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브리치 화려한 도판을 다정하게 손으로 쓸며 찰진 영어문장을 감질나게 씹어먹던 중 드는 의문.


6000년전부터 시작해 기원전 3500년전 화려하게 꽃을 피운 메소포타미아 미술은 어디에?

대략 기원전 800년전, 400년 남짓 전성기를 구가한 그리스 미술에 대한 과도한 지면 배분의 배경은?


예술사만큼 제국의 역사관을 고스란히 투영한 역사가 없구나. 

승리자에 의해 고스란히 도둑맞은 유물을 해석하기 위해 동원한 온갖 이야기.


그러면 아시아 미술은? 동아시아, 그것도 한국 미술은 어디에?


잰슨의 <서양미술사>와 조중걸의 <서양예술사>, 그리고 정말 읽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진중권의 <서양미술사>를 늘어놓고 보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하는 교차읽기.

여기서 도움받는 것이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그리고 따끈따끈한 신간 <최초의 역사 수메르>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지금 항공으로 <메소포타미아>가 날아오고 있다. 그게 오면 마음에 드는 유물들을 따라 그려볼 생각이다. 지금 아쉬운 대로 인터넷에서 찾은 그림들을 따라 그리는 것처럼.















갑자기 생각나는 교차읽기의 추억. 

어린시절 개가식 도서관이 아닐 적에 관련 주제의 책들을 늘어놓고 보는 걸 좋아한 나는 늘 도서관 사서 아저씨와 실갱이를 벌여야 했다. 사서 아저씨는 책은 한 권씩 차례로 봐야 하는 거라고 타일렀고, 나는 같은 주제의 책을 늘어놓고 봐야 한다고 우겼다. 아저씨는 급기야 ‘버릇없이’ 규칙을 따르지 않는다고 나를 윽박질렀고, 나는 눈을 부릅뜨고 부당함을 고발했다. 지금도 도서관 비탈을 내려오며 씩씩거리며 어디 신문에라도 투고를 할 생각에 머릿속으로 부당함을 기술하던 흥분이 생각난다. 


아니, 왜? 책을 늘어놓고 보면 안되는 법이 있단 말인가?

책 마다 관점이 다르고 한 시대를 기술하는 내용이 서로 다른데 보완하면서 읽는 것이 대체 뭐가 문제인가? 한 책을 끝까지 읽고 난 다음에 다른 책을 읽어야 한다는 법은 대체 누가 만든 건데?!!!


여튼 그래서…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에 따르면,

현 시점까지 이어지는 역사의 내러티브


1. 문명의 탄생(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2. 고대(그리스와 로마)

3. 암흑시대(그리스도교의 부상)

4. 부활: 르네상스와 개혁

5. 계몽(탐혐과 과학)

6. 혁명(민주주의, 산업, 기술)

7. 민족국가의 부상: 제국을 향한 투쟁

8. 제1, 2차 세계대전

9. 냉전

10. 민주주의적 자본주의 승리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내러티브


1.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페르시아

2. 이슬람의 탄생

3. 칼리프조: 보편적 통일체를 향하여

4. 분영: 술탄 제국의 시대

5. 재앙: 침략자들과 몽골족

6. 부활: 3대 제국의 시대

7. 서양의 동양 침투

8. 개혁운동

9. 세속 근대주의자들의 승리

10. 이슬람주의의 반발


우리가 흔히중동이라고 부르는 지역은누군가의 관점 내포한 단어다. 누군가에게는 동쪽이 누군가에게는 서쪽일 있으니. 


기원전 550 무렵 페르시아 제국 건설. 조로아스터교가 그리스도 1000 이들의 메인 종교였다. 모든 인간은 자유롭게 선악 판단의 선택을 내릴 아니라 그들의 모든 선적이 우주적인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철학. 선한 이는 스스로의 선택, 혼자 힘으로 하늘나라에 올라갈 있다.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도들은 종교의 조각상이나 상항화, 상징물을 모두 거부, 이후 이슬람 종교미술에서는 구상화를 강력하게 반대하는 성향이 드러난다. (동방박사 사람은 조로아스터교 사제들)


페르시아 전쟁. 

페르시아 관점에서 봤을 그리스를하기 위해 원정. 문명 사이의 중대한 충돌이 아니었다. 다리우스 황제는 상징적인 공물로 병과 상자를 원했지만 그리스인이 거부. 아주 서쪽 가장자리로 원정갔으나 실패. 


이후 150 , 알렉산더 대왕이 역으로 쳐들어와 페르시아와 전쟁. 가끔 알렉산더 대왕이 세계를 정복했다고 하지만 그가 실제로 정복한 것은 페르시아였고, 그때는 이미 페르시아가세계 정복한 뒤였다.”


그리스를 설명하기 위해 이집트를, 로마를 설명하기 위해 그리스를, 그런 식이다. 메소포타미아는? 페르시아는? 예술사의 영역에서 그토록 화려한 예술적 성취를 이룬, 심지어 더 오랜 기간 ‘같잖은’ 도시국가들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이들의 자취는 그들의 미술사에 매우 박하게 기술되어 있다.


심지어 예술사 기술이 ‘세계관의 반영’이라는 철학적 명제와 다르게 개별 작품들에 대한 선형적 설명을 시도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다. 이때 가장 의지하게 되는 책이 조중걸의 서양예술사다.
















동시대를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삶의 한 중간에서 삶을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뱅뱅 도는 지구에 살면서 뜨고 지는 해 같은 건 없다는 걸 알아차리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물 속의 고기가 물 밖을 상상하지 못하듯,

타인의 굶주림보다 손 끝에 박힌 가시가 더 애처로운 게 인간이다.


인간이 어딘가에 머물러 살기 시작할 때부터

그들은 뭔가를 그렸다. 

구석기인과 신석기인들이 그린 그림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존재한다.

그리스 미술과 로마 미술 사이에도 상당한 차이가 존재한다. 

인간이 세계를 어떻게 의식하느냐에 따라

당대의 예술가는 작품 속에 자신들의 불안과 공포,

바람과 희망, 설명할 수 없는 공허와 호기심, 그리고 새로운 도전 같은 걸 

끊임없이 투영했다.


6000년 전에 시작해 기원전 3500년 경에 꽃을 피우는 메소포타미아 미술에 대해서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대신 그리스가 인류 문화의 꽃이자 원천처럼 여기고 있다. 르네상스와 계몽주의의 영향이다. 우리는 근대가 몰락한 현대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근대주의적 사고로 역사와 세계를 해석한다. 물질이 변화해도 인간의 의식이 변화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구석기에서 신석기에 이르는 과정은 르네상스에서 현대에 이르는 과정과 꼭 닮았다. 해서 고대미술을 탐구하는 것은 가장 현대미술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시작이다. 각 시대는 우열 없이 병렬된다. 인본주의와 자연주의가 더 우월하다고 주장할 근거는 없다. 그것은 여러 세계관 중 하나의 세계관일 뿐이다. 


왜 구석기인들의 자연주의가 신석기시대에 이르러 극적인 추상으로 변경되었을까.

이 책은 그 탐구의 여정을 촘촘히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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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은 어쩌다 그렇게 됐을까.

미움이, 증오가 그의 눈을 멀게 한 것일까. 아니면 그냥 그렇게 원래 그런 관종이었을까.


아주 아주 오래 전 그에게 원고를 청탁한 적이 있다.

일부러 아주 아주 넉넉한 시간을 두고 청탁했으나 그런 노력도 무색하게 그는 약속을 ‘까먹었다.’

마감이 임박해서야 상황을 묻는 나에게 그는 일언반구 미안하다는 말 없이 자신이 요즘 얼마나 바쁜지 핑계를 늘어놓고 ‘그렇게 됐어요.’라며 전화를 끊었다. 나는 그의 뻔뻔스러운 후안무치에 혀를 내둘렀다. 결국 듣지 못한 사과 한 마디가 그렇게 애석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학자의 눈으로 본 서양미술사는 또 어떻게 해체를 할까 하는 순수한 호기심에 빠른 배송을 선택했다.


제대로 된 미술사는 어디서 공부할 수 있을까?

미술사는 세계사와 미학, 철학, 그리고 과학과 인지론까지 모두 섭렵해야 제대로 쓸 수 있는 영역인 것 같다. 단편적인 작품에 대한 설명으로 미술사 또는 예술사를 기술하는 것은 불가항력이다. 더구나 승자 관점으로 기술되기 일쑤인 ‘역사’를 약자, 소수자, 비기득권자 관점으로 기술하는 책을 만나는 건? 더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열심히 뒤지고 있지만 잘 나서지 않는다. 한국미술사를 아마존에서 뒤져야 하는 현실. 한국정치사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유학을 떠나야 했던 그 시절과 무엇이 다를까….


예술사만큼 강력한 정복자의 세계관이 투영된 역사도 없는 것 같다.

흑인 노예를 정당화하기 위해 흑인들이 얼마나 우생학적으로 열등하고, 그들이 역사에서 ‘죄’를 지었는지, 그 죄의 결과로 왜 피부가 검게 그을렸는지 설명하는 데 열을 올리는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의 원류라고 생각하는 그리스 조각 앞에서 너무도 생생한 이교도 신을 만나고는 죄다 부서버렸다. 하지만 그들의 만행보다 페르시아의 만행을 부각시키는 데 더 심혈을 기울였지. 


그리스 예술을 정점에 두고 바라보면 로마의 예술을 설명할 때 '야만적'이라는 형용사를 들이댄다. 양식 사이의 우열을 가리려고 하는 것이야말로 조야한 시각이다. 구석기와 르네상스, 신석기와 현대미술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드러내는 것이 나은 시도다. 


예술은 늘 그 시대의 모순을 돌파하며, 새로운 관점과 새로운 시도에 의해 역사를 썼고, 승자 위주의 혹은 진보론적 역사관은 예술사를 바라보는 관점에 철저히 위배된다. 서구인이 가진 예술사에 대한 허구성을 낱낱이 파헤친 책은 없나?

없으면 써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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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1-04 17: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미학오딧세이로 예술에 관심을 갖게 된 저 ㅠㅠ 조영남을 두둔하기 위해 출간한 책엔 온갖 정의로운 문장들이 가득한데 ㅠㅠ 왜 그럴까요 요즘 ㅠㅠ

그레이스 2022-01-04 17:16   좋아요 2 | URL
저도 그 책 읽었어요 ㅠ

나뭇잎처럼 2022-01-04 20:18   좋아요 2 | URL
저두 롱롱타임어고우에 들여 잼나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요. (내용은 기억이 ㅋㅋ) 좋은 기억 때문에 머릿속 책갈피에 찜해 두었던 저자인데... 뭘까요. 그 사람. 왜 그런 걸까요? 무엇이 그의 정신을 그토록 파괴했을까요? 어떤 결핍이 그를 그토록 관심에 목마른 종자로 만들었을까요? 예술과 시대정신이 직결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텐데, 그에게 시대정신은 과연 무엇일까요?

초란공 2022-01-04 21: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조중걸이란 저자분은 처음 봅니다. 역작이네요. 관심이 필요한 분이라고 하시니 최근에 <죄와벌>에서 본 문장이 생각났어요. ˝그럼 날 버리지 않을 거야, 소냐?˝, ˝날 버리지마. 소냐, 버리지 않을 거지?˝ 혹은 ˝각자 자기 식대로 사는 거고, 자신을 가장 잘 속일 줄 아는 사람이 누구보다 즐겁게 사는 법이오.하하˝ 하는 대사요...^^;; 그분에게는 소냐가 필요한듯 합니다.

나뭇잎처럼 2022-01-05 10:5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관심을 거두어 말려죽이는 게 그분을 위한 최선책일듯요. 미학에만 집중하실 수 있게. 그게 더 생계에 보탬이 되는 일 아닐까요. 요즘 미술에 관심도 높아지는 추세인데. 가까이 계시면 전언 좀 해주세요. ㅎㅎ 자신을 속이면 자신은 알잖아요. 자기가 속이고 있다는 걸. 자신이 속이는 줄도 모르게 속이는 건 그냥 바보? ㅎㅎㅎ 건

2022-01-08 1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1-08 2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1-10 1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매일매일 2023-04-03 15: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 막 좋은 책을 한 권 읽었습니다. 바로 나뭇잎처럼님의 이 글입니다. 좋은 책은 경험 상 다음 커리큘럼을 설정하게 해줍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혹시 저작은 없으신지요?

나뭇잎처럼 2023-04-06 19:08   좋아요 0 | URL
과찬입니다. 좋은 책은 끊임없는 다음 독서 목록을 낳지요. 한 권을 쓰기 위해서는 수백 권을 읽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게 읽지 않은 이상 기능적으로 문맹이라고요. 제가 보기엔 수백 권도 그리 많은 것 같진 않은 것 같습니다. 다할 수 있는 최선을 한 다음, 스스로의 부족함을 기꺼이 인정할 수 있을 때, 그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죽기 전에는 가능하지 않을까 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