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안에 있는 공유경제 스타일을 끄집어 내다!

[서울공유경제를 만나다코업 양석원 대표 (110)



지난 1월 10서울시 신청사 3층 서울공유경제를 만나다의 문을 열었습니다이날 공유사무실을 운영하는 코업(CO-UP)의 양석원(이장대표가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되 모든 것을 사용한다는 제목으로 협력적인 소비공유경제에 대한 이야기를 풀었습니다.


강연의 첫 발걸음이 이날 열린 것은 나름 의미가 있었습니다마침 코코 샤넬(본명. 가브리엘 샤넬 Gabrielle Chanel, 1883.8.19 ~ 1971.1.10.)의 42주기였는데요샤넬이 공유경제와 무슨 상관의아하겠지만짧게 얘기해보죠알다시피샤넬은 패션을 통해 혁명적 생각을 공유하고 여성을 해방시킨 장본인입니다이전까지 허리를 사정없이 조이며 여성의 몸과 마음을 속박하던 코르셋갈비뼈까지 꾹꾹 눌러가며 착용했던 코르셋 때문에 여성들은 호흡도 곤란할 정도였고기절하는 여성도 많았습니다물론 폴 푸아레(Paul Poiret)가 코르셋을 없앤 복식을 먼저 선보였지만샤넬이 이를 본격화시켰습니다장례식에만 입던 검은 옷을 일상화시켰고드레스를 무릎 위로 올렸습니다핸드백에 끈을 달아서 두 손을 자유롭게 만들었습니다.


따지고 보면샤넬은 지금 테이크아웃 커피점을 창궐시킨 시발이라고 할 수 있죠두 손으로 자유롭게 함으로써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들 수 있게 한샤넬은 불필요하고 허세 가득한 복장을 몰아내고 복식 혁명을 일궜습니다여성을 옷뿐만 아니라 시대의 속박으로부터도 해방시킨 샤넬그녀가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지혜와 사유의 공유 덕분이었죠공유기업 위즈돔의 것과도 비슷했네요어쨌든 그녀커피하우스 레 되 마고(Les Deux Magots)’를 들락거리며사상철학가작가예술가 등과 교류했습니다장 콕토피카소달리스트라빈스키헤밍웨이콜레트그레타 가르보마를레네 디트리히... 숱한 문화예술계 인사들과 교류하고 생각을 공유했었죠공유했기에 가능했던 샤넬의 모든 것그것은 샤넬 스타일이었습니다.


사진 제공 : 공유경제에디터 김윤정


그러니까이날부터 4개월에 걸쳐 진행되는 ‘서울, 공유경제를 만나다’는 공유경제 스타일을 만드는 시작입니다공유함으로써 세상을 바꾸고 여성을 해방시킨 샤넬처럼십대부터 칠십대까지 공유인들이 모여 내 삶과 우리 세상을 실제로 바꿔가는 현장.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되 모든 것을 사용할’ 수 있는 시대우리는 이제 조금씩 다른 경제다른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양 대표의 강연 현장으로 들어가 보죠.



협력적 소비공유경제?


“Collaborative Consumption. 협력적 소비죠그런데 이 말이 어려워서셰어링 이코노미(Sharing Economy), 공유경제로 바꿔서 설명하고 있습니다그렇다면 공유경제는 무엇일까요다른 이해가 필요하지 않습니다오래전 우리가 해온 것의 일부분입니다재화물건시간능력 등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여기서 경제적인 활동이 이뤄지니까 공유경제입니다남이 안 쓰는데 내가 필요한 물건찾을 수 없을까스마트폰 덕분에 이게 더 쉬워졌습니다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을 통해 모르는 사람과도 거래를 하는데 쉬워졌습니다.”


양 대표는 공유경제 기업이 페이스북트위터 등 SNS의 도움을 받아 활성화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과거에는 물건시간능력 등을 나누는데 장벽과 한계가 있었다면스마트폰이나 ICT(정보통신기술)는 이를 넘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이것시대의 변화와도 맞물립니다앞선 20세기가 학벌직장가문 등을 내세운 시대였다면 앞으로는 평판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거죠평판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커뮤니티를 통해 형성되는 법이니 ICT의 발전은 이를 좀 더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줍니다.


양 대표제레미 리프킨의 저작 소유의 종말(The age of access)를 언급합니다. 10년 전만 해도 리프킨의 이 말믿는 사람이 많지 않았죠소유가 아닌 사용에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그러나 지금사용과 접속부각되고 있습니다이건 도서관을 생각하면 됩니다책을 누구도 소유하지 않지만누구나 봅니다소유하지 않되 사용한다여기서 단초를 얻습니다물건을 사고 서비스를 이용하는데 생각을 달리 해본다는 것그것이 공유경제의 단초입니다.


공유경제는 요즘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경제위기)가 닥치면서 공유경제가 시작됐습니다사고 파는 것에 대해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고 전환한 거죠올해도 세계 경제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데역으로 공유경제는 각광을 받을 겁니다분명 소비를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ME’에서 ‘WE’로 바뀐다!


“‘me-제네레이션에서 ‘we-제네레이션으로 바뀔 겁니다.”


다시 돌아가양 대표는 21세기에는 평판이 더 중요해질 것으로 전망합니다학벌사는 곳직장 등보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커뮤니티 등이 더 중요해진다는 것. 20세기가 광고마케팅을 통해 물건을 대량으로 팔았다면, 21세기는 소유보다 필요할 때 사용하는 것이 더 중요해지는 시대입니다대량소비의 시대에서 협력적 소비(협동소비)의 시대로의 전환.



예를 듭니다자동차. 20세기 그리고 남자들을 열광시킨 물건이동의 도구로 첫 등장했지만 자동차는 이미 어떤 상징이 됐습니다헌데자동차를 소유하는 순간부터 자동차는 90% 이상 서 있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이동을 위한 것이 주목적이었지만 이토록 오래 서 있다면자동차는 가만있을 때도 돈 먹는 하마입니다보험료주차료 등은 물론이요관리나 신경까지 써야함을 감안하면마음까지 먹는 하마죠그러니필요할 때만 차를 쓰고 싶은 사람생기지 않을까요?


완성차업체에서 차를 사는 것이 20세기였다면 짚카스트리트카 등 카셰어링 기업이 21세기의 트렌드입니다짚카는 시간 단위로도 빌려 쓰고 전용주차장도 있습니다주차할 고민도 없고 필요하면 언제든 쓸 수 있죠기술적으로도 문제없습니다카드만 대면 차문이 열리고얼마나 탔는지도 알 수 있고요그리고 최근 서울에서도 카셰어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짚카는 또 세계에서 제일 큰 렌터카 회사인 에이비스에게 5500억 원에 팔렸습니다짚카는 유치원 아이를 키우는 2명이 시작했는데처음엔 어려웠지만 사업을 잘 하는 기업가가 짚카와 다른 회사를 합쳐서 회사를 키웠습니다.”


여기서 더 나가면카풀과 같은 라이드 쉐어링이 있습니다유럽엔 이것이 잘 돼 있다는데요함께 타기 위해 걸림돌이 되는 신뢰도 스마트폰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고 하네요더 혁신적으로 나가면 ‘P2P CAR RENTAL’이 있습니다개인끼리 빌리는 것입니다차가 놀고 있으면 돈을 주고 빌리는 거죠보험도 제공하고. DriveMyCar, RelayRides, GETTAROUND, Whipcar 등의 기업을 예로 듭니다카셰어링은 P2P, B2C, NFP(Non-For-Profit or CO-OP) 등으로 나눠지는데, ‘퓨처오브카셰어링닷컴(http://futureofcarsharing.com)을 통해 그 전망을 잘 볼 수 있다.


돈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돈이 생기면 은행에 돈을 넣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이제 은행에 돈을 맡겨도 이자도 적고대출도 어렵습니다그래서 나온 것이 ‘P2P Social LENDING’, 즉 개인과 개인이 돈을 빌려주고 받을 수 있는 서비스도 생겼습니다그런데이 경우 돈을 떼어먹힐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평판이 그래서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됩니다해외에 LendingClub, zopa, peer mint, CommunityLend 등이한국에서는 팝펀딩 등이 있습니다.


개인과 개인에서 더 나아가사이버화폐 등을 통해 경제적인 활동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지역이나 공동체에서 공동체화폐를 많이 쓰는데요여기서도 평판이 중요합니다학교지역직장 등이 아니라 얼마나 평판이 있느냐에 따라 조건이 달라지는 거죠평판을 돈을 주고 쌓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공유경제는 그렇듯생활과 연관해서도 자동차자전거공구카메라(), 땅 등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코업(CO-UP)은 파티션이 없고다 트여있습니다집에서도 일할 수 있는데 왜 나와서 할까요이런 공간이 앞으로 더 많이 생길 것으로 봅니다.”


아울러 공유기업들의 새로운 기회와 성숙도를 다룬 표도 한 번 참조해보시고요. (. THE OPPORTUNITIES FOR SHARING)



특히, ‘공유라고 물건만 생각할 필요없습니다시간을 공유할 수 있고경험도 그러하며지식이나 지혜도 그러합니다샤넬도 생각의 공유를 통해 20세기 복식 혁명을 이뤘다는 사실잊지 마세요우리들의 공유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은 바로 상상력과 사유아닐까요.



공유경제를 하면서 알면 좋은 것들


양 대표공유경제를 이루는 세 가지 축을 말합니다.

- Product service systems 제품을 소유할 필요없이 혜택을 사용하는 것

- Redistribution markets : 서로 교환함으로써 재분배하고 협력적 소비를 만드는 것

- Collaborative lifestyles : 기술시간 등을 제공하고 공유되는 것


아울러공유경제의 원칙도 뒤따릅니다.

Trust between strangers :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

Belief in the commons : 공공재에 대한 믿음(모든 사람이 함께 쓰는 것이다)

Idling capacity(유휴자산) : 잠자고 있는 것을 깨우면 경제적 효과가 만들어진다

Critical mass(임계점) : 이용자 숫자가 임계량에 도달해야 한다


공유경제에 힘을 불어주는 장치도구는 다음과 같습니다.

P2P Technologies : 정보통신기술

Resurgence of community : 공동체에서 다시 쓰고 공유할 수 있는 것을 하자

Environmental concerns : 환경에 대한 검토인식

Cost consciousness : 경제적 측면에서 새 것을 사는 것보다 이익이 된다


공유경제 신뢰 구축에 다섯 가지 중요한 요소를 말합니다.

- Personal profiles : 개인프로필 작성 기능

- Official verification : 인증

- Degree of separation : 친구의 친구 등 내가 아는 사람을 통한 신뢰도 형성

- Peer reviews & ratings : 평점이나 리뷰

- High-touch : In-person screening : 사람을 통한 확인


에어비앤비는 전세계 힐튼호텔 체인보다 빌려주는 방이 더 많습니다처음부터 대박을 터트린 게 아니라 3년 동안 엄청 고생을 했습니다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집을 열어준다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는데지금 생각해도 쉽지 않죠한 번은 아이들이 쓰던 오두막을 아이들이 커서 내놨는데큰 인기를 끌면서 지금 1년 치 이상 예약이 돼 있을 정도예요네팔의 물 위에 떠 있는 집도 있고서울에도 방이 있습니다서울에 관광객이 많이 오는데남는 방 있으면 내주세요언어도 배우고함께 놀면서 친구도 사귀고집에 전혀 모르는 사람이 오는 게 이상한데페이스북 등을 통하면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 등이 내놓은 집도 찾을 수 있어요외국인 입장에서 한옥이나 일반 가정을 보면 재밌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거고요.”


공유경제는 무엇보다 다양한 이익을 제공합니다기본적으론 경제적 이익부터환경과 생활에서도 그러하며사회와 커뮤니티에 책임 있는 행동을 하는 사회적 동물로서의 자부심도 느끼게 합니다공유경제라는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는 문화인으로서의 면모까지.


사진 제공 : 공유경제에디터 김윤정


양 대표, “Solo, But Not Alone!”라고 말합니다이미 한국에도 공유기업들이 속속 생겨나고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각기 하나의 기업이지만혼자 가는 것이 아닌 공유로서 새로운 사회와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음을 인식시킵니다공유경제우리에게 뿌리 깊게 남아 있는 문화맞습니다품앗이와 상부상조 등과 같은 좋은 공유 유전자(DNA)가 우리에겐 있었습니다함께 사용하고 나누고 이웃과 맺는 관계우리에겐 이미 공유경제 DNA가 있음을 자각할 수 있었던 시간우리는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 수 있음도 확인했습니다지금 당장샤넬 제품이 없을지 몰라도당신에겐 샤넬 스타일은 있을 수 있습니다그것은 곧 공유 스타일!



Q&A


공유경제 모델을 이해하기 위한 서울시 교육 프로그램이나 지원사업이 있나?

(김기현 서울시 혁신기업팀장공유경제를 비롯한 공유사업 지원을 위해 지난해 조례가 만들어졌고규칙을 만들고 있다사회적기업처럼 신뢰할 수 있는 공유기업을 지정하고 홍보하며해당 기업에겐 홍보비나 신규 투자비 등을 지원할 계획이다창업과 관련해서는 서울시 창업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올해 20개 공유기업의 창업지원을 검토하고 있다창업 공간 지원이나 컨설팅도 준비하고 있는데, 5월에 그 계획을 발표할 것이다기존에 창업한 공유기업에겐 사업 확장 프로그램이 있다창업과 기존 기업에 대한 지원 등 투트랙으로 진행될 것이다. 2월말쯤 공유경제기업 선정 공고가 뜬다.


공유경제가 연출이나 문화예술에도 통할 수 있을까?


예술 분야를 보면외국에는 빌딩이나 건물 공사가 덜 돼서 방치된 곳들을 아티스트들의 레지던스로 쓰게 한다거나 팝업 스튜디오로 공용하게 한다또 일본 패션회사의 것도 참고할 만한 것이 있다대개 유명 패션브랜드 회사들은 안 팔린 제품이라도 싼 시장이나 이월시장에 보내지 않고 브랜드 관리 차원에서 버린다패션 아티스트들이 그걸 받아다가 신진 디자이너들이 콜라보(협력)를 해서 재창조경제적 이익을 얻기도 한다.


가장 즐겨 사용하는 공유경제 서비스는 무엇이며 하고 싶은 공유경제 서비스가 있다면?


책을 빌릴 수 있는 서비스가 있다국민도서관 책꽂이(www.bookoob.co.kr). 여기에 내 온라인 서재가 있다. ‘이장을 검색하면 내 온라인 서재에서 책을 빌려볼 수 있다지난달멘붕이 와서 요즘 열심히 책을 읽고 있다. (웃음내가 하고 싶은 공유 서비스는방이 하나 있으면 외국에서 오는 기업가나 스타트업 기업가들과 이야기하면서 영어 공부도 하고함께 돌아다니는 그런 것이다재밌을 것이다생활과 접목해서 잘 할 수 있을 것도 같고.


공유경제카셰어링 기업과 달리 완성차업체에는 도움이 될까거시적으로 제조업과 공유경제가 상극이 될 수 있다고용에서도 그렇고공유경제가 기존 산업과 충돌하는 건 아닌가?


경제라는 분야가 꽤 크다공유경제를 하면 물건 파는 사람들이 힘들어하지 않을까하는 시선도 있는데그렇지 않다경제나 사회는 혁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효율적이지 않은 산업은 도태되는 게 맞고변화할 것이다그렇다고 한 번에 확 바뀌지는 않는다공유경제가 주류경제가 된다 해도 아주 오래 걸릴 거다자동차도 재산 증식이나 재산 목록으로 소유하기보다 이동이 더 중요하다고 인식이 변화하면완성차업체들도 변화해야 할 것이다그렇다고 한 번에 빨리 변하진 않는다. ‘공유지의 비극도 있다여러 사람이 쓰는 목장이 있는데이 목장엔 잡초만 무성히 자란다피자도 너무 잘게 쪼개면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


공유기업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누이 좋고 매부 좋아야 공유경제는 잘 된다생산자-소비자-연결자 삼자의 사이클이 맞아 떨어져야 사업이 잘 굴러간다에어비앤비를 예로 들어보자남는 방-돈 아낄 수 있는 개인-연결해주는 업체삼자가 맞아 떨어졌다공유경제라는 카테고리는 크지만 개별 기업마다 상황은 다르다사업이 단계를 넘어갈 때도 전략이 다르다홍보는 얼마나 강한 커뮤니티를 보유하느냐에 따라 다르다서비스를 이용해 본 사람이 그 가치를 가장 쉽게 전달해 줄 수 있다커뮤니티 빌딩을 잘 하는 게 중요하다.


(☞ 공유경제 강연은 계속 됩니다. 신청하시라!

서울, 공유경제를 만나다 http://www.wisdo.me/902)




by. 커피향 공유하는 남자, 김이준수(공유경제 에디터)


밤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가 있는, 당신과 나의 공간을 꿈꾼다.

커피 한 잔으로 우리는 세계를 사유하고, 세계를 공유한다.

그 알싸하고 향긋하며 좋은 커피향, 나만 맡을 수 없어 당신과 함께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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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넓은 우주에 우리뿐이라면 그것은 엄청난 공간 낭비 아니겠니?
(If it is just us, it seems like a awful waste of space?)

- 영화 <콘택트>에서 조디 포스터가 분한, Dr. 앨리 애로위의 대사

 

커피향 공유하는 커피 만드는 노총각의 독백..... 이랄까?`

된장, 감동 먹었다. 그 어떤 향긋한 커피향보다 더 진하고 강렬한 향이었고, 기똥차게 볶아서 내린 그 어떤 커피의 알싸함보다 짜릿한 맛이었으며, 행복감을 전파하는 커피의 고운 마음씨보다 더 강력한 행복 바이러스였다. 

 

조디 포스터. 쉰 한 살의 직업이 배우인 이 여자. 1월 13일, 한국시각으로는 14일, 제70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외쳤다. 압축하자면, 이렇다. "나, 동성애자다." 커밍아웃. 물론, 아는 사람은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 조디 포스터에 조금 이상의 관심이 있었다면, 그것은 철 지난 유행가지만,

 

그럼에도!
그것을 알고 있던, 나는 훅~ 갔다. 시상식이라는 공개석상에서 내가 누구인지 당당하게 말할 줄 아는 사람. 여전히 '다른 나'에 대해 거부감과 차별을 내면화한 세계를 향해 똥침을 날릴 줄 아는 사람. 신선하고 멋있다. 그 카리스마, 반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뻔할 정도로.

 

왠 오버냐, 하겠지만,
전사 같은 강인한 이미지의 조디 포스터라지만, 공개석상에서 그런 고백을 위해선 얼마나 큰 마음 졸임과 고민의 순간이 있었을까를 생각해 보라. 몇 번이고 심호흡을 가다듬고, 할까 말까를 놓고 번민을 거듭했을 순간. 그리고 마침내 입을 떼면서 다가왔을 환희. 그 심연 같은 마음을 이해하는 건, 스트레이트인 나로선 한계가 있지만,

 

그럼에도
저 굳센 팔뚝에 매달리고 싶을 정도다. 이토록 사랑스럽고 멋진 여자라니.
이 여자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에 나는 감사한다. 

 

 

 

대개의 경우, 시대가 여성상을 만든다. 그러나 드물게 어떤 여성은 등장만으로 새 시대를 열거나 세상에 스스로를 증명함으로써 견고한 세상의 벽에 금을 가게도 한다. 조디는 맞다. 후자다. 조디에게 훅 감동 먹으면서 나는 확인했다. 내가 혹하는 여성은 타인의 생이 아닌 자기만의 서사와 캐릭터로 자신의 생을 꾸리는 여성임을. 

 

내가 나임을 아는 것. 그게 뭐 어려운 일이냐고? 천만에.
지금 물어보라.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것에 슬퍼하고 싫어하는지.
어려운 일이다. 알면 알수록 거부하고 싶은 나도 있다.
그럼에도 나를 안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나를 알면, 기적이 일어나기도 한다.
조디는 그래서 삶을 기적으로 바꿨고, 그 기적으로 세상을 다시 변화시키는 놀라운 여성이다.
악전고투. 그리고 '내가 나'임을 증명하고 연출한다. 세상은 그것에 감동하며 바뀐다. 나는 조디가 '내가 나'임을 드러냄으로써 세상이 좀 덜 슬픈 곳이 되리라 믿는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그렇지 않음, 세상이 너무 좆 같잖아. 쉬파.

 

 

로자 룩셈부르크도 그랬다. 생뚱 맞지만, 조디의 외침을 들으면서 로자가 떠올랐다. 연관성? 없다. 단지, 1월 15일 즈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1919년 1월 15일, 사회주의 혁명의 꿈은 암살당했다. 만땅으로 마흔 여덟을 채우지 못한 채. 사랑과 혁명의 화신이었던 로자의 94주기.

 

그래서 15일의 커피는, 사회주의 국가의 커피로만 블렌딩한 혁명 커피, 로자.

 

또 15일에 슬픔이 뚝뚝 묻어난 이유는, 또 하나의 혁명이 시들었기 때문이었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이 별세하셨다. 누구냐고? <감각의 제국>! 엉뚱한 장면 상상작렬하느라, 그 안에 품은 오시마의 혁명적 송곳을 놓친다면 아쉽고, 또 아쉽다. 그는 금기된 것을 깨부숨으로써 혁명을 꾀했다. 군국주의 일본의 국가적 광기와 검열에 대해 격렬하게 저항하고 비판했다. 로자 위에, 오시마의 스러진 혁명의 꿈이 겹쳐졌다.

 

그리고 나는 오늘, 반성하고, 또 반성한다.
조직의 한 사람이라도 행복하지 않으면, 우리 모두는 행복해질 수 없다는 사실. 잠시 잊고 있었다. 나를 둘러싼 문제에만 너무 매달리느라. 나는 아직 인간이 되긴 멀었지만, 삶이 점점 더 재밌어진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절망 뿐인 세상에서도 생은 그런 세상을 때론 배반하기도 한다. 물론, 잠시일 뿐이겠지만, 그러면 또 어떠랴. 찰나의 배신이 즐거운 것을. 그것을 기적이라 부르지 말라는 법이 없다면, 그래, 그건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조디 누나를 통해 꿈꾼다. 내가 누구인지 거리낌 없이 말해도 괜찮은 그런 세상.
지금, 혁명까지는 회의적이라도, 그런 세상, 내가 누구인지 말해도 괜찮은 세상,  

 

아름답다.

그런 세상에 어울리는 커피,

당신을 위해 짓는다.

 

 

뷰티풀 & 굿럭.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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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식사하면서 이야기 나누는 소셜 다이닝, '집밥'

[서울, 공유경제를 만나다] 세 번째 시간, 집밥(1월24일)



어떤가요. 음식을 앞에 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

생각만 해도 흐뭇한 풍경이죠? 그렇게 밥을 함께 먹는다는 건, 기본적인 신뢰를 깔고 있는 것입니다. “밥 한 번 하자”는 말이 우리 일상에 얼마나 자연스러운 것인가를 보면, ‘식사 한 끼’가 주는 신뢰의 공유를 허투루 넘길 수 없습니다. 건배를 하는 전통은 서양에서 술에 독을 타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태도라고 하죠. 또한 밥을 같이 먹는다는 건, 함께 먹는 사람의 삶에 귀를 기울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 행위가 느낌의 공동체를 만들고, 단 한 끼라도 누군가에겐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이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소셜다이닝 집밥(www.zipbob.net, 대표 박인)’은 그런 순간을 만드는 공유기업입니다. ‘집에서 먹는 밥’이라서 집밥이 아니고, ‘같이 먹는 밥’이어서 집밥, 밥을 함께 먹는다는 삶의 사소하지만 중요한 기적을 연결해주는 집밥입니다.


[서울, 공유경제를 만나다_집밥 신청 : http://wisdo.me/902]


같이 먹는 밥, 집밥


‘소셜다이닝 집밥’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간단합니다. “나의 식탁을 공유합니다.” 같이 먹으면 밥이 더 맛있다는 사실, 잘 알죠? 소셜다이닝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의 ‘심포지온(Symposion, 향연)’입니다. 오늘날, 강연회로 인식되고 있는 심포지엄(심포지온)은 원래 함께 식사와 술을 나누며 이야기하는 문화를 지칭했어요. 그러니, 식사와 함께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눈다는 건 인류의 DNA에 박힌 아주 오래된 전통이자 문화였던 거죠.


그러나 사람들 생활이 바빠지고, 생활 형태에도 변화가 생기면서 우리는 함께 식사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전통을 잃었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대충 끼니를 때우고, 음식에 대한 존중과 관계를 잃어버린 것이죠. ‘밥상머리 문화’, 사라졌습니다. 박인 대표는 이런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특히나 본인의 경험에서도 ‘함께 먹는 밥’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집밥은 어쩌면 절심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세태에 대한 안타까움과 반발.


박인 대표의 부모님은 인도에서 사업을 하셨고, 언니는 미국에서 유학하고, 자연히 박 대표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서울에서 혼자 살았습니다. 대학에 들어가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그 생활, 익숙해지지 않았습니다. 혼자 먹는 게 싫었고, 그렇다고 공통의 관심사도 없이 무미건조한 자리에서의 밥 한 끼는 내키지 않았던 거죠. 박 대표, 어느 날, 회사를 관두고 혼자 집에 있다 보니, 우울해졌습니다. 혼자서 밥을 먹기도 싫고 이웃집 아주머니와 밥을 나눠먹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곤 실행에 옮겼습니다. 연락을 해서 함께 밥을 먹었던 경험. 그것이 참, 좋았습니다.


머리에 반짝 전구가 떴습니다. 그래, 나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을 거야. 함께 먹는 집밥을 그리워하는 사람들, 나와 같은 관심사를 지닌 사람들과 함께 둘러앉아 먹는 밥상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야.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면서 여유롭고 즐겁게 식사하는 밥상을 매개로 관계를 맺게 해주는 느낌의 공동체. 집밥은 그렇게 발을 뗐습니다. 그렇다면, 밥을 함께 먹는 것도 공유경제다? 왜 그런지, 박인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집밥을 하게 된 계기 중 하나는, 공유경제를 하고 싶어서였어요. 방을 빌려주는 등은 이미 많이 하고 있어서 나는 음식으로 해보고 싶어서 집밥이 된 거죠. 하다 보니까 내가 하고자 하는 게 밥을 하는 것보다 ‘같이 먹는 것’임을 알았어요. 그러면서 내린 결론은 공유경제가 굳이 물건만 공유하는 게 아니고 같이 커뮤니티를 만들어가는 것일 수 있다! 개인 간의 신뢰를 기본으로 한 경제시스템을 공유경제라고 생각했고, 소셜다이닝도 공유경제라는 확신을 갖게 됐죠. 해외를 봐도 소셜다이닝은 공유경제의 범주로 인정받고 있고요.”


고로, 소셜다이닝 집밥은 누구나 편하게 밥 먹으러 와서 대화를 나누고 즐길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는 공유기업입니다. 식사를 매개로 사람 사이의 관계를 회복하고 소통하게 하는 모임 문화기업입니다. 밥이 있고, 관계가 있고, 느낌이 있는 곳. 그러니 지난해 5월 탄생한 이 신생 공유기업은 250개가 넘는 밥상모임을 형성했고, 2천 명 가량이 밥 한 끼의 공동체를 경험했습니다. 덕분에 2012년 12월, 서울시 혁신형 사회적기업으로 지정되기도 했고요. 많은 사람들이 잃어버린 ‘밥상문화’에 대한 향수와 필요성을 공감한 덕분이겠죠.


집밥에서 만나는 공유경제


이미 타계했지만 일본의 작가 요네하라 마리는 《미식견문록》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튼 엄청난 먹보가 많은 우리 친지들은 맛있는 음식을 발견하면 다른 사람에게도 먹이고 싶어하는 습성이 있다. 또 그것이 사람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p.174) 이것이야말로 ‘좋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요. ‘좋은’ 음식을 만나면 ‘나눠’ 먹는 것. 미식(가)이 별건가요. 누군가와 작지만 내가 품은 세계를 공유하고 상호 교류하는 섭생을 하는 것.


집밥이 가진 차별화된 특징 중 하나도 그것입니다. ‘특정 관심사를 통해서 만난다. 호스트들의 명확한 주제가 있다.’ 일본의 영화나 드라마 등을 보면 유독 밥을 먹는 장면들이 많이 나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밥을 먹는다는 행위가 주는 중요성 때문이겠죠.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얻은 영화 <카모메 식당>이나 책 《심야식당》이 주는 감성이 바로 집밥의 것과 맥이 닿습니다. 화려하고 대단한 밥상 아닙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누군가와 밥상머리에서 담소를 나누고, 시간과 이야기를 공유한다는 것. 그것이 좋은 겁니다. 그래서 집밥은 ‘도시락’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잡을 채비도 갖추고 있습니다. 좋은 음식을 함께 나눠먹으며 다른 세상을 꿈꾸는 일, 참 설레는 일이지 않나요?


“집밥은 꿈꿉니다. 전국의 집밥 네트워크를! 밥상으로 대동단결하는 모습을 그려요. 집밥의 커뮤니티와 이야기가 계속 퍼지고 커진다면 제주도에 놀러가서 여행자들, 동네 사람들과 함께 밥상 앞에 모여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풍성은 밥상 앞에서 조금은 냉랭했던 우리도 ‘밥 한 번 먹은 사이’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박 대표의 말에서 탐식가와 미식가의 차이를 엿봅니다. 음식은 그냥 있을 뿐인데, 음식을 대하는 마음에 따라 그 음식은 달라집니다. 음식 먹는 일이 달라진다는 것은 삶과 세상을 새로이 재편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맛있는 음식만 찾아다니며 먹는 것이 탐식이라면 음식에 담긴 삶을 맛보는 미식은, 함께 함으로써 가능한 것이 아닐까요. 음식에 담긴 삶을 맛보고 음식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 그 방법을 공유합니다.


1월24일 목요일 오후 7시30분 서울시신청사 3층 회의실, <함께 식사하면서 이야기 나누는 소셜 다이닝> 집밥을 만나보세요. 참가신청은 위즈돔(http://wisdo.me/902).



by. 커피향 공유하는 남자, 김이준수(공유경제 에디터)


밤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가 있는, 당신과 나의 공간을 꿈꾼다.

커피 한 잔으로 우리는 세계를 사유하고, 세계를 공유한다.

그 알싸하고 향긋하며 좋은 커피향, 나만 맡을 수 없어 당신과 함께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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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경제학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지음, 김영욱 외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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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는 단박에 우리를 사로잡았다. 우물 안 개구리 같던 한국을 단박에 세계의 중심국가를 끌어올리는 주술 같았다. 모든 것은 세계화로 향했다. 모든 수사는 세계화에서 비롯되고 파생됐다. 그러나 그 세계화가 줄기차게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모든 것을 잃었다. 양극화는 심화됐고, 격차사회로 진행됐으며, 돈이 모든 가치를 집어삼키게 됐다. 지구촌이라는 말로 세계화를 설명했던 수사는 거짓이었음이 드러났다. 세계화는 화폐화의 다른 말이었던 것이다.

 

행복의 경제학은 그런 세계화의 거짓부렁을 꼬집는다. “세계화는 인간과 환경을 희생시켜 자신의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각국 정부에 압력을 행사하는 초국적 기업의 작품이다. 이 과정에 세계의 분열과 갈등에 대한 책임이 있다.”(p.141) 그리고 우리의 반성과 성찰을 유도한다. 그것이 오래된 미래의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이기에 설득력을 더한다. 헬레나는 우리가 어떤 준비나 논의 없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던 세계화를 발가벗겨 놓는다. 기만적인 언어와 뉴스피크(정치선전용의 모호하고 기만적인 표현)를 통해 지구인의 삶 깊숙이 들어온 신자유주의의 폭주와 폐해에 대한 총정리라고 해도 좋겠다.

 

이 책의 미덕은 세계화의 폐해에 대한 실증적 지표와 설득 뿐 아니라 확실한 대안을 내놓는다는 점이다. 지역화. , 마을공동체의 회복이다. 지역정체성과 지역경제, 지역지식이 앞으로의 시대를 이끌어가야 할 근거를 제시한다. 세계화는 그 수사와 달리 공동체를 파괴했다. 그러나 인류가 살아가기 위해서 공동체는 필수적이다. 인간적 유대가 필요하다. 공동체에서 살아 숨 쉬는 역할 모델을 만나고 사랑을 배운다.

 

세계의 붕괴를 막으려면 지역적 상호의존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즉 대규모에서 인간적인 규모로 인위적 소비문화에서 사람과 자연이 빚어내는 문화로.”(p.78)

 

그것은 우리가 아는 마을이다. 관계와 이웃이 다시 살아난 마을공동체를 통해 세계화에 초토화된 지구의 삶이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을 헬레나는 조목조목 설명한다. 성장과 세계화의 이름으로 파괴되었던 문명은 마을이라는 이름으로 회복될 수 있다. 지역화 즉 마을화는 지금 지구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종류의 위기나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경제와 환경은 건강을 되찾을 것이고, 도시화의 불건전한 조류를 막을 수 있으며, 문화적 다양성이 회복될 것이다. 종족 갈등이나 폭력도 줄일 수 있다. 무엇보다 지역화를 향해 나아가는 게 현재의 세계화를 지속하는 것보다 비용이 덜 들고 사회환경적 손실도 적다.”(p.35)

 

성장의 이름으로 진행됐던 세계화는 경제의 집중을 불러왔다. 기업들만 살이 쪘고, 노동자는 거리로 내몰렸다. 이 책이 내세운 지역화는 그 집중이 불러온 폐해를 물리치고 행복의 경제학으로 갈 수 있는 방법론이다. 곧 경제시스템의 전면적인 전환이다. 그것은 당연해 뵌다.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기존 경제 체제를 살짝 수정하는 정도로는 지금의 문제는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스템 자체가 문제라는 점은 이미 2008년 경제위기로부터도 명백해 졌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 관성이 지금의 체제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유감이다.

 

지역화는 세계화된 기업자본주의에 대한 체계적이고 폭넓은 대안이다. 경제활동의 규모를 근본적으로 줄이자는 것이다. 그렇다고 국제무역의 철폐를 의미하거나, 자급자족을 위해 노력하자는 건 아니다. 단지 보다 책임 있고 보다 지속 가능한 경제를 발전시키고, 우리가 정말 필요로 하는 것들을 집 가까이에서 생산하자는 것이다.”(p.36)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잃어버린 맛있는 두부 이야기가 떠올랐다. 지금 도시의 많은 사람들은 포장두부에 익숙해져 있다. 식품 대기업들의 포장 두부가 마트를 비롯한 시장을 장악한 까닭이다. 그러나 이것은 진짜 두부라고 보기 어렵다. 유통기한 보름의 각종 화학첨가물과 향이 가미된 짝퉁이다. 우리는 진짜 맛있는 두부를 잃었다. 소규모 가내수공업이 갓만든 두부의 맛은 마을 단위에서만 가능한 무엇이다. 지역화가 필요한 것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지 않고 무조건 덩치를 키우고 성장해야 한다는 논리가 만들어낸 기형아가 포장 두부인 셈이다.

 

행복의 경제학은 안정적인 지역경제로 향해야 한다는 근거를 명확히 제시한다. 생태적·사회적 파괴로 치닫고 있는 지금 상황을 되돌리기 위함이다. 즉 경제활동을 인간적·생태학적 욕구에 적응시키려는 것이다. 마을기업 등 지금 마을공동체와 함께 형성되고 있는 마을경제의 구조가 자리를 잡아가야 하는 이유다. 소수의 거대 기업은 극히 소수의 이익만을 위해 복무한다. 공동체 따윈 안중에 없다. 대다수 노동자나 주민의 삶이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지역화가 급선무다. 지역화 혹은 마을화는 그래서 경제민주화의 다른 이름이다.

 

경제민주화가 경제 주체들이 주인이 되는 것이라면, 지역에 기반을 둔 기업들 손에 경제활동을 맡기는 지역화와 바로 연결이 된다. 안정적인 지역경제는 협동과 친밀, 상호의존적 공동체의 근원이 된다. 지역공동체가 커지고 강해짐으로써 사람들의 삶도 타인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행복의 경제학은 마을이 대세가 돼야 함을 확인하는 책이다. 그곳엔 진짜 삶이 있다. 세계화라는 명분에 의해 노예화된 삶은 바뀌어야 한다. 에너지, 식량과 농업, 교육, 의료, 미디어 등이 거대기업이 아닌 인간을 위해 작동해야 한다. 마을은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나고 자란 곳에서 각자의 삶이 뿌리내림으로써 우리는 좀 더 행복해질 수 있다. 마을화(지역화)는 경제학이 인민의 진짜 행복을 위해 복무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성장에 대한 맹목적 인식을 아직 깨기는 어렵다. 성장해야만 분배도 있을 수 있다는 신자유주의의 주술에 주화입마를 입은 까닭이다. 그렇다고 이웃 없이 관계없이 살아가는 무연사회가 주는 끔찍한 풍경을 더 이상 접하는 것은 두렵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다른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책을 덮고 나서 어떤 방식의 행동과 실천을 하느냐가 내 삶과 지구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지역 제품을 사세요라는 캠페인, 지금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무엇이다. 나는 이것부터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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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부모 -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
이승욱.신희경.김은산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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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학교 2013>은 한 편의 지옥도를 보는 것 같다. ‘교육’으로 포장된 사육의 현장은 학교라는 이름이 이미 지옥의 다른 이름임을 엿볼 수 있다. (당연하지만, 지옥이라고 만날 고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엄마의 치맛바람에 휘둘리는 모범생 민기의 말이 그것을 대변한다. “날 때부터 스무 살이었으면 좋겠어요. 어차피 그전까진 없는 인생이니까.” 어떤 것도 주체적으로 할 수 없는, 엄마의 꼭두각시로 움직이는 저 아이의 마음, 아마도 지옥이리라.

 

한해 평균 158명의 청소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나라, 청소년 자살 증가율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 등 불명예는 꼬리를 문다. 청소년 전체 사망 중 자살 사망 비율이 2000년 14%에서 2009년 28%로 10년 새 2배나 늘었다. 지금 우리가 사는 곳이 어떤 곳인지를 보여주는 이 통계. 그렇다면 아이들을 지옥으로 내모는 사람들은 누굴까.

 

《대한민국 부모》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준다. 다른 누구도 아니다. 부모다. 부모에게도 그러니, 이곳은 지옥이다. 우리는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니 엄친딸(엄마 친구 딸)이니, 우스개처럼 말한다. 그러나 이런 미친 단어도 없다. 내 자식의 오리지널을 인정하지 않고, 다른 아이에 빗대 아이를 다그치는 이상한 풍토가 이 땅엔 있다.

 

그 저변에는 교육열이라는 이름의 불안열이 있다. 불안을 동력으로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극한으로 치닫는다. 어떻게 살아야할지 중심이 없는 부모는 그저 아이를 다그치기만 한다. 옆집 엄마의 한 마디에 대책 없이 흔들린다. 내 스스로 만든 지옥에 아이까지 끌어들이는 형국이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 외에 다른 가치는 없다. 아이에게 전파해 줄 수 있는 가치가 없으니 물려줄 것이라곤 내 마음의 지옥뿐이다. 즉, ‘함께 살자’가 아닌 ‘함께 죽자’의 구조. 자신의 불안을 아이에까지 전이하는 나쁜 구조.

 

나는 자식도 없고, 결혼도 않았지만, 《대한민국 부모》는 지금 이 땅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야할 필독서라고 본다. 우리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내게 자식이 없다고 남의 일이 아니다. 내 조카의 일이며, 그 부모는 내 지인들이다. 주변의 부모인 친구나 선후배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들이 스스로 만든 감옥을 엿본다. 자신의 아이를 다른 아이와 비교함으로써 스스로 만든 마음의 감옥에서 수형생활을 한다. 자율적으로 들어간 그 틀에서 그들은 나올 생각을 않는다. 아니 못하는 것 같다. 내 아이를 믿지 못하고, 남들보다 뒤처질 거라는 무한 불안만이 똬리를 틀고 있다. 그것을 위해 자신이 할 일은 돈을 벌어 아이를 학원에 보내는 것이라고 철썩 같이 믿는다.

 

이 견고한 논리에 맥없이 투항한 이유를 저자들(이승욱, 신희경, 김은산)은 심리 상담 현장에서 길어 올린 생생한 예를 통해 잘 설명해준다. 정서적으로 애착관계를 가진 사람과 분리된다고 생각할 때 느끼는 감정이 불안이다. 아이와 엄마의 관계에서 분리가 발생할 때, 아이뿐 아니라 엄마도 불안해한다. 정서적으로 불안한 부모가 아이와의 분리를 받아들이기 힘든 건 자명하다. 부모는 아이를 끝까지 지켜야한다는 명목으로 ‘헬리콥터 부모’가 된다.

 

그것은 곧 불안사회에 대한 심리학적 근거의 제시다. 아이보다 부모의 불안이 훨씬 더 크다. 아이의 불안은 부모의 불안이 전이된 것이다. 즉, 부모의 불안일 뿐, 아이의 불안은 아니다. 부모의 불안을 보면서 자란 아이는 불안해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부모는 아이를 다그칠 뿐이다. 불안 때문에 두뇌 회로가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일까. 문제는 시스템이다. 잘못된 시스템 때문에 부모와 아이 모두 지옥도에 빠졌는데, 그 지옥도에서도 아이를 다그치기만 한다. 잘못된 시스템을 고치려고 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우리는 지난해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 들었다. 고3 남학생이 성적을 강요하는 엄마를 살해하고 8개월간 집에 방치해 둔 사건. 아이의 패륜을 탓하기 전에 무엇이 엄마를 살해하도록 몰아갔는지 그 근원, 우리는 그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을까. 글쎄. 이 책을 보면서 나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 ‘부모 공부’가 아닐까 생각했다. 부모가 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누군가(스스로를 포함해서!)를 보호해야 함을 감안하면 공부가 필요하다.

 

부모의 역할은 아이들로 하여금 이런 생각을 들게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보호받고 있구나. 우리는 안전하구나. 우리가 성장해도 되는 곳이구나. 요즘 아이들, 패기가 없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어른들의 생각은 잘못됐다. 부모가 그런 환경을 못 만들어줬다. 그러면서 윽박만 지른다고 아이들이 저절로 그렇게 될 리가 없다. 부모들이 베이스캠프가 먼저 돼 줘야 한다. 베이스캠프가 불안하니까, 아이들은 베이스캠프에 묶여서 못 떠난다.

 

이 책은 충격적인 것만 예만 모아놓은 게 아니다. 부모 딴에는 모든 희생을 치러서 의사를 만들어 놨더니 “당신의 아들로 산 것은 지옥이었습니다. 저를 다시는 찾지 마십시오”라는 메시지만 남기고 연락이 끊긴 아들은 지금 가장 보통의 아들일 수 있다. 자기 삶도 서사도 없는 부모, 부부간의 관계도 깨진 채 껍데기만 남은 가정은 우리 대부분의 가정일 수 있다. 이런 환경에서 아이들은 어떻게 자신의 삶을 꾸릴까. 부모에게 대놓고 ‘찌질이’ ‘미친년’이라고 부르는 비정상이 정상처럼 흘러가는 세상. 과연, 대한민국 부모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슬픈 족속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부모는 어떠해야 할까. 이 책이 건네는 진단서는 꽤나 약발이 있어 보인다. 포기. 인간의 성찰과 성장은 포기하는 순간부터 일어날 수 있다. 포기의 다른 말은 곧 수용이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오리지널을 인정하면서 남의 아이와 비교하지 않기. 오롯이 내 아이를 내 아이로 바라볼 수 있을 때, 부모도 아이도 지옥도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의 문제 해결 진단은 그런 면에서 꽤나 유효해 뵌다. 기존 사고의 틀에서는 그것을 해결할 수 없다. 이 책이 좋은 책인 이유다!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없애는 것입니다. 저희가 제안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우려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우리는 비현실적이 되어야 합니다. 문제를 없애고 새로운 현실을 맞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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