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정영문과 이론적 서사

 

정영문의 서사를 편의상 이론적 서사라고 부르자. 그것은 인간이든 동식물이든 물건이든 특정 현상이든 아무튼 어떤 대상에 관한 이론 정립을 지향하며 방법론에 있어 정치한 논증이 아니라 자유 연상, 즉 철저히 은유적인 사유의 흐름을 따른다. 가령, 첫 번째 이야기에서 나체주의자 행세를 하며 집안을 돌아다니는, 옛 여자 친구의 현 남자 친구가 어제 마신 데킬라가 남아 있는 오줌을 용설란 묘목을 향해 내뿜는 장면을 묘사한 다음 그의 생식기, 나아가 인간 남자(수컷)의 생식기 일반에 관한 이론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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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좀 봐달라는 듯 문을 열어놓은 채 벌이는 그들의 정사 얘기 이후 그녀와의 연애 시절이 회상되고 그 끝에 그녀의 젖꼭지 얘기, 나아가 젖꼭지 일반에 관한 이론이 나오고(<작위>, 20-21) 겸사겸사 과음을 한 그녀가 누구 집 대문 앞에서 설사를 한 일이 회상된다. 정영문식 연애와 사랑, 윤리와 도덕에 관한 의식이 은근한 따사로움과 유머러스함을 뽐내며 표현되는 대목이다. “그녀가 설사를 하는 것을 지켜보며 나는 그녀에게 치하를 해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런데 그 후로 나는 두고두고, 길에서 설사를 하는 누군가에게 포도나무 잎을 몇 장 따다 준 것이 내가 지금껏 살면서 누군가에게 베푼 가장 큰 선행 중 하나처럼 생각되었다.”(<작위>, 27) 이렇게 말의 세계로 진입한 포도나무 잎, 즉 포도에서 또 다른 사물이 말의 세계를 더 풍성하게 만들어간다. 그 사물은 보다시피 일상의 냄새를 많이 풍기는 흥미로운 일화의 형식일 수도 있지만, 설령 그런 경우일지라도 이내 특정 대상에 관한 쫀쫀한 이론으로 바뀐다. “방귀도 볼품 있는 엉덩이라야 어엿하게 뀔 수 있을 것 같았고, 그것이 이치인 것 같았다. 그 사실을 확인하려고, 얼마나 어엿하지 않은 방귀가 나오나 보려고 정색을 하고 방귀를 뀌려고 했지만 방귀는 나올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작위>, 62) 이렇게 운을 뗀 방귀-론에서 엉덩이-론이, 엉덩이-론에서 궁상-론이 나오는데, 어지간한 시나 아포리즘보다 더 리듬감이 있어 읽기에 무척 신명나는 대목이다.

 

나는 궁상을 떨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며, 궁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는, 어떤 이론 같은 것을 펼쳤다. / 가끔은 떨어줘야 하고, 가끔 떠는 것은 나쁘지 않은 궁상은 잘 떨면 재미있고, 정신적인 건강을 위해서 좋을 수도 있지만 잘못 떨면 스스로도 면목 없게 될 위험이 있고, 곧잘 그 정도가 지나치기 쉽고, 정도가 지나치게 되면 몸에도 좋지 않을 수 있어 궁상을 떨 때에는 조심해야 했다. 궁상의 문제 중 하나는 알맞은 정도로, 품위를 잃지 않고 잘 떨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궁상은 일종의 정신적인 형태로 볼 수도 있었는데, 어쩌면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고자 하면서 기어코 떨어지고자 하는 어떤 정신적 분투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궁상은 가혹하게 권태롭고 무의미한 이 세계에 맞서기보다는 패배를 받아들이며 백기를 흔들면서 속으로 웃는 것으로 볼 수도 있었다. 카프카와 이상 같은 작가들이 그 점을 가장 잘 보여주었다. 이상이 어떤 몹시 불쾌한 하루를 선택해 회충약을 복용했다고 했을 때 그는 궁상의 정수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내가 보기에 그들의 궁상에는 배울 점이 많았다. 한데 내 생각에는 궁상이 궁상으로서 돋보이려면 자의식으로 충만한 상태에서 그것을 떨어야 했다.(<작위>, 65)

 

물론 이런 부분이 많지는 않다. 그는 지금까지 소설을 써온 것도 [돌멩이를 굴러가게 하고 숫자를 셀 때와 같은] 그 이상한 오기와 끈기 때문이었는데 그것들은 대단히 보기 싫은 것들이었다.”(<작위>, 131)라고 썼거니와 이 대단히 보기 싫은 이상한 오기와 끈기가 항상 신명나는 미학적 성취로 이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도 안 되는 것이, 그 역시 너무나 따분하고 무료하여 권태와 분노의 노래를 부를 수밖에 없는 우리의 삶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작위>는 그동안 그가 쓴 소설 중 신명나는 부분이 가장 많을뿐더러 (<바셀린 붓다>심술궂은심사를 반영한 못된책이듯!) 자신의 신명을 독자와 공유하려는 갸륵한심사마저 표현된 착한책이다. 무대 의상 같은 재킷에 붉은색 계통의 체크무늬 바지(정말 난해한 패션이다!)를 입고 실직한 광대처럼 길을 걷는 의 모습에서는 그런 신명의 정수가 보인다. “그러자 나 자신이, 평생을 광대로 살아왔기에 앞으로도 광대로밖에는 살 수 없지만 더 이상 사람들 앞에서 광대 짓을 하지는 않고, 혼자 가끔 광대의 흉내의 내며 광대의 미소를 짓기도 할 광대 같이 느껴졌다.”(<작위>, 232-233)

 

아무래도 정영문의 소설은 영원토록 낯선 문체에도 불구하고 말보다는 사물의 세계에 더 가까이 가 있던, 그러려는 투지를 보인 카프카보다는 이 지랄은 이제 더는 못하겠다.”라는 선언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말의 지랄을 보여주는 베케트를 더 닮았다. 나는 소설을 쓰는 것으로 소설에 대한 복수를 하고 있었다.”(<작위>, 242) 정영문의 이 말에 졸렬한 악의는 물론 없어 보이지만 대단히 보기 싫은 이상한 오기와 끈기는 아주 잘 보인다. 자의식 과잉이나 과잉된 자의식은 소설을 저질의 서사(일기)로 퇴화시키지만 그것에 대한 미학적인 유희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나 나보코프의 <롤리타>가 보여주듯 고품격의 서사를 낳는다. <작위>가 그 증거인데, 난해해서가 아니라 워낙에 특이해서 그의 소설은 진정 소수적인 문학, 그래서 소중한 문학이다.

 

3-3. 소설 바깥의 소설가 정영문

 

잇따른 문학상 수상을 전후하여 공개된, 그의 소설 못지않게 소설적인 인터뷰 글을 토대로 대략 한 줄 전기를 구성해보자. 1965년 경남 함양군에서 쉰다섯의 아버지의 실수로 태어난 그는 거창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3년에 서울대학교 심리학과에 들어가고 간신히졸업을 한 다음에는 미술사를 공부하러 프랑스에 가지만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아 기꺼이포기하고 쉰 살을 목전에 둔 지금까지 번역으로 생계를 꾸리며 노예처럼소설을 써왔다. 대학에 입학한 해, 김천에서 통일호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한 청년 정영문에 관한 묘사도 재미있다. ‘상경의 이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소설은, 고전적인 근대소설에서 최근 우리문학의 루저 문학이나 정크 문학(그 이전의 칙릿 문학도 포함)에 이르기까지 각종 소설의 기저에 깔린 상승이 아니라 하강’, 말하자면 패배’(카프카)전락’(카뮈)의 동선을 보여준다. 물론 이 역시 <작위>의 의 광대 복장처럼 가면이자 포즈일 수 있다. 그러나 살 속까지 파고든 가면은 이미 그 사람의 얼굴이고 몸뚱어리에 붙어버린 포즈는 이미 그의 실존이다. 그리고 소설가의 실존을 구성하는 요소는 모두 그의 소설의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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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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