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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 (특별판)
홍진훤.김연수 지음 / 사월의눈 / 2023년 4월
평점 :
2024년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전시에서 홍진훤의 ‘멜팅 아이스크림’을 보고 펑펑 울었다. 한 시간 가량의 다큐멘터리 필름을 보고 한참 지난 후 다시 전시장을 찾아 한 번 더 보았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미술관을 돌아다니며 함께 보고 토론하는 모임을 만든 건. 시류를 쫓는 알쏭달쏭 현대미술보다는 해석의 여지가 많은 전시들을 신중하게 골랐다. 집에 돌아와 홍진훤의 아카이브를 보고선 많이 놀랐다. 아 누구는 떠드는 동안, 누구는 하는구나. 반성도 들고, 부끄럽기도 하고, 대단하다 느껴지기도 하고, 홍.진.훤 이름 세 글자가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래서였을까. 작년 부산비엔날레에서 그의 이름을 보고 많이 반가웠다. 그리고 얼마 전 떠난 ‘대구 여행’에서 들른 한 사진서점, ‘낫온리북스’에서 다시 그의 이름을 만났다.
보수의 심장, 대구 여행을 기획하게 된 건 순전히 ‘마르시안스토리’라는 사진 전문 출판사의 이야기에 매료되어서이다. 사진을 정확히 인쇄하기 위해 직접 출판사를 차리고 인쇄소와 합작하여 백년 전 정해창의 사진을 복원해내고, 오로지 사진 관련 출판으로만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는 외고집을 직접 대면하고 싶었다. 흔쾌히 방문을 허락하고 기꺼이 시간을 내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 그이의 환대가 여행 내내 그윽한 차향처럼 오래 남았다. 다시 못올 기회라 여기며 한아름 구입한 귀한 책들은 어쩌면 이제 곧 절판의 운명에서 만난 인연이라 그런지 더욱 애틋한 마음마저 들고. 그렇게 더듬더듬 시작한 대구 여행은 내가 그동안 표면적으로 알았던 대구가 얼마나 편협했는지도 일깨워주었다.
반가운 사진 한 장 투척.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5/0210/pimg_7330181334599032.jpeg)
아마 대구에서 만난 프랭카드라 더 반가웠는지도 모르겠다. 올겨울 추운 거리에서 응원봉을 흔들고 은박 보자기를 뒤집어쓰고 탄핵, 체포, 구속을 함께 외친 이들 중에 ‘TK의 딸들’이 있었다. 자신들의 목소리가 아버지의, 어머니의 목소리를 뒤덮으리라 외쳤던 이들에게 힘껏 박수를 쳐주었지. 학연과 지연으로 촘촘하게 얽힌 사회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살아가는 건 분명 쉽지 않은 선택이리라. 아무런 연고 없이 서울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부모님이 사는 성주에서 가장 가까운 대도시인 대구를 선택해 사진 전문 서점, ‘낫온리북스’를 연 대표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이 당찬 처자는 지금 대구에 오 년째 사진 전문 서점을 운영하며 역시나 사진을 주 매체로 하는 출판사 ‘사월의봄’을 도와 사진 작업도 하고 전시도 하고 활발하게 이벤트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 책은 홍진훤과 김연수가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해 공동 작업한 사진 산문집이다. 사진을 좀 더 크게 볼 수 있는 물성이 독특한 초판은 2017년 4월 16일에 나왔고 2쇄를 찍고 절판되었다. 2023년에 작은 시집 사이즈로 홍진훤과 김연수의 기록들을 더해 특별판이 나왔다. 절판된 책을 서점에서 만져보는 행운은 누렸으나 구입할 수 있었던 책은 특별판이다. 정가는 38,000원. 놀랄 수 있다. 하지만 초판을 보고 감동한 값어치를 지불했다고 생각한다.
울지 않을 거라고 예상하진 않았지만 예상치 못한 곳에서 자꾸 후두둑 눈물이 떨어졌다. 세월호 아이들이 살아서 제주에 도착했다면 갔을 곳들, 홍진훤은 그 일정표대로 사진기를 들고 보이지 않는 아이들의 행적을 쫓았다. 어느 순간 그도 무너졌고, 나도 무너졌다.
"그 아이들을 기억하는 일은 미래의 누군가를 기억하는 일이 될 수도 있을 테니까.”
김연수의 문장에 조용히 밑줄을 그었다.
그의 말대로 “과거를 기억하듯이 미래를 기억하는 일이 현재를 어떻게 바꿔놓는지”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이제 또 4월이 돌아오겠지. 바라건대 새로운 대통령을 그 전에 뽑을 수 있기를. 그리고 저 반동의 세력들이 활개치지 못하게 굳게 땅을 다질 수 있기를. 추워도 그치지 않고 모두 거리에 설 수 있기를. 다같이 눈부신 봄을 맞이할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간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