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옆지기가 계속 채널을 돌려 살짝 짜증이 났더랬다.
그러다 갑자기 귀가 번쩍! 콘서트 7080에 윤복희씨가 나온 거다. 

그녀 나이가 올해 벌써 65살, 데뷔 60주년이란다.
6살에 음반 데뷔했다는 하춘화씨는 50대에 50주년인 유일한 가수라며 생색을 냈는데,
5살에 무대 데뷔한 윤복희씨 앞에서는 명함 못 꺼낼 얘기다.
팬인 나로선 레코드 취입이 늦어 윤복희씨가 기네스북에 못 오른 게 안타까울 뿐이지만
당사자인 그녀는 아마 신경도 안 쓰고 있을 거다. 

이게 진짜 기억인 건지, 아니면 나중에 TV프로그램에서 본 건지 모르지만,
내가 윤복희씨를 기억하는 건 79년 국제가요제가 처음이다.
'그럼 내가 외로울 때 누가 날 위로해주지... 바로 여러분...'
노래 끄트머리의 나직한 나레이션에 가슴이 벅차올랐고 소름이 쭈삣 솟았다.
초등학교 시절 나의 가장 큰 소원 중 하나가 윤복희씨의 뮤지컬 '피터팬'을 보는 거였는데,
어마어마한 표 값 때문에 감히 부모님에게는 말할 엄두도 못 냈고,
언젠가는 세뱃돈을 모아 가겠다 했는데, 이미 공연이 끝난 걸 알고 울기도 했다.
하루는 TV에서 명절 특집으로 뮤지컬 '피터팬'이 방영된 적이 있어서,
이걸 비디오에 녹화해놓은 뒤 보고 또 보고 했던 기억도 난다.
오빠가 그 위에 다른 프로그램을 녹화해 지워졌던 날은 오빠에게 대들다가 흠씬 혼나기도 했고,
윤복희씨의 '피터팬' 은퇴기사를 본 날은 결국 그녀의 피터팬을 평생 직접 못 보는구나 울었다. 

그렇게 나의 우상인 그녀였는데... 하아... 이 분 너무 하시다.
자기가 나온 프로그램은 절대 안 본다며 이유로 '노래를 너무 못 하니까'라는 망언을 하셨다.
하아, 제 쌍꺼풀이 마음에 안 든다는 장동건의 망언과는 비교도 안 되는 최강 망언이다.
윤복희씨의 노래와 저 망언을 저장해 가수랍시고 설치는 인간들에게 뿌려야 한다며 
옆지기와 나는 흥분하다 못해 자못 비분강개한 심정이 되었다.  

그녀의 시디는 품절로 살 수 없고, 혹시나 찾아본 공연 DVD는 존재하지도 않았지만,
망언에 복수(?)하는 마음으로 부랴부랴 MP3를 샀다.
그나마도 amazing grace 창 버전은 구할 수도 없으니 심통이 난다.
혹시 윤항기씨 교회에 가보면 구할 수 있으려나?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해한모리군 2011-01-10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은 참 불공평해요. 누군예쁘고 노래도 잘하고 말이죠!!!

Mephistopheles 2011-01-10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윤향기씨 교회에 가면 가스펠만 잔뜩 들어간 음반이 있지 않을까나요..?
(어라..포탈에서 검색해보니 오픈마켓에서 망언종결자 윤복희여사님 앨범 몇개 판매하는걸요..?)

순오기 2011-01-10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조선인님도 윤복희씨 팬이군요.
여러분~~ 을 들으면 전율이 이는 사람 여기도 있어요.^^
망언이라 해서 깜짝 놀랐답니다~~~
요즘 무늬만 가수인 애들이 새겨들어야 할 '망언'이 아니라 '명언'이네요.^^

잘잘라 2011-01-10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어제 그 포-스.. 찌릿했어요. ^^

조선인 2011-01-10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고씽휘모리님, 아직도 다리가 이쁘더이다. 이건 정말 불공평해요.
메피스토님, 어메이징 그레이스 창 버전은 공연 때만 들을 수 있고, 녹음한 적이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히잉.
순오기님, 호호 요새 애들 말투 흉내내봤습니다. 망언이니 종결자니... 참 극단적인 어휘 사용이죠? 그래도 어제는 옆지기랑 거의 동시에 외쳤답니다. 저런 망언을 하시다니!!! 이러면서요.
메리포핀스님, 부비부비. 우린 같은 시간을 보냈군요. ^^

마녀고양이 2011-01-10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윤복희 님의 이름과 망언이 함께 있어서 깜짝 놀랐잖아요.
그런 망언을 하셨군요... ㅋㅋ.

조선인님. 늦었지만 달력 예쁘게 받았습니다.
사진이 참 고운 달력입니다. 감사합니다.

2011-01-10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전 도대체 어린 시절을 어떻게 보낸건지 모르겠어요. 윤복희하면 막내동생이 아주 어릴 때(아마도 3살?) "벗어나고푸아~"하면서 손 딱 내미는 그거 흉내낸 기억 밖에 없거든요. 아주아주 오랜 우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보면 참 부러워요. 뭐 하나에 푹 빠져보지 못하고 살아온 지난 날들이 아쉬워요. 그런데 노력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부러워만 해봅니다.

조선인 2011-01-10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녀고양이님, 배송이 많이 늦어져 좀 속상했어요. 무사히 받으셨다니 마음이 놓입니다.
귄, ㅋㅎㅎ 니가 말하는 건 윤시내씨의 '그대에게서 벗어나고파'인 거 같은데? 음... 우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꼭 행복한 건 아냐. 주변에 존경할 롤모델이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거든. 쿨럭.

2011-01-12 13:59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그렇군요. 윤시내씨. -_-
전.. 우상도 없고 주변에 롤모델도 마땅히.. -_-
가끔씩 참, 삶이 매말랐다는 생각이 들어요.

조선인 2011-01-12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별님, 부럽습니다.

같은하늘 2011-01-13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망언이라 하여 깜짝 놀랐습니다.
그럴분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ㅎㅎ

조선인 2011-01-14 0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귄, 윤시내씨도 멋있지, 물론. ^^
같은하늘님, 으흐흐흐 요새 애들 말본새를 흉내내봤는데, 좀 너무했나요?

산사춘 2011-01-18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ㅎㅎ
윤복희씨 콘서트서 보고 짱 좋아하게 됐는데(전율이 막막~),
무슨 망언을 하셨나 그랬어요.

조선인 2011-01-19 0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망언은 망언이죠. 아니, 윤복희씨가 노래를 너무 못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호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