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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부모 -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
이승욱.신희경.김은산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6월
평점 :
드라마 <학교 2013>은 한 편의 지옥도를 보는 것 같다. ‘교육’으로 포장된 사육의 현장은 학교라는 이름이 이미 지옥의 다른 이름임을 엿볼 수 있다. (당연하지만, 지옥이라고 만날 고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엄마의 치맛바람에 휘둘리는 모범생 민기의 말이 그것을 대변한다. “날 때부터 스무 살이었으면 좋겠어요. 어차피 그전까진 없는 인생이니까.” 어떤 것도 주체적으로 할 수 없는, 엄마의 꼭두각시로 움직이는 저 아이의 마음, 아마도 지옥이리라.
한해 평균 158명의 청소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나라, 청소년 자살 증가율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 등 불명예는 꼬리를 문다. 청소년 전체 사망 중 자살 사망 비율이 2000년 14%에서 2009년 28%로 10년 새 2배나 늘었다. 지금 우리가 사는 곳이 어떤 곳인지를 보여주는 이 통계. 그렇다면 아이들을 지옥으로 내모는 사람들은 누굴까.
《대한민국 부모》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준다. 다른 누구도 아니다. 부모다. 부모에게도 그러니, 이곳은 지옥이다. 우리는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니 엄친딸(엄마 친구 딸)이니, 우스개처럼 말한다. 그러나 이런 미친 단어도 없다. 내 자식의 오리지널을 인정하지 않고, 다른 아이에 빗대 아이를 다그치는 이상한 풍토가 이 땅엔 있다.
그 저변에는 교육열이라는 이름의 불안열이 있다. 불안을 동력으로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극한으로 치닫는다. 어떻게 살아야할지 중심이 없는 부모는 그저 아이를 다그치기만 한다. 옆집 엄마의 한 마디에 대책 없이 흔들린다. 내 스스로 만든 지옥에 아이까지 끌어들이는 형국이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 외에 다른 가치는 없다. 아이에게 전파해 줄 수 있는 가치가 없으니 물려줄 것이라곤 내 마음의 지옥뿐이다. 즉, ‘함께 살자’가 아닌 ‘함께 죽자’의 구조. 자신의 불안을 아이에까지 전이하는 나쁜 구조.
나는 자식도 없고, 결혼도 않았지만, 《대한민국 부모》는 지금 이 땅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야할 필독서라고 본다. 우리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내게 자식이 없다고 남의 일이 아니다. 내 조카의 일이며, 그 부모는 내 지인들이다. 주변의 부모인 친구나 선후배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들이 스스로 만든 감옥을 엿본다. 자신의 아이를 다른 아이와 비교함으로써 스스로 만든 마음의 감옥에서 수형생활을 한다. 자율적으로 들어간 그 틀에서 그들은 나올 생각을 않는다. 아니 못하는 것 같다. 내 아이를 믿지 못하고, 남들보다 뒤처질 거라는 무한 불안만이 똬리를 틀고 있다. 그것을 위해 자신이 할 일은 돈을 벌어 아이를 학원에 보내는 것이라고 철썩 같이 믿는다.
이 견고한 논리에 맥없이 투항한 이유를 저자들(이승욱, 신희경, 김은산)은 심리 상담 현장에서 길어 올린 생생한 예를 통해 잘 설명해준다. 정서적으로 애착관계를 가진 사람과 분리된다고 생각할 때 느끼는 감정이 불안이다. 아이와 엄마의 관계에서 분리가 발생할 때, 아이뿐 아니라 엄마도 불안해한다. 정서적으로 불안한 부모가 아이와의 분리를 받아들이기 힘든 건 자명하다. 부모는 아이를 끝까지 지켜야한다는 명목으로 ‘헬리콥터 부모’가 된다.
그것은 곧 불안사회에 대한 심리학적 근거의 제시다. 아이보다 부모의 불안이 훨씬 더 크다. 아이의 불안은 부모의 불안이 전이된 것이다. 즉, 부모의 불안일 뿐, 아이의 불안은 아니다. 부모의 불안을 보면서 자란 아이는 불안해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부모는 아이를 다그칠 뿐이다. 불안 때문에 두뇌 회로가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일까. 문제는 시스템이다. 잘못된 시스템 때문에 부모와 아이 모두 지옥도에 빠졌는데, 그 지옥도에서도 아이를 다그치기만 한다. 잘못된 시스템을 고치려고 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우리는 지난해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 들었다. 고3 남학생이 성적을 강요하는 엄마를 살해하고 8개월간 집에 방치해 둔 사건. 아이의 패륜을 탓하기 전에 무엇이 엄마를 살해하도록 몰아갔는지 그 근원, 우리는 그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을까. 글쎄. 이 책을 보면서 나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 ‘부모 공부’가 아닐까 생각했다. 부모가 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누군가(스스로를 포함해서!)를 보호해야 함을 감안하면 공부가 필요하다.
부모의 역할은 아이들로 하여금 이런 생각을 들게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보호받고 있구나. 우리는 안전하구나. 우리가 성장해도 되는 곳이구나. 요즘 아이들, 패기가 없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어른들의 생각은 잘못됐다. 부모가 그런 환경을 못 만들어줬다. 그러면서 윽박만 지른다고 아이들이 저절로 그렇게 될 리가 없다. 부모들이 베이스캠프가 먼저 돼 줘야 한다. 베이스캠프가 불안하니까, 아이들은 베이스캠프에 묶여서 못 떠난다.
이 책은 충격적인 것만 예만 모아놓은 게 아니다. 부모 딴에는 모든 희생을 치러서 의사를 만들어 놨더니 “당신의 아들로 산 것은 지옥이었습니다. 저를 다시는 찾지 마십시오”라는 메시지만 남기고 연락이 끊긴 아들은 지금 가장 보통의 아들일 수 있다. 자기 삶도 서사도 없는 부모, 부부간의 관계도 깨진 채 껍데기만 남은 가정은 우리 대부분의 가정일 수 있다. 이런 환경에서 아이들은 어떻게 자신의 삶을 꾸릴까. 부모에게 대놓고 ‘찌질이’ ‘미친년’이라고 부르는 비정상이 정상처럼 흘러가는 세상. 과연, 대한민국 부모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슬픈 족속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부모는 어떠해야 할까. 이 책이 건네는 진단서는 꽤나 약발이 있어 보인다. 포기. 인간의 성찰과 성장은 포기하는 순간부터 일어날 수 있다. 포기의 다른 말은 곧 수용이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오리지널을 인정하면서 남의 아이와 비교하지 않기. 오롯이 내 아이를 내 아이로 바라볼 수 있을 때, 부모도 아이도 지옥도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의 문제 해결 진단은 그런 면에서 꽤나 유효해 뵌다. 기존 사고의 틀에서는 그것을 해결할 수 없다. 이 책이 좋은 책인 이유다!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없애는 것입니다. 저희가 제안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우려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우리는 비현실적이 되어야 합니다. 문제를 없애고 새로운 현실을 맞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p.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