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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 먹고 이야기 똥 싸기
다니엘 페낙 외 지음, 김병호 외 그림, 박언주 외 옮김, / 낮은산 / 2004년 4월
평점 :
품절
상상력 먹고 이야기 똥 싸기.
머루는 논리적이고 실증적인 것을 더 좋아한다. 동화책을 적게 읽은 것도 아닌 데 눈으로 보아 증명되고 말로 설명되는 글을 더 좋아하는 것이다.
일기를 쓸 때도 항상 실제상황이다. 실제 상황의 중계이다. 재미없고 딱딱한 사실의 순서적 나열.
나는 머루가 자유롭게 상상하며 엉뚱한 글도 써 보길 원하지만 그러기엔 머루가 좀 멀리 온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멀리 간 길을 조금이라고 되돌려 보고자 선택한 책이 이 책이다.
이 책은 정말이지 그 기획의도가 부러워서 배가 아플정도이다. <세계의 작가들과 아이들이 함께 하는 이야기 릴레이>라니!!!
이야기 릴레이. 권위있는 문학상을 수여한 유명작가들이 이야기의 서두를 던져주면 그것을 아이들이 자유롭게 저마다의 생각대로 이야기를 완성시키는 것이다. 기라성 갈은 작가들이 건네 준 이야기의 바통을 건네 받아 결승점을 향해 초등생, 중등생 아이들이 열심히 달리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매년 이 이야기 릴레이를 벌이는 데 벌써 19년째라고 한다.(2004년에 19번째면 올 해 이미 이루어졌다면 20번째가 되었겠다) 심사는 그 해 글의 서두를 쓴 작가가 한다고 한다. 해마다 만여명의 아이들이 응모를 한다고.
응모방법은 혼자 하기와 여럿이 하기가 있다. 여럿이 하기는 반 아이들이 같이 머리를 맛대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인데 혼자 하기보다 더 흥미로워 보인다.
프랑스에서 주관하는 행사지만 세계 여러 나라 아이들에게도 기회는 주어진다. 하지만 역시 작가들은 대개가 프랑스 작가들이고 참여하는 아이들도 거의 유럽권이다.
책 속으로 들어가 보면 작가들이 제시하는 이야기의 서두도 만만치 않다.
다니엘 페낙이 제시한 이야이의 서두는 새학기에 새 선생님과의 대면부터 시작된다. 독특한 외모의 선생님이 등장하고 아이들의 술렁거림이 있은 후 선생님은 외모만큼이나 독특한 방법으로 아이들의 이름 외우는 법을 수학선생님 답게 집합으로 설명하기 시작한다.
갈색머리와 금발머리, 몸집이 큰 아이와 작은 아이, 얼굴이 둥근 아이와 긴 아이... 이렇게 집합으로 나누고 묶어 아이들의 이름을 외운 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매년 꼭 한명은 그 어떤 범주에도 묶이지 않는 아이가 생기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올 해도 예외는 아니어서 어떤 집합에도 속하지 않는 그런 아이가 있었는 데 더 기막힌 문제는 그 녀석이 자신의 이름을 그만 잃어렸다는 것이다.
이야기의 서두는 여기서 끝이 난다. 나머지는 아이들의 몫이다.
학기초에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린 아이, 하지만 생김으로는 어느 집합에도 속하지 않는 이 아이는 과연 어떤 존재일까. 아이들을 마치 탐정이라도 된 듯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모두 10개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데 이야기 하나하나가 아이들의 흥미와 호기심을 자극하여 이야기를 완성하고 싶은 의지를 한껏 돋우고 있다.
유명작가의 이야기를 내가 완성한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동기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한참 상상력이 펼쳐지는 나이에 형식이나 내용에 구애 받지 않고 대 작가의 이야기를 내 것으로 만들다니...
부러워만 말고 우리고 한 번 해 볼 일이다. 대작가의 권위만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미래의 작가 꿈나무들에게 좋은 자양분을 던져줄 때인 것이다.
우리아이들은 그 어느 나라의 아이들보다 더 멋진 글들을 써 내지 않을까.
상상력이니 창의력이니 말로만 외치지 말고 멍석을 깔아줄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