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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책들과의 만남 (양장본)
데이비드 덴비 지음, 김번.문병훈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얼마 전 학생들에게 장소에 대한 인식을 설명하면서 연령이나 시대적인 상황에 따라 의미를 달리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후일 학교로 다시 돌아오는 학생 혹은 어른들은 참으로 용기 있는 이들이라는 말을 했었다. 아이들에게 현재의 삶을 더욱 충실히 해야함을 당부하는 의도로 전한 이야기였지만 평소 나의 개인적인 견해였다. 학창 시절 의미를 깨우치지 못한 공부내용에 대한 미련 때문 일텐데 그 땐 지금생각으로 너무 현실적이고 자아도취적이었다. 좋은 책들을 읽고 있었지만 그 의미를 잘 알지 못했다. 위대한 책들의 작가 덴비는 자신과 마주하기 위해 또는 일상에서 들려오는 뜻 모르고 의미 없는 비판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30년 전으로 돌아갔다. 이는 참으로 용기 있는 행동이요 의미 있는 전략이기도 했다.
그는 그리고 읽었다. 그냥 읽기만 한 것이 아니라 비판과 성찰을 동시에 해내었다. 위대한 책들이라는 단어 속에 내재되어있는 정치성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이 또한 작가가 끊임없이 고민한 부분이었다. 회의적이고 비판적인 눈총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가진 고전이라는 책들을 읽어나갔다. 왜 오늘날 수세기 전의 이야기를 읽어야 하는지 전쟁을 찬미하고 성불평등을 고취하려고만 하는 이러한 책들을 고전의 반열에 올려야 했는지 스스로 확인하고는 이내 불평들을 잠재운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이 책들의 가치는 무한한 것임을 깨닫는다.
그와 함께 공부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공간적으로는 미국이지만 보편화 되어가는 미디어 속에 성장하는 세대인 만큼 성향이 비슷한 면이 많다. 자신을 마주하지 못하는 성향은 나이 때문 일수도 있겠지만 점점 더 심화되어가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때 생각하고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이 책들이 큰 힘을 실어줄 것이라 작가는 확신하게 된다. 그들이 함께 읽었던 책만으로는 불가능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들을 이끌어 주던 교수들의 강의는 이를 어렵지만 가능하게 해주었음은 물론이다.
첫 강의는 호머의 일리어드로 시작된다. 이 책을 통해 자아를 확립하게 될 것이라는 테일러 교수의 지적이 흥미롭다. 전쟁을 노래한 시이며 전쟁이 주제인 이유로 잔혹하고 길기 까지 한 시인데 말이다. 자아는 과거로부터 창조되기도 한다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쟁을 노래한 시이지만 결과까지 찬미한 시는 아니었다는 저자의 설명이 인상적이다. 끊임없는 비판 속에서도 이 책이 가져다주는 의미를 퇴색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플라톤의 국가는 현재의 우리 사회에서 생각할 바를 짚어주기에 의미가 있는 책이다. 당대 사회에서도 개인 혹은 조직의 이기심을 잠재울 수는 없었던 이유 때문인지 이에 대한 성찰이 많다. 결국 그리스의 와해로 인한 지식인의 고뇌라고도 볼 수 있는 이 책은 시간적 환경을 달리할 뿐 고민거리는 같다.
위대한 책들 상, 하권을 더한 이 책은 일리어드를 시작으로 울프까지 너무나 많고 방대한 고민거리를 담았다. 이 책들의 고민거리를 일일이 지적한다는 것은 무리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고전읽기를 주저하게 된다면 우선 이 책을 읽고 시작하는 것은 어떠할지. 컬럼비아 대학에 테일러 교수와 스텐판슨 교수가 덴비를 이끌어 주었던 것처럼 덴비의 이 책이 우리에게 길잡이 역할을 해 줄 것이라 믿는다. 책에 대한 내용이 어렵고 이해하기 불가해 보여도 걱정할 것이 없다. 막간이라는 부분을 각 책 설명 뒷 부분에 넣어 더 쉬운 이해를 돕기 때문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려움은 곳곳에 책읽기를 방해한다. 워낙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기에 그럴 수도 있지만 저자 개인의 생각을 두서없이 이야기하는 듯한 방식도 그 이유인데 이것은 읽는 동안 익숙해지기도 하니 미리부터 걱정하는 것은 기우가 될 듯하다. 이 책의 추천사에 이런 글이 있었다. “이 책의 놀라운 점은 누구나 고전의 바다로 풍덩 뛰어들고 싶은 욕망을 갖게 한다는 데 있다.” 이 말에 절대적인 공감의 표시를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