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휘리릭 하는 편이라 그걸 장점이라 여기고 살았다.

글도 휘리릭, 일도 휘리릭.

남들보다 성질이 급해 남들보다 후딱 해치우는 게 회사에선 잘 통했다.


'한국 사람들은 참 빨리하는 걸 좋아해요. 하지만 그래서 다시 해야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면 결국 시간이 더 걸리게 되거든요. 한국사람들은 그걸 잘 모르는 거 같아요.'


언젠가 인도 출신 개발자가 한국 사람들과 일하는 소회를 밝히면서 했던 이야기다.

그 말에 참 공감하면서도 'Fail Fast'를 미덕으로 외치는 스타트업 정신에 한국인의 성미가 이상적으로 부합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적도 있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다리도 무너지고, 아파트도 흘러내린다.

그건 또 성미 급한 한국인이 풀어야할 숙제다.


남들이 어떻게 선을 쳐야할지 주저하고 있을 때,

자신 있게 선을 긋는 걸 보고 누군가는 '타고난 화가'라는 칭호도 붙여주었다.

그림을 그리는 게 좋았지만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배우지' 못한 채 오래 시간이 흘렀다.

그림이라는 게 과연 배울 수 있는 것인지, 배우면 되는 것인지, 배워야 하는 것인지

알지 못한 채.


우유곽 하나를 '사실 그대로' 그린 그림을 보면서

왜 그렇게 그려야 하는지 갸우뚱했다.

사진 기술이 있는 시대에 복사에 가까운 재현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재현' 보다는 '해석'에 의미를 두세요." 

어떤 이는 그렇게 코치를 했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훈련을 해보세요."

어떤 이는 그렇게 조언을 했다.


천재적인 피카소의 드로잉을 봐도 우리나라 입시미술생보다 나은 게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나라 입시미술을 거친 미술생들은 해외 유수 미술대학 선발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다고 한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그런 입시미술을 거치면서 미술에 대한 흥미를 완전히 잃기도 한다. 


나는 지금도 수채화에 대한 일말의 '두려움' 같은 게 있는데,

그건 초등학교 때 아무리 그려도 제 마음대로 잘 안그려졌던 기억 때문이다.

미술교육이 언어 이전의 중요한 교육으로 자리하고 있는 프랑스에서는 

일상의 체험을 이미지로 표현/창조하는 훈련이 바탕이기 때문에

나와 같은 트라우마를 겪는 아이들은 없어 보인다.


여튼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스케치북을 사서 휘리릭 그림을 그려보면서 '과연 이게 맞나?'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렇게 자기 멋대로 '휘리릭' 그리다보면 언젠가 '잘 그리게 되는' 그날이 올까?


사람들은 막연히 들리지 않는 영어를 계속 듣다 보면 어느 날 문득 영어가 들리게 된다고 하기도 한다. 수년 간 그렇게 해본 나로서는 그런 날은 오지 않는다, 가 답이다.

80퍼센트 이상 이해가 되는 스크립트를 완벽하게 딕테이션(받아쓰기) 할 수 있어야, 감히 말하건대, 영어가 '는다.' 엄청 빠른 속도로 말하는 미드나 속사포로 쏟아내는 뉴스를 들어봤자 리스닝이 그렇게 나아지지 않는다는 게 현재 나의 잠정적 결론이다.


영어동화가 되었든, 3-6세가 듣는 베드 타임 스토리든, 애니메이션이 되었든,

자신이 소화할 수 있는 뭐 하나를 '씹어먹을 수 있어야' 영어라는 언어의 구조를 익히게 된다.


별 하나짜리 어려운 단어를 아무리 많이 알아도

영어로 말하다보면 시제, 인칭, 단복수가 막 엉겨서 나오기 마련이다.

왜? 구조가, 패턴이, 실사용법이 익혀지지 않았으니.


책도 막연히 많이 읽다보면 어느 순간 '문리'가 트이는 순간이 있다고들 한다.

난 그 말을 믿지 않는다.

다섯 수레를 읽든, 만 권을 읽든, 

'휘리릭' 읽으면 말짱 꽝이다, 라고 생각한다.


나의 스승(?) 닐 게이먼은 말한다. 

보통 사람처럼 읽지 말고, 작가처럼 읽는 방법에 대해.

잠깐 들었던 문학창작교수는 말했다.

그냥 읽지 말고 '씹어먹을 것처럼' 읽으라고.


난생 처음 산 스케치북에 '휘리릭' 그린 그림을 들고 갔다가

난생 처음 어린 친구한테 '꾸중'을 들었다.

이렇게 그리시면 80년을 그려도 안된다고.


손가락 하나를 한 시간 동안 그려보고,

복잡한 형태를 세 시간 동안 그려보고,

한 가지 주제를 다섯 시간 동안 그려보라고.

그렇게 정밀하게 그리고 나면 세상을 보는 관찰력이 달라질 거라고.


영어나, 글이나, 그림이나,

그렇게 천천히 시간을 들여야 들리고 보이고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렇게 흘깃 훔쳐본 것을 가지고,

안다고 '착각'하거나 이렇다, 저렇다, 판단했던 것들에 대해 미안해진다.


명석한 판단력은

비곤한 자료를 가지고 성급하게 결론 내리는 것이 아닐텐데,

지금껏 빠르게 파악하고, 빠르게 실행하는 걸 미덕이라 여기며,

그렇지 못한 사람(동거인)을 핍박하고 살아왔던 것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


뭐, 그렇다고 성질이 한순간에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오늘도 한 장 차분히 그림을 그리며

조금씩 나아지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이렇게 차분히 정밀하게 그리다보면

나아지는 순간이 있을까?


이것도 근거 없는 막연한 기대감은 아닐까?


나는 과연 무엇을 보았는가?



잘 보기 위해 그린다.

드로잉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와 여러 가지 훈련법들에 대해 나름 체계적으로 기술한 책. 초기에 많은 영감을 받았다.








존 러스킨에 대한 기대감으로 엄청 고대하며 산 책인데, 좀 고루하고 답답해서 금세 싫증이 났다. 요즘 감각에 맞지 않아서인지, 내 성미가 급해서인지, 아니면 고상한 척 이야기하는 게 싫어서였는지 잘 모르겠다.











여전히 드로잉은 필체나 스타일처럼 자신만의 고유한 방식이라고 믿는다. 해서 마스터들이 각각 어떻게 자신만의 방식을 발전시켰는지 정밀하게 들여다보는 건 유의미한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도움이 되었던 책.









인간의 몸을 다양한 화가들이 어떻게 다양하게 해석하고 그렸는지, 훌륭한 도판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책. 그저 그림만 좋은 게 아니라 몸에 대한 분명한 주제의식으로 작가들을 엮은 편집이 훌륭한 책이다.





'나뭇잎처럼'이란 나의 아이디처럼 평생 나뭇잎과 나무를 늘 잘 그리고 싶었는데, 그래서 너무나 소중했던 책. 그림교육을 업으로 삼고 있는 저자라 차분차분 앉아서 학생을 가르쳐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친숙한 기분이 들었다. 날 초짜인 나 같은 사람이 보기 딱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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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1-25 15: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러스킨이 살던 시대로부터 너무 멀리 와있죠?
저는 러스킨의 미술평론보다는 사상에 더 끌려요^^

나뭇잎처럼 2022-01-25 21:23   좋아요 2 | URL
저도 러스킨의 사상에 끌려 덥썩 집었는데 가만가만 듣다보니 그 시대에 앉아서 들었으면 몸을 배배 꼬았을 거 같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제가 러스킨의 사상을 받아들이기엔 이미 너무 세속적이 되어서인지, 고분고분한 학생이 아니어선지.. ㅎㅎ 학생의 자유도를 최대한 고려해주는 선생님이 좋더라구요. 되게 엄한 선생님이셨을 거 같아요 ㅋㅋ

mini74 2022-01-25 22: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피카소가 옛작업실 갔다가 노숙자를 만났는데 아는 사람, 쓰레기통? 에서 종이 하나 골라서 휘리릭 뭐 하나 대강 그리더니 이걸로 집이나 하나 사라며 줬다는 일화가 생각나요. 그 휘리릭 뒤엔 엄청난 기본기가 있더라고요. 나뭇잎처럼님 글 공감하며 읽었어요 ~~

나뭇잎처럼 2022-01-27 09:34   좋아요 1 | URL
왜 고수들은 동선에 쓸데없는 게 하나도 없잖아요? 할머니들은 요리도 툭툭, 선수들은 낭비하는 동작이 없죠. 그래서 후루룩, 휘리릭 하는 걸 ‘멋있다‘라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문제는 고수도 아니면서 후루룩, 휘리릭 하려다 어설프게 끝나는 경우가 많은 거죠. 저도 쓱쓱 했는데 우와 하고 싶은데 ㅎㅎ 그럴려면 낙숫물로 바위에 새길 만큼의 훈련이 필요한 거겠죠? 뭐 그렇게 꿈쩍도 안할 것 같은 걸 조금씩 해가면서 눈금이 하나씩 바뀌는 걸 보는 게 재미있기도 해요. 영어도, 그림도, 읽고 쓰는 것도...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