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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음식물의 절반이 버려지는데 누군가는 굶어 죽는가
슈테판 크로이츠베르거 & 발렌틴 투른 지음, 이미옥 옮김 / 에코리브르 / 2012년 7월
평점 :
먹는(것을 고르는) 행위가 왜 정치적인가에 대한 이야기, 종종 했다. (☞ 왜 먹는 것이 정치인가 : 식량 선택의 정치학 , ☞ 당신도 자본에 의해 조작된 먹거리에 오염돼 있지 않은가!) 그러나 '넌 왜 먹는 것 갖고 그러냐'는 너의 타박(?) 받았다. 실실 웃으면서 생깠다. 그야말로 무식의 극치니까. 혹은 넌 거대식품자본에 포박된 노예니까. '무식한 노예'에게 무슨 말을 덧붙여 설득하겠는가. 그래, 니가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거(그러나 실은 자본에 의해 길들여진 니 주디에 달콤한 것), 실컷 처먹어라. 속으로 그렇게 말해주셨다.
물론, 나는 '네(사)가지'가 없어서 그리 했다만(설득력도 부족하고, 설득하느라 힘빼기도 귀찮고), 다시 생각하니 조금 미안해졌다. 그래서 이 책, 너에게 다시 권한다. 내가 권한다고 색안경부터 끼고 접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왜 음식물의 절반이 버려지는데 누군가는 굶어 죽는가》.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가 연상될 수도 있겠다. 맞다. 두 책은 다르지 않다. 거칠게 말해서, 장 지글러의 책이 세계에 만연한 굶주림과 빈곤의 원인을 국제정치(의 허술함)에서 찾았다면, 《왜 음식물의 절반이 버려지는데 누군가는 굶어 죽는가》는 일상의 정치(적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보여준다.
그래, 두말할 것도 없다. 소비는 정치적인 행동이다. 낭비도 정치적인 행동이다. 무엇을 먹을 것인지 고르는 것, 그리고 그것을 버리는 행위. 우리가 일상에서 너무도 쉽게 행하고 행하는 것이다. 그것에서 왜 또 '정치'를 끄집어 내냐고?
그럴 수밖에 없다. 아무 것이나 먹게 만드는 것, 너무도 쉽게 식량(식품)을 버리도록 만드는 것. 그것 자체가 거대자본의 정치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거시적으로나 미시적으로나, 현실 정치에서나 일상의 정치에서나 아주 폭넓게 개입한다.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이성을 잃게 만든다. 자본이 만든 룰에 포박된 채, 그 울타리안에서만 (선택의) 자유를 느끼도록 만든다.
책은 그것을 지적한다. 우리가 직면한 근본적인 문제말이다. 가치와 가격을 구분하지 못하는 가맹(價盲)의 상태. 그들은 유통망을 장악한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우리의 선택을 좌지우지했다. 무엇이 좋고 나쁜지를 감별할 수 있는 우리의 '촉'도 무뎌졌다. 앞뒤를 다 장악하고, 화학으로 값싼(그러나 나쁜) 물질을 처넣었다. (로비를 통해) 법도 장악했으니, 두려울 게 무어냐.
우리는 착각에 빠졌다. 우리가 먹어야 사는 생물(동식물)에 대한 고마움은 차츰 잊었다. 값싼 음식을 원했고, 이런 음식이 충분히 생산되기를 원했다. 자연히 형편없는 음식이 몰려왔고, 입은 싸구려로 전락했다. 후각과 미각은 좋고나쁨이 아닌, 자극에만 길들여졌다. 음식? 더 이상 존중의 대상이 아니었다. 식품의 품질이 떨어져도 누구도 불평하거나 토를 달지 않았다. 음식은 의미를 상실했다. 이로써 사람은 물론 자연과의 연계도 끊겼다.
결국 이런 참사가 벌어졌다. "음식은 사람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낭비할 수 있는 하찮은 것으로 전락하고 말았다."(p.6)
너도 정말 다시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먹는 것의 문제는 결국 그것의 처리 문제와도 직결된다는 점을.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가 분배의 문제를 지적했다면, 《왜 음식물의 절반이 버려지는데 누군가는 굶어 죽는가》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식량의 생산부터 유통, 소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 엄청나게 쏟아지는 '쓰레기'의 문제에 카메라를 돌렸다.
아참, 참고로 이 책은 공저자이기도 한 발렌틴 투른의 '음식 낭비'에 대한 다큐 영화 <쓰레기 맛을 봐(Taste The Waste)>과 관련돼 있다.
어쨌든 음식 낭비를 하는 이유는 뚜렷하다. 나를 살리고 나를 지탱하는 음식을 존중하지 아니하므로! 음식을 향유하는 법도 잊었다. 다시 말해, 제대로 음식을 향유한다면 낭비는 일어나지 않는다. 음식에 진정한 가치를 되돌려주는 태도이다. 음식(요리)는 경이로운 일이다. 음식을 먹는 우리 입에서 詩와 노래가 나오는 것을 봐라.
책은 말한다. 우리가 먹는 양만큼 버린다고. 유엔 식량농업기구에 의하면, 전 세계에서 모든 식품의 '3분의 1'이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 심지어 미국과 같은 나라에선 식품의 절반이 입이 아닌 쓰레기통을 향한다. 미친 짓이다. 이렇게 버려지는 수치의 절반만 건져도, 아니 3분의 1만 건져도 굶주림은 해결가능하지 않을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식량 낭비는,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일이다. 정치적인 조치를 통해서 가능하다. 물론 너도 많이 들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한해 음식물 쓰레기만 500만톤에 이르며, 18조~20조원에 달한다는 것. 이때 탄소배출량도 885만톤이나 된다. 우리나라 전체 승용차의 18%가 내뿜는 탄소량이다. 소나무 18억 그루가 흡수해야 하는 양이고. 이래저래 엄청난 수치다. 그럼에도 우리는 둔감하다. 맛과 음식에 대한 감각을 잃어가기 때문이다. 역시 미친 짓이다.
대형마트나 슈퍼마켓은 그런 면에서 '심리적인 기아 상태'의 장소이다. 음식 멘붕. 빽빽하게 들어선 수많은 제품들로 인해 무엇이 맛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탈감각화를 유도한다. 자본의 수작이다. 진열장은 무조건 비면 안 되고(다른 마트에 손님을 뺐기니까), '유통기한'에 경도된 사람들은 닥친 날짜에만 급급하다. 유통기한이 지나도 먹을 수 있음에도, 마트는 유통기한이 다다르면 무조건 버린다. 버려야 수요가 일고, 버리는 것에도 이미 가격이 포함돼 있다. 그 사실,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런 음식 낭비, 너 역시 분개하지 않아? 분개한다면, 우리가 음식을 다루는 행태에도 분개해야 한다. 이 말을 되씹어보자. "낭비는 기아와 영양실조로 고통받는 수십 억 지구인들을 고려할 때 단지 윤리적인 문제일 뿐 아니라, 경제 문제이자 생태 문제이기도 하다."(p.6)
그렇다면 이토록 엄청난 과잉생산과 식량 파괴에 책임을 져야 할 자들은 누구일까. 책은 친절하게 꼽아주신다. 소수의 농업과 화학 분야의 기업연합 수장들, 은행과 주식 투기꾼들. 뭉뚱그려 말하자면, 자본이다. 이 탐욕덩어리의 수작과 협잡은 인류의 계몽과 이성마저도 무력화시킨다. 즉, 우리는 계속 너무 많은, 지방도 너무 많고, 너무 달고, 화학물질 범벅인 식품을 입으로 넣기만 한다. 무의식적으로 형편없이 먹는다. 다시 말하지만, 음식에 대한 존중이 소멸되는 것은 당연지사다.
나의 말이 이번엔 얼마나 설득력을 가지는지 모르겠지만, 내 말에 조금이라도 꿈틀대는 지점이 있다면, 《왜 음식물의 절반이 버려지는데 누군가는 굶어 죽는가》를 읽고 다시 이야기하자. 음식이 차고 넘치는데, 누군가, 그것도 숱하게 많은 인류가 굶어 죽는 명백한 사실, 그 배후를 우리는 알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을 해결하는 것은 결국 정치다. 우리가 일상에서 행해야 하는 정치.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아도, 그것이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생각하게 만든 것도 거대자본이 획책한 정치력이었다.
책이 말한 바를 나도 강조하고 싶다. "지구는 기분 날 때마다 마음껏 이용하는 할인매장이 아니다." 지극히 원론적이고 교과서적인 얘기지만, 너나 나나 이 지구에 사는 모든 사람은 건강한 환경, 깨끗한 음료수, 충분히 건강에 좋은 식량 그리고 교육과 공정한 삶의 기회를 누릴 권리가 있다. 충분히 너도 동의하리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럴 때 필요한 건 뭐? 행동이다. 장을 보러갈 때, 음식을 대할 때, 커피 한 잔을 마실 때도 우리는 정치적인 소비를 해야 한다. 그것이 낭비를 줄이고, 누군가 굶어 죽지 않게 하는 정치적인 힘이 된다.
책은 쓰리알(RRR)을 요구한다. 줄이기(Reduce) 재분배하기(Redistribute) 재생하기(Recycle). 그렇지 않아도 먹는 것에 약간 까칠하다는 평을 듣는 나는, 이 책을 읽고 좀 더 까다로워지기로 했다. 니가 나랑 만날 때는 충분히 감안해주길 바란다. 너도 이 책을 제대로 읽는다면, 우린 '투 까칠'이 될 거다.
'슬로푸드'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슬로푸드 인터내셔널 회장 카를로 페트리니의 말씀으로 끝맺을게. 너와 더불어 더 아름다운 삶을 살고 싶다. 음식을 진짜 향유하면서 말이지.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무엇을 먹고 무엇을 버리는지 생각해보기로 하자. 즉 우리가 먹는 음식의 배후에 뭣이 숨어 있는지를 파악하면, 삶은 더 아름다워지고 의미 있게 될 것이다."(p.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