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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역사 - '공무도하가'에서 '사랑의 발명'까지
신형철 지음 / 난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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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철의 글을 다 읽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은 건 처음이다.
가장 정결한 시간을 골라 천천히 조금씩 읽었다. 
그렇게 정성을 다한 것도 처음이다.

그의 글을 읽고 글쓰기가 어려워졌다.
제멋대로 끄적이는 것이 지금 쓰는 글의 본령이라고 여기고 있지만,
멋대로 끄적이는 것조차 함부로 던지는 공이나 화살처럼 여겨진 탓이었다.
글을 쓰는 데 그렇게나 ‘노오력’을 다하고 ‘최애선’을 다해야 하나?
부러 심술궂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기실 신형철은 좋아하는 카테고리에 속해있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의 문장력이야 널리 알려질대로 알려진 일이었으나
그의 명성에 이끌려 선택한 책들이 기대감을 충족시켜주지 못했고,
(엄청난 걸 기대했다가 짧은 감상문에 놀랐다고나 할까?)
가지고 있는 권력에 비해 견지하고 있는 침묵이 불편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그리고 박서보 표지라니!
나는 문학계에서 그의 권력 못지 않게 미술계의 박서보의 위상이 서로 접점을 찾았다는 게 
경악스러웠다. 
아무튼, 누구든 믿을 만한 사람에게는 지갑을 여는 법이니까.
표지에 그만큼 투자(?)할 수 있을 만큼 신형철의 책은 팔리는 책이니까.
당연한 사실이 씁쓸하게 다가오는 건 내 꼬인 정서 때문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해석에 기대어 익숙한 시들, 혹은 처음 보는 시들을 다시 보았다.
얼마간 고마워했고, 얼마간 숙연해졌다.
‘좀 알겠다 싶으면 당신은 아직 모르는 것이고, 어쩐지 점점 모르겠다 싶으면 당신은 좀 알게 된 것이다’는 말은 함부로 떠들지 말라는 충고처럼 들렸다. 

도대체 왜 쓰는가.

나는 자신의 감정 상태를 떠벌리는 이야기 앞에서 진저리를 친다.
여행이 특히 그렇다. 아무도 경험하지 않은 이야기들을 마치 저 홀로 처음 세상을 마주한 것처럼
잔뜩 열에 뜰떠 늘어놓는 찬사에 싸늘해진다. 
허나 가장 먼저 수첩을 열고, 자판을 누르고 싶어지는 때는
그렇게 나에게 둔중한 충격으로 밀고 들어오는 어떠한 사건, 충격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떤 이는 그걸 애써 덤덤하게(비록 그것이 가장 절망적인 것일 지라도),
어떤 이는 한껏 부풀려(그것이 아무리 작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것일 지라도),
문자라는 도구를 빌려 남겨 놓는다.

쓰기는 자신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타인을 향한 것인가. 
쓰기라는 행위를 통해 우리가 얻고자 하는 보상은 과연 무엇인가.

기초적인 질문에 시라는 형태를 빌어 자신의 삶으로 답변했던 시와 시인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거의 아무 것도 읽어내지 못했을 거라는 의미에서 나는 어쩌면 문맹이다. 

시를 읽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던가?

“누구도 시인들만큼 잘 묻기는 어렵다. 나는 그들로부터 질문하는 법을, 그 자세와 열도와 끈기를 배운다. 그것이 시를 읽는 한 가지 이유다. 인생은 질문하는 만큼만 살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누구도 똑같은 시를 쓸 수가 없다. 
우리 모두 각자 다 다른 시인이자 작가인 이유다.

신형철의 글에 비록 머쓱해지고, 부끄러워지더라도,
어쩌면 일기장 한 구석에나 적어놔야 하는 끄적임에도 불구하고 어딘가에 누가 보라고 적어놓는 이유는, 지금의 내가 끄적일 수 있는 만큼이기 때문이다.

‘혁혁한 업적’을 열망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오늘의 초라한 나와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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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03-13 1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나뭇잎처럼 2023-03-14 10:24   좋아요 1 | URL
축하 감사합니다. 게을러질 때마다 한번씩 일깨우네요. 서니데이님도 다가오는 봄 만끽하시기 바랄게요. ^^
 
The French Dispatch 웨스 앤더슨 프렌치 디스패치 대본집 (Hardcover, Main)
웨스 앤더슨 / Faber & Faber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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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앤더슨 영화 대사는 좀 빠른 편이다. 리스닝이 된다고 조금만 자막을 소홀히 보면 상관관계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생긴다. 섬세하게 직조해놓은 구조를 최대한 간결한 문장으로 표현하려다 보니 빚어지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풀리지 않다가 나오면서 이해가 되는 대목도 있고, 다시 봐도 결국 왜 그랬지?에 대해 뚜렷한 답변을 어디서도 구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래서 이번에도 다시 봤다. <프렌치 디스패치>. 첫 번째 봤을 때는 자막 올라가면서 코끝이 찡했는데, 두 번째 봤을 때는 왈칵 울음이 터져 옷소매로 계속 눈두덩이를 훔쳐야 했다. 바로 뒤에서 젊은 연인(영화 속 티모시 샬라메와 함께 나왔던 커플 같은) 중 여자가 “뭐야, 이게. 뭐가 눈물이 난다는 거야. 나 참.”이라고 성질을 내자 “영화를 보는 관점은 다 다를 수 있으니까.” 남자가 여자를 달랬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옷소매로 눈물을 찍어냈는데, 결국 자막이 다 올라가고 난 다음에도 훌쩍거리는 나를 자리에서 쫓아낸 것은 “영화 끝났습니다. 나가주세요.”라고 말하는 영화관 직원의 퉁명스런 외침이었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라는 유쾌한 영화를 보고 마지막 장면에서 정말 느닷없이 눈물이 또로록 흘렀다. 옆에서 같이 보던 남편을 보자 왠만해선 별로 반응도 없는 사람이 같이 또로록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서로 바라보며 웃었다. 폐간하는 잡지의 마지막 사진을 찾기 위한 여정이었다니. 그 사진이라니. 아무 것도 아닌 그 장면에 울 수 있는 사람은 우리 둘일 거라고 위안을 삼았다. 이제 그 책은 다시 볼 수 없으니. 아마 앤더슨의 영화는 계속 볼 수 있을지 몰라도 앤더슨이 만든 그 책은 다시 볼 수 없을 테니. 어쩌면 그 책을 보며 마음을 졸이고, 마음을 부풀리고, 조용히 떨고, 조용히 사무치는 사람들도 이젠 다시 볼 수 없을테니. 사라지는 모든 것을 위한 조사라고나 할까. 나는 그렇게 눈물로 사라지는 것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프렌치 디스패치>를 봐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시사인> 기사였고, <물음을 위한 물음>이란 책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구매 결정한 것도 <시사인> 기사였다. <물음을 위한 물음>은 갈무리에서 나왔다. <녹색평론>은 1년 휴간을 선언했다. 나는 <시사인>과 <뉴욕타임스>를 정기구독한다. 갈무리는 응원하지만 모든 책을 사진 않고, <녹색평론>은 종종 도서관에서 본다. <파리리뷰>에 열광하고, <뉴요커> writer’s voice에 설레고, <BBC> 북클럽을 고대하며 한 달에 한 번 업데이트를 기다린다. 넷플릭스와 유튜브, 그리고 왓차까지 충실하게 서브스크립션한다. 


. . .

사라지는 것들에는 이유가 있다. 


그래도 <프렌치 디스패치> 스크린 플레이 책을 주문했다. 아마존에서 직접 받을 수 있지만 그냥 알라딘으로 주문했다. 내 책장에는 정기적 방출에도 꿋꿋이 살아있는 <개들의 섬> 영문본 스크린 플레이 책과 번역본이 모두 꽂혀있다. 어디서 <프렌치 디스패치>를 번역해 낼진 모르겠지만 한 줄 한 줄 형광펜으로 밑줄 그으며 읽을 예정이다. <개들의 섬>은 다시 읽어도 참 새롭다. <프렌치 디스패치>도 꼼꼼하게 다시 읽어야지. 보고, 또 보고, 읽고 또 읽고. 모든 대사가 내 몸에 꼭꼭 박히도록. 웨스 앤더슨이 <뉴요커>를 탐독하며 그랬던 것처럼.


Try to make it seem that you wrote it that way on purpose.


<프렌치 디스패치> 편집장이 작가들에게 주문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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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日記 - 황정은 에세이 에세이&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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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이사를 하고 나서

오늘 하루 종일 몸이 개운치 않았다.


만성적인 좌골 신경통 때문에

밤새 잠을 뒤척여서인지 하루 종일 몽롱했다.

한의사가 커피는 내 체질에 독약이라 했지만

쓸쓸한 날씨를 핑계로 두 잔이나 마셨더니

끝내 오후에는 잠시 자리에 누울 정도로 체력이 떨어졌다.


한강이 보이는 좋은 집에 이사왔는데

기쁨도 잠시,

오른쪽 발목에서 무릎으로 이어지는 기분 나쁜 통증과

왼쪽 엉치서부터 퍼져나가는 불안한 관절 조합은

의식을 자꾸만 아래로 아래로 끌어내렸다.


평생 앉아서 일한 대가일까.

조금만 틈이 나도 앉아서 읽은 탓일까.

앉아서 세상을 보려고 했던 죄일까.


온몸을 떠돌아다니는 통증을 감지하며

잠깐 잠깐씩 앉아 황정은을 읽었다.


황정은이 그런 삶을 살았구나.


황정은의 책을 거진 다 읽었는데 

그녀가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도통 관심이 없어 그랬는지

그녀가 쓴 자기 이야기에 나도 덩달아 아팠다.


그랬구나.

많이 아팠겠구나.

...



어제 이삿짐을 옮기러 온 사람들은

모두 중국에서 온 분들이었다.

세 명 중 팀장 격이 그나마 가장 한국말을 잘했고, 

나머지 두 명은 알아들은 것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

세 명이 온 줄 알고 본사에 전화했더니

한 명이 더 있었다.

그 사람만 한국인.

그는 운전 담당이었던 모양인 듯

신발을 신고 들어와 말없이 화장실만 한 번 쓰고는 사라졌다.


이삿짐 옮기는 날 이른 아침부터 비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지하주차장에서 지하주차장으로 짐을 옮기면 그나마 비를 맞지 않으련만

입주민 편의를 보호하는 생활지원센터에서는 끝내

지하주차장 to 지하주차장 이사를 허락하지 않았다.

덕분에 짐을 옮기시는 분들은 짐이 젖지 않게 조심하며 

비를 쫄딱 맞아가며 짐을 날라야 했다.


팀장격인 사내는 운동화가 아닌 슬리퍼를 신은 내 발을 보며

춥지 않냐고 걱정스레 물었다.

나는 운동화를 갈아신을 요량이었지만 이미 신발이 모두 실려나간 뒤라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는 대신 

나는 비를 안 맞으니까 별로 안춥다고 대답했다.


부엌짐을 담당한 중국출신 여성은 분홍색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셋 중 가장 한국말이 서툴렀는데 나는 하마터면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었는지 물을 뻔했다.

간단한 의사소통도 정확성이 떨어지는 걸 알아차린 후에

나는 아주 천천히 일부러 단어 하나씩 끊어서 이야기했다.

말은 어색했지만 미소가 분홍색 스웨터마냥 부드러웠다.

한 번도 자기가 살아보지 않은 부엌이었지만

요리조리 궁리해 가장 손이 잘 닿을 곳에 먼저 있던 짐들의 배열을 최대한 고려해

잡다하고 일관성 없는 살림도구들을 가지런히 정리해주었다.


이사할 때면 그릇들은 내가 정리하는 편이었는데

이번에는 그녀가 가지런히 놓아준대로 쓰기로 했다.

그녀의 수고로움에 대한 나름의 보답이라고 하기엔 

뭣하지만.


차가운 음료수 대신 따뜻한 커피를 내밀자

오전 내내 비바람 추위에 덜덜거리던 남자가

환하게 웃으며 고맙다고 했다.

화난 것 같은 얼굴이었는데 추워서 그랬던 거다.


무거운 짐 같이 들자는 말도 없이 

작은 체구로 올리고 담고 나르고

힘으로 도와줄 길이 없는 나는

그들의 동선이 중복되지 않게 짐들의 행선지를 정확히 일러주며

연신 나뒹구는 박스테잎을 주워담았다.


하루만 이렇게 분주히 몸을 놀려도 몸이 아픈데

오로지 몸뚱아리 하나에 의지해서 사는 삶에서 고통은 얼마만큼의 자리를 차지할까.


어릴 적 엄마는 너무 지친 나머지

뜨거운 방바닥에 복숭아뼈가 까맣게 익는지도 모르고 잠이 들었다.

쇠뭉치도 아닌데 쇠뭉치처럼 몸을 쓰다가

겨우겨우 찜질방 같은 데서 몸을 풀고 다시 일을 했다.

그렇게 몇십 년을 일하다가 결국 몸에 탈이 나 7년 반을 

침대에 누워있다가 돌아가셨다.


뇌를 다쳐 말도 못하고 사람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엄마가

너무 속상해 눈물을 흘릴 적에 누군가 그랬다.


평생 일하시다가 그나마 아프셔서 누워 계실 수 있는 거예요.


나는 평생 일하셨으니 이제 호강하며 사실 때 누워계셔서 속상한 거라고 외쳤지만

돌아가시기 전까지 누워계셨던 게 과연 좋았던 걸까 가끔씩 생각해보곤 했다.


눕지 않았으면 계속 일했을 게 뻔하므로.


엄마를 산소에 모시고 돌아온 날,

이모부는 차라리 잘 되었다며 방금 엄마를 태워 묻고 온 남매를 위로했다.

병 구완 하는 남매가 안쓰러워 그랬는지,

답답한 침대에 누워 식물인간처럼 누워지내던 엄마가 불쌍해 그랬는지,

'차라리 잘 됐다'고 했는데

그 말이 그렇게 서러워 나는 다시 눈물을 쏟았다.


그런 이모부가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암 선고를 받고 몇 년을 투병하셨는데

일년 내내 고추며 마늘이며 배추와 무를 키워 수백 포기 김장을 담그는 게 

이모와 이모부의 유일한 낙이었다.


올해가 마지막 김장이 될 거 같다는 말에 

절인 김치를 몇 포기 주문했음에도 불구하고

손을 도우러 가겠다고 했다.


김장 담그는 날이면 유난히 예민해져서 소리도 버럭버럭 지르고

자기 식구들 서로 챙기느라 우당탕 거리는 이모와 이모부가 

마지막 김장 담글 때는 어떠실지 걱정도 되고 기대도 되고 한다.


한강이 보이는 멋진 아파트로 이사갔다는 자랑은 하지 말아야지.

삼촌들은 저마다 한 가지씩 은근히 자기자랑을 늘어놓을텐데.

명절 때마다 식구들이 모여 한다는 건 

책망 아니면 자기자랑.


엄마에게 유일했던 자기자랑은 

착하고 공부 잘하는 자식.


더운데 밖에서 일하지 않고

추운데 떨면서 일하지 않는 자식.


그 자식은 평생 앉아서 일한 탓에

허리병과 속병을 안고 산다.


내일은 책을 보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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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11-09 23:0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사 하시느라 고생하셨겠어요 ㅜㅜ 몸이 안좋으신거 같은데 잘 회복하셨으면 좋겠어요. 나뭇잎처럼님의 따뜻한 배려에 이삿짐분들도 기분이 좋았을거 같아요. 그래도 멋진곳으로 이사하신거 축하드려요 ^^

나뭇잎처럼 2021-11-10 11:03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저는 뭐 한 것도 없는데요...;; 무거운 이삿짐 남한테 맡겨놓고 빈손으로 왔다 갔다 하는게 참 미안한 마음이 들어요. 그나마도 이제 이삿짐 옮기시는 분들은 동남아시아나 중국분들이 많으시고요. 한국인들도 서구에 가면 힘쓰는 일 하면서 원치 않는 혐오나 무시 같은 거 당하시는 분들이 많으시겠죠? 한강 전망은 평생 모멸을 감수한 값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씁쓸한 마음도 드네요. 이래저래 마음이 불편했던 하루였어요. 그래서 아팠나봐요..

책읽는나무 2021-11-10 06: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사는 정말 힘든 일인데 몸 상하지 않게 쉬엄 쉬엄 정리하세요.
좋은 집에서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이모님댁 김장 도움도 탈 나지 않게 잘 도와드리고 오시길요...마음이 무거우시겠습니다.

나뭇잎처럼 2021-11-10 11:06   좋아요 3 | URL
이모가 손이 커서 처음엔 200포기로 시작하시더니 급기야 작년에는 500포기를 담으셨어요. 온동네 분들이 다 도와주러 오시긴 했지만 덕분에 저도 며칠 앓았거든요. 이번엔 절인 김치 샀다는 핑계로 안가려고 했는데... 마지막이라고 하시니 안갈수가 없네요. 가서 기쁨조를 담당해야 할까 싶기도 하지만 왠지 다들 막판엔 눈물바람일 거 같아 묘책을 강구하고 있는 중입니다. 어떻게 하면 웃겨드릴까! ㅜㅜ

다락방 2021-11-10 07: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며칠전 시사인에서 황정은 인터뷰를 보고 이 책을 사야지 계속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뭇잎처럼 님의 글로 또 만나게 되네요.

이사하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나뭇잎처럼 님. 한강이 보이는 멋진 아파트라니, 너무 좋네요. 저는 영화속에서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가 나올 때면 와 언제 저런 아파트에 살아보나, 생각하곤 했거든요. 멋진 아파트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셔요, 나뭇잎처럼 님. 지금 당장은 몸도 마음도 좀 추스르시고요.

나뭇잎처럼 2021-11-10 11:11   좋아요 2 | URL
마자요! 저도 시사인 보고 냉큼 결제했어요. 여기저기 황정은 에세이 나왔다고 광고가 뜨는데 뭐 에세이까지 사봐야 될까 싶었지만 시사인 기사를 보고 마음을 바꿨죠. 복직근, 복횡근, 기립근, 둔근 같은 걸 키운다는 말에 진짜 살려고 애쓰는구나, 싶었어요. 얼마나 아팠으면. 덕분에 저도 내밀한 이야기 쓸 수 있었습니다. 쓰고 나니까 좀 낫네요. 아직 더 꺼내놓을 게 많지만 아직은 용기가... 운좋게 서울 한 자락 제 집이 아닌 곳에서 잠시 머물고 있는 세입자일 뿐입니다. 언젠가 작별하게 될 멋진 뷰를 날마다 감사하게 잘 누리려고요. 언제고 인연이 닿으면 이곳에서 다락방님께 직접 내린 커피를 한 잔 대접하고 싶네요. 강건하시길!

그레이스 2021-11-10 08: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사하셨군요
앞뒤로 일주일이 비정상이죠
몸 잘 챙기세요
이사하신 곳에서 좋은 일만 있으시길 바래요

나뭇잎처럼 2021-11-10 11:21   좋아요 1 | URL
마자요. 이사 하기 전에 또 엄청 신경쓰느라 늘 고생이죠. 이번엔 살살하자 다짐했는데 이사 당일 비바람이 몰아닥치는 바람에 생활지원센터분들과 실갱이 하느라 진을 뺐네요. 입주민한테는 너무 친절하신데 택배, 이삿짐 옮기시는 분들에게는 정말 낯뜨거울 정도로 대하시는 게 영 불편하더라구요. 들어오는 입주민은 환대해도 나가는 입주민에게는 또한 냉정한 게 현실... 도시에서 자주 이사를 다니다보니 이사 또한 누군가의 고된 애씀에 기대서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마음에 걸리고 남아요. 결국 더 싼 업체 찾아 경쟁 시킨 꼴이 되었던 것도.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오늘도 맑음 2021-11-10 11: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글 감사합니다.
이모부님의 올해가 마지막 김장일 것 같다는 말씀에 눈물이 그렁그렁ㅠㅠ
사는게 뭔지............
저는 책 내용보다 북친 분들의 리뷰와 이야기가 더 좋아지는 요즘입니다.
나뭇잎처럼님의 삶이 지금은 그 어느때 보다 따뜻한 시간을 지나나 봅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어주심에 감사합니다. 저 또한 지금이 그러한것 같습니다. 자꾸 제 이야기가 하고 싶어 지는 걸 보면.....
급하게 제 마음을 전하느라 두서없는 글 이해해주시길 바래요.
나뭇잎처럼님 덕분에 저의 오늘은 따뜻함입니다.
이사 정말 축하드리구요, 타인에 대한 배려에 또 한번 감동하고 이만 물러갑니다.
늘 나뭇잎처럼 찬란하실 거에요~!!!

나뭇잎처럼 2021-11-11 10:15   좋아요 1 | URL
책 읽는 사람들이 점점 귀해지고, 책 읽는 능력이 희귀한 기술이 되는 때 이곳에는 아직도 책을 진심으로 읽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계시죠. 저 또한 이곳에서 세상 드문 분들을 뵙는 것 같아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책을 읽는 것이 활자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과 끊임없이 대화하는 것이기에 책을 읽는 사람들의 이야기 또한 새로운 독서의 지평을 열어주는 것 같고요. 그래서 혼자 읽기 못지 않게 같이 읽는 것도 독서를 더 풍요롭게 해주는 것 같아요. 늘 우물 밑바닥에서 저멀리 끝에 있는 손바닥만 한 하늘이 보이는 것 같았는데, 어느 순간 하늘이 넓어졌어요. 이제 제 인생을 제 손으로 써야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그렇지 않는 한 계속 그 과거라는 감옥에서 못벗어날 것 같다는 생각도... 황정은 덕분에 저도 용기를 내보았어요. 황정은이 록산 게이에 도움을 받은 것처럼. 조금씩 조금씩... 꺼내 놓아야 자유로워질 것 같아요...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메르켈 리더십 - 합의에 이르는 힘
케이티 마튼 지음, 윤철희 옮김 / 모비딕북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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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제2의 성>을 열독하고 있다. 

이걸 왜 지금 읽게 되었나 싶을 정도로 단박에 인생책 1위로 뛰어올랐다.

(미안해, 나의 애장서들아 … 나의 기억은 늘 최신순이라…)

작년 한 해 내 마음속으로 정한 목표가 <A quest for my lost femininity>였다.

오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진정한 자아찾기 와중에 ‘페미니즘’, 

아니 내 안의 ‘여성성’을 직시하기로 마음 먹었던 것이다.

왜 갑자기 페미니즘이냐?

내 안의 여성성을 들여다보기로 했다는 말에 

이대남 조카는 ‘아, 요즘 그런 거 공부하세요?’ 하면서 묘한 비웃음을 흘렸다.

어디서 많이 본 표정이다.

오래도록 내가 피하고자 했던 표정이다.


맞다. 나는 내가 스스로 페미니스트라 말해 본 적이 없다.

페미니스트라고 물어보면 아니, ‘인간의 평등에 관심이 있는 한 사람이지’, 하고 얼버무렸다.


아마 첫 직장에서 만난 풍경이 너무 내게 세게 각인된 탓일 테다.

마초 사장은 이상한 성고정관념을 시도 때도 없이 나불거렸고,

나는 ‘여성’이기 이전에 ‘인간’이라고 항변했지만,

결정적 순간마다 ‘여자라서’ ‘여자니까’ ‘역시 여자란’ 말을 들어야 했다.


그때부터 나는 남자들보다 세 배로 일을 했던 것 같다.

아무도 나서지 않는 험한 일을 자원했고(덕분에 내 무릎은 작살이 났었지),

밤새는 것 따위는 정말 ‘두주불사’의 자세로 임했다.

절대로 ‘여자라서’ ‘여자니까’ 이런 말 따위는 듣고 싶지 않았다.


덕분에 그 마초 사장은 내가 퇴사한 이후에도 몇 년 동안 월요조회 시간마다 내 이름을 들먹였다고 한다.

“00씨는 말이야, 그렇게 일했는데. 너희는 왜 그렇게 못해? 열정을 가져, 열정을!”

옛 직장 동료들은 나의 망령이 아직도 사무실을 떠돌고 있다며 OB모임에서 불평을 쏟아냈다.


진심, 새로 온 남자 상사는 나를 따로 불러 말했다.

“00씨, 그렇게 일하는 거 아니야. 그거 다른 사람들한테 민폐야.”


믿을 건 내 몸뚱아리 하나, 착취할 수 있는 건 내 노동력밖에 없던 내게

유일했던 ‘자기 착취’는 그렇게 시작해 몇몇 회사를 거쳐 그만둘 때까지 고착되었다.


메르켈은 재임 시 “페미니스트냐?”라는 질문에 얼버무린 것으로 유명하다.

나는 그녀의 심정을 누구보다 이해했다.

직장에서 ‘나는 페미니스트요’라고 선언하는 것은 낙인효과를 자처하는 일이었다.


대신 그녀는 누구보다 많은 여성들로 내각을 구성했고,

이른바 Girls Club이라고 불리는 참모진을 이끌었다.

누구보다 학구적이고, 누구보다 전문적인 인력들로 말이다.


그녀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페미니즘을 실현했다.

그리고 퇴임을 얼마 앞두지 않고 ‘페미니스트’임을 인정했다.


나는 많은 남성들이 일이 아닌 ‘사내정치’로 입신양명을 위해 애쓰는 것을 보면서

‘일의 본질’에 충실했다. 

회의시간에 정성들여 경청하고, 다른 의견들에 대해 열린 자세를 취하고,

주어진 일은 최선을 다해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 합심하는 것.

그동안 눈 앞에서 연줄을 동원해 세를 불리던 무리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을 보았고,

일이라는 것 역시 무수한 Stakeholder(이해관계자)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이라는 것을 배웠다.


메르켈 리더십이 출간된다는 소식에 서둘러 읽어보았다.


정말 리더십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녀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헝가리 출신의 저널리스트이자 자신의 부모가 역시 스파이 혐의로 체포된 저널리스트 부부였던 작가는 이미 전기작가로 유명한 사람이다. 덕분에 지루함 1도 없는 인물 이야기가 속도감 있게 펼쳐진다. 죽은 전 남편이 독일주재대사였고, 본인은 서독 특파원이었던 데다가, 최근 4년간은 메르켈 집무실을 드나들 수 있는 ‘특권’까지 부여받아 메르켈 주변의 인물을 광범위하게 인터뷰한 결과가 진땀나는 메르켈 다큐의 성공 요인인 듯. 


인물 이야기는 이렇게 쓰는 거구나, 하는 배움까지. 


기후회의에서 땡깡 부리던 트럼프가 ‘나한테 얻을 게 하나도 없다는 말은 하지 마쇼’ 하며 툭 던진 막대사탕, 개 무서워하는 거 알면서도 송아지만 한 자기 개를 풀어놓은 푸틴, 말 하나는 정말 청산유수지만 결국 메르켈을 도청하다 딱 걸린 오바마.


메르켈 언니는 참 상대하기 힘든 남자들을 거느리고 무려 16년을 총리직을 수행했다.

신문이나 단편적인 이야기로는 절대 알 수 없었던 메르켈의 내면을 들여다 본 것 같아 너무도 뿌듯한 책.

어려울 때마다 묻고 의지하고 싶은 멘토를 얻은 것처럼 심장이 꽉 찬 기분이 든다.



메르켈, 리더십, 인생책, 페미니즘, 제2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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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10-12 16: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앗 저도 이 책 읽어보겠습니다!

나뭇잎처럼 2021-10-12 17:24   좋아요 1 | URL
최근 읽었던 인물 이야기 중에 가장 잼났던 거 같아요. 누구를 다루느냐 못지 않게 누가 쓰느냐가 중요하니까요. 저렇게 쓰려면 색인 프로그램 뭐 썼는지 저자한테 묻고 싶어지더라구요. ㅎㅎ 저런 게 이론서와 또 다른 실제 이야기가 갖는 힘이 아닌가 싶어요. 현실의 파고와 장벽 앞에서 인물은 어떻게 돌파했나? 하는 질문에 직접적인 답을 준달까.. 암튼 다락방님 덕분에 잃어버린 ‘서재‘ 열정을 불지피게 되어서 다시 한 번 감사올립니다. (-.-)(_._) ‘쓰는 게 남는 거다‘란 심정으로! 함 해볼라구요. (또 얼마나 갈진 몰겠지만 ㅋㅋ) 보 언니, 메 언니에 이어 또 어떤 언니를 영접하면 좋을지 알려주세요 ㅎㅎㅎ
 

서문만 읽고 달아오르는 일은 별로 흔치 않은데, 요즘 너무 많은 책들의 서문이 나에게 달려든다. 서문을 읽으면 안 읽고는 못배긴다. 서문에서 제시한 문제와 어떻게 풀어나가겠다는 지도가 쫙 펼쳐지면서 아주 진땀나는 트레일러를 본 것 같아서. 멍뭉이와 가벼운 마음으로 애견카페를 찾아 여유롭게 킨들을 펼쳤는데, 그만 한 손으로는 연신 장난감을 던져주며 한 손으로는 킨들을 붙잡고 순식간에 서문을 읽어버렸다. (킨들의 장점은 word wise 기능 덕분에 사전을 찾지 않고도 술술 읽힌다는 점. 현란한 광고창이 없으니 몰입형 독서에는 때로 아이패드보다 낫다. 물론 밑줄 쫙쫙 그어가며 적극적 인터랙션을 일으키는 PDF 독서에는 패드가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지만.)


저자의 말마따나 정신분석학, 신경과학 할 것 없이 인간의 의식 밑에 도도히 흐르는 어떤 강물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서 최근 몇십 년 간, 특히 최근 몇년 간 부단히도 노력해왔다. 도대체 인간이 그런 행위를 하는 데는 무슨 동기가 있는가! 그걸 밝히느라 꿈을 분석하고, 트라우마에 접근하고, fMRI에 뇌를 집어넣고, 유전자를 분석하고 등등. 


Psychiatrists and neuroscientists have long debated how best to plumb the deep waters of human motivation. Whatever the method, the objective is clear: to discover the feelings, motives and beliefs that lurk below the mental ‘surface’ of conscious awareness - to chart, in short, our hidden depths.


하지만 ‘hidden depth’ 따위는 없다고 일찌감치 단언한다.


우리는 문학작품을 읽으면 어떤 캐릭터에 대한 해석을 가공해내듯 우리 경험 속에서우리 자신과 타인에 대한 해석을 지어낼 뿐이다. 

We invent interpretations of ourselves and other people in the flow of experience, just as we conjure up interpretations of fictional characters from a flow of written text.


삶을 살아간다는 건 소설의 전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는 우리 마음을 들여다본다는 건 자기성찰의 능력을 갖고 있는 것처럼 얘기하게 되는데, 저자는 성찰이란 이해(perception)의 과정이 아니라 이야기를 고안(invention)해내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내적 세계란 신기루에 지나지 않다고.

The very idea of ‘looking’ into our own minds embodies the mistake: we talk as if we have a faculty of introspection, to scrutinize the contents of our inner world, just as we have faculties of perception, to inform us about the external world. But introspection is a process not of perception but of invention: the real-gime generation of interpretations and explanations to make sense of our own words and actions. 


The inner world is a mirage.


The truth is not the the depths are empty, or even shallow, but that the surface is all there is.

많은 종교 또는 철학에서 인간의 의식 단계를 규정한다. 즉자적인 상태에서 의식이 고양될수록 더 높은 차원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설파하는데. 이건 뭐 그냥 그런 거 따위는 없다고 대놓고 부정해버리니 누군가 잔뜩 쌓아올린 탑을 와르르 부수며 ‘이번 판은 나가리’하고 외치는 격이랄까.


믿음, 동기 이런 것들은 상상력의 산물이자 우리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라는 것, 처음부터 끝까지 전적으로 꾸며낸 거짓말이라는 얘기다. 마치 소설 속의 등장인물을 이해하기 위해 그러는 것처럼.


Our mind is continually interpreting, justifying and making sense of our own behaviour, just as we make sense of the behaviour of the people around us, or characters in fiction.


하지만 우리 뇌는 나름의 일관성을 갖고 이야기를 지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이전의 생각이나 행동하고도 얼라인이 맞아야 스스로 붕괴하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우리 마음의 비밀은 hidden depth가 아니라 과거에 맞게 우리의 현재를 창의적으로 그려내는 능력에 있다는 것. 


So the secret of our minds lies not in supposed hidden depths, but in our remarkable ability to creatively improvise our present, on the theme of our past.


그리고 다시 한 번 벼른다.

We’ll find that almost everything we think we know about our minds is false.


상식적인 이야기는 고쳐 쓰는 게 아니라 버리는 게 상책이라나?

The common-sense story needs to be abandoned, not patched up.



우리 뇌는 소설을 쓰는 것처럼, 어떤 세계를 전적으로 창조하기 보다는 한 문장 한 문장 개연성 있는 문장들을 이어붙이면서, 우리는 과거와 현재를 이으면서, 그 순간의 의식적인 해석을 창조해내는 엔진이라는 거다.

Our brain is an engine that creates momentary conscious interpretations not by drawing on hidden inner depths, but by linking the present with the past, just as writing a novel involves linking its sentences together coherently, rather than creating an entire world.


이름하야 extension of perception!!


몇 년 전 <우리는 왜 자신을 속이도록 진화했을까?>라는 호기심 당기는 제목에 이끌려 샀다가 고만고만한 이야기에 책을 덮었던 것과는 좀 다를 것 같은 느낌이 확.


하지만 내 책상에는 <산스끄리뜨 금강경 역해>가 딱 노려보고 있는데!


Our freedom consists not in the ability magically to transform ourselves in a single jump, but to reshape our thoughts and behaviours, one step at a time: our current thoughts and actions are continually, if slowly, reprograming our minds.

매순간 우리는 우리 생각을 다시 프로그래밍하는 거라고. 여기서 실존주의 철학과 만난다.


I have now, somewhat reluctantly, come to the conclusion that almost everything we think we know about our own minds is a hoax, played on us by our own brains. We will see later how the hoax is done, and why it is so compelling.

다소 스포일러 같지만 그렇게 하실 거라고.


This requires a systematic rethink of large parts of psychology, neuroscience and the social sciences, but it also requires a radical shake-up of how each of us thinks about ourselves and those around us.

새로운 시각, 낯선 접근, shake-up은 늘 반갑지만 제발 허세로 끝나지 않길 바래본다.




뇌과학, 마음, 철학, 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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