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rm “female” is pejorative not because it roots woman in nature but because it confines her in her sex, and if this sex, even in an innocent animal, seems despicable and an enemy to man, it is obviously because of the disquieting hostility woman triggers in him.
Nevertheless, the wants to find a justification in biology for this feeling. The word “female” evokes a saraband of images.
남자들이 여성들에 대해 갖는 불안함 감정. 그리고 “여자 암컷”이라는 말이 갖고 있는 경멸적인 어조. 남자들이 시도하는 생물학적 정당화.
Man projects all females at once onto woman. And the fact is that she is a female. But if one wants to stop thinking in commonplaces, two questions arise.
- What does the female represent in the animal kingdom?
- What unique kind of female is realized in woman?
생물학이 여성에 대한 취한 관점을 탐구하는 첫 번째 장에서 보부아르가 제기한 문제는 다음과 같다.
- 동물의 왕국에서 암컷의 위치는 어떠한가?
- 여성에게서 드러나는 인간 암컷의 특징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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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les and females are two types of individuals who are differentiated within one species for the purposes of reproduction; they can be defined only correlatively. But it has to be pointed out first that the very meaning of division of the species into two sexes in not clear.
‘양성 평등’이란 단어를 반대하는 이유. 자연계에 그리고 인간계에 양성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양성의 구분이 그렇게 명확하게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Opinions about the respective roles of the two sexes have varied greatly; they were initially devoid of any scientific basis and only reflected social myths. It was thought for a long time, and is still thought in some primitive societies based on matrilineal filiation, that the father has no part in the child’s conception: ancestral larvae were supposed to infiltrate the womb in the form of living germs. With the advent of patriarchy, the male resolutely claimed his posterity.
남성성에 대한 우위의 신화는 기독교가 전파한 선민사상과 참으로 맞닿아있다. 그들은 (그들이 만든 신으로부터) 약자 위에 군림하며 마음껏 부려도 좋다는 권한을 받는다. 남성들은 온갖 헛소리를 동원하여 여성성이 열등하다는 의식을 퍼뜨려왔다.
모계 사회의 신화들은 그렇게 약자 위에 군림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데. 나와 계약 맺은 신이 나 이외의 이방인들을 섬멸하고, 내 발 아래 두는 것을 용인하신 덕분에 그들은 그들의 살육과 전쟁을 늘 정당화해왔다.
계속 머릿속에 맴도는 질문.
남성들이 세상의 절반을 착취하는 구조는 어떻게 그렇게 오래 지속될 수 있었을까. ‘공모’는 어떤 기제로 작동했던 걸까? (아, 저 기제를 밝히는 나머지 페이지들 너무 읽고 싶은데 이런 거북이 걸음으로 과연 결승선을 통과할 수 있을지. ㅋㅋㅋ)
아리스토텔레스의 적통을 이어받은 헤겔은 제멋대로 지껄인다.
Hegel thought the two sexes must be different: one is active and the other passive, and it goes without saying that passivity will be the female’s lot. “Because of this differentiation, man is thus the active principle while woman is the passive principle because she resides in her non-developed unity.”
사회 초년병 시절 헤겔의 사상을 이어받은 회사 사장은 헤겔의 논리를 시도때도 없이 지껄였다. 금쪽 같은 자기 아들래미와 뭔가 늘 마땅치 않은 딸래미를 비교하며. 자신의 거지같은 성고정관념이 마치 지고지순한 철학인양, 진리인양, 깨달음인양 떠드는 걸 인내심을 갖고 들어주는 게 너무도 역겨웠다.
헤겔 시대의 여성들은 저런 거지 같은 이야기를 평생 듣고 또 듣고 지겹게 듣고 신물나게 듣고 살았겠지. 그 와중에도 이런 글을 쓰는 여성들이 나왔다는 게 감격스럽고 고마운 따름이다.
One of the essential features of man’s destiny is that the movement of his temporal life creates behind and ahead of him the infinity of the past and the future. The perpetuation of the species appears thus as the correlative of individual limitation, so the phenomenon of reproduction can be considered as ontologically grounded. But this is where one must stop.
“인간 운명의 본질적 특성 가운데 하나는 그 순간적인 삶의 운동이 전후에 무한한 과거와 미래를 창조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의 영속은 개인적 한계와 상관적인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우리는 번식 현상을 존재론적 으로 근거가 있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어야 한다.”
The perpetuation of the species does not entail sexual differentiation.
종의 영속이 성적 분화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단성 생식, 양성구유로 구성된 사회를 상상할 수 있다.
Without coming to any conclusion about life and consciousness, we can affirm that any living fact indicates transcendence, and that a project is in the making in every function: these descriptions do not suggest more than this.
이 말이 중요한데, 정확히 이해가 안된다. ‘계획된 것이 모든 기능에 작동한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번역서에는 ‘모든 활동 속에는 계획이란 것이 내포되어 있다’는 걸로 해석했다. 모든 유전자의 활동이 기능 속에 내포되어 작동한다? 대충 이렇게 이해해야 할 듯. Project를 계획된 플랜이라고 이해하는 데에서 의미가 좀 꼬이는 것 같은데, project를 오히려 현상이라고 이해하면 좀 더 의미에 가깝지 않나 추측해 본다. 유전자가 다 뭐 계획이 있으시다고 보는 건 넘 기계론적 사고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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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식세포의 어느 쪽도 우월하지 않음에도 생식세포의 결합을 비유하는 망상에 빠져 여성성과 남성성을 규정지었던 중세 낡은 철학의 잔재 그리고 낡은 비유에 기초한 유희. 성적 구분이 가장 확연한 종들에서조차 수컷인 동시에 암컷인 개체들이 있고, 동물과 인간에게서도 간성의 경우가 발견되는데도 말이다.
교미 후 수컷을 잡아먹는 것으로 악명이 높은 사마귀를 ‘양성 투쟁’의 상징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아주 드문 경우이자 일어날 경우는 알을 낳고 종을 영속시킬 힘을 갖기 위해서. 암수를 둘 다 집어삼키는 것은 ‘종’이다.
어류의 경우 어미는 난자를 배출하고 아비는 정자를 배출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역할은 같다. 무정란 혹은 수정란을 배출하는 어류와 조류는 포유류 암컷만큼이나 새끼들의 포로가 되지 않는다.
오직 고등원숭이와 여자에게서만 매달 고통과 출혈이 행해진다.
In periods when she escapes the servitude of maternity, she can sometimes be the male’s equal: the mare is as quick as the stallion, the female hound has as keen a nose as the male, female monkeys show as much intelligence as males when tested. But this individuality is hot asserted: the female abdicates it for the benefit of the species that demands this abdication.
암컷은 포기를 요구하는 종을 위해 자신을 포기한다.
From puberty to menopause she is the principal site of a story that takes place in her and does not concern her personally. Anglo-Saxons call menstruation “the curse,” and it is true that there is no individual finality in the menstrual cycle.
The woman is more adapted to the egg’s needs than to herself.
Woman is her body as man is his, but her body is something other than her.
느닷없이 격렬한 생리통에 양호실, 응급실, 급기야 화장실에서 기절에 가까운 상태로 옴쭉달싹 못했던 경험들이 떠오른다. 싸늘한 배를 감싸쥐고 울면서 양호선생님께 물었던 기억이 있다. 왜 이렇게 아파야 하느냐고. 그때는 내가 아이도 낳지 않고 폐경을 얼마 안남길 때까지 생리를 하게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어렴풋이 아이와 나는 상관없을 것 같은 느낌만 받았을 뿐.
보부아르는 폐경에 들어선 여성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Woman escapes from the grip of the species by one more difficult crisis; between forty-five and fifty, the phenomena of menopause, the opposite of those of puberty, occur.
So woman finds herself freed from the servitudes of the female; she is no loner prey to powers that submerge her: she is consistent with herself.
자기 자신과 일치하는 순간. 몸의 굴레, 암컷이라는 몸의 구속상태에서 해방되는 그 순간이 기다려진다.
These biological data are of extreme importance: they play an all important role and rare an essential element of woman’s situation.
Because the body is the instrument of our hold on the world, the world appears different to us depending on how it is grasped, which explains why we have studied these data so deeply: they are one of the keys that enables us to understand woman.
But we refuse the idea that they form a fixed destiny for her. They do not suffice to constitute the basis for a sexual hierarchy; they do not explain why woman is the Other; they do not condemn her forever to this subjugated role.
여성의 몸을 들여다보는 일은 그래서 중요한 것 같다. 하지만 생물학적 ‘조건’이 남녀의 위계를 규정하는 것은 충분한 설명이라고 보지 않는다. 여자가 왜 ‘타자’인지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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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 Merleau-Ponty rightly said, man is not a natural species: he is a historical idea. Woman is not a fixed reality but a becoming; she has to be compared with man in her becoming; that is, her possibilities have to be defined. He(She) valorize himself(herself) in the name of certain values.
이항대립을 통해 존재가 규정된다는 것.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형성되는 과정으로서. 어떤 가치를 부여하는 관습에 따라 자신의 가치를 부여하면서. (인칭대명사가 he이던 시절에 쓰여진 글이기 때문에 괄호 속 she, herself를 추가했다.)
A society is not a species: the species realizes itself as existence in a society.
생물학적 잔지식으로 하나의 성이 다른 성을 예속시킬 수 없다는 건 너무 당연한 이야기 아닌가? 이 장은 그 당연한 이야기를 당연하지 않다고 천연덕스럽게 지껄이는 사람들을 향해 할애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