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업(?!)으로 가기 전에 잠시 수다를 떤다. 나도 아이 엄마이기에 결코 지나칠 수 없는 것.

 

지금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문제의 동시집. 문제의 동시인 <학원 가기 싫은 날>을 읽고 물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다 읽지는 않았으나, 여기 실린 동시를 대충 훝어보곤 또 다른 의미로 놀랐다. 시가 상당히 훌륭하다는 것! (표제작인 <솔로 강아지>를 포함하여.) 초등학교 3학년(?)이 썼다니, 더더욱 놀랍다. 저 무렵 내가 일기장에 "아빠가 또 술을 먹었다. 엄마가 울었다. 정말 살기 싫다" 이런 유의 문장들 밖에 쓰지 못했음을 상기한다면, 이것은 무엇의 힘이냐. 과연 화자(시인)가 그토록 가기 싫어한 '학원'(=사교육+좋은 학군)의 힘이냐, 그 많은 교육비와 생활비와 주거비를 감당할 수 있는 돈의 힘이냐, 이 모든 것의 저변에 깔린 유전자(=계급)의 힘이냐. 이 얼마나 아이러니인지! 가령 (이번 연휴 때도 다녀온) 거창군 ** 초등학교 학생이 이런 시를 썼을 리도, 또 출판이 가능했을 리도 없을 테니 말이다. 

 

 

 

 

 

 

 

 

 

 

 

 

<학원 가기 싫은 날>은 삽화까지 들어가서 그 잔혹함이 더 두드러진다.(너무 무서워서 간담이 서늘해졌다!) 이 때 잔혹함의 근거는 리얼함이다.  뭔가가 싫을 때 가장 확실하고 단순한 해결방법은 그 대상을 없애는(=죽이는) 것이다. 근데 왜 학원을 안 없애고(죽이고) 엄마를?? 또 다른 시를 보니,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으로 꼽힌다.

 

-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

친구들과 내기를 했어 /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 말하기 // 티라노사우르스 / 지네 / 귀신, 천둥, 주사 // 내가 뭐라고 말했냐면 / 엄마 / 그러자 모두들 다같이 / 우리 엄마 우리 엄마 // 엄마라는 말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결국 책을 다 절판시키기로 한 모양인데, 이건 당최 뭐냐. 똘똘하고 잔망스러운 아이 앞에서 어른이 느끼는 복잡다단한 정서(수치심이 제일 크겠다)를 이렇게 두루뭉수리, 덮어버리는 건 좀 비겁해 보인다. 살부(살모: 존속살해)의 연원은 상당히 깊은데, 계속 파다 보면 '부/모'에 도달한다.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똑똑하다. 정말 "시근이 멀쩡하다." 즉 철이 다 들어 있다. 그들을 언제까지 '순수', '천진난만'의 화신, 정신의 최고 단계 등 어쩌고 하며 신화화할 것인가. 아무리 발달이 늦는 아이도 한 돌, 두 돌 지나면 비단 배 고프고 잠 오고 이런 생리 현상 뿐만 아니라, 특정 대상에 대한 특정 취향을 피력한다. 듣기 싫은 노래가 있고 가기 싫은 장소가 있고 입기 싫은 옷이 있고 등등. 말(=인지)이 늘어나면 더더욱 감당이 안 된다. 아이가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도, 아니 그러니까 더더욱 상대하기가 힘들다.(어제도 허벅지를, 그것도 맨살을 손바닥으로 두 대나 때렸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생각도 안 난다-_-;;)

 

 

 

 

 

 

 

 

 

 

 

 

 

 

나이 들고 고전 동화를 다시 읽으면서 새삼스러운 것이 "잔혹함"이다. 이상하다. 오히려 어렸을 때는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듯한데, 오히려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듯한데. 아무튼 이 "잔혹함"의 정서는 어디서 오는 것인가. 결국 리얼함, 이라는 결론이다. <라푼젤>도 각색을 해서 그렇지, 라푼젤이 성 안에서 왕자(?)와 아이도 만든다. (이 리얼한 현실이 잔혹의 근거이다.) 연초에 새로 읽은 안데르센 동화의 리얼함은 더 이상 말할 것도 없다. (<빨간 구두>의 다리 절단 장면은 하드고어의 극단이다.)

 

*

 

젖을 뗀 뒤로 아이 키우는 것이 수월해졌다.(그걸 증명하듯 체중이 조금씩 는다ㅠ.ㅠ) 아이의 운동발달이 너무 늦어 업어주고 안아주는 일을 하는 시간도 남들보다야 길었지만 이것도 얼추 끝난 듯하다. 여전히 비틀대며 걷고 밥도 혼자 잘 안/못 먹지만(가위질도 못하고 종이도 못 접고 풀칠도 못하고ㅠ.ㅠ) 그래도 살 만하다.

 

하지만 이제 슬슬 다른 난관이 나를 향해 달려온다. 한글이야 초등학교 들어가면 배우는 것인 줄 알았건만(나는 유치원도 다니지 않았다-못했다), 네다섯살 짜리도 한글과 영어를 배운다. 어차피 때 되면 할 것을, 뭐하러 1, 2년씩 앞당겨 하냔 말이다 ㅠ.ㅠ 이렇게 투덜대면서도 주위의 압박에 불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애를 그렇게 방치(?)하다가 나중에 후회한다, 라는 식의 때론 애정어린, 때론 진짜 살벌한 협박들! 과연 어떤 것이 정녕 아이를 위한 길이냐...

 

"우리 **이 이제 똘똘해질 거지?" - "더 띵돌해질 거야. 계속 계속 띵돌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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