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에 지하철을 타고 먼 길을 떠났다. 살다살다 지하철 안에서만 한 시간 반 정도를 보내기는 처음, 즉 두번째다. 갈 때는 책을 좀 읽었다.(올 때는 기차가 미어터져 죽을 뻔했다.) 대낮이라, 도중에 바깥 풍경을 구경할 여유도 조금 있었다. 몇 년전(언제던가) 경의중앙선 타고 경희대 가던 일이 떠올랐다. 다섯살, 여섯살 아이가 어느덧 아홉살도 끝내는 중이니 참 덧없다. "엄마, 덧없다가 뭐야?"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그러나 이번에도 라디오이다. 너무 오랜만에 가서 무척 재미있었다. 게다가 생방송이어서(더러는 녹음도 있었던가? - 이것도 가물가물하다) 더 재미있었다. 교수채용에 1차 탈락하여 아주 무의미해진, 공개강의를 위해 준비한(김칫국, 쩐다 ㅋㅋㅋ) 정장을 (라디오-_-;;) 방송을 위해 입고 갔다. 교수자리는 얻지 못했으나 정장은 얻었다/남았다.

 

(<ebs 이승열의 세.음.행.> 홈피에는 그 다음 사진이 올라갔는데 나는 이게 좀 더 마음에 든다. 그런데 자켓이, xs이 없어서 s을 샀더니, 역시 크구나! 수트는 사이즈-핏이 생명인데. 또 사야겠다 -_-;)

 

 

언젠가도 쓴 것 같지만, 카세트라디오를 거의 끼고 살았던 나(아마 우리 세대)에게는 라디오 속, 혹은 그 너머 세계가 너무 궁금한 것이었다. 보다시피 이랬다. 프로그램의 특성상 음악을 미리 선곡해서 보냈는데, 시간상 다 못 틀었다. 혹은 내가 너무 많이 떠들어서(-_-;;) 뒤의 음악은 한곡 짤렸다. 처음에 염두에 둔 곡들은 이 정도다.

 

3번은 이런저런 맥락과 아무 상관없이 오로지 그냥 내가 좋아하는 곡이다. 유학 시절 라디오에서 자주 들었는데 귀국한 뒤에야 알았다. 노랫말이 인도 시인 타고르의 시임을. 물론 보편성에 밀려 방송에 나가지는 않았다. 이 곡도 여러 버전이 있다. 나머지 곡들은 수업 시간에 아이들과 듣고 또 일정 부분 강독도 한 것들이다. 노래 가사 강독/해석이 굉장히 힘들다는 건 이 때 수업하면서 처음 알았다. <백만송이 장미>는 심수봉과 장기하(목 밑에 장미 코사지? 달고^^;)가 부르는 것도 즐거웠다.  결정적으로 빠진 가수는 브이소츠키인데, 지금 넣어본다.   

 

1. 블랏 아쿠자바 - 기도 (음유시인 수준^^;)

Булат Окуджава - Молитва

https://www.youtube.com/watch?v=yCnlaBJRKcE

 

2. 빅토르 최(쪼이): 혈액행 (영화 <바늘> 삽입)

Виктор Цой "Группа крови"

https://www.youtube.com/watch?v=6C2ti3x9OAA

 

3. 이리나 오티예바 - 마지막 서사시(청춘물 영화 Вам И Не Снилось 주제곡)

Ирина Отиева - Последняя Поэма

https://www.youtube.com/watch?v=W_tZNxyGAwI


4. 알라 푸가초바, <백만송이 장미>

Миллион алых роз (Песня 1983)

https://www.youtube.com/watch?v=4yEeT6Swh5s

 

 

5. 드미트르 호보로스토프스키, <백학>(<모래 시계> 주제곡) 

Журавли" Дмитрий Хворостовский (4.2003)
https://www.youtube.com/watch?v=JTjPbkd_UlY

 

6. 블라디미르 브이소츠키 - 야생마들(말 안 듣는 말들^^;)

Владимир Высоцкий - Кони привередливые

https://www.youtube.com/watch?v=vA0aWBGqTR4

 

원래 방송 원고에 의하면, 마지막에는 이(런) 겨울에 어울리는 책을 한 권 소개하는 것이었다. 겨울이라면, 당연히 <닥터 지바고>^^; 추운 날, 따뜻한 방안에서 엎드려, 혹은 벽에 기대, 혹은 책상 앞에 앉아, 때론 영화음악 프로그램 들어가며 쉬엄쉬엄 읽으시라. 나도 그리 읽었다.

 

 

 

 

 

 

 

 

 

 

 

 

 

 

 

 

 

*

 

쾌락의 대가는 쓴 법. 지난 주말? 이번 주초부터 왼쪽 어깨가 묵직하고 손끝이 저리고 한 것이, 목디스크(즉 추간판 탈출)가 심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여기에 왼쪽 다리까지 불편해왔는데 아마 이건 디스크보다는 혈액 순환이나(하지 정맥류??) 근육 뭐 이런 문제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일주일이 거의 다 됐음에도, 널뛰면서 계속 좋지 않아 병원에 가보아야 할 것 같다. 이런 식의 '작은' 불편과 통증에 감사한다! 마구마구 심술이 나다가도 그래도 감사하게 된다.

 

더불어,

글쓰기의 시작은 '분노-부정'일 수 있어도

그것이 글을 끝내게 하는 원동력일 수는 없다.

어떤 종류든 한 편의 글(음악이나 그림도 똑같을 터)을

완성하는 힘은, 결국, '사랑-긍정'이다.

모두, 모두, 조금씩만 아프자. 

 

 

 

*

 

사진 속에도 잘 표현된 나의 검정 단발. 우리의 간사함이여, 가진 건 잊고 산다. 부산 가면 엄마가 상기시켜준다. 나의 머리카락은 전혀 세지 않았다. 칠순을 넘긴 아빠도 그렇다. 간혹 새치 한 두 개. 빠지지도 않았다. 할머니도 돌아가실 무렵인 87세에도 머리카락이 빽빽했고 그 무렵엔 반백이었다. 가족력이란 참. 하얘지는 건 괜찮아, 빠지지만 말아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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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9-11-23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제 유명 인사 되신 듯합니다. 검정 단발 참 단아하게 잘 어울려요. 머리카락이 전혀 세지 않았다는 말씀에 담주 화욜 새치 염색 예정되어 있는 저로서는 정말 부럽네요. 집안 내력이라니 더욱 그러합니다. 저희 어머니는 흰머리, 아버지는 차마 대머리라고 얘기하면 너무 속상해하실 듯해서.... 미래가 난망시됩니다.

푸른괭이 2019-11-23 14:05   좋아요 0 | URL
저는 파마(펌^^;)도 거의 해본 적 없고 염색은 단 한 번도 안 해봤어요
생각해보니 그것도 머리카락을 저렇게 타고난 덕분인 것 같아요
요즘 머리카락이 가늘어지니 볼륨(ㅋ)이 약해져 펌을 해봐야 하나,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물론 이런 것보다는 집안이 다 ‘속‘이 좋지 않아, 저 역시 미래가 난망시되네요 ㅋㅋ

전명호 2020-02-08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선배님 안녕하세요~ 저를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지만 96학번 전명호라고 합니다. 제 와이프가 우연히 EBS 라디오에 선배님 방송을 듣고 Молитва 노래가 너무 좋았다고 말해서, 이렇게 글 남겨요~ ^^**

푸른괭이 2020-02-08 14:52   좋아요 0 | URL
^^;;

전명호 2020-02-08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선배님~~ 와이프가 Молитва 가사를 번역해 내라고 안달입니다... 노어노문학과 출신이면 러시아어를 국어처럼 읽을 줄 아는 걸로 대단히 착각하는 듯... 계속되는 등쌀에 먼지묵은 도서출판 主流 로한사전을 꺼내보지만, 17년만의 강독과제라니... 포기하고 도움 청합니다.. 혹시 가사 번역본 있으시면 acrozen@naver.com 으로 부탁드려요~~ ^^;

p/s. 아이가 이제 3학년 올라가나 보네요~ 제 첫째딸도 3학년 올라가서, 더욱 정감이 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