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3일 계엄령 선포가 대한민국 국민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듯, 2016년 트럼프의 당선, 그리고 2021년 의사당 난입 사태는 미국 국민들, 특히나 지성을 자처하는 학자들에겐 메가톤급 충격이었으리라. 이에 하버드의 두 정치학과 교수가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 그동안 민주주의를 자처했던, 혹은 먼저 민주주의를 성취했다고 여겨진 나라들이 어떻게, 누군가에 의해, 어떤 과정을 통해 민주주의가 무너지는지 조사하고 전제주의자를 가늠하는 리트머스지까지 만들었다. 2018년 “How Democracies Die”가 출간된 배경이다. 우리나라에선 2018년 초판이 나온 이래 무려 12쇄를 찍었다.
하지만 트럼프의 공세는 재임 성공 실패에 좌절하지 않았지. 더욱 거세지는 트럼프 일당들의 지지 기반과 낙후된 미국 선거제도의 역사, 그리고 그 왜곡된 역사로 인해 어떻게 한줌 되는 공화당 세력들이 과대표되어 미국 민주주의를 정체시키고 있는지 해부하는 책 “Tyranny of the Minority”를 2023년에 냈다. 아마도 트럼프 컴백을 목도하기 전이긴 했지만 먹구름처럼 몰려오는 세력들을 감지한 절박함이 담겨있다. 우리나라에선 2024년에 출간되었다.
두 책 다 나는 2024년 12월 3일 이후에 읽었다.
원서를 읽고 영어로 토론하는 책 모임을 운영 중인데, 12월 3일 이후 아무 책도 읽을 수가 없어서 멘붕에 빠졌다가 이 두 책이 동앗줄이 되었다. 급하게 모임 공지를 하고 설 한 주를 빼면 거의 2주 간격으로 읽은 셈인데 반응이 뜨거웠다. 모임에 참석한 멤버 중에는 200여 년 가까이 지도에서 사라졌던 폴란드에서 온 사람도 있고, 미국의 ‘deep south’ 주 중 하나인 버지니아 출신, 아일랜드인, 아프리칸 아메리칸 등등 한국인보다는 외국인 비율이 더 높았다. 다들 탄핵과 체포 불응, 그 와중에 서부지법 난입사태를 겪으며 도대체 이 놀람의 끝은 어디인가에서 헤매고 있던 와중에 만난 책이라 너무도 반갑고 고맙고 어처구니없게도 ‘힘이 되었다’고 입을 모았다. 왜냐구? 우리만 그런 게 아니어서!
"최근 미국 정치인들은 경쟁자를 적으로 여기고,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고, 선거 불복을 선언하고 있다. 그리고 법원과 안보기구, 윤리위원회 등 민주주의의 제도적 완충장치를 허물어뜨리고 있다.”
저 문장에서 미국을 한국으로 바꾸어도 전혀 다르지 않다. 선거 결과를 부정하고, 선거 시스템을 부정하고, 사법기구를 흔들고, 자신 외에 모든 사람들을 바보 천치로 몰아가는 이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국경없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익히 알았던 칠레, 헝가리, 베네수엘라뿐만 아니라 멀쩡했던 민주당 지지자가 어떻게 군부 쿠데타와 손잡을 수 있는지(태국), 의사당에 난입한 폭도들을 두둔한 보수당이 얼마나 민주주의 퇴보에 결정타였는지(프랑스), 얼마나 집요하게 노예제로 살아남았던 남부 주들이 미국의 민주주의를 갉아먹고 있는지가 영화보다 더 충격적이다.
그러니까 지금 상황은 어떻게 우연히 미친놈이 일으킨 소요사태가 아니라 건국 이래 끊임없이 정권 창출에 실패해온 (탄핵, 구속, 암살, 하야 등등) 저 수구 보수 집단이 제도적 틈을 이용해 벌이고 있는 마지막 발악 같은 것. 문제는 계엄령 선포보다 더 무서운 국힘의 탄핵 반대로 이어지면서 극우를 선동하고 있는 양태이며, 문제는 서부지법난입보다 그 이후에 그들을 두둔하고 나서는 저들이며, 문제는 저인망으로 사회적 약자들을 파고들고 있는 저 반동 극우세력들이고, 문제는 기득권을 놓지 않기 위해서 눈과 귀를 가리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저 수구반동 언론과 작당한 놈들이다.
제도는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수많은 이들의 땀과 피와 투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제도도 완벽하지 않다. 미국처럼 구멍 숭숭 뚤린 헌법으로 시작했지만 1811년부터 2014년까지 316번의 수정을 거친 노르웨이 헌법은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민주적인 나라가 되었다. 건국의 아버지들을 신화화하며 헌법을 마치 신성불가침의 그것처렴 여긴 미국은 아직까지도 간접선거제도인 선거인단을 가진 거의 유일한 나라로 남아있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가 가장 낙후된 정치제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우리나라는 그런 나라의 제도를 가지고 왔다. 민의를 대변하지 못하는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는 아직도 독소처럼 남아있다.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긴 했지만 위성정당을 만들면서 의미가 퇴색되었다. 이것 아니면 저것을 선택해야 하는 동전 던지기에서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우리편 아니면 적이 되는 이 제로섬 게임에서 양극화는 필연적 파국이 아닌가? 질문의 질문은 꼬리를 물지만 정치를 저들만의 리그로 접근하는 그 어떤 논리에 대해서도 나는 선을 긋고자 한다. 지금도 이 추위에 거리에 나서는 수많은 사람들과 피와 눈물로 전쟁의 잿더미에서 이만큼까지 우리가 누릴 수 있게 해준 먼저간 사람들의 노력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이다. 나중에 후대가 너는 그때 무엇을 했는가, 라고 물어보면 외면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책은 답을 주지 않는다. 위안과 희망을 줄 뿐이다. 책은 글에서 끝나지 않는다. 함께 이야기 나누고 공감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그 힘을 얻는다. 모인 사람들이 서로에서 고맙다는 말을 차고 넘치게 했다. 우리가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어서.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고 느낄 수 있어서. 내가 아무 것도 아닌 게 아니라고 여길 수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