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있거라, 내 여름의 강 

                                 이면우

내 여름의 자본은
두 장 반바지, 티셔츠 하나
그리고 작업 중 척 늘어져
거추장스런 반 근 불알의 자존
나는 이 모든 장치를 힘껏 강에 던졌다
어느덧 가을이다 나도 한 때는 당당히
이 모두를 담보로 세끼니 밥을 샀다
강에는 껍질 벗은 날개의 묵은 집이 떠내려온다
저물녘 강변 자갈들은 발에 밟히며 구슬피 운다
지금은 청춘을 온전히 낭비한 사내들이
묵묵히 떠나야 하는 때다.


잘 있거라, 내 여름의 강
뿔뿔이 달아난 매미소리처럼
내 이제 아무런 할 말이 없다
젖은 머리칼의 여자 곁에서 한 때
가슴 두근대며 얻던 깊은 잠도 아득히 멀어져갔다
강변의 나지막한 텐트가 저 혼자 펄럭인다
여울목을 오르는 작은 물고기들의 배가
지는 햇빛에 아픔처럼 번뜩인다
저 멀리 굽은 둑길 따라
아이들은 노래부르며 다가오고 그때도
강은 내게 등 보이며 소리없이 흘러갔다.


나도 일찍이 황금빛 가을을 꿈꾸었으니
느닷없이 다가올 저녁은 준비하지 못했다
그 오랜 망설임, 글썽임 끝에
나의 여름은 새들의 날개짓처럼 희미해지고
사는 일 어김없이 가을은 와
지금은 지상의 단 한 번뿐인 여름을
세끼니 밥과 바꾼
등 굽은 사내들 어디론가 떠나는 때
나는 거기 어디쯤 뒤돌아 서서 강의 등에
또박또박 새겨 넣는 침묵의 말
잘 있거라, 내 여름의 강
내게 허락된 여름은 그토록 긴 아픔이었구나
아니, 가슴 뛰는 은밀한 기쁨이었구나.

 

*『그 저녁은 두 번 오지 않는다』(2002, 북갤럽)

 
   

이 가을 옆지기는 외로운 듯 하다.
마누라가 어머니 보고 싶다고 징징거리자 납골당에 데려가 펑펑 울게 해주는 남자다.
진 빠져 맥없이 처진 나를 평택으로 끌고가 짬뽕과 햄버거를 먹이는 남자다.
그리고 자신의 쓸쓸함을 시 한 편에 담아 메일로 보내는 남자다.
가족에게 더 무뚝뚝한 경상도 가시나인 난 이 남자를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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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9-09-23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결혼을 하는 이유가 다 이런 이유 때문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2009-09-23 09: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25 08: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23 1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25 08: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09-23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외로움을 함께 지켜봐줄 사람이 있어서 분명 힘이 나실듯 합니다.
조선인님 건강하시지요?
마로랑 해람이가 보고 싶네요.

머큐리 2009-09-23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까지 보내는거 보니까...계신 것만으로도 옆지기가 위로받고 있다는
예감이 듭니다.
왜 난 옆지기에게 시 한 편 보낼 생각을 못할까하는 자괴감이.. --;

같은하늘 2009-09-23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함께 하시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의지가 되는게 아닌지...
물론 벗어놓은 양말짝 마저 미울때도 있지만...^^

순오기 2009-09-24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함께 보듬고 울어야 할까요?^^
이면우의 시가 참으로 마음에 와닿네요~~

꿈꾸는섬 2009-09-24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분이 옆에 계시군요. 역시 우리 옆에 있는 사람이 가장 소중한 것 같아요.
서로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까요?

조선인 2009-09-25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 네, 이 남자라면 함께 늙어갈 동지다 싶었어요. ^^
휘모리님, 넵, 저흰 모두 건강합니다.
머큐리님, 문학과는 담 쌓고 사는 저도 옆지기 때문에 저런 시 구경해 봅니다. ㅎㅎ
같은하늘님, 전 수건이 제일 밉더라구요.
순오기님, 옆지기가 올해 아홉수에요. 그러다보니 저 시가 확 박히나 봐요.
꿈꾸는섬님, 어제는 같이 막걸리 한 잔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