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부터 나는 전원일기의 왕팬이었다.
아마 유일하게 닥본사를 했던 드라마가 아닌가 싶다.
20세기가 정말 끝나버렸다는 걸 나는 전원일기의 종영으로 더욱 실감하기도 했고,
전원일기의 출연진들은 지금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들이기에,
나의 이상형 용식오빠가 유인촌 장관이 되버렸을 땐 정말 기겁했더랬다.
종편채널이 생겼을 때 난 모니터링을 빙자하여
최불암씨가 나오는 채널A의 '천상의 화원-곰배령'을 보기 시작했고,
김혜자씨가 나오는 jtbc의 '청담동 살아요'도 보기 시작했다.
최불암씨는 그 분 표현으로는 한국인 정부식이고 내 표현으로는 또 다른 김회장님을 연기하신다.
난 그게 못내 좋아 최불암씨가 하늘 한 번 쳐다보고 산길을 걸을 때면 막 가슴이 뭉클해지고,
최불암씨가 혼자 술이라도 마실라치면 막 눈물이 난다.
이게 맞는 비유가 될런지 모르지만 아이돌 따라다니며 깍깍 소리지르는 심정이 이해될 정도다.
김혜자씨는 생애 첫 시트콤 출연으로 연기 변신을 시도했다고 기사는 떠들썩하지만
사실 변신이라는 말은 그녀와 전혀 맞지 않는다.
그녀는 시트콤에서도 변함없이 정극 연기를 한다.
어떠한 과장도 몸개그도 없이 늘 그렇듯 얌전한 얼굴로, 차분한 목소리로, 한없이 진지하다.
그녀의 에피소드는 늘 있을법한 얘기인데, 그녀의 대사는 늘 파격적이다.
그래서 난 숏다리의 하이킥(음, 이 제목 맞나) 대신 늘 '청담동 살아요'를 택한다.
아, 그녀는 얼마나 진지한 얼굴로 시낭송을 하는지, 난 그녀의 시마저 사랑스럽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2/0209/pimg_764633183734743.jpg)
처절한 설사
주룩주룩
빗소리가 아닙니다.
쏴아쏴아
수돗물 소리도 아닙니다.
냉장고에서
썩기 직전의 야채를 끌어 모아
벌레 피기 시작한
정체불명의 가루를 털어 넣고
누린내 나기 시작한 기름을 두르고
부쳐 먹었습니다.
주룩주룩
쏴아쏴아
나는 음식물 쓰레기통
이토록
처절했던 적이 있었나
문득 처절의 끝에서
정신이 맑아집니다.
갈비뼈 아래서
졸졸졸
개울물 흐르는 소리가 납니다.
처절함 끝에
나를 찾습니다.
나는 맑은 개울물
졸졸졸
그러니 김혜자님, 저의 팬심을 부디 이해하시어 연예뉴스에만 나오길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