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한반도는 66년전 일본제국주의의 무조건 항복으로 인해 해방이라는 기쁨을 맞보게 되었다. 비록 당사자인 우리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맞이하게 된 해방이지만 이미 몇년전부터 상해임시정부를 비롯하여 국내에도 자생적인 독립의 비밀결사가 형성되어 있었고 독립을 향한 염원은 그 어느때 보다 무르익은 상태였다. 이렇게 맞이 하게된 해방은 또 다른 외세(미국과 소련)의 간섭으로 분할통치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분단화가 고착되게 되었고 양극단의 이데올로기 대리장으로 한반도는 지금의 상태로 이어져 오고 있다. 냉전시대가 지난지도 오랜세월이 흘렀지만 한반도의 평화는 오리무중인 상태이기도 하다. 그리고 남북양쪽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일제강점기의 아픔을 딛고 새로운 역사정립을 하고 있다. 또한 세월이 흐르면서 당시 제국주의로 인한 식민지통치 시대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면서 서서히 피해당사자나 가해당사자쪽에서나 잊혀져 가는 형국이 되어 버렸고 새삼 아픈 과거지사를 굳이 들먹거릴 필요성이 있을까라는 생각도 가질만큼 양국간의 교류가 많이 진전되었다. 그리고 G20의장국으로서 세계역사의 한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자부심은 지난날의 아픔을 기억의 저편으로 던져버리기에 충분할 것이다. 이러한 일종의 기억의 망각은 시초부터 정리하지 못한 친일잔재에 대한 자기 합리화이기도 하다. 그리고 과거사로 인해 미래가 발목을 잡혀서는 안된다는 정치적인 논리등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재일학자인 서경석의 <언어의 감옥에서>는 아직도 청산되지 않고 진행중인 일본사회의 식민지적 근성을 보여주는 단례가 되고 있다. 나치즘의 홀로코스트에 대해선 유독 많은 관심과 출간물이 출간되면서도 정작 자신들이 자행했던 제노사이드에 대한 일절의 사죄가 없고 그나마 진보적 인사라는 하시즈메의 사유 역시 큰틀에 벗어나지 못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지금 일본의 현주소인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일본 사회의 사유들이 언어의 재포장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저자는 여기서 우리의 다른 문제하나를 조심스러우면서도 단호하게 언급하고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우리가 가해자로 참전한 베트남전쟁에 대한 성찰이다. 지난 군부정권에서 한국전쟁참전에 대한 보답(물론 외화벌이라는 부차적 목적이 더 강했지만)이라는 미명하에 자행되었던 베트남 참전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남겼다. 민간인 집단학살에서부터 고엽제와 라이따이한이라는 환영받지 못하는 2세들의 배출 그리고 아직도 우리는 베트남참전에 대한 책임에서 한발 비켜가기만을 바라고 있다. 저자의 표현처럼 우리가 피해자로서 가해자인 일본의 안아무인을 탓하기 전에 우리 스스로 베트남에 대한 집단적인 책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은 현재 대한국인들(전쟁에 참전여부와 시대적, 공간적 이격을 떠나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이 짊어져야만 하는 집단적 책임의식인 것이고 이 부분에 대한 우리의 고뇌 역시 중차대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논지에서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외부성으로 인한 왜곡보다는 내부적인 왜곡에 대한 새로운 고찰과 더불어 자기반성이라는 면일 것이다. 해방이후 정부수립과 동시에 추진되었던 반민특위의 무산으로 인해 우리는 친일청산에 실패했고 친일분자들은 사회각층에 슬며시 잠입하였고 이제는 일종의 거대한 권력을 형성해 버렸다. 이러한 내부성의 실패로 인해 식민지 근대화론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망측한 사유까지 버젓이 생산됨으로서 가해자보다 피해자쪽에서 더 빠르게 적응해나가고 있는것은 아닌가라는 생각 마저 들정도 우리사회는 어쩌다 한번씩 터지는 일본 극우단체나 정치인들의 망언이나 독도영유권주장등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이것 역시 시간만 지나면 수면밑으로 자연스럽게 잦아드는게 현실이 되어버렸다. 특히 일본전문가라는 박유하의 <화해를 위해서>에 대한 비판은 그야말로 우리자신들의 자화상을 그대로 보여주는것 같아 낯이 뜨거울 정도이다. 저자의 비판적인 의식은 그동안 너무나 안일하게 이 문제에 접근했던 우리에게 자기 성찰을 요구하기도 한다. 언어의 감옥이라는 제하처럼 저자는 언어속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욕망과 폭행을 통해서 지금까지 진행중인 일본지식사회의 단편을 고발하고 있다. 도쿄도지사을 비롯한 프리즘의 최우측에서부터 세칭 진보적이라는 인사들까지 일본내에 공통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집단적 책임의 회피성향을 여실히 보여 주면서 또다른 식민주의가 계속되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또한 이러한 언어적 식민주의는 비단 일본내가 아니라 우리에게 오히려 더 많은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박유하의 사유와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창하는 이들의 사유등은 그야말로 우리자신들의 자화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겐 지난날 일본과 같은 가해자의 입장으로서 도덕적 책임과 집단적 책임을 느껴야할 베트남이라는 존재가 있다. 지금이라도 그들에게 진심어린 사죄가 선행되어야 하고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 역시 변하지 않는다면 이 역시 일본이라는 존재와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