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의 맛

 

 

 

어제는

바닷가에 비가 듬뿍 왔어요

오늘 읍내 마트에서 산

부드러운 황도 복숭아는

삶은 감자 맛이 나네요

 

내 몸이 죽으면 나도 죽는 건가요? 

 

우리 집에는 커튼이 없어요

원래부터 없었어요

잠이 들면 커튼을

열었다 닫았다, 걷었다 쳤다,

그런 꿈을 꾸곤 해요

 

 

2020.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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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꿈 밖에서 식물이 자라고

 

 

 

아이의 꿈속에 들어갔다. 깊은 지하 주차장이었다. 아이는 노랑 로봇 로디와 꼬마 공룡 크롱과 놀고 있었다. 크롱, 고기만 먹으면 응가가 나오지 않아! 크롱, 크롱! 나는 지상 우주에서 놀러온 친구 역을 맡았다. 삐삐뽀뽀, 삐뽀삐뽀, 뽀삐뽀삐. 외계인이 아픈가봐, 우리가 고쳐주자. 아이의 말에 노랑 로봇 로디가 추임새가 넣었다. 그래, 그래, 우리가 고쳐주자. 아이가 친구들과 신나게 놀도록, 나는 아이의 꿈속을 나왔다. 

 

한밤의 어둠이 내린 가운데 방울 토마토가 자라고 있었다. 무럭무럭, 쑥쑥, 쑥덕쑥덕. 초 단위로 싹이 푸르러지고 줄기가 굵어졌다. 음란하고 왕성하고 아름다웠다. 

 

바람아, 멈추어다오!

삶아, 멈추어다오!

 

바람과 달리 단 일초도 멈추지 않는 삶을 피해 다시 아이의 꿈속으로 들어갔다. 아이의 꿈속에서 아이는 한바탕 젖을 빤 아기처럼 새근새근 곤한 잠에 빠져 있었다. 아이가 푹 자도록, 나는 다시 아이의 꿈속을 나왔다.

 

rien.

아무 일도 없었다.

아무 일도 없는 일이 있었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일을 했다. 

 

아이의 꿈 밖에서 오이와 호박이 담 넘어가는 구렁이보다 더 유연하게 초록빛 사지를 뻗고 있었다. 하늘하늘, 쭉쭉, 으쓱으쓱. 음란하고 왕성하고 아름다웠다.

 

 

 

*

 

rien. 사르트르의 <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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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가계, 1981

 

 

 

1. 덕유산

 

아비는 농부였다. 밤이 늦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어미도 농부였다. 새벽 같이 논밭으로 나갔다. 두 딸은 고추모종처럼 알콩달콩, 올망졸망 잘만 자랐다. 살을 도려내는 칼바람이 부는 날, 셋째가 태어났다. 팔순을 코앞에 두고 술에 취한 할배가 돌다리 밑으로 떨어졌다. 갓난 아들의 탯줄을 끊기가 무섭게 젊은 아비와 어미는 덕유산을 등졌다.   

 

 

2. 황령산

 

아비는 노동자였다. 운동화를 받칠 고무 밑창을 만들었다. 어미는 분식집 아줌마였다. 등에는 항상 코흘리개 막내가 업혀 있었다. 달동네 산동네 단칸방에서 두 딸은 아침바람 찬바람을 불렀고 귀한 종이에 귀한 색연필을 칠했다. 기찻길 옆, 게딱지처럼 닥지닥지 붙은 음습한 오막살이에서 아이들이 태어나고 소리소문없이 죽어갔다. 

 

 

3. 덕유산 황령산

 

아비는 노동자였다. 부전시장에서 청과물 트럭을 받았다. 어미는 노점상 아줌마였다. 하루 종일 볶은 보리와 옥수수를 팔았다. 삼남매는 콩나물 시루 속 콩알처럼 물만 먹고도 무럭무럭 자랐다. 너무 잘 자란 1번 아이는 덕유산 밑 외갓집으로 보내졌다. 조금 덜 자란 2번, 3번 아이는 시장바닥에서 배추와 무 잎사귀를 먹고 자랐다.

 

 

4. 황령산

 

전포국민학교 4학년 몇 반 반장 김연수에게는 귀염둥이 여동생과 개구쟁이 남동생이 있었다. 다섯 식구는 구덩이 오막살이 단칸방에 살았다. 아이들 몸에는 곰팡이가 피고 이끼가 자랐다. 빈지하에서 기어 올라왔을 때 김연수는 고등학생, 김연희는 중학생, 김형우는 국민학생이었다. 지상살이만도 고마운데 2층집의 2층이었다. 호젓한 다락방도 딸려 있었다. 전화기가 생겼고 탈수기와 냉장고가 생겼다. 1991년의 일이다.  

 

 

5. 관악산

 

산 너머 산. 우리나라에는 산이 참 많다. 산에서 태어난 아이는 어른이 되어도 산에 산다. 관악산 옆에는 꼭대기에 헬기장이 있는 청룡산이 있다. 산자락에 경찰서와 소방서와 초등학교가 얹혀 있다. 요즘은 산골에 살아도 감자도 먹고 물고기도 먹고 별도 따먹는다. 더 이상 아무 데도 가지 않아도 된다, 아무 산도 오르지 않아도 된다. 세상, 좋다!

 

*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라고? 그냥 사는 대로 살고 생각해. 배부른 소크라테스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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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적으로(2)

 

 

 

 

뇌종양이 일상이 되었다

조만간, 암도 일상이 되었다

 

일상은 양성이다

 

양성은 일상이다

일상은 경련이다

경련은 양성이다

양성은 악성이 아니다

 

양성은 benign -

상냥하고 유순한 것이다

 

"엄마, 무서워!"

 

무서워하는 아해와

그 아해를 무서워하는 엄마와,

세상에는 이렇게 둘밖에 없다

 

"준아, 괜찮아?"

"엄마, 나 아팠어?"

 

내 고향 6월은 오디가 무르익는,

물러 터지는 계절

 

아이야, 우리 둘의 밥상에는

상아빛 포트메리온 접시에

보랏빛 아이리스를 얹어두렴!

 

 

 

 

아침 햇살이 원래 이것보다 훨씬 환하고 밝았다.

학교, 오래오래 다니고 싶다. 모두모두 죽지 말고 살아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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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야(1)

 

 

 

아이야 -

너와 나는 어쩌자고 엄마와 아들의 운명으로 만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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