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를 5년 가까이 했는데도 결혼하고서야 옆지기의 엄살이 대단하다는 걸 알았다.
감기만 걸려도 자리보전을 하고, 몸살까지 겹칠 때면 밤새 잠 설쳐가며 병간을 해줘야 할 정도.
게다가 그놈의 감기 '기운'과 몸살 '기운'은 어찌나 자주 찾아오시는지...
그런데 옆지기 엄살은 집안 내력이다.
아버님의 경우 어쩌다 몸이 안 좋아 며칠 속이 더부룩하면 위암 잘 보는 병원을 찾으시고,
어머님의 경우 감기가 걸렸다 하면 죽다 살아나시고,
아가씨의 경우 딸래미 송장 치르기 싫으면 얼른 와달라며 어머님에게 SOS를 하는 게 일년에도 수 차례.

반면 나를 비롯한 친정 식구들은 잔병 치레를 모르는 편이다.
비록 아버지는 신장 투석을 하시고 계시고 연세도 일흔일곱이나 되시지만 상황에 비해 거동이 활달하시고,
친정어머니는 당뇨로 돌아가시긴 했지만 돌아가시는 날까지도 바지런히 움직이셨고,
친정오빠들이나 나나 감기는 1년에 한 번 걸릴까 말까이며 보통 병원에 안 가고도 이삼일만에 털어낸다.

양쪽 집안이 워낙 비교되다 보니 가끔은 옆지기나 시댁 식구의 엄살에 진저리가 나기도 했는데,
마로에 이어 해람이까지 낳고 키우다보니 깨달은 게 있다.
나의 경우 초등학교 때 예방주사를 맞아도 안 울어서 참 씩씩하다는 칭찬을 받곤 했는데,
이제 보니 겨우 5살난 마로도 예방주사를 맞을 때 좀 움찔할 뿐 잘 참아내고,
해람이도 맞는 순간 으앙 울음을 터뜨릴 뿐 안아주면 바로 뚝 그친다.
또 내가 열이 40도가 넘을 때도 걸어다니는 것처럼 마로도 웬만큼 열이 나도 안 보채고 잘 먹고 잘 자지만
옆지기가 열 때문에 꼼짝도 못 하겠다 하여 재어보면 고작 37도, 높아봐야 38도.
아직 어린 마로나 갓난 해람이가 참을성이 좋아봐야 얼마나 좋겠는가?
아예 체질적으로 통증을 느끼는 정도가 다르다는 게 나의 결론이다.

문제는 이 결론이 심히 억울하다는 건데,
월화 이틀 연속 하루 10시간씩 전시장에 서 있었는데도 난 여전히 집안일을 하고 애들을 돌보는데,
일요일 오전에 잠깐 등산을 하다 정상의 반도 안 가 내려온 옆지기를 침대에서 끌어내는 건 너무 힘들다.
둘 다 아프다고 난리치면 집안이 굴러가지 않겠지만,
내가 좀 피곤해서 엄살이라도 부리고 싶을 때면 늘 옆지기가 선수쳐(?) 아프니
난 언제나 맘 놓고 아파보나 싶은 생각이 드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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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巖 2006-11-28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선수쳐서 아픈 사람중에 한 사람인뎁쇼. ㅎㅎㅎ
김장 담그는거 도왔다고 지금 허리엔 파스로 도배를 하고 있답니다. 그런데 아프진 말아야지, 진석이 데릴러 다녀야 하는데....

세실 2006-11-28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궁 울집이나 조선인님 집이나 똑같네요....
제가 좀 아픈 시늉이라도 내려면 신랑이 먼저 선수를 칩니다. 그럴땐 얄밉고, 속상하기도 하죠.....
그리구 제 친정식구들도 시댁 식구들에 비해 열배는 더 건강체질이랍니다.
그저 건강하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을수 밖에...

sooninara 2006-11-29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제가 옆지기님과라서 할말이 없네요.

반딧불,, 2006-11-29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휴..토닥토닥. 힘드시죠?
주부라는 자리가 그렇더라구요. 어느날 좀 심하게 아파버리니 그 뒤로는 자기가
지레 놀래서 요새 저는 편합니다.ㅋㅋㅋ

Mephistopheles 2006-11-29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마님께 보여드리면...무릎을 치면서 "내 이야기잖아..!!"라고 할 듯..^^
기운내세요..조선인님..^^ 그나저나 전시장에 10시간....
직장에서 미모가 제일 출중하신게 죄라면 죄군요...^^

2006-11-30 0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선인 2006-11-30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암님! 아프시면 아니되시옵니다!
세실님, ㅎㅎ 건강하다는 걸 위안 삼긴 해야죠.
수니나라님, 그런데 옆지기는 옆지기대로 억울하대요. 자기는 정말 아파 죽겠는데, 내가 엄살로 받아들이는 거 같아 속상하다네요.
반딧불님, 아하하하 심하게 아프시면 아니되시옵니다!
메피스토님, 체력순이라고 생각해요. 하루 10시간씩 사흘간 서 있을 수 있는 무쇠다리.
속닥이신분, 넵, 기다릴게요.

icaru 2006-11-30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정말 님은 씩씩하세요.
마로랑 해람이도 그러고 보니 참을성은 엄마 닮았네요..
저희 부부도 조선인 님네랑 좀 비슷해요.
늘 어딘가가 아프다고 하는 사람이랑 살아서 제 엄살 떨던 습성이 쏙 들어간다는...

전호인 2006-11-30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음해는 아니시지요. 대부분이 남자들이 아파서 죽겠다고 하면 옆지기들은 엄살이 심하다느니 다들 그렇게 말을 하는 데 억울합니다. 울 옆지기 또한 내가 아프다고 하면 집안내력이 어떠니 저떠니 하더이다. 울 집만 그러는 줄 알았더니 세실님도 그렇고 많은 분들이(여성편) 그러하군요, 하기야 제 친구 옆지기들도 친구의 엄살이 심하다 하고, 집안내력을 들이대곤 하는 것을 들었답니다. 이것은 분명 음해라고 저는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하는 바입니다. ㅎㅎ ^*^

조선인 2006-12-01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카루님, 어째 집집마다 사정이 다 똑같네요.
전호인님, 음해라뇨. 으흐흐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