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의 선
나는 무신론자다.
그래도 다른 사람의 종교는 존중하려고 노력하는데,
내가 무신론을 믿을 자유가 있듯 다른 사람은 신을 믿을 자유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자들이 들으면 불경하다 펄쩍 뛸 일일 수도 있겠지만,
대개 종교 의식은 아름답고 경건하여 매혹적인 경우가 많으니 관심이 가는 편인데,
특히 매력적으로 여기는 종교 의식 중 하나로 고해성사가 있다.
처음부터 고해성사에 호감을 가졌던 건 아니다.
중세 시대의 면죄부가 연상되어 오히려 못마땅하게 생각했더랬다.
하지만 말이다. 지나고 돌이켜 보니 그때 내가 잘못했구나 후회막급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더라.
나 혼자 반성하고 앞으로 잘해야지 다짐하면 되는 일이야 그냥 그러려니 할 수도 있는데,
그때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을 수도 있겠다 뒤늦게 깨닫는 문제라면 아주 골치 아프다.
이제 와 새삼 사과하기 머쓱한 게 아니라, 아예 그 사람과 연이 끊긴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사과를 한다고 나의 죄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전하고 싶어 가슴 한구석을 짖누르는 기억이 사무칠 때면,
더럭 고해성사가 하고 싶어진다.
신이라는 존재가 나의 죄를 대신 사하여 주길 원하는 게 아니다.
어떤 무한한 존재가 있어 내 마음을 그에게 직접 전해준다면 얼마나 기쁜 일이겠는가.
그리하여 뜬금없이 드는 생각.
애시당초 먼훗날에라도 후회할 글을 안 쓰는 게 최고겠지만 그 당시엔 모를 수도 있으니까
서재에도 고해성사 기능 같은 게 있으면 정말 기막히게 좋겠다.
언젠가 먼훗날 내가 올렸던 글이 잘못 된 것이어서 이를 수정하고 싶을 때 고해성사를 선택하면,
원래 올렸던 글을 본 모든 사람에게 수정된 글과 사과의 글을 메일로 보내주는 거다.
진짜 근사한 기능이겠다고 맞장구치는 사람이 백 명쯤 있다면,
서재 3.0에 반영해 달라고 지기님에게 떼쓸 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