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부터 나는 전원일기의 왕팬이었다.

아마 유일하게 닥본사를 했던 드라마가 아닌가 싶다.

20세기가 정말 끝나버렸다는 걸 나는 전원일기의 종영으로 더욱 실감하기도 했고,

전원일기의 출연진들은 지금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들이기에,

나의 이상형 용식오빠가 유인촌 장관이 되버렸을 땐 정말 기겁했더랬다.

종편채널이 생겼을 때 난 모니터링을 빙자하여

최불암씨가 나오는 채널A의 '천상의 화원-곰배령'을 보기 시작했고,

김혜자씨가 나오는 jtbc의 '청담동 살아요'도 보기 시작했다.


최불암씨는 그 분 표현으로는 한국인 정부식이고 내 표현으로는 또 다른 김회장님을 연기하신다.

난 그게 못내 좋아 최불암씨가 하늘 한 번 쳐다보고 산길을 걸을 때면 막 가슴이 뭉클해지고,

최불암씨가 혼자 술이라도 마실라치면 막 눈물이 난다.

이게 맞는 비유가 될런지 모르지만 아이돌 따라다니며 깍깍 소리지르는 심정이 이해될 정도다.


김혜자씨는 생애 첫 시트콤 출연으로 연기 변신을 시도했다고 기사는 떠들썩하지만

사실 변신이라는 말은 그녀와 전혀 맞지 않는다.

그녀는 시트콤에서도 변함없이 정극 연기를 한다.

어떠한 과장도 몸개그도 없이 늘 그렇듯 얌전한 얼굴로, 차분한 목소리로, 한없이 진지하다.

그녀의 에피소드는 늘 있을법한 얘기인데, 그녀의 대사는 늘 파격적이다.

그래서 난 숏다리의 하이킥(음, 이 제목 맞나) 대신 늘 '청담동 살아요'를 택한다.

아, 그녀는 얼마나 진지한 얼굴로 시낭송을 하는지, 난 그녀의 시마저 사랑스럽다. 




처절한 설사


주룩주룩

빗소리가 아닙니다.

쏴아쏴아

수돗물 소리도 아닙니다.

냉장고에서

썩기 직전의 야채를 끌어 모아

벌레 피기 시작한

정체불명의 가루를 털어 넣고

누린내 나기 시작한 기름을 두르고

부쳐 먹었습니다.

주룩주룩

쏴아쏴아

나는 음식물 쓰레기통

이토록

처절했던 적이 있었나

문득 처절의 끝에서

정신이 맑아집니다.

갈비뼈 아래서

졸졸졸

개울물 흐르는 소리가 납니다.

처절함 끝에

나를 찾습니다.

나는 맑은 개울물

졸졸졸



그러니 김혜자님, 저의 팬심을 부디 이해하시어 연예뉴스에만 나오길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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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2-02-09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전원일기처럼,
'나 시골 살아요' 하는 연속극은 나올 수 없을까 모르겠네요..

조선인 2012-02-09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된장님, 그러고보니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도 진작에 종영되었네요. 이제 시골살이는 1박2일에서 어쩌다 스쳐지나가는 풍경에 지나지 않는 걸까요. 한숨이 포옥 나오네요.

마립간 2012-02-09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너머 남촌에는'이라는 드라마는 아직 방영하잖아요.

노이에자이트 2012-02-09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계산해보니 최불암 씨가 전원일기에 처음 나올 때 나이가 40대 초반이더군요.김혜자 씨도 그렇고...

조선인 2012-02-09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립간님, 그게 그 드라마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
노이에자이트님, 일용엄니가 압권이죠. 29살 때 첫 출연이니까요.

sooninara 2012-02-09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린 지상파만 나와서..
오늘은 '해품달 하는 날이다. 신난다'하고 있어요.
딴소리...한가인은 아무리해도 김수현 이모삘이..ㅠ
최불암아저씨는 한국인의 밥상에 나와서 울아이들도 좋아해요^^

비로그인 2012-02-09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담동 살아요'에 나오는 김혜자씨는 그저 좋아요 ㅎㅎ
소 눈처럼 커다랗고 맑은 눈에 어눌하면서도 소녀 같은 말투~
그런데 정작 시트콤은 재미가 없네요 ㅠ ㅠ
잠시 들렸다 가봅니다 ^^;;

icaru 2012-02-09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숏다리의 하이킥 ㅎㅎㅎㅎ 뜻만 통하면 되죠뭐!
전, 조금 일찍 퇴근하는 날은 저녁 7시 때 방영하는 최불암이 향토음식 기행다니는 프로를 보곤해요~

조선인 2012-02-10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니나라님, 해품달은 소설로 봐서 통과~시켰어요. 한가인과 김수현은 정말 아니잖아요? 개인적으로는 문근영이 훨씬 더 좋지만... 고아라도 괜찮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말없는수다쟁이님, ㅎㅎ 전 조관우 보는 재미도 쏠쏠해서 재밌던데. 취향은 다 다르니까요.
이카루님, 7시 프로그램은... 미션 임파서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