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가계, 1981
1. 덕유산
아비는 농부였다. 밤이 늦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어미도 농부였다. 새벽 같이 논밭으로 나갔다. 두 딸은 고추모종처럼 알콩달콩, 올망졸망 잘만 자랐다. 살을 도려내는 칼바람이 부는 날, 셋째가 태어났다. 팔순을 코앞에 두고 술에 취한 할배가 돌다리 밑으로 떨어졌다. 갓난 아들의 탯줄을 끊기가 무섭게 젊은 아비와 어미는 덕유산을 등졌다.
2. 황령산
아비는 노동자였다. 운동화를 받칠 고무 밑창을 만들었다. 어미는 분식집 아줌마였다. 등에는 항상 코흘리개 막내가 업혀 있었다. 달동네 산동네 단칸방에서 두 딸은 아침바람 찬바람을 불렀고 귀한 종이에 귀한 색연필을 칠했다. 기찻길 옆, 게딱지처럼 닥지닥지 붙은 음습한 오막살이에서 아이들이 태어나고 소리소문없이 죽어갔다.
3. 덕유산 황령산
아비는 노동자였다. 부전시장에서 청과물 트럭을 받았다. 어미는 노점상 아줌마였다. 하루 종일 볶은 보리와 옥수수를 팔았다. 삼남매는 콩나물 시루 속 콩알처럼 물만 먹고도 무럭무럭 자랐다. 너무 잘 자란 1번 아이는 덕유산 밑 외갓집으로 보내졌다. 조금 덜 자란 2번, 3번 아이는 시장바닥에서 배추와 무 잎사귀를 먹고 자랐다.
4. 황령산
전포국민학교 4학년 몇 반 반장 김연수에게는 귀염둥이 여동생과 개구쟁이 남동생이 있었다. 다섯 식구는 구덩이 오막살이 단칸방에 살았다. 아이들 몸에는 곰팡이가 피고 이끼가 자랐다. 빈지하에서 기어 올라왔을 때 김연수는 고등학생, 김연희는 중학생, 김형우는 국민학생이었다. 지상살이만도 고마운데 2층집의 2층이었다. 호젓한 다락방도 딸려 있었다. 전화기가 생겼고 탈수기와 냉장고가 생겼다. 1991년의 일이다.
5. 관악산
산 너머 산. 우리나라에는 산이 참 많다. 산에서 태어난 아이는 어른이 되어도 산에 산다. 관악산 옆에는 꼭대기에 헬기장이 있는 청룡산이 있다. 산자락에 경찰서와 소방서와 초등학교가 얹혀 있다. 요즘은 산골에 살아도 감자도 먹고 물고기도 먹고 별도 따먹는다. 더 이상 아무 데도 가지 않아도 된다, 아무 산도 오르지 않아도 된다. 세상,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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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라고? 그냥 사는 대로 살고 생각해. 배부른 소크라테스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