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쪽이 많군요. 지난 겨울 낙산을 다녀오고 4월에 다시 가야지 했는데, 그전에 전소되었지요. 속이 얼마나 허허롭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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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대신 서산의 '개심사'에 다녀왔답니다. 개심사로 가는 길이 워낙 멋져서(벚꽃 언덕에 길가는 어찌 그리 아담하든지) 가을에도 또 와야겠다고 생각했죠. 개심사는 수덕사의 말절이라 조그만 산사이지만 저는 왠지 이런 아담한 산사가 좋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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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심사는 한자 그대로 '마음을 연다'는 뜻인데요, 산문을 들어서고 조금 걸으면 오른쪽과 왼쪽으로 개심사(開心寺)와 세심동(洗心洞)이라는 안내 표석이 눈에 띕니다. '마음을 씻고 마음을 연다' 멋지지 않습니다. 산사의 마당으로 들어서기 전 외나무다리도 잊을 수 없네요. 물론 밑은 연못이 아니구 수로처럼 좀 지저분하긴 하지만 손 대지 않은 것은 그것대로 좋더라구요. 좀 더러워도 괜찮하다는 듯 거울보기 하고 있는 배롱나무의 수형도 멋집니다. 아마 8월쯤부터는 붉은 꽃을 달고 있을 테니, 저는 백일 동안 핀다는 배롱나무 꽃 떨어지기 전 그곳을 다시 다녀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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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심사의 대웅전 기둥은 무량수전처럼 배흘림기둥으로 되어 있다는데 저는 못 봤어요. 옆에 있는 스님들의 거처방은 머리가 닿을 정도로 낮더군요. 아이와 함께 마루에 앉아 얘기를 나눴는데요, 시름이 사라지더라구요. 나오는 길 해우소에 들르는 것도 잊지 말아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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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개심사를 다녀오는 길, 시간이 남는다면 해미읍에 들러 해미읍성에서 잠짠 쉬었다가는 것도 좋지요. 아님 만리포의 낙조를 구경하는 것도 여행의 마무리로 좋겠지요. 하나 더, 서산 어디서나 파는 박속낙지는 꼭 맛보고 오셔야 합니다. 저희가 가는 음식점은 개심사 코스에서는 좀 멀어서 추천은 못하겠구요, 어디든 괜찮은 것 같아요.
추신> 저는 여행갈 때 짐은 최대로 줄이지만 그래도 그때그때 시집 한 권씩은 꼭 끼워넣지요. 음, 저 낮은 처마 아래서 문태준의 <맨발>을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맨발
어물전 개조개 한 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
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 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둘어
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맨발
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
아ㅡ. 하고 집이 울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맨발로 하루 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
아ㅡ. 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