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집 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오르한 파묵의 초년작품인 <고요한 집>은 그동안 국내에 소개된 여타의 작품과 비교해 보면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작품이다. 이미 <내 이름은 빨강>,<순수박물관>,<새로운 인생>등을 통해서 작가의 진중하면서도 인간의 깊은 심연속을 적나라게 들어내면서 숨가쁘게 혹은 그러면서 온화하게 내러티브를 끌어가는 필체는 국내 독자들에게 터키문학의 정수를 만끽하게 하고 꽤 많은 메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는 파묵만의 힘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번에 소개된 작품 역시 작가의 고국인 터키를 무대로 한 가정의 가정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한 가족의 가정사에 얽혀 있는 비밀을 아흔의 노파와 그의 손자들 그리고 또 다른 핏줄의 시각에서 각각 다르게 바라보는 저 마다의 이야기들를 다층적이면서 1인칭화자 시점으로 구성하여 마치 각각의 장에 해당하는 내러티브들이 별개의 이야기로 들리는 듯하면서도 결국 할아버지-아들-손자로 이어지면서 끊을수 없는 운명적인 관계처럼 이들 다섯명 화자의 내러티브들이 하나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 묘한 스트럭쳐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러한 스트럭쳐가 파묵만의 고유한 구도는 절대 아니지만 왠지 파묵의 작품이기 때문에 더할 나위 없이 딱 어울리는 작품의 구도가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이는 비록 형식은 다인칭적인 화법을 구사하고 있지만 크게 전지적 작가시점에서 보는 듯한 착각도 동시에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오르한 파묵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독자나 이미 그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는 독자 양측 둘다 이번 작품은 또 다른 묘미를 선사하고 있다. <고요한 집>은 시간상으로 이 작품이후 출간되는 파묵의 작품들의 근간을 이룬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파묵 자신이 밝힌바 있는 유일한 정치적인 소설인 <눈>의 프롤로그를 보는 듯하면서도 <내 이름은 빨강>의 추리적인 모티브 <순수 박물관>의 애특한 사랑과 다소 편집증적인 집착등을 연상케 하는 모티브등 향후 작가가 펼치게될 작품세계를 미리 엿볼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특히 매 작품에서 들어나는 것이지만 굴곡에 찬 터키 근현대사와 그 시대를 살았던 인간들의 삶이 반영되어 있어 더 현실감 있게 다가오듯이 이번 작품 역시 군부쿠테타 직전의 터키 시대상을 담고 있다. 이러한 점들이 오히려 파묵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겐 초년의 그의 작품을 접하면서 파묵의 작품세계에 빠져드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이며 이미 파묵의 작품에 빠져있는 독자들에겐 파묵의 작품세계를 한층 더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도문명(서양문명)과 이슬람문명(동양문명)이 상존해온 역사적 운명만큼이나 터키의 근현대사는 다양한 이념과 매카니즘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고 그런 혼재된 다양성들이 오히려 파묵의 작품이 획일성에 빠져드는 것을 방지했다고 사료된다.  작가는 자신이 살아왔던 치열했던 동서양 문명의 충돌이라는 거대한 담론들을 작품을 통해서 필연적으로 순응할 수 밖에 없었던 개개인들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적절하게 혼합함으로써 그 존재론적 가치를 부각 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이상을 꿈꾸는 이상주의자이던, 혁명을 꿈꾸는 공산주의자던 혹은 아메리카 드림에 목말라 있는 현대자본주의 지향주의자든간에 그들 개인이 한번쯤은 생각하고 갖고 있을법한 삶을 내러티브속에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 당시 터키의 시대상을 가감없이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전달한다. 또한 그들의 삶의 지향점이 사랑이던, 혁명이던, 이상이던, 허영이던간에 그들 하나 하나가 가지고 있는 특성들 그 자체에 대한 평가를 유보하면서 마치 신문 기사를 아무런 감흥없이 읽어나가는 것 처럼 대하게 하는 것 역시 묘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바로 이러한 점들이 파묵의 작품에 빠지게 하는 유니크한 점이기도 한 것이다. 그냥 거대한 파도에 대항하지 않고 순응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저항하는 돗단배같은 느낌들(작중 메틴의 암산능력을 가늠케 하는 두자리수의 곱하기 암산문제에서 맞는 답도 있고 틀린 답도 있지만 그 누구하나 그 정답의 정오에 대해서 확인하려 들지 않는 다는 점)과 커다란 패러다임속에서 자신들만의 소소하지만 소중한 가치관들을 유감없이 들어내는 밀알같은 개인들의 삶이 더 돋보이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전체적으로 이번 작품은 제목처럼 고요하다. 마지막 결말에서 공산주의자 닐귄의 뜻하지 않은 죽음이외에는 그 어떠한 서스팬스나 충격파 없이 진행되고 있어 약간은 지루한 진행에 진도가 빨리 나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이러한 내러티브의 흐름은 <내 이름은 빨강>이라는 작품을 제외하면 거의 비슷한 흐름의 강도이기도 하지만 1주일이라는 짧은 시간적 배경에 비하면 유독 더디게 독자들에게 다가온다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이런 더딘 진행속도가 왠지 폭풍전야의 고요처럼 혹은 살얼음판을 걸어가는 아슬아슬함처럼 다가오는 것 역시 파묵의 교묘한 설정들 속에 있다. 삼대에 걸친 역사적 흐름의 키를 가지고 있는 파르마와 터키 굴곡의 역사를 연구하느 파룩, 급진주의자인 닐귄과 하산, 아메리카 드림을 꿈구는 메틴 그리고 그림자와 같은 존재이지만 없어서는 안될 존재인 난쟁이 레젭 이들 각각의 영역들이 별개의 스토리를 던져주고 있는 것 같지만 전체적인 내러티브상에서 서로 얽히고 얽혀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이런한 면들이 거대한 시대적 담론과 그 속에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필수적인 요소를 구성하는 개인들의 사유를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에 한결 정갈한 맛을 자아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매번 오르한 파묵의 작품을 대하면서 익싸이팅하거나 반전을 기대하는 입장과는 다소 거리가 먼 어떻게 보면 상당히 정적인 작품들을 대면하게 되지만 오히려 이러한 파묵의 작품세계가 리얼타임으로 꼭 무엇인가 눈앞에서 해결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현대인들의 사유구조에 대해서 경종을 울리는 것 같아서 한결 마음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져보게 된다. 순수박물관에서 한 남자의 길고도 지고지순한 사랑처럼 오래토록 여운을 남기는 그런 작품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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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오름 2012-03-09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벨문학상이라는게 역시 그냥 받을 수 있는게 아닌듯 하군요. 좋은 리뷰 잘 읽고 많이 배우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