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뇌의 원근법 - 서경식의 서양근대미술 기행
서경식 지음, 박소현 옮김 / 돌베개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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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을 찾는 이용자들이 늘어감에 따라 서점가에 진열되는 미술관련 책들이 범람의 수준을 넘어서면서 내 관심도 은근히 그리로 향함을 감지하게 되었던 것일까. 근래 구입한 책들 중 이 책이 속해있으니 말이다. 미술이니 클래식 음악이니 하는 것은 화석화 된 무엇인가처럼 나의 기억 속에 말랑말랑함 보다는 굳어버린 느낌으로 자리했으니 무엇을 읽을 것인가의 문제는 큰 관문이었다. 미술작품은 보고 느끼는 것이다!라는 얄팍한 사고에 우선 먼저 미술관을 견학해 보기도 하였으나 도통 감도 잡히지 않고 안개 속을 헤매는 것처럼 몽롱해지기만 하는 길이 되어버렸으니 그마저도 내겐 쉽지 않았다.




그렇다면 굳이 미술작품을 알아야 해?라는 의문도 있었지만, 내 마음을 잡아끄는 작품을 하나쯤은 간직하고 싶다라는 개인적인 바람으로 그러함에도 노력을 기울이고픈 욕망으로 바뀌어 버렸다. 그렇게 미술관련 책들을 뒤지다가 찾은 책 “고뇌의 원근법”. 이 책을 읽고 있으니...누군가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비관적인 그림을 좋아하는 군?!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굳이 그럴 의도는 아니었다. 물론 강하게 끌리는 무언가 때문에 고른 이유도 있었겠지만. 책이나 영화나 좋은 작품들이 항상 아름답지만은 않은 것처럼 미술도 굳이 그럴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하는 인식은 있을 것이다. 또한 난해한 예술영화가 끌리지 않듯 도저히 이해불가해 보이는 추상화는 내 의식 수준에서는 불가능했고 말이다.




아름다운 작품들을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없는 이유는 또 다른 데에 있다. 1991년부터 통일 후 동독의 미술작품을 찾는 여정이라는 이유 때문인데, 1차 대전의 시기부터 나치 점령 당시의 주요 작품들이 그 대상이다.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없었던 당대의 작가들의 작품들은 충격을 넘어선 강렬할 이끌림으로 나를 매료시켰다. 시대의 아픔을 가졌으나 당대로부터 버림받았던 그런 작품들. 그 속에 작가의 비판과 공포를 담았지만 가장 큰 소득은 현실을 직시하려는 작가 혹은 인간의 시선을 바로 볼 수 있다는 데에 있었다.




【교수는 ‘게으름’을 그린 사신의 가슴을 주시하라고 했다. 심장이 도려내어진 부분에 두꺼비가 들어앉아 있다. “문제는 단순한 ‘게으름’이 아니라 ‘마음의 게으름’입니다. 16세기에 이 죄는 가장 나쁜 죄로 간주되었습니다. ‘마음의 게으름’, 즉 사회에 참여하지 않고 모든 것에 무관심한 것 말입니다.” p.172】




하나의 그림을 이해하는 데에도 관심과 정성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게 된 책읽기였다. 그림을 바로 보는 것과 부연설명 그리고 작품이 탄생하게 된 시대와 그 속을 살아간 작가의 심경을 읽고 보는 것은 큰 차이를 가지고 있음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물론 바로 보기로써 그림을 이해하는 수준에 가닿을 수 있다면 더 없이 좋을 테지만 말이다. 저자가 굳이 찾아내는 그림들이 예쁘지 않다고 해서 그가 추구하는 미의식이 절대적으로 비관적인 것은 아니다. 선정된 그림들이 현실의 폭력과 상처로부터 저항함으로 인해 한 발 나아간 미래를 염원하는 저자의 인식을 잘 표현해 주는 작품들이라는 데에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예술의 주제가 사적인 것에서 공적인 것으로 이행할 때, 그 ‘공공성’은 국가와 동의어가 아니다. 오히려 예술가는 자율적인 시민의식에 입각해서 국가에 저항하는 공공성을 창조해야 한다.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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