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적으로 아름답다

 

 

 

 

아이의 아침 등굣길

그림글자 落葉이 실현된다

단풍의 떨어짐이 절찬리  

또렷한 가을빛 꼭지점이

살랑살랑 연약한 듯 살벌하다 

초속 5센티미터보다는 빠를 테지

 

낙하 직전의 낙엽

착륙 직전의 낙엽

필사적으로 아름답다

 

 

 

*

 

 

 

 

 

 

 

 

 

 

 

 

 

 

 

 

떨어지기 직전의 나뭇잎은(?) 결사적으로 아름답다. 황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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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짓다, 라는 낱말 

 

 

 

 

'복'도 사전에 있고 '짓다'도 사전에 있지만 '복짓다'는 없다

 

밥과 옷과 집을 짓듯, 약을 짓듯

시와 소설과 편지 속 글을 짓듯

복을 짓자 

복 짓자

복짓자

 

45년 평생 얼마나 많은 복을 지었는지

내 머리카락, 저 위엄을 좀 봐

여전히 검고 윤기도 나는 것 같아

꼬박꼬박 착실한 달거리에 맞먹는 수준이야

내 머리카락에 감사와 존경을 표함과 동시에 

 

복짓고 살자  

내 검은 머리카락 더 풍성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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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이*준은

 

 

 

 

 

 

나의 아들 이*준은 2011년 *월 *일 관악구 작은 의원에서 3.54킬로의 건강한 아이로 태어났다.

 

태곳적에 '복띠'였던 이 아이는 하루 두갑 골초였던 148cm 38kg 왜소한 모체 속에서도 용케 자기 자리를 잡았고, 예정일보다 사나흘 늦었으나 자신의 때가 되자 자기 힘으로 그 모든 역경을 헤치고 세상에 나왔다.

 

생후 1개월에 경련을 했음에도 엄마 젖과 이유식 먹으며 무럭무럭 자랐고, 즐겁게 유치원 다니는 동안 수많은 발달재활치료를 받았고, 2018년 3월 당당하게 집앞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3학년 2학기인 지금도 걸음이 흔들리고 손이 떨리지만 수학과 과학 잘하고 국어와 사회에 흥미를 갖고  체육 시간에 친구들과 축구하는 것을 즐기고, 매일 30분 이상 책을 읽고 이틀에 한 번은 일기를 쓰고, 하루에 11시간 안팎으로 자고 고기와 밥, 채소, 과일을 골고루 먹는다.

 

내가 아는 이*준은  세상과 사물과 사람에 호기심이 많은 해맑은 아이로서, 특히 친구들에게 관심이 많아 같이 어울리고 싶어 하지만 그렇다고 비굴하게 친교를 구걸하지는 않을 만큼 자존심이 강하고 그와 동시에 세계 안에 자신의 조그만 자리를 찾을 수는 있을 만큼 자존감도 높은 아이로 자라고 있다.

 

태어날 때처럼, 또 지금껏 그래왔듯, 이*준이 앞으로도 힘든 순간을 잘 헤쳐 나가리라고 믿는다.

이*준의 인생에 건강과 행복을 기원한다.

 

 

 

 

 

*

 

희극인 박지선씨의 비보 이후 인터넷에서 쉽게 발견되는, 고인에 대한 부친의 글을 반복해서 읽으며 나도 한 번 따라해보았다.

 

"내가 아는 이*준은"은 "내가 바라는 이*준은"으로 바꿔도 될 법하다.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이유로 항상 너무 비관적이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본다. 내일 죽더라도,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지구와 내가 뭔 상관? - 아주 밀접한 상관!) 사과 나무를 심겠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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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응보를 이해하는 한 방식  

 

 

 

 

 

1.

 

지랄 같이 추운 날, 마수걸이도 제대로 못했는데 웬 할망구가 납시었다. 사과 한 개, 배 한 개, 귤도 한 개. 한 개씩만 사는 주제에 세상 불만은 모조리 쏟아부겠다는 듯 욕 잔치다.

"보소, 사과가 와 이리 시들었어? 배는 여기 멍들었네, 귤껍질은 무신 돌덩이가."  

평소 같으면 유들유들 했을 유숙이도 참다 못해  성질을 버럭낸다. 

"할머니, 그냥 가세요. 당신 같은 사람한테는 안 팔아요!"

 

 

 

2.

 

그날 오후 유숙이는 노점이나 다름없는 상점 안에 마련해놓은 골방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짧은 휴식 뒤 땅바닥으로 내려서던 참에 잠이 덜 깼는지 피가 덜 돌았는지 그만 비틀하며 자빠졌다. 팔다리가 접질렸고 얼굴 한 쪽이 싹 갈렸다. 

"아이고, 사람이 복을 짓고 살아야 하는데, 제 손으로, 제 입으로 복을 쫓았다가 오지게 벌 받았네."

이후 유숙이는 사나흘을 앓아누웠다. 지난 11월 6일의 일이다.

 

 

 

3.

 

정말이지 톨스토이 민화처럼 신이 그 비루하고 성마른 할망구의 모습으로 부전시장 바닥에 왕림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 신의 멱살을 붙들고 따져 묻고 싶다. 

"여보세요, 하필 왜, 그 못지 않게 비루한 칠순 할망구 앞에 나타나셨어요? 이 양반 참, 신이라는 주제에, 당최 염치라는 게 있으신지?"

 

 

 

*

 

요즘 걸핏하면 낮잠을 자는 엄마. 겁이 더럭 나서 한 소리 했더니 엄마의 답. "아이구, 늙어서 잠도 잘 안 오면 우울증 걸려 죽는다." 일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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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의 한 양상

 

 

 

 

 

 

1.

 

"거래처 사장이 나더러 삼각김밥이래."

"미친! 그 정도는 아닌데?"

 

2.

 

대낮 아파트 단지, 웬 할아버지가 지나간다

할아버지라고 부르면 조금은 억울할 법한 나이

어! 저거, 아무래도 우리 신랑인대?

그래도 혹시나 싶어 이름은 아껴두고

"야, 삼각김밥!"

아! 바로 돌아본 얼굴은 우리 신랑의 것

마흔 두 살 할아버지, 심지어 만 나이는 마흔인데  

 

머리카락의 양과 질, 그 중요성을 재고하는 계기가 되었다

 

3.

 

우리 둘이 알콩달콩 투덜투덜 두 손 맞잡고

감상주의와 낭만주의를 지나 사실주의로 왔지

모더니즘과 다다이즘도 지나 수술대 위

재봉틀과 박쥐우산도 우스워 시시하던 참

이제는 휴머니즘으로 코스모폴리타니즘으로

사해가 동포야 우리 신랑 머리가 삼각김밥이야 

삼각김밥 속 매실장아찌와 명란젓이 뇌수야  

 

 

 

*

 

 

남편은 지난 여름, 어촌 어르신들께도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 "저봐, 저렇게 손자 데리고 놀러 오면 얼마나 좋아." 헉, 우리 신랑 = 할아버지?? 우리 아들  = 손자?? 멀찍이 가던 나는 얼른 고개를 푹 숙이고, 내 남편과 아들로부터, 모르는 사람인 양 멀찍이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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