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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을 읽다
장정훈 지음 / SISO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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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보는 순도 높은 영국 이야기. 읽다보면 영국을 가지 않아도 ‘진짜, 제대로‘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볼거리, 먹을거리 남발하는 그런 여행기 말고, 다큐멘터리 PD스럽게 사려깊고 성심어린 마음으로. 영국 갈 생각 있으면 저스트고, 론리플래닛 재쳐두고 이 책을 읽을 일이다. 너무 좋아 깜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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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역사 - '공무도하가'에서 '사랑의 발명'까지
신형철 지음 / 난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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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철의 글을 다 읽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은 건 처음이다.
가장 정결한 시간을 골라 천천히 조금씩 읽었다. 
그렇게 정성을 다한 것도 처음이다.

그의 글을 읽고 글쓰기가 어려워졌다.
제멋대로 끄적이는 것이 지금 쓰는 글의 본령이라고 여기고 있지만,
멋대로 끄적이는 것조차 함부로 던지는 공이나 화살처럼 여겨진 탓이었다.
글을 쓰는 데 그렇게나 ‘노오력’을 다하고 ‘최애선’을 다해야 하나?
부러 심술궂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기실 신형철은 좋아하는 카테고리에 속해있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의 문장력이야 널리 알려질대로 알려진 일이었으나
그의 명성에 이끌려 선택한 책들이 기대감을 충족시켜주지 못했고,
(엄청난 걸 기대했다가 짧은 감상문에 놀랐다고나 할까?)
가지고 있는 권력에 비해 견지하고 있는 침묵이 불편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그리고 박서보 표지라니!
나는 문학계에서 그의 권력 못지 않게 미술계의 박서보의 위상이 서로 접점을 찾았다는 게 
경악스러웠다. 
아무튼, 누구든 믿을 만한 사람에게는 지갑을 여는 법이니까.
표지에 그만큼 투자(?)할 수 있을 만큼 신형철의 책은 팔리는 책이니까.
당연한 사실이 씁쓸하게 다가오는 건 내 꼬인 정서 때문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해석에 기대어 익숙한 시들, 혹은 처음 보는 시들을 다시 보았다.
얼마간 고마워했고, 얼마간 숙연해졌다.
‘좀 알겠다 싶으면 당신은 아직 모르는 것이고, 어쩐지 점점 모르겠다 싶으면 당신은 좀 알게 된 것이다’는 말은 함부로 떠들지 말라는 충고처럼 들렸다. 

도대체 왜 쓰는가.

나는 자신의 감정 상태를 떠벌리는 이야기 앞에서 진저리를 친다.
여행이 특히 그렇다. 아무도 경험하지 않은 이야기들을 마치 저 홀로 처음 세상을 마주한 것처럼
잔뜩 열에 뜰떠 늘어놓는 찬사에 싸늘해진다. 
허나 가장 먼저 수첩을 열고, 자판을 누르고 싶어지는 때는
그렇게 나에게 둔중한 충격으로 밀고 들어오는 어떠한 사건, 충격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떤 이는 그걸 애써 덤덤하게(비록 그것이 가장 절망적인 것일 지라도),
어떤 이는 한껏 부풀려(그것이 아무리 작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것일 지라도),
문자라는 도구를 빌려 남겨 놓는다.

쓰기는 자신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타인을 향한 것인가. 
쓰기라는 행위를 통해 우리가 얻고자 하는 보상은 과연 무엇인가.

기초적인 질문에 시라는 형태를 빌어 자신의 삶으로 답변했던 시와 시인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거의 아무 것도 읽어내지 못했을 거라는 의미에서 나는 어쩌면 문맹이다. 

시를 읽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던가?

“누구도 시인들만큼 잘 묻기는 어렵다. 나는 그들로부터 질문하는 법을, 그 자세와 열도와 끈기를 배운다. 그것이 시를 읽는 한 가지 이유다. 인생은 질문하는 만큼만 살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누구도 똑같은 시를 쓸 수가 없다. 
우리 모두 각자 다 다른 시인이자 작가인 이유다.

신형철의 글에 비록 머쓱해지고, 부끄러워지더라도,
어쩌면 일기장 한 구석에나 적어놔야 하는 끄적임에도 불구하고 어딘가에 누가 보라고 적어놓는 이유는, 지금의 내가 끄적일 수 있는 만큼이기 때문이다.

‘혁혁한 업적’을 열망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오늘의 초라한 나와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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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03-13 1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나뭇잎처럼 2023-03-14 10:24   좋아요 1 | URL
축하 감사합니다. 게을러질 때마다 한번씩 일깨우네요. 서니데이님도 다가오는 봄 만끽하시기 바랄게요. ^^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고전예술 Classical Art 편 (리커버판)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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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아프다. 오래된 주요 저작들을 챕터별로 요약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가미한 책이 이토록 오랜 시간 미학사의 한 코너를 오래 지키고 있다는 것이. 우리가 그토록 과소비하는 지중해 근처의 서사들에 대해 우리는 언제쯤 반성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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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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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과 짝짓기에 관한 소설. 저자는 한 번도 내딛어 보지 못한 습지로 우리를 안내하지만 서사는 진부하며 이야기는 단조롭다. 아마존에서 경이적인 리뷰와 판매고를 성취한 건 과연 무엇 때문이었을까. 사람들은 유명한 책을 선택한다? 유명 인플루언서의 지지? 광고? 아니면 무난한 대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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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2-24 11: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나뭇잎 처럼님 !
가족 모두 행복 가득! 하시길 바랍니다
해피 크리스마스 !
🎄 ℳ𝒶𝓇𝓇𝓎 𝒞𝓇𝒾𝓈𝓉𝓂𝒶𝓈 🎅🏻
。゚゚・。・゚゚。
゚。  。゚
 ゚・。・゚
⠀()_/)
⠀(。ˆ꒳ˆ)⠀
ଫ/⌒づ🎁

나뭇잎처럼 2021-12-24 21:22   좋아요 0 | URL
늘 들려주시는 귀한 음악 선물 감사합니다. scott님도 메리 크리스마스하세요. ^^
 
The French Dispatch 웨스 앤더슨 프렌치 디스패치 대본집 (Hardcover, Main)
웨스 앤더슨 / Faber & Faber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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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앤더슨 영화 대사는 좀 빠른 편이다. 리스닝이 된다고 조금만 자막을 소홀히 보면 상관관계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생긴다. 섬세하게 직조해놓은 구조를 최대한 간결한 문장으로 표현하려다 보니 빚어지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풀리지 않다가 나오면서 이해가 되는 대목도 있고, 다시 봐도 결국 왜 그랬지?에 대해 뚜렷한 답변을 어디서도 구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래서 이번에도 다시 봤다. <프렌치 디스패치>. 첫 번째 봤을 때는 자막 올라가면서 코끝이 찡했는데, 두 번째 봤을 때는 왈칵 울음이 터져 옷소매로 계속 눈두덩이를 훔쳐야 했다. 바로 뒤에서 젊은 연인(영화 속 티모시 샬라메와 함께 나왔던 커플 같은) 중 여자가 “뭐야, 이게. 뭐가 눈물이 난다는 거야. 나 참.”이라고 성질을 내자 “영화를 보는 관점은 다 다를 수 있으니까.” 남자가 여자를 달랬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옷소매로 눈물을 찍어냈는데, 결국 자막이 다 올라가고 난 다음에도 훌쩍거리는 나를 자리에서 쫓아낸 것은 “영화 끝났습니다. 나가주세요.”라고 말하는 영화관 직원의 퉁명스런 외침이었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라는 유쾌한 영화를 보고 마지막 장면에서 정말 느닷없이 눈물이 또로록 흘렀다. 옆에서 같이 보던 남편을 보자 왠만해선 별로 반응도 없는 사람이 같이 또로록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서로 바라보며 웃었다. 폐간하는 잡지의 마지막 사진을 찾기 위한 여정이었다니. 그 사진이라니. 아무 것도 아닌 그 장면에 울 수 있는 사람은 우리 둘일 거라고 위안을 삼았다. 이제 그 책은 다시 볼 수 없으니. 아마 앤더슨의 영화는 계속 볼 수 있을지 몰라도 앤더슨이 만든 그 책은 다시 볼 수 없을 테니. 어쩌면 그 책을 보며 마음을 졸이고, 마음을 부풀리고, 조용히 떨고, 조용히 사무치는 사람들도 이젠 다시 볼 수 없을테니. 사라지는 모든 것을 위한 조사라고나 할까. 나는 그렇게 눈물로 사라지는 것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프렌치 디스패치>를 봐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시사인> 기사였고, <물음을 위한 물음>이란 책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구매 결정한 것도 <시사인> 기사였다. <물음을 위한 물음>은 갈무리에서 나왔다. <녹색평론>은 1년 휴간을 선언했다. 나는 <시사인>과 <뉴욕타임스>를 정기구독한다. 갈무리는 응원하지만 모든 책을 사진 않고, <녹색평론>은 종종 도서관에서 본다. <파리리뷰>에 열광하고, <뉴요커> writer’s voice에 설레고, <BBC> 북클럽을 고대하며 한 달에 한 번 업데이트를 기다린다. 넷플릭스와 유튜브, 그리고 왓차까지 충실하게 서브스크립션한다. 


. . .

사라지는 것들에는 이유가 있다. 


그래도 <프렌치 디스패치> 스크린 플레이 책을 주문했다. 아마존에서 직접 받을 수 있지만 그냥 알라딘으로 주문했다. 내 책장에는 정기적 방출에도 꿋꿋이 살아있는 <개들의 섬> 영문본 스크린 플레이 책과 번역본이 모두 꽂혀있다. 어디서 <프렌치 디스패치>를 번역해 낼진 모르겠지만 한 줄 한 줄 형광펜으로 밑줄 그으며 읽을 예정이다. <개들의 섬>은 다시 읽어도 참 새롭다. <프렌치 디스패치>도 꼼꼼하게 다시 읽어야지. 보고, 또 보고, 읽고 또 읽고. 모든 대사가 내 몸에 꼭꼭 박히도록. 웨스 앤더슨이 <뉴요커>를 탐독하며 그랬던 것처럼.


Try to make it seem that you wrote it that way on purpose.


<프렌치 디스패치> 편집장이 작가들에게 주문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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