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부터 읽어온 <카라마조프>에서 이 부분에, 난생 처음으로 주목해본다. 이반과 스메르쟈코프의 만남, 3부, ??쪽인데, 스메르쟈코프의 계산에 의하면 표도르의 유산은 총 12만 루블, 그래서 아들들한테 각각 4만 루블씩 돌아가게 돼 있다. 여기서 표도르는 누구? 그는 사업(주로 술, 여자 등)을 해서 돈을 번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가 원래 9등 문관이었다는 사실은 이번에야 알았다.(이 사실이 놀랍다, 이 책, 정말 얼마나 빡빡한 것인지.) 

 

 

 

 

 

 

 

 

 

 

 

 

 

 

 

 

통상 9등관이라면 고골 소설에 자주 등장한, 그 불쌍하고 힘없는 하급관리다. 물론, 이제는 19세기 후반, 사정이 조금은 다르다. 그래본들, 체호프 초기작 <어느 관리의 죽음>의 '관리(체르뱌코프)'의 등급이니 역시 낮긴 낮다. 그러니 표도르가 저 재산을 모으기 위해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을지, 새삼스럽다. (대략, 연봉 3천 정도의 공무원이나 회사원이 50-60줄에 몇 십억대 자산가 되는 정도?) 여기서 '피나는'은 '더러운'(치사한, 야비한)이라고 바꿔도 될 법하다. 밑천이라곤 자기 손과 머리밖에 없는 자가 19세기 대러시아제국에서 무슨 수로 거금을 손에 넣는단 말이냐. 물론 존엄을 지키는 쪽도 있으나, 아, 그 존엄이야말로 돈으로 유지되는 것이니, 어쩌랴. 물론 이 소설에서 표도르는 죽임을 당해야 하는 아비로 설정되어, 온갖 악덕과 어둠과 추의 육화가 될 수밖에 없다. 다른 의미론, 돈에 대한 도-키의 양가적(^^;;)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만 그러나. 우리가 다 그렇다. 다들 돈을 (많이) 갖고 싶어하면서도 그것에 대한 얘기, 그런 욕망의 노골적 표출 등은 경멸한다. 

 

 

 

 

 

 

 

 

 

 

 

 

 

 

 

The endless over the Kumanina estate continued to drag on, and a letter from his younger brother Nikolay indicates how far matters were from being settled. D-ky's sister Alexandra had filed a suit against her brothers over the projected agreement, and Nikolay wished to sell some of his share of the estate to pay off a debt to Alexandra. the D-kys agreed in principle, but only if their share(....) were guaranteed by all the other heirs with a written contract; but nothing had been definitively concluded at the time of D-ky's death.

 

다시, 도-키. 프랭크의 연구서, 말년 도키가 형제자매들과 겪은 (크지는 않은, 왜냐면 유산 자체가 많지 않아) 유산 관련 소송-다툼을 언급한다. 얼마 되지도 않는 유산을 둘러싼 논쟁은 작가가 죽기 전까지도 해결되지 않는다. 과연, 아무리 도-키라도 저 유산을 호기롭게 "난 됐어~~"라고 포기하진 못한 것이다!!!  보다시피 말이 길어진다. 이 점에서는 철강 재벌의 후예인 비트겐슈타인이 대단한 건가? 글쎄, 조금만 받아도 어지간한 평민이 충분히 먹고 살만한 돈이었으니 그랬을 테지.

 

 

근면성실은 체력에서 나오고 여유(심지어 인격?)는 통장-돈에서 나온다, 라니. 

주말에 소설 초고가 빠졌고, 그 꼴값 하느라 월요일 기능수업 및 시험 빼먹고 자더니 화요일에도 애 보내고 또 잤다. 아프단 말이다! 헐, 그런데 학교 가니 오히려 멀쩡해졌다. 흠, 꾀병이었나?^^;  아니, 동물이든 식물이든 광합성이 중요하다. 그리고 어제, 오늘, 간만에 좀 썼다. 좋다. 좋은 힘듦이다. 그래서 또 사진 한 장. 가을, 하늘, 구름, 나무, 은행, 파랑, 노랑, 하양, 사람 둘, 다 있다. (초상권, 괜찮나 모르겠다.) 여기서 '노랑'은 극히 평범하게 생긴 두 백인 여학생의 머리카락과도 호응한다. 영국에서 온 사람들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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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던가, 콜럼버스 부분.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참 잘 모르는 역사의 한 장면인 것 같다. 그를 너무 신비화하지도 않았고, 그러면서도 동시에 그의 업적(?)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잘 짚어준 듯하다. 쭉 흘러, 흘러, 그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다음(물론 아시다시피 그는 극 신대륙인지 몰랐지만) 그가 남긴 기록이 무척 인상적이다. 

 

"그들은 훌륭하고 똑똑한 하인이 될 것이다. 우리가 해준 모든 말을 아주 빠르게 따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종교가 없어 보이므로 아주 쉽게 기독교가 될 것으로 믿는다. 우리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귀환할 때 그들 중 여섯 명을 잡아다가 국왕 전화께 데리고 가서 말하는 법을 배우도록 할 것이다."(196)

 

우선은 기록을 남겼다는 것. 콜럼버스는 나의 (무식한, 무지한) 편견과는 달리, 제법 학식이 있는 자, 공부를 참 많이 한 자였다. 하긴 지리 등등을 공부하지 않고 그 험난한 뱃길을 떠났을 리 없다. 그 다음, 제법 정치적이었다는 것. 왜냐면 황제를 알현 등등 하여 후원금을 받는 일이 녹록치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식으론 연구비 따내는 건데, 나는 2년 연속 줄줄이 낙방 ㅠ.ㅠ) 그 다음, 저자가 잘 정리하고 있지만, 이 탐험의 여정에는 돈이나 출세 같은 실리적 목적 외에(어쩌면 그보다는?) 거의 세계사적인, 또 심지어 종교적인 사명이 들어가 있다는 것. 저 말에서도 드러난다. 우리 말 가르쳐주고, 또 우리 종교 심어주고 나아가 우리 주님 기쁘게 해주고 등등. 이 마지막, 세 번째 항의 함정이란!

 

저자가 예의 그 평이하면서도 허를 찌르는 문체로 잘 정리해주신다.  

 

"자기네들과 똑같은 말을 하지 않으면 그들에게는 언어가 없는 것이고 기독교를 믿지 않으면 종교가 없는 것과 같다. 말을 빨리 따라하는 것으로 보아 우리 말을 금방 배울 것이니 곧 좋은 하인이 될 것이다."(198) 

 

아! 정말 할 말 없다... 내 말이 아니면 저건 말이 아니요, 내 종교가 아니면 저건 종교가 아니다... 이게 이후 제국주의(침략, 전쟁, 폭력 등)의 근거가 되는 생각인데, 그 출발점에 전혀(!) 악의가 없다는 것이 너무 무섭다... ㅠ.ㅠ 말 없는 저들에게 말을 주고 종교 없는 저들에게 종교를 주고. 우리가 이 좋은 걸 주겠다는데 왜 반항해, 병신들, 바보들, 죽어~! 흠, 이제야 정신을 좀 차리는군~. 그렇게서 16-17세기에는 스페인어, 그 다음에는 영어(프랑스어)가 그렇게 퍼져나간 것이다. 어떤 점에서는 기독교야말로 (십자군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 무서운 폭력과 함께 퍼져간 종교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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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울쩍할 때 이 책을 조금씩 본다.

 

 

 

 

 

 

 

 

 

 

 

 

 

 

주경철 교수의 주저는 <대행해시대>라고 하는데, 사놓고 들춰봤지만 완독은 못했다. 아무래도 책의 생김새와 양감과 출판사가 '공부'를 요구하는 책처럼 보인다. 그에 반해 이번에 나온 저 두 권은 어딘가 가벼운 느낌이 들어 아예 식탁에 올려놓고 읽는다. 너무 재미있다! 진짜 강추. 이번 책은 네이버-??에 연재한 글을 모은 것이라는데, 격주 연재, 월간 연재를 해본 경험상(그것도 힘들었다!) 저자의 부지런함과 순발력에 감탄한다. 

 

 

 

 

 

 

 

 

 

 

 

 

 

 

주경철의 책을 간헐적으로 읽어왔다. 이런 것들. 어지간히 다들 재미있게, 무엇보다도 고맙게(!!) 읽어왔고 지금도 그렇다. <문화로...>는 책가방에 넣고 이동 중에 수시로 꺼내읽었던 기억도 있다.(아마 출산 전이었나 보다.) 그런데, 그의 책이 왜 고맙냐, 하면, 역사학자 중 거의 아무도 이렇게, 이런 책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이유야 많지만, 제일 짜증나는, 가당찮은 것이 '나 같이 위대한 역사학자가 어찌 저리 가벼운 책을~~' 이런 이유다. 이런 분들이 그렇다고 해서, 깊이 있는 논문이나 연구서를 쓰느냐? 대부분 그렇지 않은 것이 학계 전반의 현실이다. 소위 학술적인 연구논문이나 연구서의 적잖은 양이 대부분이 외국어 논문과 연구서의 번역, 요약, 짜집기, 그나마도 제대로 자기화되지 않아 독해에 어려움을 주는 경우가 많다. 즉, 잘 써서 어려운 것이 아니라 못 써서 어려운 것이다! (소설만의 문제가 아니었고나..ㅠ.ㅠ )

 

이런 현상은 분야를 가리지 않을 것 같다. 러시아문학은 연구서를 내봐야 잘 안 팔릴/읽힐 것이 뻔한다. (올 초에 연구서 원고를 넘겼으나 <지바고>도 발효 중이니 아마 근일내에 출간되지 못할 터이다. 또 모르겠다, 노벨문학상 덕분에 내 원고들도 '창고대방출'될지^^;;) 이건 독자의 수준을 탓할 게 아니라 전공을 탓해야 한다.  역사서를 읽는 독자가 러시아문학연구서를 읽는 독자 보다 많은 것은 당연하고, 또 마땅히 그래야 하지 않나. 그럼에도 잘 읽히는, 훌륭한 책을 쓰는 양반들이 있어 귀감이 될 만하다. (물론 '로쟈' 조차도 러시아문학 관련서가 제일 안 팔리는 것으로 안다 -_-;;)

 

 

 

 

 

 

 

 

 

 

 

 

 

 

 

 

 

 

 

 

 

 

 

 

 

 

아무튼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를 읽다가(아직 1권도 완독 못 했으나) 든 생각. 대체로 인간의 역사는 땅 따먹기(영토 확장, 권력 쟁취), 짝짓기와 번식(정략결혼, 아들낳기)의 역사, 라는 것. 역사야말로 사람 사는(살아온) 이야기일진대, 인간사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를 토대로 엮어지는 건 당연하리라. 그런데 왜 이렇게 어렵지, 혹은 어려웠지?^^;;  돌이켜보면 연대 외우는 것이 제일 힘들었던 듯하다..ㅋ 하지만 그뿐이랴, 학습, 공부라는 것은 언제나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사실, 역으로, 적절한 스트레스가 동반되지 않으면 학습, 공부, 나아가 평가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고등학교 때 우리 학교는 세계사가 아니라 세계지리를 선택 과목으로 골랐고, 때문에 세계사는 영원히 나의 아킬레스건이 되었다. 너무 유감이다. 그때 더 열심히 했어야 했는데! 수능이 D-??일, 수험생들아, 더 열심히 공부하라!^^;;

 

*

 

 

통상 우리가 아는 헨리 8세. 키가 거의 2미터에 육박하고 체중이 188(?)kg인가, 정말이지 -_-;; 왕년의 그가 18세의 젊은 왕이었다는 사실이 정녕 중요하다. 결혼 여섯 번하기 쉽나. (정부를 그렇게 둘 수는 있어도 -_-;;) 이 정도 비주얼은 되어야 정치도 하고 짝짓기도 하는 것이지...

 

 

 겸사겸사, 영국 왕실에서는  부부도 공식 석상에서 손을 잡을 수 없다고 한다.(그래서 윌리엄 왕세자와 케이트 미들턴은 항상 뻘쭘하게(?) 나란히 서 있다.) 로열 패밀리의 존재 자체가 문화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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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워낙 세계사에 과문하여(그러게 중고교 시절에서 더 공부해야(!) 했다니까!) 소위 '합스부르크의 턱(주걱턱)'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거듭된 근친혼의 결과인데, 그의 손자는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장애아다.(곱사등이에 지적 장애에...) 결국 씨가 마를 수밖에. 나중에 엮어 보니, 마리 앙투아네트의 엄마인 마리아 테레지아 역시 합스부르크 가의 후손이다. 마리 앙-트 역시 주걱턱이었다니, 그녀의 초상화는 포샵이었던 것이다 -_-;;  

 

*

 

또 하나. 중국은 제국(단일한 한 나라)으로  발전했는데 왜 유럽은 저렇게 크고 작은 다양한 여러 나라로 발전했을까. 저자가 던진 물음이 격하게 공감되었다. 그 물음 속에 또한 유럽의 본질이 들어있는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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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노벨문학상을 누가 받을지 무척 궁금했다. 그래서 8시에 얼른 스마트폰을 봤는데, 에공, 모르는 작가였다. 헐, 이럴 수가! 일본계 영국인이라니. 출생지가 일본이고 부모가 일본인인 것이지, 영국에서 자라고 교육받고 영어로 썼으니 실은 영국 작가라고 해야겠다. 자존심도 상하고 궁금하기도 하여 찾아보니, 헐, 이 영화의 원작자였던 것.

 

소위 신림동 비디오방 시절에 마구잡이로 봤던 무수한 영화 중, 어떻게 보면 참 기억에 남기 힘든 영화인데도 기억에 남는 그런 영화다. 왜 기억에 남기 힘들 법하냐, 하면, 아시겠지만, 사실 그렇게 극적인 영화가 아니다. 오랜만에 다시 찾아보니 젊은 휴 그랜트도 나왔고, 전쟁이며 뭐며 복잡한 얘기들이 많이 들어있던데,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건 저 장면이 암시하듯, 두 인물의 미묘한 감정 교류, 무심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서로 어긋나는(접촉과 오류!) 운명의 동선, 이런 것들이었다. 대략 여기서부터 엠마 톰슨을 무척 좋아하게 된 듯하다. (역시 여배우치고는!) 미모라고 할 수는 없으나 그녀만이 뿜어낼 수 없는, 지적이고 심오한 아우라가 있다. (음, 앤소니 홉킨스는 여기서도 너무 안 잘 생김 -_-;;) 대략 이런 느낌의 영화(소설)로 <전망 좋은 방>(젊은 날의 다니엘 루이스와 헬레나 본 햄 카터가 나왔던), 제인 오스틴 원작의 <오만과 편견>, <센스 앤 센서빌러티> 등이 떠오른다. 맨 마지막에서 큰 언니(이름 까먹음) 역을 또한 엠마 톰슨이 맡았던 듯하다. 그녀의 연인 역은 휴 그랜트였나. 

 

발표의 순간부터 노벨상의 위력을 새삼, 실감한다. 이게 만들어진 게 언제냐, 아무튼 문학 쪽만 놓고 보면 삼분의 일(어쩌면 절반??) 이상은 다 잊힌 작가이지만(반면, 토마스 만은 받았으나 카프카는 못 받은 상이자만) 그럼에도 이 상은 여전히 엄청난 권위를 갖고 있다. 그 이유는 정말 단순한데, 아무튼 잘 쓰는 작가, 읽히는 작가에게 상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물론 이 때 '작가'에는 베르그송, 러셀 같은 철학자-사상가, 심지어 밥 딜런 같은 가수 등 '쓰는 자'가 대거 다 들어간다. 나 역시 이 권위에 기대어, '동굴의 우상'(맞나?ㅋㅋ)에 빠져, 지금껏 영국 소설-영화인 줄 알았던 <남아 있는 나날>을 포함하여 두어 권 주문하려 한다.

 

 

 

 

 

 

 

 

 

 

 

 

 

 

곁다리로, 한 시절 일본은 '아시아의 영국'으로 불렸다, 고 한다. 나쓰메 소세키가 돈(국비 장학금) 받고 간(보내진) 곳도 영국이다. 섬 나라 잉글랜드의 엄청난 정복욕과 호전성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남한테 나쁜 짓 안 하고 돈 벌기 쉽나, 더욱이 '제국'이 착하게 살아서 만들어지나, 어디) 그 (역?)효과 중 하나가 영어임은 분명하다. 노벨상 유력 후보였던 응구기(와 티옹오?) 역시 말이 케냐 작가이지, 성장과 교육의 과정을 생각하면 절반 이상이 영국 작가다. 프랑스 정계에 진출해 있는 한국인(입양아)들 보면서도 느끼지만, 핏줄 만큼이나(-보다 더) 무서운 것이 교육인 듯하다. 가즈이 이시구로는 (찾아보니-_-;;) 서른 살(?) 될 때까지 일본에 가지 않았다니, 정녕 영국 작가인 듯하다. 이것도 좋다!  나의 감각으론, 러시아에 사는 젊은 고려인들이 떠오르는데, 외양만 한국인이지 스스로를 한국인으로 느끼는 사람은 별로 없다. 오히려 우리 쪽에서 질곡의 역사를 생각하여 그것을 강요하는 것에 가깝고, 그들 쪽에서 이것은 차라리 니체식 '원한'(르상티망: '과거에 그랬음') 에  가까운 지도.  

 

*

 

연휴가 너무 길어 온 가족이 미치는 중이다-_-;; 

사교육, 다들 반대한다. 아이들 학원 보내지 말고 그냥 놀리라고. 암기식, 주입식 공부하지 말고 폭넓게 독서하고 창의력 키우라고. 아니, 취지야 좋지, 아이고 어른이고 하루 종일 집에서 뒹굴뒹굴 컴퓨터-스마트폰 오락(나이와 취향에 맞게 어쩜 이리 다양한지!)에 심취, 밤에 늦게 자고 아침에 늦게 일어나 뒹굴뒹굴, 밥 먹는(해주는) 것도 귀찮아 또 뒹굴뒹굴. 

<뽀로로 놀이교실> 보는 아이를 다그치고 뭔가 생산적이고 진취적인 놀이(뭐 레고든 징고든 젠가든 아니면 독서든)로 이끌려면 엄마/아빠도 같이 부지런해야 하는데, 아, 아무래도 인간도 원래 천성은 '나무늘보'(Sloth!)였나 보다. 이 게으른, 그 게으름 덕분에 적자생존의 현장에서 살아남은(-고 있는) 동물에 대해서는 언제 또 쓰자. 넘 귀엽다! 너무 천천히 움직여서 오히려 천적들에게 안 잡힌다니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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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라 우울하고 그 연휴가 너무 길어 더 우울하고 알고 보니 주변에 우울한 사람이 너무 많아 또 우울하다. 우울(증)의 연대, 를 구축해도 될 만큼 그렇다. 아, 이렇게 쓰고 보니 너무 웃긴다! 모두 다 정신과에서 만나야 할 판이라니. 썰렁한가, (교통사고로 몽땅 죽은 다음 저승에 만나서 얘기하는) "봉고 덕분에 다 모였네!"라는 고등학교(?) 시절 유행어가 떠오른다. 친구들과 봉고 한 대를 빌려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에 가던 시절 얘기다.

 

명절이면 거의 모든 며느리들이 겪는 저 유명한 '공포의 전 부치기'('부치기'라고 쓰고 보니 '붙이기'가 아닌 게 새삼스럽다)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켰다. 가만 보면 이건 그냥 내가 안 하면 되는 건데 어릴 적부터 몸 속에 새겨진 관습은 이토록 무서운 것이다. '공포의 전 부치기' 못지 않게 공포스러운 것이 봉지에 담아주(시)는 전 덩어리, 전 뭉치다. 아, 지난 설(추석) 때 것도 냉동실에 있는데, 라고 무슨 라디오 방송에 나오더만. 그 역시 그냥 안 가져 오면 되는 것을, 그 관습-습관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데도 몇 년이 걸린 것이다.  

 

돌이켜보니 나는 말을 배우기 전부터 제사와 차례를 지내는 풍경을 봐 왔다. 전 부치고 조기 굽고 탕국 끓이고 잡채 만들고 등등 이런 냄새와 소리가 없으면 명절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또 어찌나 많이 모였는지. 제사상(차례상) 차려놓고 지방(!) 펼쳐놓고 향 피우고 어른-남자들이 쭉 서서 절 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그 다음에는 어린이-남자들이 들어가서 절했다. 어느 시점부터 "이제 너네들도(여자애들) 들어가서 절해라~~"라는 선언이 있었다. (경상도 치고는 그나마 깨인(?), 혹은 근본 없는(?) 집안이었나??) 하지만, 이제 정말 그만 해도 될 법하다, 어렵지 않다, 그만 하는 거, 그냥 안 하면 된다.

 

연휴 시작 되기 직전에 청탁이 들어와 소설 쓰고 있다. 워낙에 청탁도 잘 안 들어오지만, 대개는 써놓은 소설을 다듬어 보내는 쪽이었는데, 어째 이번에는 쓰고 있다. 아니, 쓰이고 있다. 이 정황 자체가 신통방통해서, 너무 고마워서 "내가 제일 예뻤을 때"를 검색해본다. 그래도 소설책 나오면 기사도  나가던 시절이다. 국민일보 인터뷰는 사당역 근처에서 했는데, 엄청 추웠던 기억이 있다! 인터뷰 가기 전에 머플러를 몇 번이나 다시 묶어봤던 기억도 난다, 사진 예쁘게 나오게 하려고.

 

(경향신문 2009년 ??)

 

(국민일보 2009년 ??)

 

(조선일보, 아마 2000년??)

 

정말 "내가 제일 예뻤을 때"라는 책이 생각나는 사진이다. (소설은 좀 지루하게 읽은 것 같은데, 요즘은 어떤 소설을 쓰시는지.) 누구에게나 '화양연화'가 있는데, 그것은 항상 좀 먼 과거가 될 수밖에 없다.

 

 

 

 

 

 

 

 

 

 

 

 

 

 비교적 최근, 이미 사십대. 흠, 하지만 사십대도 다 같지 않다. 아이 시절도 그렇지만 늙어갈 수록 정녕 '한 살'의 중요성을 실감한다. 한 생명체가 40년 넘도록 살았다는 것은 정말 너무 하잖아.(지하생활자가 생각난다^^;;) 그 동안 심장이 단 일초도 쉬지 않고 계속 뛰어왔음을, 또 뛰고 있음을 생각하면 이건 진짜 징그럽다.  

 

 

 쓰고 싶은 내용을, 쓰는 손(!)이, 몸이 따라가지 못해 원망스러운, 그런 나이다. 논문 초고도 잡고 있는 중이지만, 쓰는 것이 참 힘들다. 아, 내가 언제부터 백지를 두려워했던가. 스승(들)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정녕 백지를 두려워할 때가 올 줄 몰랐건만.  

---

 

(바닷가에서 놀다와서, 노트북 켜놓고 한글 파일 열어놓고 있는 걸 보더니 엄청 웃으면서 묻는다.)

"엄마, ** 아파트에서도['집에서도' 이런 표현을 써주면 더 좋겠다만] 일하는데 왜 또 여기서도 일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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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오늘도 연휴야?"

"엄마, 오늘도 놀아? 왜 또 놀아?" 

"엄마, 오늘은 평범한(그냥) 목요일 아니야? 조**, 배** 선생님 안 만나?"

 

--

 

더러 특이한(?) 표현을 쓰긴 하지만 종알종알 말을 참 잘 하는 아이를 보면서, 음, 이제라도 등급 심사를 취소해달라고 할까, 고민이 든다. 사실 공단은 아쉬울 게 없으니, 등급이 나온 뒤라도 취소는 정말 쉽더라. 내가 그 혜택 안 받겠다는 것이니. 음, 그리고... 검사는 검사일 뿐, 숫자는 숫자일 뿐. 아니, 저렇게 멀쩡한데 진짜 검사가 이상했던 거 아니야? -_-;; 아니야, 그래도 해야 해. 장애아 엄마가 될 준비를 하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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