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직 봄은 끝나지 않았다.
이번주는 참나물과 방풍나물이 주된 먹거리이다.
말린 거지만 취나물도 있다.

2.
아무리 봄나물이 좋아도, 사실 내게 봄은 괴로운 계절이다.
내 눈에는 안 보이지만 이번 주말을 계기로 아카시아가 지천에 핀 듯 하다.
공기 중에 녹아있는 아카시아의 달큰한 내음은 내겐 독약과 같다.
퉁퉁 부은 기관지와 벌렁 대는 가슴과 벌개진 피부...
출퇴근길마다 악몽은 반복댄다.

3.
毒霧?를 뚫고 출근하여 집에서 들고온 CD를 틀었다.
윤복희님의 오리지날 힛송 총결산집.
'여러분'은 지금껏 오로지 윤복희님의 노래였다.
정훈희님도, 인순이님도, 그 누구도,
이 노래만은 제 것으로 만들지 못했고 못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제... 난 축복을 만났다.
윤복희님의 '여러분'을 처음 들었을 때 줄줄 눈물을 흘렸던 그때처럼
난 어제 임재범님의 '여러분'을 들으며 옆지기와 사이좋게 눈물을 나눴다.
내 귀가, 내 심장이 미친 건가 싶어 원곡을 들어보니 그 감동은 그대로인데
임재범님의 '여러분'을 무편집영상으로 듣고 싶어 목이 마르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어제의 1등은 'YB'와 '이소라'와 '김연우'
전 세대를 아우르는 소녀시대 팬들에겐 미안하지만
내 귀엔 잡음으로만 들리던 'Run Devil Run'을 YB는 노래로 창조해냈다.
'아름다운 강산'같은 명곡으로 BMK가 2등을 한 건 납득할 만한 건데,
쓰레기를 보석으로 탈바꿈시키는 건 아무나 해내는 일이 아니다.

'이소라'는 용자다.
모두가 편곡에 목숨을 걸고 절정의 가창력에 도전하는데
혼자 담담히 모든 연출을 거부하고 원곡의 감성과 편안함으로 승부를 걸었다.
난 '이소라'가 아니지만 그녀는 분명 생각했을 거다.
송창식의 '사랑이야'라는 명곡에 그 어떤 꾸밈을 넣어서도 안 된다고.
그게 바로 아름다움에 바치는 최고의 헌사이자 감사이자 찬가라고 생각했던 거다.
그리고 그녀의 선택에 난 전폭적인 지지와 애정을 보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김연우...
모든 반주를, 코러스를 포기하고... 오로지 제 목소리만으로 하이라이트를 장식한!
제 가창력에, 음색에 대한 그의 자신감과 애정이 우리를 감동시켰다.
옆지기와 나는 그때 그의 뒷모습에서
엑스칼리버를 뽑아올리는 아서왕을 연상하며 아낌없이 기립박수를 보냈다.
난 그 순간을 기점으로 그의 인생과 노래가 변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5.
석가탄신일을 맞아 우리집에 왔던 쿠키는 어린 부처의 소명을 다 하고
지금은 남양주 누군가의 집에서 사랑받으며 크고 있다.
달랑 일주일이었지만 아이들로서는 태어나서 처운 키운 동물이었기에
아마도 평생동안 고양이를 볼 때마다 쿠키를 떠올릴 듯 하다.
나 역시 쿠키가 보고 싶어 마음이 싸아해진다.
옆지기는 언젠가 정원있는 집에 이사가면 강아지를 키울 수 있을 거라 하지만
그렇다고 쿠키가 잊혀질리야 없지.

6.
이건 뱀꼬리지만...
흠, 옆지기와의 내기에서 이겼다.
내 텝스 점수가 옆지기보다 16점 앞섰다.
비록 내 목표 점수에는 28점이나 모자르지만, 그래도 이긴 건 이긴 거다.
자축의 마음으로 CD를 지른다.
이렇게 나의 봄날은 또박 또박 가고 있다. 

 

 

 

 

 

 

 

 

 

 

 

 

 

 

 



<CD 이야기>
내가 가지고 있는 윤복희님의 CD는 품절상태라 할 수 없이 한국가요사 CD를 넣었다.
김광석님의 '인생이야기'는 테이프만 가지고 있다가 드디어 CD로 장만.
킹 크림슨과 산타나와 스트로토바리우스는 시디케이스 분실 후 속만 끓이다가 드디어 재장만.
오하이오와 콜드플레이는 보관함에만 있다가 금액 맞추느라 같이 질렀다.
아직 손에는 들어오지 않았지만 주문내역만 봐도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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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6일 현재 임재범 1,682, 김연우 954, 김범수 803, 이소라 431...
    from 조선인, 마로, 해람의 서재 2011-05-26 18:02 
    옥주현이 출연하는 걸 가지고 갑론을박하는 사람이 많은 듯 하다.나로선 왜 그녀에 대한 악플이 이리 많은지 이해 못 하겠다.뮤지컬 무대에서 보는 그녀는 정말 아름다운데, 핑클에 대한 선입견이 문제인걸까.'나는 가수다' 신드롬이 낳은 안타까운 부작용인데,또 다른 부작용은 평가 공정성 시비.실제로 이번 평가단 순위는 나의 개인순위와도 다르고,다음 무편집영상 플레이횟수와도 차이가 난다.임재범 (1,682,) 1위김연우 (954,) 4위김범수 (803,) 3위이
 
 
하늘바람 2011-05-23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돌나물 캐와서 집에서 심었어요
잘 자랄거같아요.
방풍나물은 어떻게 해 먹나요?
옆지기와 님의 모습이 가장 부러운데요.
전 어제 나가수를 못 보았어요 녹화했는데 오늘 보려고요. 오랫만에 페이퍼로 만나서 넘 기뻐요

마노아 2011-05-23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윤항기 씨 버전 여러분도 참 좋아해요.^^
이소라의 선택에 감탄했는데 이병진이 그걸 몰라주고 꼴찌로 책정해놔서 섭하더라고요.
김연우의 무반주 황홀했어요. 그의 노래를 다음 주에는 못 듣게 되어서 너무 안타깝네요...

Mephistopheles 2011-05-23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친듯이 카멜과 REM의 전 앨범을 발품팔아 사재꼈던 옛날이 생각납니다..^^

조선인 2011-05-23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 취나물은 소금간을 했으니, 참나물은 초장에 버무려먹을 거고, 방풍나물은 된장에 무치려고 생각중이에요. ^^
마노아님, 이병진씨는 이소라님의 결정에 어떠한 반론도 제기하지 않았지만, 청중을 회유하지 못 할 수 있을 거라고 함께 각오를 한 게 아닐까요? 전 '나는 가수다'를 보면서 이병진씨를 재발견하고 있는 중이에요. 마음씀씀이가 여러 모로 눈에 들어오네요.
메피스토님, 카멜은 다행히 분실하지 않았어요. 사실 잃어버린 시디는 더 많아요. 산울림 3집도 함께 없어졌고, 레드제플린과 핑크플로이드도 없어진 게 있구요, 제일 속상한 건 구하기 난해한 11월!!! 하늘바다의 테이프가 늘어진 거 만큼이나 눈물겨운 일이지요.

순오기 2011-05-23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김연우의 탈락은 정말 유감이에요.
무반주로 완전 압도한 그에게 청중평가단은 너무 냉정했어요.ㅜㅜ
악을 쓰고 해야 할 노래가 있고, 편안하게 푹 젖어서 부를 노래도 있는데...

비로그인 2011-05-23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시험 잘 보셨군요.. 안그래도 지난주에 겨우 시간이 나서 박물관 같이 가자고 할까 했더니 텝스 시험 보시더라구요. 조선인님과 6월에는 상봉을 할 수 있을런지.. ㅠㅠ

저도 이소라 노래 좋았어요. '사람 목소리가 정말 악기구나' 싶은 담백하고 절제된 노래.

2011-05-23 2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선인 2011-05-24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 현장에서는 음악성만이 아니라 '공감'이라는 요소가 크게 작용하지 않을까요? BMK는 워낙 흥겨웠고, 김범수는 의외로 쇼맨쉽이 있지요. ^^
manci님, 아, 말씀드린다는 걸 까먹었네요. 이번주 토요일도 박물관 신청했는데.
속닥님, 몇주째 무한반복중입니다. 지금도요. 움하하하하

Joule 2011-05-24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로운 음악은 잘 안 들으시는 것 같아요. 10대와 20대에 들었던 음악들로 지금의 시간을 오롯이 채워 버리면 10년 뒤에는 지금을 떠올릴 만한 음악이 없지 않을까요. 괜한 참견.

조선인 2011-05-24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쥴님, 님의 질문에 21세기 이후 제가 좋아하게 된 가수나 그룹이 있나 곰곰히 생각해봤어요. Songs:Ohio랑 Coldplay, Jamie Cullum, 정인 정도를 꼽을 수 있더군요. 그런데, 그들조차도 30대의 시간을 대표해주진 못하는 듯해요.
굳이 내 30대의 노래를 짚자면... 자장가인 듯. 마로는 초등학교 4학년씩이나 되어서도 매일밤 자장가를 불러달라고 해요. 엄마가 음치인 걸 모르나봐요. ^^

pjy 2011-05-27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기고양이는 정말 귀여웠는데요~~ 그놈 잘 살겁니다~ 물론 가끔 생각이 나겠지요~
목표점수는 목표점수인거고, 이긴건 이긴거죠ㅋ

조선인 2011-05-27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jy님, 맞아요, 이긴 건 이긴 거죠. 히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