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이 스위스를 이기든 말든 나로선 큰 관심이 없었다.
그렇다고 붉은악마의 열기를 딱히 반대할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축구 응원을 빙자한 일탈로 자기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건 명백한 수준 미달이다.
스위스전에 이기면 우르르 몰려다니며 화려한 폭죽/불꽃놀이를 할 참이었겠지.
졌는데 미리 사놓은 폭죽/불꽃이 아까우니까 집 앞 놀이터에서 그냥 써버린 거겠지.
놀토를 맞아 느긋하게 늦잠을 자려다 요란한 폭죽소리에 놀라서 깬 건 그렇다 치자.
딸아이를 데리고 놀이터에 갔다가 기겁을 했다.
위험하게도 불꽃놀이용 철사가 놀이터 사방에 수십 개나 꽂혀있는 것이다.
미끄럼틀 위에는 맥주 깡통과 먹다 남은 안주가 그득.
아, 놀이터 꼴불견, 또 추가다!!!
2.
그래도 어제는 꽤나 흐믓한 일이 있었다.
토요일의 수고로움에도 불구하고 일요일에 가보니 또 여기저기 담배꽁초, 아이스크림 막대기, 과자 봉지...
수위실에서 집게와 통을 빌려와 놀이터 청소를 하다가 마로가 불러 잠깐 일손을 놓은 적이 있는데,
다시 와 보니, 이런, 집게랑 통이 없어진 거다.
수위 선생님이 가져가셨나 싶어 두리번거리는데 오!!!
조그만 사내아이와 열심히 축구하며 놀던 아저씨 한 분이 놀이터 청소를 하고 계시는 거다!!!
작년 5월에 이사와서 지금까지 처음 있었던 일!!!
청소를 끝낸 뒤 내 앞에 통과 집게를 내려놓으며 멋적어하시는 모습이 어찌나 이뻐보이는지.
알고 보니 그 집 아들이 마로랑 동갑이라 어떻게든 둘이 친구가 되게 하려고 애써봤지만,
아직까지 낯선 친구랑 쉽게 어울리지 않는 마로 성격 때문에 실패했다. 아쉬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