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점의 꿈을 접은 것은 좀 더 이후, 대학 다닐 때였다. 청년 모비딕은 대학가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매일, 하루 종일 책을 나르고 꽂고 빼고 만지고 정리했다. 한마디로 책과 더불어 살았다. 책과 부대끼는 시간이 많을수록 정작 책 속을 들여다보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책의 향기 보다 종이와 먼지와 곰팡이 냄새와 싸우는 시간이 더 많았다. 서적상이 웬만한 작가나 학자보다 더 박식한 다독가인 것은 정녕 딴 나라 얘기였다. 하루 종일 몇 십 권, 때론 백 권 이상의 책을 정리하고 나면 삭신이 쑤셨고 이라는 청각영상만 떠올려도 혐오감과 공포감이 밀려왔다. 급기야 책이 그의 악몽의 주인공이 되기에 이르렀다.

꿈속의 그는 한 평 남짓한 방에서 모로 누워 곤한 잠을 자고 있었다. 갑자기 벽과 한 몸이 된 서가가 앞으로 기울어지면서 빼곡히 들어차 있던 책이 그를 덮쳤다. 두툼한 <자본>의 모서리가 제일 먼저 떨어져 그의 척추 아랫부분을 툭 쳤다. 소프트카버여서 충격과 통증은 별로 크지 않았지만 잠이 확 달아났다.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는 찰나 <이방인>의 모서리가 그의 접힌 몸의 정중앙, 생식기에 떨어졌다. 짧고도 격한 비명을 내지르며 고개를 뒤로 젖히는 순간, <존재와 시간>이 직사각형의 자세 그대로 목젖이 보일 것 같은 그의 목 위로 고스란히 떨어졌다. 참수가 완료됨과 동시에 책들이 그의 머리통과 몸통 위로 와르르 쏟아져, 그는 그대로 책 밑에 매장되었다. 꿈속의 그의 삶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꿈의 후반부에서 그는 책의 칼날에 댕강 잘린 목을 천연덕스레 다시 붙인 채 지옥살이를 하고 있었다. 그의 등짝(그것은 무한대로 넓고 두툼했다!)에는 니체 전집, 프로이트 전집, 카뮈 전집, 이상 전집을 비롯하여 각종 세계문학전집, 각종 한국문학전집이 얹혀 있었다. 그리고 그의 양손(이 역시 무한대로 컸다!)에는 그가 사놓고, 혹은 빌려놓고 읽지 않은 각종 책들이 들려 있었다. 이 벌이 영겁의 세월에 걸쳐 지속되었다. 그는 책을 몸에 붙인 채 정작 읽지는 못하는 만성고통에 길들어져 갔다.

한없이 둔중한 와중에 갑자기 뭔가 저릿하고도 찌릿한 느낌. 요의와 변의를 동시에 느끼며 그는 정신을 차렸다. 눈을 뜨기도 전에 요란한 선풍기 소리가 귀를 때렸고 온 몸을 적셔놓은 끈적끈적한 땀의 촉감과 냄새가 감지되었다. 일순간 불쾌지수가 어마무지하게 치솟았다. 눈을 떴다. 사지와 몸통을 괴롭힌 묵직한 압통의 진앙은 한쪽 벽에 세워둔 서랍장 위에 얹어놓은 겨울 이불, 그리고 세간살이 몇 개였다. 괜찮아, 사장이 되면 괜찮을 거야. 이런 생각을 하며 그는 공동욕실 겸 화장실로 달려갔다. 찬물에 땀이 씻겨 내려가면서 정신이 명료해졌다. 과연? 회의가 들었다. 사장이란 항상 하얀 목장갑을 끼고 책 상자를 나르거나 맨 손으로 주판을 튕기며 장부를 정리하는 자가 아닌가. 글쎄. 청년 모비딕은 고개를 내저었다. 마음속에 열어두었던 서점 문도 영영 꼭 닫혔다.

(...)

 

소설가가 소설을 쓰는 것이 무슨 사건이냐마는 이십대 때는 마구잡이로 하던 이 일이 이제는 정말 무슨 벼슬이 돼 버렸다. 왜 이리 안 써지는 것이냐, 하는 내적인 문제도 있다. 물론, 이게 제일 큰일, 제일 근본적인 원인일 것이다.  1월, 계획에 없던 소설창작 강의를 두 회 하게 되었는데, 아이들이 쓰는 글을, 그러니까 글 자체와 쓰이는 행위를 보고서 얻은 깨달음(!)이 크다. 뭐, 거의 에피퍼니(조이스냐 ^^;;) 수준이다.  한때는 나도 가졌었으나 이제는 없는 것, 그 젊음(=치기)을 무엇으로 보상할 것이냐. 결국은 성실이다. 이것은 농부인 아버지가  정한 우리 집 '가훈'이기도 하다.  정작 당신은 오히려 게으름-과에 가깝지만, 생각함에 있어서만은 '성실'하셨던 듯하고 거의 노동 불능 상태인 지금은 더 그러신 듯하다... 육신이 맛이 가니 정신은 더 맑아져...-_-;;

 

두 번째로 시간의 부족을 꼽을 수도 있겠으나, 이거야말로 염치 없는 핑계, 헛소리이다. 아니, 소설가가 소설 쓰느라 바빠야지, 딴 짓, 다른 일 한다고 바쁘면 그게 소설가냐. 특히 장편을 쓰기 위해서는 정녕 두루마리 시간이 필요한데, 그것이 여의치 않다 함은 그만큼 열의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밖에 그럴 듯한 다른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다시금 오직 내적인 이유여야 한다. 즉, 장편이 나의 '영혼의 형식'이 아니다, 이런 것. 간단한 예.

 

 

 

 

 

 

 

 

 

 

 

 

 

 

 

 

톨스토이와 살풋 동시대인이기도 한 체호프는 쟁쟁한 대가들의 제자-후배답게 장편에 대한 갈망이 컸지만, 본인의 재능은 아무래도 단편(기껏해야 중편)에 한정되었다. 적어도 그의 잘 쓴 소설은 모두 중단편이고, 지루한 소설은 다 (도-키, 톨-이에 비하면 엄청 짧지만!) (경)장편이다. 에드가 앨런 포우도 단편이 걸작들이고, 그 다음, 이 경우 응당 얘기되어야 하는 보르헤스는 그 문학의 체질상, 또 원칙상 장편을 쓸 수 없는(쓸 필요도 없는) 작가이다.

 

 

 

 

 

 

 

 

 

 

 

 

 

 

75년 1월 생이고 93학번인 나는 굵직한 장편을 읽으며 문학의 세계로 들어섰다. 물론 중학교 때 필독 단편을 거쳤지만, 문학에 대한 꿈은 아무래도 장편을 통해 다져졌다.  굳이 전공인 도-키를 비롯한 러시아 소설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한국 소설의 경우에도 박경리 [토지], 박완서 [나목]을 비롯한 많은 장편들 이 곧 소설이었다. 그런데 왜 나는 항상 쪼가리(?!) 글 밖에 못 쓰는지. 그때  카프카가 나타나 위로를 해주었으나, 이것도 이십대 얘기이다. 서른 되기 전에 <이방인> 정도는 쓰겠지. 그 서른도 벌써 십여년 전에 내 몸을 뚫고 가버렸다. 그 흔적이  배와 허벅지의 군살로, 얼굴과 목, 손등의 주름으로 남았다. 

 

 

 

 

 

 

 

 

 

 

 

 

 

 

 

 

소설과는 무관하지만,  정초부터 집안에 '우환'이  크다. 아이의 염좌, 깁스에 이어, 서방이 죽을 뻔하다 살아나 나에게 이런 존재가 있(었)음을 아주 강하게 각인시켰다.  (초기 바흐친 말대로) 흡사  통증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는 신체의 일부 같다. 다행히 얼굴 몇 군데 꿰매고 코뼈 수술을 하는 정도 마무리 되었지만, 상황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새삼, 내가 어린 놈, 늙어가는 놈 등 두 남자와 살고 있음을, 심지어 그 두 놈을 키우고(!) 있음을 환기하곤 화들짝 놀라버렸다. 뭐냐, 난 내 몸 하나도 건사하기 힘들단 말이다, 이것들아!  사고 좀 그만 쳐라, 아웅~

 

 

 

 

 

 

 

 

 

 

 

 

 

 

 

 

아이 키우는 것이 무슨 유세는 아니지만, 이제는 이것이 소설을 읽는 하나의 잣대처럼 작용하는 듯도 싶다. 하루키가 환갑을 넘기고도 여전히 순정만화 같은, 2D 일본 애니메이션 같은 소설을 쓰고 있는 것도 그의 무한한 자유(그는 여전히 대학생이다!)와 무관하지 않을 터. 한편, 처음부터 우리에겐 '아줌마' 작가였던  그들의 필력과 , 인간과 세계를 바라보는 웅숭 깊은 시선 역시, 명실상부한 아줌마가 된 나를 자극한다. 

 

 

 

 

 

 

 

 

 

 

 

 

 

 

어느 문화권이나 '아줌마' 작가는 있다. 언젠가 <창비>에 서평도 썼던 작가.

 

 

 

 

 

 

 

 

 

 

 

 

 

 

집안의 우환 때문에 사용할 수 있는 물리적 시간이 적잖이 줄었으나 그렇기에 그 틈새에 낀 지금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겠다.  툴툴대지 말고 쓰자. 쓰고 쓰고 또 쓰자. 

 

나는 서른 살 때 멋진 솜씨를 발휘했다. <구토>를 쓴 것이다. 거기에서 나는, 확언하지만 아주 진지하게, 내 동족들의 정당화될 수 없는 씁쓸한 존재를 묘사하고, 나 자신의 존재는 시비의 대상에서 제외해 버렸다. 나는 로캉탱이었다. 나는 로캉탱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내 삶의 곡절을 가차 없이 드러내 보였다. 그와 동시에 나는 나 자신이었다.(사르트르, <말>, 267-268) 

한 줄이라도 쓰지 않은 날은 없도다. / 이것이 내 습성이요 또 내 본업이다. 오랫동안 나는 펜을 검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나는 우리들의 무력함을 알고 있다. 그런들 어떠하랴. 나는 책을 쓰고 또 앞으로도 쓸 것이다. 쓸 필요가 있다. 그래도 무슨 소용이 될 터이니까 말이다. 교양은 아무것도, 또 그 누구도 구출하지 못한다. 그것은 아무것도 정당화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산물이다.(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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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하루종일 봤다. 학구적인 그대, 좋아 ㅎㅎㅎ

 

하지만 역시 육아는 힘들어 아침에 모셔다(!) 주고 하원 시간을 빨리 하는 중. 깁스를 하고도 눈 구경을 하고 싶냐, 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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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결핵, 특히 폐결핵하면 낭만주의 퇴폐와 연결되어 어딘가 미학적으로, 아름답게 느껴진다. 각종 낭만주의 시인들을 생각하면 된다. 암에 관한 한, 동정의 여지가 없다. 종양 덩어리, 썩어지고 문드러지고 그렇게 추악하게 죽음에 이르는 것. 가까운 예론,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 이반 일리치의 여러 증상으로 미루어, 췌장암(?)으로 추정한다. 에이즈는 더하다. 이것은 어떤 미학도 허용치 않는다. 이 병을 둘러싼 각종 메타포-은유들이 너무 불결한 탓이다. 이런 유의 생각은 수잔 손택의 명저를 읽으며(이 책에서) 나온 것이다.

 

 

 

 

 

 

 

 

 

 

 

 

 

 

수잔 손택의 하고 많은 고급 에세이 중 유독 이 책에 꽂힌 것은 수시로 상기되는 저런 내용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병과 더불어 살고 있고, 더 무서운 것은, 그 메타포들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잠시 그녀와 관련하여, 그녀는 훌륭한 에세이스트였지만 끝까지 소설가이고자 했다. 그녀의 소설을 읽지 않아 뭐라고 판단할 수 없지만, 적어도 평판만 놓고 보면 그리 대단한 소설을 쓴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왜 그토록 소설을 쓰고자 했는지. 우리를 옥죄는 이 창작(특히 소설-이야기 창작)의 욕망은 당최 무엇인지.

 

손택의 <은유로서의 질병>이 국내에 번역, 소개되기 전에 그 내용을 어렴풋이 알게 된 것은 대학 시절 김윤식 교수 덕분이다. 한국비평론 강의에 이런 얘기가 왜 나왔는지^^; 아무튼 그때 주워들은 몇 마디가 무척 강하게 각인되었다. 곁들어, 그 시절의 국문학자임에도 영어를 잘 했고(요즘이야 국문과 학생들이 영어 공부 더 열심히 하는 듯^^; 심지어 몇 권의 책을 번역하기도 한(지라르 소설론,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 등) 김윤식 선생은 이 점에서도 나름 선구자이다. 손택의 이론을 처음(!) 소개함과 동시에 이상 연구에 적용, 청년 이상의 결핵과 그 문학 간의 상관성을 풀어내었다. (<이상 소설 연구>도 좋은 책인데 이미지 검색이 안 된다.) 그러리라 추정했는데, 그렇다고 확증해준 것은 방민호 교수의 최근 이상 연구서.

 

 

 

 

 

 

 

 

 

 

 

 

 

 

겸사겸사 방민호 교수의 한 논문에 한복을 입은 이상 사진이 있어 깜짝 놀랐다. 그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우면서도 멋있었기 때문이다. 모방과 창조(?)를 향한 엄청난 욕구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떻든 조선인이고 덧붙여 장남(!)이기도 했다. 아무튼, 오랫동안 외국문학 쪽만 보다가 한국문학을 보니 마음이 설레는 것은 물론이고, 학자들의 몸가짐과 마음가짐(?) 역시 다르다는 사실에 자극을 받는다. 외국문학 전공자의 몫 중 하나는 번역이기도 하지만, 국문학자의 연구는 처음부터 끝까지 해석(논문 및 저서 쓰기)인 듯하다. 어쩌면 이것이 굴레이자 억압일 수도 있겠으나 어떻든 그들이 더 부지런한 것만은 사실인 듯하다.

 

 

 

 

 

 

 

 

 

 

 

다시 은유로서의 질병. 이반 카라마조프식 화법으로, 성인은 차치하자. 그들은 이미 선악과를 따먹어서, 즉 환경적 요인을 비롯한 각종 원인에 침윤되었다고 할 수 있으니 그나마 덜 억울할 터이다. 가령, 술담배 많이 해서 위암, 폐암, 대장암 걸리고 등. 하지만 너무 어려서 미처 선악과를 따먹을 여유조차(!) 없었던 아이들의 질병(장애)은 당최 뭐냐는 거다.  

 

출생 직후에 문제가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조산아도 생각보다 많아 놀랐다.(우리 아이도 생후 1개월에 입원했는데 마침 병실이 없어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이런 경우 각종 질환이나 (아직 단정하긴 이르지만  장애가 적지 않다. 유전자 이상(우리가 제일 흔히 아는 건 다운 증후군)은 물론 증상이 심할 수록 조기에, 거의 생후 몇 개월에 발견,진단된다. 그리고 많은 경우 이런 장애(질환)는 다른 장애를 동반한다.

 

"애들이 한 번씩 경기도 하는 거지, 무슨 mri야."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러지 못한 정황도 많다. 증세가 심하거나(우리 아이도 눈이 뒤집어지고 병원에 도착한 시점에서 산소포화도가 아주 낮았다) 두세번 이상 반복된다면 더 그렇다. 보통은 약으로 조절하지만 드문 경우 (주로 간질파가 발견되는 뇌의 특정 부분을 잘라내는) 수술도 한다.  대개는 커가면서 좋아진다고 하지만(나도 그런 경우이고) 일단 약을 복용하면 증상이 없어도 3년은 계속 복용한다. 계속 증상이 있다면 그것이 간질병이고 평생 약을 먹는다.

 

 

 

 

 

 

 

 

 

 

 

 

 

 

주지하다시피 카이사르, 나폴레옹, 플로베르 등도 간질을 앓았다고 한다. 우리가 간질에 대해 갖는 극히 양가적인 인상은 이런 사실에도 기인한다. 즉, 그것을 '지랄병'(-서양에서는 '악마'가 들린 것)이면서 동시에 어딘가 천재적인 것이라는 것. 나의 경우, 경기를 많이 했으나 발달에 문제가 없어서, 오히려 너무 빨라서 후자처럼 생각했던 듯하다. 우리 아이의 경우는, 유감스럽게도, 반대. 하지만 전에 쓴 글에서 강조했듯, 이것은 그저 질환일 뿐이고, 이 질환과 특정 분야의 천재성 사이에 어떤 인과 관계가 있지는 않을 터이다. 심지어 프로이트조차도 <도..키와 살부(친부살해>라는 글에서, 기억나는 대로 조잡하게 정리하면, '몸'의 간질과 '정신'의 간질을 구분하고 도키를 후자에 넣는다. 하지만 이런 것은 있을 수 없다!  특발성(별 이유 없이 그냥^^;) 간질은 결국 증상이 문제이지, 원인(뇌의 구조에 어떤 확실한 문제, 기형 등)이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치료도 항간질약을 통해 발작을 최대한 억제하는 쪽으로 맞추어지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의학.

 

 

 

 

 

 

 

 

 

 

 

 

 

 

 

 <백치>의 유명한 부분 중 하나. 므이시킨이 간질발작에 대해, 발작이 시작되기 직전의 아주 짧은 순간에 대해 얘기하는 부분을 한 번 옮겨보자. 엄청 길어서(그대의 수다-력이란!) 중간에 왕창 잘랐다.

 

"그의 간질병 증후 중에는 거의 발작 직전에 오는 어떤 단계가 있었다(물론 의식이 분명한 상태에서 발작이 올 때에 한해서지만). 그 단계에 들어서면 우수와 정신적 암흑과 억압 사이에서 순간적으로 그의 뇌는 불꽃을 튀기고 모든 활력은 폭발적으로 긴장한다. 삶의 감각과 자의식은 번개처럼 이어지는 매순간 거의 10배로 증가되었다. 그의 모든 감정, 의심, 걱정은 지극한 평온함으로 바뀜과 동시에 빛을 발하는 기쁨, 조화, 희망이 되고, 그의 이성은 결정적인 원인을 이해하는 데까지 이른다. (...) 만약 그 1초 동안, 즉 발작이 일어나기 직전의 의식이 깨어 있는 마지막 순간에, 그가 분명히 의식적으로 <그렇다, 이 순간을 위해 나의 모든 생을 내줄 수 있다!>라고 말할 수 있었다면, 물론 그 순간은 그의 전 생애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백치>, 상권, 350-52쪽.)  

 

한데 의학자들은 이것이 판타지라고 말한다. 간질의 전조로 흔히 얘기되는 증상(오심, 구토, 환청, 환시 등)과는 너무 동떨어진 것이라는 것. 하지만 간질병환자였던 도...키는  거의 전적으로 자기 나름의 경험에 기대어 자신의 인물로 하여금 저런 얘기를 하고 있다. 여기서 문학은 의학과 완전히 결별한다. 

 

 

 

 

 

 

 

 

 

 

 

도...키 소설의 또 한 명의 간질환자는 (<악령>의 키릴로프를 빼면) 스메르쟈코프이다. 그의 간질병은 소설의 플롯 진행에 큰 역할을 하지만(발작이 난 것처럼 연기하다가 틈을 봐서 표도르를 죽인다), 작가는 그로 하여금 자신의 병을 통찰하는 페이지를 마련해주지 않았다. 이 점에서 스메르-프는 애초부터 '미학적 죽음'을 선고받은 인물이다. 백치-병신조차 자신의 질환을 그토록 깊숙이 응시하건만!  

 

한편 뇌전증과 무관하지 않고 아이의 발달이 너무 늦어 관심을 갖게 된 발달 장애(자폐 스페트럼 장애). 그것의 가장 큰 특성은 (아주 중증이 아닌 다음에는!) 출생시 문제가 없었던 것은 물론,두 돌 정도까지는 별 이상이 없다는 것이다. 각종 검사에서도 이렇다 할 원인이 발견되지 않는다. 혹은 발견되도(더러 뇌파에 잡히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냥 그렇다, 하는 정보만 줄 뿐, 증상의 개선에 별 도움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아동발달센터를 봐도 한국 나이로 네다섯에서 일고여덟 정도 되는 아이가 제일 많다. 즉, 두 세돌 부터 의심을 하다가 병원 혹은 센터를 다니기 시작, 여사여사 진료 예약, 치료 스케줄 잡으면 이렇게 되는 거다.  다른 한편, 대략 초등 1, 2학년 정도까지(만 7, 8세) '늦음'이 잡히지 않으면 그것은 '장애', 즉 영구적인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가 이른바 좀 모자란다, 좀 덜 떨어졌다, 라는 것이 실은 자폐성 발달 장애, 지적 장애이다. 어릴 때는 '자폐'(autism)라고 하면 뭔가 굉장히 철학적으로 생각한 듯한데, 아이가, 사람이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사는 것이 자신의 의지와 취향에 의해 선택된, 특정한 성향(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지와 감각 처리 능력의 문제 탓이기 때문에 그것은 장애인 것이다. 이것을 둘러싼 가장 큰 오해 중 하나는 양육 과정을 비롯한 환경적 요인 탓이라는  것이다. 환경이 문제라면 그것을 개선할 시 1년 안팎이면 아이의 문제가 사라진다. 그렇게 되지 않으니 장애인 것이다. 그 다음, 고소득 전문직(특히 의사) 부부에게 이런 아이가 많다는 것 역시 속편한 오해다. 오히려 부모가 그렇기 때문에 더 빨리 인지(발견)하고 치료에 적극적이고 때문에 통계에 잘 잡히는 것 뿐이다.

 

부산에 있는 부모와 두 동생과 떨어져 살며 거창 외갓집에서 학교를 다니던 시절, 1984년 4학년 1학기, 우리 반에 엄마와 이름이 똑같은 여자애가 있었다. 키가 무척 크고 얼굴이 무척 선하게 생긴 아이였다.(생각해 보면 또래보다 나이가 많았을 확률이 높다.) 눈썹이 길고 눈매가 여리고  미소가 은은했다.  학교도 드문드문 나왔던 것 같고. 그 아이와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제법 친했던 기억은 있다. 그 아이를 회상하면 왠지 청신한 초록빛 논과 밭이 떠오른다. 시골 학교였고 운동장 뒤로 전부 논밭이었으니 그럴 법도 하고. 아무튼 교실에 있는 그 아이의 모습은 거의 머릿속에 남아 있지 않다. <고슴도치>를 쓸 때도 그랬지만, 요즘 곧잘 그 아이가 떠오른다. 거의 한 마디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이였던 것이다! 그 아이도 사십을 거뜬히 넘겼을 텐데 어떤 모습일지... 

 

아무리 낙서라도 완결이 되어야 하는데 사방에서 떠들어대는 통에 집중이 안 된다. 역시나 기시감을 불러일으키는 정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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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쓰는 글이 맛있다. / 밤에 글을 쓰는 일이 맛있다.

 

 

 

 

 

 

 

 

 

 

 

 

 

 

 

두 문장을 생각하곤 응당 최근 가장 재미있게 읽은 산문집인 황현산의 <밤이 선생이다>을 떠올렸다. 나 역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올빼미였지만, 어느 순간 보니 거의 나인식스 직장인 수준의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내가 쓴 모든 글은 논문, 소설, 산문, 리뷰를 막론하고 모두 해가 멀쩡하게 떠있을 때 커피숍에서 쓴 것이다. 읽는 글/책도 그렇다.

 

아이가 방학을 하여(연휴와 주말을 끼고 있어 한 열흘쯤 되는 듯하다ㅠ.ㅠ) 시간표가 와장창 무너졌다. 그 덕분에 이렇게 야심한(!) 시각, 아이가 잠들자마자 노트북을 켜 보았다. 이 황홀감이 너무 당혹스럽다. 뭘 해야 하나. 아, 옛날 같으면 지금 한창 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었을 텐데.

 

아까 읽고 있던 <백치> 연구서를 다시 볼까? 어림없다. 이 소중한 시각에 그 따위 지루한(-밥벌이용) 책을 보다니! 겸사겸사, 오늘 저녁의 풍경 중 하나. 연구비 받은 논문을 쓰기 위해 연구서를 읽는 나의 모습이, 얼핏, 한 2-30년쯤 내 모습과 겹쳐졌다. 사실상 단칸방, 중학생인 나는 공부방이 없어 항상 시끄러운 가운데 공부를 해야 했는데, 한날 기어코 울음을 터뜨렸고 애꿎은(그들은 놀 자격이 있다!) 두 동생이 아빠한테 종아리를 맞은 적이 있었다. 대략 그런 식의 학령기를 보냈기 때문에 늘 독방을 꿈꾸며 그 독방에서 늘 책을 보고 책을 쓰며 사는 삶을 꿈꾸었다. 한데, 옆에서 아이가 정신없이 오가고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보채고 하는 와중에 식탁 위에  연구서를 펴놓고 있는 내 모습이 그 옛날의 모습과 어찌나 닮았는지. 피식 웃음이 났다.  돌고 돌아 제자리, 그리고 그 무덤은 내 손으로 파놓은 것. 반복은 불가피하고 어쩌면 그래서 변주가 유의미하고 또 소중하다. 그땐 울었는데 지금은 웃음.

 

<백치> 얘기를 해볼까. 이 소설에 대한 논문도 쓴 적이 있으나 소위 '심취'한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심취하고 있다. 한자어로 점잖게 써서 '백치'이지 실상 이것은 어떤 검사 도구도 먹혀들지 않는 중증 발달장애나 지적장애를 일컬음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왜 이런 소설을 썼고 또 (같은 얘기다만) 자신의 소설의 제목을 대놓고 '백치'라 했을까.

 

 

 

 

 

 

 

 

 

 

 

 

 

 

 

<백치>의 주인공 므이시킨은 간질병 환자인데, 작가 역시 그러했기에 여러 모로 문제적이긴 하다. 한데 아까 읽었던 연구서가 이 부분을 제법 집중 조명하고 있어 흥미로웠다. 이런 '병리학'의 문제(-간질, 즉 뇌전증)과 '성스러움'의 이율배반적 공존. 더 구체적으론, 소설적 그리스도의 형상화. 그리스도 자체가 이미 신성의 육화, 이긴 하지만, 이러한 존재에 살과 피를 입혀 소설 속 인물로 그리는 것은, 역시나 미션 임파서블, 도..키가 아니면 누구도 도전할 엄두를 내지 못할 일이다. 여기서 대가는 스스로 고르는(골라지는) 싸움의 상대부터가 다름을 실감한다!

 

그 출발점으로 도..키는 백치, 간단히 병신(올해는 병신년이구나-_-;;)을 택한다. 그의 바보스러움이 곧 성스러움과 연결된다는 어찌 보면 직관적으로 이해되면서도 너무 모순적인 생각 속에, '우스꽝스러움'의 범주가 하나 더 개입된다. 이것도 마찬가지. 병신은 대부분 웃기니까 당연해보이지만 이것이 또 어찌 성스러움이냐, 하는 것이다. 물론 도..키가 모델로 생각한 건 돈키호테이다.

 

 

 

 

 

 

 

 

 

 

 

 

 

 

그 다음 플롯. 이것이 문제는 연애소설이라는 것이다.  삼각관계를(심지어 사각, 오각 관계) 다룬 치정 소설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주제. 바로 '아름다움'. 어쩌면 그러니까 아귀가 딱 맞는 것이다. '미'("아름다움이 세계를 구원할 것이다")의 주제를 가장 잘 형상화할 수 있는 것은 (가령 <악령>의 정치도 아니고) 사랑이기 때문이다.

 

 

 

 

 

 

 

 

 

 

 

 

 

<7인의 사무라이> <라쇼몽> 등으로 유명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백치>도 번안, 영화화했다. 볼만하다. 토시로 미후네는 여기서 로고진(일본 이름이 생각 안남) 역을 맡았고, 주로 오즈 야스지로 영화에 많이 나온 하라 세츠코가 나스타시야 필립포브나 역을 맡았다. 캐스팅과 연기가, 시쳇말로, 돋는다.

 

기말고사 서술형에서 <백치>, <악령>, <카라마조프...> 세 작품 중 아이들이 마지막 작품을 제일 많이 고른 건 충분히 이해된다. 한데 <백치>와 <악령> 중 전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던 건 무엇 때문인지 좀 궁금했다. <악령> 수업을 더 부실하게 해서? 아니다. 나는 <악령> 매니아다. 마침 중간고사 끝난 직후 <백치> 수업이어서 읽을 시간이 많아서였나? 잠깐 생각을 해봤지만, 확실히 '정치소설'(<악령>) 보다는 '연애소설'(<백치>)이 더 재미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결론을 내렸다. 한데, 도..키가 쓰면 정치소설도 철학소설이 되듯, 그가 쓰면 연애소설도 종교(철학)소설이 된다. 그게 <백치>다.

 

<백치>뿐만 아니라 작가 전기 관련해서도 간질에 대한 연구가 적지 않다. 아이가 사실상 생후 1개월부터 (도중에 한 반 년은 걸렀지만) 항간질약을 복용해오고 있다. 통상 발달장애를 검색하면 연관어로 제일 먼저 뜨는 것이 뇌전증이다. 그만큼 간질은 뇌의 인지발달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도 도..키는 예외였다! 그가 남긴 기록을 토대로 현대 의학이 판단-추정한 바로 그의 간질파는 측두엽(?), 주로 언어 활동을 관장하는 부분과 연결된다고 한다.) 요는 이것은 정말 질환일 뿐이라는 것이다.

 

 

 

 

 

 

 

 

 

 

 

 

 

 

뇌의 신경전달물질(혹은 과정?)에 어떤 이상이 생겨(혹은 한의학에서 말하듯, 오장육부에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어) 이러저러한 간질발작이 반복되는 것에는, 좋은 것이든(가령 천재다~), 나쁜 것이든(악마가 씌었다~) 어떤 메타포도 있을 수 없다. 엄마는 수시로 내가 어릴 때 경기를 심하게 했다는 말을 했고 그 이유라 "속아지(성질)가 더러워서"라고 했다. (그때는 경기라는 것이 간질 발작인 줄 몰랐다 -_-;;) 그것도 한 이유였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든(가령 체했거나 열이 났거나 등등) 만 5세 이하의 아이가 간질성 발작을 하는 것은 의료적 조치(기다리는 것 포함!)를 요하는 응급 상황이지, 도덕적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남들이 보면 우리 아이도 '환아'일 수 있겠다. 올망졸망 네 명의 조카들과 비교해봐도 운동발달 지연(=자조 활동)도 여간 큰 문제가 아니다! (막 네살이 된 조카도 신발을 혼자 신는다..ㅠ.ㅠ) 그런데 주변에 아픈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다. 뭐 성인도 그렇지만 아이의 경우 병이 정말 무서운 것은 (의외로 유전적으로 물려 받는 부분이 적으니) 그것이 지닌 '우연'의 테러이다. 하필 왜 내 아이한테 이런 병이?! 특히 장애와 소아암.

 

뭐든 더 쓰고 싶은데 졸음이 쏟아진다. 졸지에 2016년이 됐다. 언제부터 내 인생의 화두가 건강이 됐나. 아무튼 이렇게 되니 인생도 단순해진 것 같다. "엄마, 똥은 똥구멍에서 나와? (...) 하마는? 하마 똥은 하마 똥구멍에서 나와?" 다들 건!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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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우리의 영원한 모던 보이

- 이상(1910-1937), 날개(1936)  

    

 

 

 

 

 

 

 

 

 

 

 

 

 

 

 

 

이상은 저 악명 높은 오감도를 쓴 시인이자 섬세한 감성과 예리한 지성, 최고의 문장이 어우러진 권태를 쓴 수필가이지만, 소설가이기도 하다. 다분히 자폐적인 안해’(아내)에 관한 이야기인 날개를 모르는 독자는 없을 터이다. 좀처럼 해가 들지 않고 낮보다 밤이 오히려 시끌벅적한 33번지, 대문에서 가장 가까운 7번째 집, 아침에 들었던 책보만한 해가 오후에는 손수건만해지는 아랫방이 아내의 방이고, 그곳을 통과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해가 영영 들지 않는 윗방이 그의 방이다. 그는 아내의 화장대 앞에서 유희심을 채우고(돋보기 놀이, 거울 놀이) 아내의 직업과 돈의 출처를 연구하고 속으론 반찬 투정을 하면서도 아내가 갖다 주는 모이닭이나 강아지처럼 () 넙죽넙죽받아먹는다. 아내가 주는 은화는 마땅히 쓸 데가 없어 벙어리저금통에 차곡차곡 모았다가 변소에 갖다 버린다.

 

이런 극도의 칩거생활에서 소위 사건이란 그의 야밤 외출과 산책인데, 어느 날 경성역(=서울역)에서 비를 흠뻑 맞는 바람에 꼬박 한 달을 앓아눕는다. 어느덧 따뜻한 5, 아내의 베개를 벤 채 벌렁 드러누워 이렇게도 편안하고도 즐거운 세월을 하느님께 흠씬 자랑하고 싶을 만큼 열락을 누리다가 아스피린처럼 생긴 수면제(아달린) 통을 발견한다. 지난 한달 동안 아내가 자기를 속이고 수면제를 먹여왔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그는 밖으로 뛰쳐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얼결에 또 아내와 내객의 정사 장면을 목격한다. 이번에는 아내도 가만 있지 않고 그의 멱살을 잡고 살을 물어뜯을 뿐더러, 뒤이어 들어온 내객에게 안겨가는 와중에도, 밤새워 도둑질을 하느냐, “계집질을 하느냐며 그를 닦아세운다. 그는 억울하고 어안이 벙벙하지만 그냥 집을 나와 또 경성역을 찾았다가 저도 모르게 미쓰꼬시 옥상”(신세계 백화점의 전신)에 올라가 있다. 자신이 살아온 스물여섯 해를 되짚고 자신과 아내의 숙명적으로 발이 맞지 않는 절름발이관계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하지만, 아내에게로 돌아가야 할지, 말지는 망설여진다.

 

그때 뚜- 하고 정오의 사이렌이 울었다. 사람들은 모두 네 활개를 펴고 닭처럼 푸드덕거리는 것 같고 온갖 유리와 강철과 대리석과 지폐와 잉크가 부글부글 끓고 수선을 떨고 하는 것 같은 찰나, 그야말로 현란을 극한 정오다. / 나는 불현듯 겨드랑이가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족이다. 오늘은 없는 이 날개, 내 머릿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의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너리 넘어가듯 번뜩였다. /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어디 한 번 이렇게 외쳐보고 싶었다. / 날개야 다시 돋아라. /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99-100)

 

아내가 매춘으로 남편을 먹여 살리되 그 나름의 사랑과 질투가 엄연히 존재하는 이 괴상한 공생 관계는, 화자의 말마따나, 파행적(跛行的)이라고 할 만하다. ‘의식의 흐름기법, 의 해롱해롱한 반수(半睡)의 서사가 21세기 독자의 눈에도 여전히 참신하고, 화자의 양식화된 굴욕에는 과연 위트와 패러독스바둑 포석(布石)”처럼 깔려 있다. 여기서 날개의식속에 감금된 일상성의 상징(이어령)이기도 하고, 세계와의 모든 끈을 잃어버린 화자의 만남에 대한 갈구의 표현(김현)이기도 하고, 또 다른 무엇이기도 하겠다. 분명한 것은 이 몽롱함과 모호함이 우리를 영원토록 날개로 이끌 것이라는 점이다.

 

주지하다시피 날개폐병을 앓던 이상이 배천에 요양을 갔다가 만난 술집 작부 금홍을 서울로 불러와 3년 정도 같이 살며 겪은 일을 소설화한 작품이다(소설에 금홍의 본명인 연심이 나온다). 그녀와의 만남이별을 기록한 봉별기(1936)는 한결 담백하고 경쾌한 문체와 아이러니가 돋보이는 걸작이기도 하다. 이 두 소설을 비롯하여 1830년대 후반 이상이 쓴 소설 대부분이 금홍, 그리고 그의 정식 아내가 된 변동림(화가 구본웅의 계모의 이복동생인 그녀는 훗날 서양화가 김환기의 부인(김향안)이 된다)과의 체험을 담은 일종의 사소설에 가깝다금홍과 헤어진 이상은 요양차 성천(권태의 배경)에 갔다가 귀경, 여기저기 비장한 어조로 떠벌리며 동경으로 떠난다. “사람이 비밀이 없다는 것은 재산 없는 것처럼 가난하고 허전한 일이다.”라는 아포리즘이 무려 세 번이나 반복되는 유작 실화(失花)(1939)에는 이런 낯 뜨거운 고백이 나온다.

 

한 개 요물(妖物)에게 부상(負傷)해서 죽는 것이 아니라 이십칠세를 일기(一期)로 하는 불우의 천재가 되기 위하여 죽는 것이다.”(165)

 

이윽고 동경 땅을 밟은 그가 문우 김기림에게 보낸 편지(19361114)의 첫 문장 역시 한 줄의 시 같다.

 

기어코 동경 왔소. 와보니 실망이오. 실로 동경이라는 데는 치사스러운 데로구려!”

 

이듬해 2월 그는 사상범으로 오인되어 체포, 감금되었다가 건강이 악화되어 417일 동경제대 부속병원에서 사망한다. 죽기 직전 레몬”(혹은 멜론)을 찾았다는 유명한 일화에서도 수심(水深)을 몰랐던 나비의 소위 현해탄 콤플렉스’(김윤식)가 느껴진다.

 

김해경(金海卿)은 경성고등공업학교(서울대 공대의 전신)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조선 총독부에 취직한 건축 기사로서 그림에도 남다른 재능을 보인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자 엘리트였다. 첫 소설(장편 󰡔1212󰡕)의 소재가 된 약간의 불운(경제적인 이유로 백부 집에 입양됨)을 빼면 사실상 별 다른 문제가 없었던 그가 스스로를 식민지 조선의 쓰레기, 우거지”(종생기)라고 선언한다. 이런 과잉된 자의식이 김해경을 이상(李箱)’, 상자 속의 인간으로 만든다. 전도유망하고 말쑥한 건축 기사가 실패만 거듭하는 다방주인에 봉두난발, 폐병쟁이 시인으로 전락하는 순간, ‘날개돋은 한 천재의 비상이 시작된다. 한데 그의 문학은 애당초 일본어로 쓰인 작품은 물론이거니와 한글 전용의 작품도 식민지 치하의 이중 언어라는 특수한 정황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작품이 발표된 지면의 대부분이 일제의 어용 잡지이기도 했다. 또 이상이 꿈꾸었던 자살(특히 정사(情死)와 동반자살)이야말로 일본식 탐미주의와 군국주의의 표현이다. ‘선진일본을 통해 유입된 저 도스토예프스키”, “우리들의 레우오치카”(=톨스토이), “고리키에 대한 치기어린 탐닉, 한껏 겉멋을 부린 외국어 앞에서 참, 만감이 교차한다.

 

, 세계문학사의 맥락에서 이상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인이나 흉내 내는 쓰레기-우거지에 불과하다. 그런 그가 박제(剝製)가 되어버린 천재(天才)”를 자처하며 “19세기는 될 수 있거든 봉쇄(封鎖)하여 버리오. 도스토예프스키 정신이란 자칫하면 낭비인 것 같소.”라고 외치니, 얼마나 야무진 허담인가. 정녕 이상의 문학과 그의 이 도도한 천재의식, 자존심이 한갓 센티멘탈리즘에 지나지 않는 것일지라도 우리에겐 소중한 정신적 유산이자 자질”(김윤식)이 아닐 수 없다. “천재의식이 있다고 천재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천재의식없는 천재는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온갖 현란한 기교와 모더니티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쨌거나 한복을 입은 이상”(방민호)이다.

 

대학 시절의 나를 포함하여 이상의 문학을 도둑질하고 계집질하고 싶은 충동을 느껴보지 않은 글쟁이가 있겠는가. 한 시절 나의 동년배였던 그가 너무 앳돼서 눈이 시리다! 독자인 우리는 속절없이 늙어가지만 그는 영원히 <친구의 초상>(구본웅, 1935) 속의 파이프 담배를 꼬나문 모던 보이이다.

 

____________ 2015년 <책앤> ?? 월호.

 

계절이  두 번, 세 번 바뀌었나? 아무튼 오랜만에 들어와 기념으로 글 하나를 올린다.  

 

조그만, 그러나 무척한 소중한  지면이었던 <책앤>에 한국문학에 대해 써도 된다고 하여 당장 이상부터 썼다. 그 다음, 염상섭 <삼대>를 쓸 참이었는데 '사회주의'가 나온다는 이유로 퇴짜, 우여곡절 끝에 김유정으로 썼다. 이런 '촌스러운'(!)  이유로 글쟁이의 자유를 구속하다니, 당장 때려치워야지, 했으나, 앞서 말했듯, 지면이 너무 궁한 나로서는 그런 호기를 부릴 수가 없었다. 흠, 그런데, 그만 댕강 목이 잘리고야  말았다.

 

아주 '지하인'스러운 꼴이 됐는데, 제일 아쉬운 건 그 어디에도 한국문학에 관한 글을 쓸 수 없다는 것. 혹시 언제든 지면이 주어지면, 열~심~히 쓰겠다는 다짐, 무엇보다도, 우리 소설을 (대개는 다시) 읽고 싶은 열망을 여기에 한 번 밝혀둔다. 

 

글을 쓰려고 이상 전집을 다시  읽었다. 대학 시절에는 김윤식 편 전집, 이번에는 권영민 편 전집.(<뿔>이 없어져서 너무 유감스럽다!)  이상 얘기는 언제 또다시 하게 될 터이고. (아마 좀 더 규모 있는 글을 쓸 테고.)

연구서들이며 논문들도(비교적 최근에 나온 신형철의 박사논문까지) 쭉 훑어 보았다. 항상 주눅이 들어야하는(!) 외국문학자로서 모국어로 된 글을 읽고 논하는 국문학자들이  부럽고(!) 특히, 처음 읽은 대학 시절이나 마흔을 넘긴 지금이나 여전히 독자인 나를 감동시키는  김윤식 선생의 글이 놀랍다.  그의 수업을 처음 들은 건 대학 입학한 해인 93년(다들 아는 그 교양 수업이다!), 그 다음 문화적 충격에서 벗어나 정신 좀 차리고(?) 학업과 창작에 열을 올리던 3학년 때인가 4학년때 국문과 전공 수업. (그때 수업 조교가 평론가  손정수였는데, 그 후덜덜한 포스란 ㅋ). 아무튼 돌이켜보니 그때  선생은 환갑도 되지 않은 나이였다.

 

다들 아시겠지만 마침 팔순을 기념하는 전시회가 있어, 수업 하나 종강한 날 다녀왔다.  정말, 구경 한 번 잘 했다, 여러 모로.  나야 감히 선생의 제자를 자처할 형편도 아니지만, 만 40의 나이조차 넘어가는데 너무 변변찮은 몰골인 것 같아  만감이 교차했다.  참, 누구 말마따나 나이를 먹는 것이 일도 아니다! 그나마 아이 하나 낳은 것이 성취이지만, 이건 학자로서, 소설가로서의 성취는 아니잖나.-_-;; 아무튼 기념으로 제일 무난한 사진 한 장을 올린다. 가장 인상적인 건, 이번에 처음 본, 학사모를 쓴 선생의 사진이었다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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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업(?!)으로 가기 전에 잠시 수다를 떤다. 나도 아이 엄마이기에 결코 지나칠 수 없는 것.

 

지금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문제의 동시집. 문제의 동시인 <학원 가기 싫은 날>을 읽고 물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다 읽지는 않았으나, 여기 실린 동시를 대충 훝어보곤 또 다른 의미로 놀랐다. 시가 상당히 훌륭하다는 것! (표제작인 <솔로 강아지>를 포함하여.) 초등학교 3학년(?)이 썼다니, 더더욱 놀랍다. 저 무렵 내가 일기장에 "아빠가 또 술을 먹었다. 엄마가 울었다. 정말 살기 싫다" 이런 유의 문장들 밖에 쓰지 못했음을 상기한다면, 이것은 무엇의 힘이냐. 과연 화자(시인)가 그토록 가기 싫어한 '학원'(=사교육+좋은 학군)의 힘이냐, 그 많은 교육비와 생활비와 주거비를 감당할 수 있는 돈의 힘이냐, 이 모든 것의 저변에 깔린 유전자(=계급)의 힘이냐. 이 얼마나 아이러니인지! 가령 (이번 연휴 때도 다녀온) 거창군 ** 초등학교 학생이 이런 시를 썼을 리도, 또 출판이 가능했을 리도 없을 테니 말이다. 

 

 

 

 

 

 

 

 

 

 

 

 

<학원 가기 싫은 날>은 삽화까지 들어가서 그 잔혹함이 더 두드러진다.(너무 무서워서 간담이 서늘해졌다!) 이 때 잔혹함의 근거는 리얼함이다.  뭔가가 싫을 때 가장 확실하고 단순한 해결방법은 그 대상을 없애는(=죽이는) 것이다. 근데 왜 학원을 안 없애고(죽이고) 엄마를?? 또 다른 시를 보니,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으로 꼽힌다.

 

-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

친구들과 내기를 했어 /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 말하기 // 티라노사우르스 / 지네 / 귀신, 천둥, 주사 // 내가 뭐라고 말했냐면 / 엄마 / 그러자 모두들 다같이 / 우리 엄마 우리 엄마 // 엄마라는 말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결국 책을 다 절판시키기로 한 모양인데, 이건 당최 뭐냐. 똘똘하고 잔망스러운 아이 앞에서 어른이 느끼는 복잡다단한 정서(수치심이 제일 크겠다)를 이렇게 두루뭉수리, 덮어버리는 건 좀 비겁해 보인다. 살부(살모: 존속살해)의 연원은 상당히 깊은데, 계속 파다 보면 '부/모'에 도달한다.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똑똑하다. 정말 "시근이 멀쩡하다." 즉 철이 다 들어 있다. 그들을 언제까지 '순수', '천진난만'의 화신, 정신의 최고 단계 등 어쩌고 하며 신화화할 것인가. 아무리 발달이 늦는 아이도 한 돌, 두 돌 지나면 비단 배 고프고 잠 오고 이런 생리 현상 뿐만 아니라, 특정 대상에 대한 특정 취향을 피력한다. 듣기 싫은 노래가 있고 가기 싫은 장소가 있고 입기 싫은 옷이 있고 등등. 말(=인지)이 늘어나면 더더욱 감당이 안 된다. 아이가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도, 아니 그러니까 더더욱 상대하기가 힘들다.(어제도 허벅지를, 그것도 맨살을 손바닥으로 두 대나 때렸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생각도 안 난다-_-;;)

 

 

 

 

 

 

 

 

 

 

 

 

 

 

나이 들고 고전 동화를 다시 읽으면서 새삼스러운 것이 "잔혹함"이다. 이상하다. 오히려 어렸을 때는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듯한데, 오히려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듯한데. 아무튼 이 "잔혹함"의 정서는 어디서 오는 것인가. 결국 리얼함, 이라는 결론이다. <라푼젤>도 각색을 해서 그렇지, 라푼젤이 성 안에서 왕자(?)와 아이도 만든다. (이 리얼한 현실이 잔혹의 근거이다.) 연초에 새로 읽은 안데르센 동화의 리얼함은 더 이상 말할 것도 없다. (<빨간 구두>의 다리 절단 장면은 하드고어의 극단이다.)

 

*

 

젖을 뗀 뒤로 아이 키우는 것이 수월해졌다.(그걸 증명하듯 체중이 조금씩 는다ㅠ.ㅠ) 아이의 운동발달이 너무 늦어 업어주고 안아주는 일을 하는 시간도 남들보다야 길었지만 이것도 얼추 끝난 듯하다. 여전히 비틀대며 걷고 밥도 혼자 잘 안/못 먹지만(가위질도 못하고 종이도 못 접고 풀칠도 못하고ㅠ.ㅠ) 그래도 살 만하다.

 

하지만 이제 슬슬 다른 난관이 나를 향해 달려온다. 한글이야 초등학교 들어가면 배우는 것인 줄 알았건만(나는 유치원도 다니지 않았다-못했다), 네다섯살 짜리도 한글과 영어를 배운다. 어차피 때 되면 할 것을, 뭐하러 1, 2년씩 앞당겨 하냔 말이다 ㅠ.ㅠ 이렇게 투덜대면서도 주위의 압박에 불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애를 그렇게 방치(?)하다가 나중에 후회한다, 라는 식의 때론 애정어린, 때론 진짜 살벌한 협박들! 과연 어떤 것이 정녕 아이를 위한 길이냐...

 

"우리 **이 이제 똘똘해질 거지?" - "더 띵돌해질 거야. 계속 계속 띵돌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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