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 좋다 보니 영화(드라마)로도 많이 만들어졌고 쭉 봐왔다.

 

 

 

 

 

 

 

 

 

 

 

 

 

킹비더의 영화는 다 빼고 오드리 햅번을 위한, 즉 나탸샤를 위한 영화. 세르게이 본다르축의 영화는 역시나 다 빼고 본다르축-피에르를 위한 영화. 혹은 대조국 전쟁을 위한 영화, 라고 해도 되겠다. 그럼에도, 나탈리아 사벨리예바, 굉장히 예뻤던 것으로 기억된다.(그녀는 소피아 로렌 주연의 <해바라기>에서 남주가 러시아에서 함께 사는 여자(문장ㅠ.ㅠ)의 역을 맡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미루어 두었던 BBC 버전 <전.평.>을 본다. KBS, 러시아 1 채널(^^;;)에서도 방영되었다. 재밌다!^^; 역시, 젊은-새- 버전을 따라가기는 힘든 것 같다 ㅠ.ㅠ 나는 그래도, 옛 버전을 볼 의향이 없지 않아 있는데, 수업 시간에 활용해본 결과, 정말 어떤 학생도 저 옛 버전을 좋아하지 않는다. 배우들은 너무 '올드'하고 화면이며 녹음이고 다 엉망이다. 반면, BBC 버전은 이게 새 것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우선 '보임성'(??)이 있다. 현재 3분의 2정도 봤는데, 알알이, 속속들이 정말 많이 대사와 에피소가 박힌 소설을 최대한 다 살리려는 저 영국놈들의 징그러운 노력이 놀랍다. (같은 섬나라인 일본과 비슷하게) 영국의 학구열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남주들은 비교적 캐스팅이 잘 된 것 같지만, 여주들이 왜 이런지 ㅠ.ㅠ 내가 다 울고 싶다. 우선 남주들. 피에르는 최고의 캐스팅인 듯. 소설 속 피에르는 좀 쭈뼛쭈뼛 어색하고 날이 갈수록 뚱뚱해지는 걸로 나온다. 하지만 그의 비만은 결코, 세르게이 본다르축 같은 중년의 비만이 아니다. 그는 겨우 이십대. 게다가 키가 크고 팔 다리가 굉장히 긴 걸로 나온다. 뚱뚱하기보다는 차라리 거구에 가깝달까. 그리고 작가의 분신답게, 무척 귀엽고 사랑스러운 구석이 있는 인물이다. 그의 어리숙함도 이런 장점의 일부이다. 그 다음, 안드레이. 무엇보다도 미남이어야 하는데, 썩 그렇지 못해 조금 아쉬웠고, 정작 미남 배우는 니콜라이 역을 맡았다. 잭 로던인데 <덩케르크>의 공군 역. 니콜라이도 비중이 적지 않은 인물인데 저 포스트에서는 빠졌다.

 

다소 조연으로, 바실리 공작. 저 훌륭한 연기, 저 개성있는 얼굴 누구지? 아주 오래 전에 본 이 영화의 아버지이자 아들. '푸줏간 소년'.  푸줏간의 아들은 결국 푸줏간을 하게 된다는, 알코올 중독자의 아들은 결국 알코올 중독자가 된다는 에밀 졸라식 세계관. 무척 강한 인상을 받은 영화다.

 

 

 

 

 

 

 

 

 

 

 

 

 

 

다시 건너 뛰어, <전.평.>을 지배하는 세계관이 다름 아닌 저 환경결정론. 바실리 공작은 주색이나 밝히는 허랑방탕한 인간으로, 그러면서 돈 밖에 모르는 속물로 나온다. 오히려 배우가 점잖아(?) 영화 속에서는 꽤 착해(?) 보인다. 적어도 양심 정도는 있는 인물로 나온다. 그가 그 모양이니 그 아들딸도 그럴 거라는 식이다. 특히, 그가 아들 아나톨리와 함께 볼콘스키 노공작을 방문한다고 하자, 노공작이 대뜸 그런다. 애비가 그런 놈이니 아들도 별 수 있겠어, 더 하겠지. ^^;;

 

하지만 소설 속에서 아나톨리와 엘렌(옐레나)은 굉장히 미남/미녀로 나온다. 그런데 정작 배우들은...ㅠ.ㅠ 특히, 엘렌은 겉보기에 굉장히 우아하고 사교술에 능한 귀부인-아가씨 느낌인데, 너무 천박한 연기를 선보여 무척 실망했다. 게다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볼 때, 그녀의 불륜-외도야 나쁜 것이지만, 그녀가 성욕이 강하거나 사교계 생활을 즐기는 것은 결코 부정의 가치는 아니다. 오히려 잘 살려두었다면, 훗날에는, <전.평.>의 맨 처음을 여는 살롱의 여주인이자 사교계의 여왕벌인 안나 셰레르 고관부인처럼 됐을 터. 실제로, 다른 여주들이 너무 안 예뻐서, 그녀(질리언 앤더슨)가 제일 예뻐 보였다 -_-;; 덧붙여, 엘렌은 아이를 안 낳으면 여자도, 심지어 사람도 아닌 저 세계 속에서 그녀 나름의 소신(!)을 갖고 임신을 거부하는 인물이다. 현재의 러시아 같으면 정치인이 되었을 수도...^^;;   

 

원래도 박색임이 계속 강조되는 마리야.(요즘 같으면 서울대 수학과 교수 정도 되지 않았으려나, 싶은..^^;;) 그리고 니콜라이 로스토프.

 

피에르와 나타샤. 이쪽 저쪽 모두 다시 봐도 무척 달뜨는 커플들. 연애에서 결혼으로, 그리고 행복한 결혼생활. 정녕 전원시적인 삶으로서, 톨-이가 인생의 절정을 구가하며 쓴 소설이 맞다. 그 다음(<안나 카레니나>)은 불륜 얘기가 될 수밖에 ㅠ.ㅠ

 마지막 장면은 BBC <제인 에어>(기골이 장대한 제인 에어여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의 <전.평.> 버전 같다.  어쩌면 이보다 더한 해피 엔딩이 없는데, 청년 루카치는 이 소설의 마지막을 왜 그런 우울과 권태, 환멸의 정조에서 읽었던 것인지. 역시 관점의, 입장의 문제인지.

 

 

 

 

 

 

 

 

 

 

 

 

 

덧붙여, 불로소득의 문제. 놀고 먹는 문제. 사람 좋은 로스토프 집안이 보여주듯, 19세기 러시아 귀족의 삶은 둘 중 하나다. 좋은 쪽: 좋게 먹고 마신다 - 손님 접대, 무도회, 파티, 사냥 등. 나쁜 쪽: 나쁘게 먹고 마신다 - 유곽, 방탕, 결투, 도박 등.  결국, 일하지 않고 놀기만 한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비단 19세기 러시아만? 그렇지 않다. 하지만 20세기초 혁명이 제일 먼저 일어난 곳은 러시아다.

 

 

 

 

 

 

 

 

 

 

 

 

 

 

 

 

 

그 와중에 톨-이라는 작가. 99.999퍼센트의 귀족이 아~무 생각 없이 살았건만 그는, 소설 속 피에르처럼, 이것이 틀렸음을 인지한 인물이다. 비록 자신이 가진 것을 포기하지는 못했으나(그럴 수가 없다, 자식이 열 셋이다 ㅠ.ㅠ) 적어도 그러려고 시도했던 인물이다. 타고 나길 성욕이 강했고 젊은 날(어쩌면 결혼 생활 동안에도) 소위 '방탕'했으나 그 못지 않게 강한 도덕성, 도덕 감각을 가진 인물이었다. 사회 사업에 대한 꿈이 커서 학교나 공공 시설을 많이 지었고 노년에는 손자, 손녀뻘 아이들과 즐겨 어울렸다. 그들을 위해 쓴 것이 민화. 10대, 20대 독자였던 나는 이런 톨-이를 위선자라고, 이중인격자라고 생각했으나, 30대, 40대 독자인 나는 톨-이가 정말로 위대한 거인임을 알겠다.

 

물론 그럼에도, 놀고 먹는 귀족들의 삶, 오래 보기는 힘들다 -_-;;

왜냐면... 우리 모두 이런 삶을 꿈꾸기 때문이다. 이게 참 힘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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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ssbaum 2019-06-24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툭 내려놓는 글이지만 푸른괭이 님의 관점이 잘 깔린 리뷰 잘 봤습니다. ^^

푸른괭이 2019-06-25 10:41   좋아요 0 | URL
뭘 ‘툭 내려놓는‘ 글로 읽혔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