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가요 언덕
차인표 지음, 김재홍 그림 / 살림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글을 읽어보면 그 사람의 마음을 엿 볼 수 있다. 차인표라는 남자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긍정적인 인상은 있었는데, 이 책을 읽은 이후에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아픈 역사를 소재로 삼았음에도 아프지 않고 따뜻하게 어루만져 준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그 속에서 관계맺음을 어찌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하는 글이었다.




시대적으로는 일제강점기. 일제가 대동아 공영이라는 목표를 내세우며 총칼로 우리 민족을 억압하던 시기였다. 순박하지만 세태에 어두웠던 우리 민족은 그들의 노예요 먹이가 되었다. 그런 시기였다. 백두산 자락 작은 마을도 벗어날 수 없었다. 순이와 할아버지 그리고 마을사람들이 평화롭게 살아가던 날들 때로는 백두산 호랑이를 잡겠다며 내로라하는 포수들이 거쳐 가기도 했던 그곳도 피해갈 수는 없었다.




호랑이가 출몰하여 생긴 마을이기에 호랑이 마을이라 불리운 곳에는 어여쁜 처녀 순이가 사는 곳이기도 했다. 7년 전 용이가 잠시 머물렀지만 어머니를 잡아간 백호를 찾아 원수를 갚기 위해 아버지와 시베리아로 떠났었다. 무한히 솟구치는 복수심을 잠재우기 위한 여정은 아버지를 여의는 그날까지 지속된다. 7년 뒤 용이가 돌아왔을 때에는 이미 일본군이 순이를 잡아간 후였다. 모든 일본군이 짐승 같았던 것은 아니었다. 마을 사람을 도와 망친 농사를 바로잡아주기도 했던 이웃 같은 이들도 있었다.




허나 모든 이가 같은 뜻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다. 같은 민족이라 해도 제 앞길을 위해 서슴없이 민족을 팔아먹는 이가 있었던 것처럼 때로 일본제국의 하는 짓거리를 한숨 쉬며 통탄한 가즈오 같은 인물도 있었다. 다른 뜻을 가졌다 한들 한낱 힘없는 개인일 뿐 시대가 원하는 대로 민족은 아픔을 겪어야 했으며 유린당할 수밖에 없었다.




순이는 결국 나라를 잃은 여인이 그렇듯 힘든 역사를 온몸으로 겪어내야 했다. 그런 여인의 모습을 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위안부 할머니의 인터뷰를 보고 난 후 집필의지를 가졌다고 하는 저자의 글이 그러한 생각을 보탠다. 또한 우리가 앞으로 지향해야 하는 곳을 모색하고자 하는 데에도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것은 아마도 용서와 화해가 아닐까. 어머니를 잡아간 백호를 찾고자 유랑했던 용이 부자의 모습이 안쓰러운 이유처럼 무조건적인 증오는 고통스럽다. 이러한 증오를 거둘 수 있는 일은 용서다. 중요한 것은 용서는 우선 사과가 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일본인이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홀로코스트 이후 독일의 전후세대 또한 많은 고통이 있었지만 무시하거나 용서를 구하는 노력이 없지 않았다. 그들 깊은 곳을 들여다본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상생하는 길임을 알고 있다. 일본과 싸우고 증오하기를 원치 않는다. 그것이 위안부 할머니들의 바람도 아닐 것이다. 당연히 받아야할 사과를 받고 그들을 용서하고 마음의 증오를 내려놓는 것이 바람인 것이다. 그러한 마음을 전하고픈 저자의 바람이 녹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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