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역시 노벨문학상을 누가 받을지 무척 궁금했다. 그래서 8시에 얼른 스마트폰을 봤는데, 에공, 모르는 작가였다. 헐, 이럴 수가! 일본계 영국인이라니. 출생지가 일본이고 부모가 일본인인 것이지, 영국에서 자라고 교육받고 영어로 썼으니 실은 영국 작가라고 해야겠다. 자존심도 상하고 궁금하기도 하여 찾아보니, 헐, 이 영화의 원작자였던 것.

 

소위 신림동 비디오방 시절에 마구잡이로 봤던 무수한 영화 중, 어떻게 보면 참 기억에 남기 힘든 영화인데도 기억에 남는 그런 영화다. 왜 기억에 남기 힘들 법하냐, 하면, 아시겠지만, 사실 그렇게 극적인 영화가 아니다. 오랜만에 다시 찾아보니 젊은 휴 그랜트도 나왔고, 전쟁이며 뭐며 복잡한 얘기들이 많이 들어있던데,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건 저 장면이 암시하듯, 두 인물의 미묘한 감정 교류, 무심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서로 어긋나는(접촉과 오류!) 운명의 동선, 이런 것들이었다. 대략 여기서부터 엠마 톰슨을 무척 좋아하게 된 듯하다. (역시 여배우치고는!) 미모라고 할 수는 없으나 그녀만이 뿜어낼 수 없는, 지적이고 심오한 아우라가 있다. (음, 앤소니 홉킨스는 여기서도 너무 안 잘 생김 -_-;;) 대략 이런 느낌의 영화(소설)로 <전망 좋은 방>(젊은 날의 다니엘 루이스와 헬레나 본 햄 카터가 나왔던), 제인 오스틴 원작의 <오만과 편견>, <센스 앤 센서빌러티> 등이 떠오른다. 맨 마지막에서 큰 언니(이름 까먹음) 역을 또한 엠마 톰슨이 맡았던 듯하다. 그녀의 연인 역은 휴 그랜트였나. 

 

발표의 순간부터 노벨상의 위력을 새삼, 실감한다. 이게 만들어진 게 언제냐, 아무튼 문학 쪽만 놓고 보면 삼분의 일(어쩌면 절반??) 이상은 다 잊힌 작가이지만(반면, 토마스 만은 받았으나 카프카는 못 받은 상이자만) 그럼에도 이 상은 여전히 엄청난 권위를 갖고 있다. 그 이유는 정말 단순한데, 아무튼 잘 쓰는 작가, 읽히는 작가에게 상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물론 이 때 '작가'에는 베르그송, 러셀 같은 철학자-사상가, 심지어 밥 딜런 같은 가수 등 '쓰는 자'가 대거 다 들어간다. 나 역시 이 권위에 기대어, '동굴의 우상'(맞나?ㅋㅋ)에 빠져, 지금껏 영국 소설-영화인 줄 알았던 <남아 있는 나날>을 포함하여 두어 권 주문하려 한다.

 

 

 

 

 

 

 

 

 

 

 

 

 

 

곁다리로, 한 시절 일본은 '아시아의 영국'으로 불렸다, 고 한다. 나쓰메 소세키가 돈(국비 장학금) 받고 간(보내진) 곳도 영국이다. 섬 나라 잉글랜드의 엄청난 정복욕과 호전성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남한테 나쁜 짓 안 하고 돈 벌기 쉽나, 더욱이 '제국'이 착하게 살아서 만들어지나, 어디) 그 (역?)효과 중 하나가 영어임은 분명하다. 노벨상 유력 후보였던 응구기(와 티옹오?) 역시 말이 케냐 작가이지, 성장과 교육의 과정을 생각하면 절반 이상이 영국 작가다. 프랑스 정계에 진출해 있는 한국인(입양아)들 보면서도 느끼지만, 핏줄 만큼이나(-보다 더) 무서운 것이 교육인 듯하다. 가즈이 이시구로는 (찾아보니-_-;;) 서른 살(?) 될 때까지 일본에 가지 않았다니, 정녕 영국 작가인 듯하다. 이것도 좋다!  나의 감각으론, 러시아에 사는 젊은 고려인들이 떠오르는데, 외양만 한국인이지 스스로를 한국인으로 느끼는 사람은 별로 없다. 오히려 우리 쪽에서 질곡의 역사를 생각하여 그것을 강요하는 것에 가깝고, 그들 쪽에서 이것은 차라리 니체식 '원한'(르상티망: '과거에 그랬음') 에  가까운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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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가 너무 길어 온 가족이 미치는 중이다-_-;; 

사교육, 다들 반대한다. 아이들 학원 보내지 말고 그냥 놀리라고. 암기식, 주입식 공부하지 말고 폭넓게 독서하고 창의력 키우라고. 아니, 취지야 좋지, 아이고 어른이고 하루 종일 집에서 뒹굴뒹굴 컴퓨터-스마트폰 오락(나이와 취향에 맞게 어쩜 이리 다양한지!)에 심취, 밤에 늦게 자고 아침에 늦게 일어나 뒹굴뒹굴, 밥 먹는(해주는) 것도 귀찮아 또 뒹굴뒹굴. 

<뽀로로 놀이교실> 보는 아이를 다그치고 뭔가 생산적이고 진취적인 놀이(뭐 레고든 징고든 젠가든 아니면 독서든)로 이끌려면 엄마/아빠도 같이 부지런해야 하는데, 아, 아무래도 인간도 원래 천성은 '나무늘보'(Sloth!)였나 보다. 이 게으른, 그 게으름 덕분에 적자생존의 현장에서 살아남은(-고 있는) 동물에 대해서는 언제 또 쓰자. 넘 귀엽다! 너무 천천히 움직여서 오히려 천적들에게 안 잡힌다니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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