 시장에 이야깃거리가 떨어집니다. 시장에서 좌판으로 아이들을 키워 시집 장가까지 보냈던 무용담은 과거지사가 됐습니다. 시장에서 꽃 피는 사랑도 흘러간 옛사랑이 됐고요. 학도병으로 전쟁에 나갔다가 손가락 두 개를 잃고 생선 가게 일을 주로 하는 지게 짐꾼 오빠를 사랑하는 신식 여성의 이야기는 더 이상 없습니다. 자리에도 앉지 못하고 제대로 휴식도 취하지 못한 채 비정규직의 고통과 슬픔만 남습니다.


재래시장의 축소는 곧 이야기의 축소입니다. 그것이 참 안타깝습니다. 우린 불과 15~20년 전만해도 삶이 힘겹고 아플 때, 혹은 생이 느슨해졌다고 느낄 때, 시장을 찾았습니다. 그리곤 활력을 얻었다며 자랑스레 이야기했습니다. 시장은 그런 존재였습니다. 삶이자 존재가 부대끼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마트는 그렇지 않습니다. 자로 잰 듯한 구획과 어디에도 없는 부대낌. 지지고볶는 번잡함이 없습니다. 그저 잘 차려진 밥상입니다. 잘 줏어먹기만 하면 될 것 같은. 혹자는 마트를 가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하던데, 글쎄, 그 기분은 쾌적함 같은 것이지, 시장이 주는 삶의 활력과는 다소 차이가 있지 않나 싶기는 합니다. 


당시 최고의 직업이라는 은행원을 남편으로 둔 언니가 희순에서 했던 말에서 우리는 (광장)시장이 우리 삶에 어떻게 삼투했는지 엿봅니다.  


"나는 말이야, 사는 게 재미없어지면 나들이옷을 떨쳐입고 동대문시장으로 장 보러 가. 시장 사람들의 그 치열한 아우성과 싱싱하고 풍성한 푸성귀와 수산물이 내뿜는 활기를 쐬면 너무 좋아. 시장의 치열함과 활기를 쐬지 않고는 유지되지 않는 결핍이랄까. 내 안에 불균형이 있는 것 같아."(p.66) 


예능프로 <1박2일>에서 광장시장을 다뤘을 때, 꽤 화제가 됐었나 봅니다. 전 그때도 크게 당기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고선 광장시장에 진짜 발을 밟아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의 흔적을 찾아보고, 어떤 이야기들이 광장시장을 떠도는지 살펴보고 싶어졌어요. 


《광장시장 이야기》. 무난한 이야기에 광장시장에 대한 흥미를 살짝 북돋은 건 사실이지만, 좀 더 깊숙한 이야기, 정곡을 찌르는 무언가가 빈 느낌이에요. 글쎄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설명은 안 되는데, 소설도 아니요, 르포타주도 아닌 이런 방식은 광장시장 100년사를 압축해 놓은 나열에 불과한 것 같아요. 성실한 기록인 것은 알겠으나, 광장시장 사람들의 활기찬 역사가 오래도록 계속되었으면 좋겠다는 저자의 바람이 다소 공허하게 들리거든요. 좀 더 고민했으면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너무 무난해서 아쉬운 그런 책이었어요. 그래도 시장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는 점, 광장시장의 역사를 통해 우리의 시장(에 대한 의미)을 다시 길어올렸다는 점, 좋아요오~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작성됐다.

그러나 그런 사실에 영향을 받지 않고, 내가 느끼는 바 그대로를 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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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아름다운 여성이 있다.

한 여자는 방송과 함께 살았고, 한 여자는 영화와 함께 살았다. 


두 여자 공통점이 있다. 

카메라 앞에서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을 함께 했고, 서른 여섯이라는 나이에 요절했다.ㅠ.ㅠ 

한 여자는 정은임, 다른 한 여자는 마릴린 먼로. 


허나 두 여자, 캐릭터는 극과 극이다.

지적이고 사회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입장을 천명하고 행동한 '아나운서계의 롤모델'이자 '라디오시대 마지막 스타'였던 정은임. 그리고 섹시함을 무기로 (남자)대중의 욕망과 본능을 자극한 '섹스 심벌'의 대명사 마릴린 먼로. 

두 사람이 세상을 떠난 날짜가 서른 여섯의 8월4일(정은임), 8월5일(마릴린 먼로)인 것도 재밌는 우연이다.


냉방병에 걸렸다. 금요일 지나치게 빵빵한 에어컨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이 도저한 생더위에 남들은 땀 삐지리리 흘리며 저주를 퍼붓건만, 나는 반대로 추워서 덜덜.;;



그래도 냉방병을 버티게 해 준 것은 (정)은임 누나였다.  

토요일 4일, 정은임 아나운서 추모바자회를 찾았고, 누나 목소리를 들었다. 

과거 방송된 <정은임의 FM영화음악>을 통해 아름다운가게 광화문책방에 울려퍼진 그 목소리. 

여전히 그립고 또 그리운 그 목소리. 눈물이 핑 돌았고,  

1년에 한 번씩 그날이면 모이는 회원들도 만났다. 좋고 또 좋았다.

이번 8주기, 2년 후인 10주기에는 영화제를 꼭 하자며 대동결의(?)했지만, 글쎄, 할 수 있을지는 그때 가봐야...ㅋ

☞ 8월4일 그날, 정은임 아나운서를 기억하는 아름다운 하루


그리고 밤새 끙끙 앓았다. 이불로 꽁꽁 동여매고, 땀 삐지리리 흘리며 5일을 맞았다. 

마릴린 먼로의 50주기. 자다 깨다 또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타이레놀 먹고 또 자다 깨다, 

잠신마저 지쳐 떠나가고, 먼로 영화중 좋아라~하는 <쇼처럼 즐거운 인생은 없다>를 봤다. 

 

 

나를 다시 버티게 해 준 것은 먼로 누나였다.  

 

세상엔, 거칠게 분류해서 두 부류의 여성이 있다. (사실 수컷도 마찬가지!)

한 번 보면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딱 나와서 더 이상 보여줄 것이 없고, 새로울 것도 전혀 없는 여성.

반면 보고 또 봐도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어서, 자꾸 호기심이 생기고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게 되는 여성. 형언할 수 없는 아우라가 펄펄~


그러니까, 후자의 여성은 뭔가를 자극한다.   

한 시대가 여성상을 만드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이런 여성들은 등장만으로 새 시대를 열기도 한다.

마릴린 먼로는 뭐랄까, 시대의 억압적인 분위기를 온몸으로 사절한 불온녀라고 할까? 


먼로는 1962년 8월5일, 침대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 수면제 과용에 따른 자살이라는 공식 발표가 있었지만, 숱한 음모가 따랐다. 그녀의 죽음 뒤로 든 생각은, 이 세상 수컷들은 아름다운 여인을 지키지도 못한다! 외려 자신의 권력과 욕심 때문에 그녀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건 아닐까? 그렇게 멍청한 것이 수컷이다. 물론 그녀가 매카시즘이나 당대의 억압적인 분위기에 저항하는 자각을 했다기보다, 그저 그녀는 그녀답게 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지만.

☞ 아시나요? 먼로 씽킹(Monroe Thinking)!


어쨌든 두 명의 아름다운 여성이 '냉방병'에 시달리던 나를 버티게 했다. 

고마운 일이다. 아름다움이 생더위를 뚫고 지나갔다. 세상은 다시 일상의 바퀴를 굴린다. 

하지만 아름다움은 변하지 않으므로 아름답다. 두 아름다운 여성의 명복을 빈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 덕분에 우리는 이렇게 살아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움이 남자를 구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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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에 의하면) 세종은 '성군'이라는 호칭에 가장 부합한 임금이다. 진짜 그만한 성군이 없단다.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소설의 대가, 김별아 작가는 그랬다. 소설을 쓰기 전, 철저하게 역사를 공부하고 파악하는 그의 작가의식을 감안하면, 그 말은 100%일 것이다. 오죽하면, 우리는 조선조 처음으로 '대왕'이라는 직함을 세종에게 부여했을까. 그 뒤 정조대왕이 있지만, 글쎄, 잘은 모르지만, 정조에게 대왕은 좀 어색하다.


그런데, 그의 즉위는 좀 놀라운 데가 있다.

다른 게 아니라, 그는 장자(맏아들)가 아니다. 그것도 셋째 아들.

장자에 대한 절대적인 우선권이 부여된 시대, 그는 왕에 즉위했다.

물론 나는 자세한 이유와 배경을 잘 모른다.

양녕과 효녕의 실기에도 이유가 있겠지만, 충녕에 대한 아비(태종)의 신뢰와 왕의로서의 자질이 그만큼 뛰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그는 왕위에 올라서 성군이 되고 대왕이 됐으니까, 그건 아비의 정확한 판단이었다.


헌데, 왕으로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왜냐!

태종도 다섯째 아들이라는 '핸디캡'이 있기 때문이다.

조선의 두 번째 왕 정조도 둘째 아들, 세 번째 왕 태종도 다섯째임을 감안하면,

태종으로선 장자에 당연히 무게를 둘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떻게든 왕조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그리 했어야 했다.

그럼에도 충녕은 간택됐다.


아마 아비는 갈등했을 것이다.

정당성이냐, 왕권의 안정이냐. (물론 그것은 연결돼 있기도 하다.)

충녕이 왕권 안정에 적합한 인물이자, 성군으로서의 자질을 발견한 아비의 선택은 옳았다.


그런데, 궁금했던 건, 충녕 본인은 왕위에 오를 생각이 있었을까?

공부가 가장 쉬웠고, 형들과 달리 놀 줄도 모르고, 잘은 모르지만, 범생 분위기가 자욱하게 풍겼을 그에게 그런 야망이 있었을까?

찌질한 것은 아니어도, 그는 딱 FM 스타일이었을 것이다.

(<뿌리 깊은 나무>에서 육두문자를 지껄이는 세종은 완벽하게 허구다!)

충녕은 야망 없는 날라리를 꿈꾸는 내 기준에서는 슈퍼울트라 비재미.

친구할 생각은커녕, 신하였어도 그를 임금으로 모실 생각은 추호도 없다.

왜? 간단하다. 재미 없을 것 같아서!

그의 뇌구조를 뒤적이면 한 83.27%는 '백성의 고단함'으로 채워져 있을 것이다.

본투비 킹.


<나는 왕이로소이다>는 그런 궁금함에서 출발한다.

이제야 영화 이야기에 본격 들어가는 셈인데, 장규성 감독은 충녕을 찌질한 샌님으로 설정한다. 아비에 의해 세자로 책봉된 뒤에도 후덜덜. 형들한테도 미안하고, 별로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언감생심, 왕이 다 뭐다냐! 야망도 없고, 성장에 대한 욕심도 없으며, 그렇다고 책 외에는 삶을 즐길만한 건덕지도 없어 보인다.


영화는 '왕자의 거지'의 모티브를 차용, 심약한 충녕이 어떻게 세종이라는 성군으로 거듭나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니까, 결정적 계기!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만듦새, 영 아니올시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야 만다.

 

심약한 샌님, 충녕이 어떻게 임금이 되고자 하며 성군이 되는지,

그 역사적 상상력의 소재, 얼마나 구미가 당기는가! 

허나, 소재로만 끝난다. 아쉽다.

연출력이 가장 큰 문제로 보여지는데,

충녕과 우연히 뒤바뀐 노비 덕칠의 왕 행세는 어설프다.

충녕이 백성들이 고단함을 확인하는 과정에서도 구멍이 숭숭 뚫려있다.

세자 행세를 한다고 모질게 맞고, 고난을 당하는데, 대역죄인이라는 어명까지 내려온 마당인데, 너무 쉽게 빠져나간다. 세자임을 증명할 방법도 충분히 있을 터인데, 덕칠은 궁궐에서 너무 무기력하고, 충녕의 민생탐방(?)은 작위적이다. 


배우들의 연기도 살짝 아깝다.

변희봉, 백윤식, 김수로, 임원희 등 연기력 좋은 배우들의 연기가 어딘가 끌려다니는 느낌이다. 극에 완벽하게 묻어있지 않다.  

 

그리고 연기 잘'했'던 젊은 배우, 주지훈의 복귀작. 그는 덕칠일 때보다 충녕일 때 더 빛난다. 확실히 그 간지, 제 아무리 분장을 하고 열연한다손, 노비 역할에 어울리지 않는다. 물론 그것이 연기가 완벽하다거나 충분하다는 뜻, 아니다.

배우 주지훈, 충분히 몸이 풀리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이건 재밌다. 주지훈의 캐스팅.

마약사건으로 불가피하게 군대에 가야했던 주지훈의 처지.

그리고 '벌써?'라는 논란이 따르고 있지만, 그는 어쨌든 복귀했다. 

그것, 극중 충녕의 탈피와 묘하게 맞물린다.

샌님 나부랭이였던 충녕의 깨달음 그리고 성군의 탄생. 


이 캐스팅, 충분히 의도가 있다(고 보여진다).

주지훈 역시 마찬가지일 듯하다.


영화의 만듦새에 대해 가혹한 평가를 내렸지만,

이 영화에 왜 별 세 개를 줬냐고?

물론 이유, 있다!

만듦새만 놓고 보면, 꽝이요, 두 개로도 충분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만듦새에 대해 툴툴거리면서도,

나는 진정성 같은 걸 느꼈다.

어떻게든 잘 만들고 싶은 필사의 노력 같은 게 내 마음에 닿았다.


나는 감독과 배우들 모두 아무런 관련도 호감도 없다.

그저 연기 잘하는 배우 주지훈이 다시 배우로서 뿌리를 내리는 정도?

(그가 군대 가기 직전, 내가 매니저로 있던 카페에 화보를 찍으러 왔던 어설픈 '인연' 정도는 있다.ㅋ 눈앞에서 주지훈을 보면서, 감탄했다. 저 길쭉길쭉한 간지, 깎아지른 외모. 남자가 봐도, 주지훈, 아름다웠다!) 


관객들과 호흡하고 싶다는 열망을 감지했고, (어느 영환들 그게 없으랴마는!)

뭔가 지금의 정치적 세태와 맞물려 좋은 지도자를 갈망하는 어설픈 정치의식까지 느꼈다.

그러니까, 별 하나는 그 잘 만들고 싶은 그 마음. 그 마음에 대한 화답이다.


일부러 영화를 권하지는 않겠지만,

이 장면만큼은 찡하였다. 


백윤식이 분한 황희 정승, 야인으로 살면서 일갈한다! 임금의 도리에 대해.

충녕임을 알아차리진 못한 채. (근데, 황희가 충녕을 못 알아보는 것, 아무리 영화적 장치라지만, 이해가 안 돼!ㅠ.ㅠ)


"백성의 고단함을 돌보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무엇이더냐?"


충녕이 세종으로 탈피하는 가장 결정적인 이 한 마디!

충녕이 180도 변신하는 것이 감성적으로도 이성적으로도 어설픔에도,

영화를 관통하는 이 호통(?)은 찡하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세상에서 멸종한, 더 이상 우리에게 없을 지도자(최고통치자)에 대한 이야기라고 나는 결론을 짓는다. 국민성군은 더 이상 없다.

안철수? 개뿔! 그는 그저 온건한 보수이자, 포악한 자본주의에 살짝 균열을 가게 하고 싶은 체제 지킴이다. 그만한 대안이 없다는 게 참 아쉬울 뿐이다.

아쉬운 점이라면, 많은 사람들, 안철수를 삶의 태도와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앞선 것에 대한 신물, 단순한 트렌드로 만들어버리는 것 같다.

 

우습게도 단언하건대, 혁명이 없는 한, 세상은 바뀔 수 없다!

성군을 향한 열망도, 결국 내 삶의 미세한 부분에서도 바꾸지 않는다면 말짱 도루묵.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말만 번지르르하다. 안타깝게도 그것, 생명력이 없다.

삶의 최소주의와 일상의 정치의 최소주의를 일치시켜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뭐,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다만, 내가 씨부렁한 말,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시라.

<나는 왕이로소이다>는 결코 심각한 영화가 아니로소이다~ㅎㅎ 

<선생 김봉두> <이장과 군수> 등의 장규성 감독은 너무 오랜만에 영화를 만든 것 같다.

 

참,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장면이 있다. 마지막 풍경.
노비 덕칠과 양반집 규수 수연(이하늬)가 가정을 이뤄 애들 순풍순풍 낳고 산다.
노비와 양반의 결합. 당대로선 이뤄질 수 없는 커플일텐데, 감독의 어떤 의도가 담긴 장면이리라.
물론 수연은 몰락한 양반가문의 영애인데, 계급을 넘어선 사랑과 결혼, 그것은 늘 감동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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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이웃, 함께 사는 마을, 살고 싶은 서울

상상, 마을 롹페스티벌!

<말리>가 개봉한대요. 기사를 보고선, 심장이 두근, 했습니다. 밥 말리. 노래로 평화와 인류의 하나됨을 꿈꾼, 1981년 5월, 서른 여섯의 나이로 요절한 레게혁명꾼. 작렬하는 태양과 푸른 파도를 품은 레게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노래꾼. 가난하고 비참했던 시절, 울음과 함께 시작한 노래로 평화를 끊임없이 갈구한 그를 스크린으로 만날 생각을 하니, 두근.

그러고 보니 여름은 음악이자, 노래입니다. 마틴 스콜세지는 우리가 잘 몰랐던 혹은 관심을 덜 뒀던 비틀스의 철학자 '조지 해리슨'을 담은 <조지 해리슨>을 내놨고, 최근 개봉했죠. 영국으로 이어가면, 올림픽. 개막식을 이끈 건, 영국 팝(노래)이었죠. 롤링스톤스, 더 후, 퀸, 셱스피스톨스, 더 클래시 등 영국 팝의 전설이 개막식을 지배했고, 역시 압권은 비틀스 멤버 폴 매카트니의 '헤이 주드'가 장식한 피날레. 뭉클했습니다. 노래 한 곡이 주는 힘이란. 그 노래 하나가, 모든 차이를 넘자는 런던올림픽의 슬로건 '하나의 삶'을 뚜렷하게 각인시킵니다.

'음악 없는 여름'이란, '마을 없는 서울'이 아닐까요? ^^ 주변을 둘러보세요. 곳곳에 음악입니다. 요즘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린 톰 크루즈가 락커로 등장한 <락 오브 에이지>, 락이 세상의 전부였던 호시절의 풍경을 신명나게 보여주고요. 지난주 지산밸리 록페스티벌이 끝났지만, 우리에겐 아직 펜타포트 락페스티벌(10일 개막)이 남았잖아요. 9일엔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열리고, <원스>의 그녀 '마르게타 이글로바'는 제천에 이어 15일 서울에서 내한공연을 가진다는 것.

이 락페(락페스티벌)의 계절, 음악은 폭염과 함께 찾아오는 축복. 부디 즐겨주시라. 그리고 내년엔 '마을 롹 페스티벌'도 열려주시라. 마을롹페에서 미친 헤드뱅잉을. 음악으로 평화로운 마을의 우리들. 그러니까, 우린 지금 8월을 만난 거죠. 인사하셨어요? 안녕, 팔월. 너의 노래가 듣고 싶어. 노래와 함께 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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